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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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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마 5:13~16)
 
1. 성도는 사명자이다!

제자훈련반 다음 과정인 사역자반의 두 번째 책 제1과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 답은 “교회란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거룩한 무리들이며, 다시 세상으로 보내어진 사명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의 정의만이 아니라, 성도 여러분 개개인에 대한 정의이기도 합니다. 즉 성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며, 다시 세상으로 파송된 사명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에 관한 말씀과 더불어 세상으로 보내어진 것에 관한 말씀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보훈 중에 나오는 것으로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시면서 가장 많이 들어 본 말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바로 “성도는 소금과 빛”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성도가 그냥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그 중심에서 밀쳐낸 세상이요, 죄와 그 결과로 인하여 신음하는 세상입니다. 즉 하나님 없는 인간적인 세상이요, 성령 없는 육체적인 세상이요, 인간적인 욕망으로 덧칠된 세상이요, 그 결과 본질적으로 어둡고 부패한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이와 같이 죄악 가운데 썩어가고, 빛 없이 점점 더 어두워져가는 것을 그대로 두실 수 없어, 성도로 하여금 ‘소금이 되어 부패를 막으라’ 하시며, ‘빛이 되어 어두워가는 것을 막으라’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인 역할과 기능에 대한 주님의 명령의 말씀입니다. 즉 주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누가 더 소금다우냐, 누가 더 밝은 빛이냐’가 아니라,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소금답게, 그리고 얼마나 빛답게 사느냐’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묻고 계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할까요? 또한 빛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할까요?


2. 소금의 사명, 빛의 사명

1) 소금으로 산다는 것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소금을 사용해 왔습니다. 주로 음식의 간을 맞추는 조미료였지요. 뿐만 아니라 소금은 음식이 상하지 않고 썩지 않도록 하면서 오래 보관하기 위한 방부제로도 사용해 왔습니다. 또 이 소금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깨끗하게 정화 시키는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집에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어귀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지금도 대문이나 가게 입구에 소금을 뿌리는 분들이 있고, 재수 없는 사람이 다녀가면 그 사람으로 인해 부정탈까봐 소금을 뿌립니다. 저희 앞집이 자주 소금을 뿌리는데, 그 소금이 저희 집 문에까지 잔뜩 뿌려져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악귀가 못들어 오도록 하려는 것인지, 저희가 믿는 성령님이 자기들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이 소금은 물물교환 시대에 화폐의 역할을 했고, 또한 통치자나 사원에 바치는 공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이 소금이 ‘성도인 여러분이 이 땅에서 소금’이라는 말씀과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보는 것이 오늘의 첫 번째 과제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❶ 우리야 단맛, 신맛, 매운 맛 등을 내기 위해 이러저러한 조미료를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맛있는 음식”이란 적절한 소금간이 된 음식이었습니다. 양념, 즉 조미료가 거의 없던 옛날에는 소금이 맛을 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자 중요한 것이었지요. 사실 지금도 소금간이 안 된 음식은 정말 맛이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성도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은 이 세상과 사람들의 삶이 싱거운 음식과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복음이 없는 세상은 소금기 없는 음식처럼 싱겁고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솔로몬 왕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전부 다 누려본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제왕으로서 큰 명예를 누렸습니다. 재산이 많아서 은이나 금을 돌처럼 사용했습니다. 수많은 종들을 거느렸습니다. 그의 지혜와 지식은 세상 그 어떤 학자보다도 더 높았습니다. 또한 그는 1000명의 미녀들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겪어본 후에 말년에 가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즉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소금기 없는 싱거운 음식과 같아서 허무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로 이런 세상과 인생을 맛있게 만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라는 뜻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직 성도 여러분들만이 이 세상과 인생의 참 의미를 줄 수 있습니다. 인생이 제자리를 찾게 만들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만족스럽게 해 줄 수 있습니다.

❷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 오염되고 점점 더 부패해져 가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이것을 염려하여 과학과 교육을 통해, 혹 정치의 힘이나 경제력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고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유능한 정치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세상 곳곳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부패를 방지할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아브라함 시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기억해보십시오. 거기에 의인 10명만 있었어도 소돔과 고모라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소돔과 고모라는 부끄러운 이름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거 공산주의자들은 5%의 공산당원만 있으면 한 나라를 공산국가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에 감동된 소수의 성도들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세상을 신선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부패를 막기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의 부정, 음란, 그리고 타락의 요소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막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 일을 하라는 뜻으로 주님은 여러분을 소금이라 하신 것입니다.

❸ 그리고 소금은 굳은 음식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에 소금을 치면 그것이 부드러워지고 연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세상이 얼마나 각박하고,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거칩니까? 사람들은 더욱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세상은 점점 더 난폭해져가고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묻지마” 살인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성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4장 6절에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기적이고 각박하고 거칠어진 이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고, 그들을 서로 화평하게 만드는 역할을 성도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화평케 하는 사람, 사람 사람 사이를 사랑으로 연결하고 회복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❹ 이상과 같이 성도는 살 맛을 잃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 조미료가 되어야 하고, 썩어가는 세상을 신선하게 만드는 방부제의 역할을 해야 하며, 이기적이고 거칠어져가는 이 세상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소금인 성도가 그 맛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소금이 맛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요, 행위가 따르지 않는 입술만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8복”에 관한 말씀과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의도는 성도가 8복을 실천하는 사람, 즉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살지 못하면, 성도는 마치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맛 잃은 소금은 아무런 쓸 데가 없습니다. 쓸 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꼭 필요한 소금입니까? 아니면 맛을 잃어 무시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세상에서 빛으로 산다는 것

자, 이제 두 번째로 성도가 세상에서 빛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❶ 성도들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세상이 어둡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진리의 빛을 잃고 방황하며 고통 하는 흑암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둠에 빠진 세상에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 빛은 바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하는 빛, 인생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사람의 본분을 가르치는 빛, 구원과 영생의 길을 보고 그 길로 가게 하는 빛, 진정한 행복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이제 그 아들로 빛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성도들을 향해 "너희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❷ 빛의 역할은 어두움과 어두움에 속한 것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캄캄한 방에 불이 켜지면 방안이 환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가는 곳, 성도들이 있는 곳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은 마치 어둡던 방에 불이 켜지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이 빛된 삶이고 무엇이 어둠의 삶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욕과 쾌락을 좆아 사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말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왜 옳은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어둠과 악과 편법이 그대로 있다면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빛된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죠. 

또한 빛은 어두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어둡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요, 이 세상 사람들만 어두운 것이 아니더라구요! 로마서에 보면 모든 피조물들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8장). 그래서 그 모든 피조물들이 한 가지로 부르짖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즉 죄에서 돌아서서 영광의 주님을 향할 때 그것이 사람들만의 기쁨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기쁨도 된다는 것입니다.

빛의 또 다른 역할은 어둠에서 벗어나 바른 길, 옳은 길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새로운 목표와 비전을 향해 그리로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된 것이죠. 그래서 주님은 여러분들을 향해 세상 사람들을 바로 그 진리의 길로 이끄는 빛으로 살라 하신 것입니다.

❸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말로 덮어두지 않고, 받침대 위에 놓아 집 안 모든 사람을 비취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5). 사람들이 등불을 켜는 것은 집 안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등불 받침대, 혹은 등불을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선반 위에 등불을 두어서 그 위치를 높게 합니다. 그리고 등불이 필요 없어 그것을 끌 때는 “말”이라는 것으로 등불을 덮어서 껐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 “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등불은 켜서 밝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끄져 있는 상태로 무슨 악세사리 마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팔레스타인의 집들은 대부분 창문이 없어서 낮에도 등불을 켜야 했습니다. 집안에 사람이 있는 이상은 등불은 항상 켜져 있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어둡고, 그 어두운 가운데 사람들이 있는 이상, 이 세상의 등불인 성도 여러분들도 항상 불을 밝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항상 이 세상을 환하게 밝게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들이 숨겨져 있거나, 가려져 있거나, 막혀 있어, 등불 기능을 못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항상, 세상을 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향하여 등불을 켜서 밝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옛날 어느 서당의 훈장님이 영리하고 재주 있는 아이 셋을 뽑아서 돈을 두 푼씩 나누어주면서 “이 서당방 안에 가득히 찰 물건을 사가지고 오느라”고 했습니다. 세 아이들은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아이에게 “너는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고 물으니까, 아이는 솜뭉치하고 불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으로 어떻게 이 방 안을 가득 채우게 하겠느냐?” 그러자 그 아이는 솜뭉치에다가 불을 붙였습니다. 솜뭉치가 타면서 거기서 나온 연기가 온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니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매워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눈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해댔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선생님은 “돈 두 푼을 가지고 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을 잘 사왔다. 그런데 너는 자라서 의식(衣食)은 족하게 살겠다마는 사람을 괴롭혀서 원성을 많이 듣게 될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두 번째 아이에게 “너는 무엇을 사가지고 왔느냐?”하고 선생님이 물으니까, 그 아이는 향(香)하고 불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으로 어떻게 방 안을 채우겠느냐?”고 하니까, 향에다 불을 붙이니 그 향이 타면서 그 향내가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향내를 맡으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보고 “돈 두 푼을 가지고 방안을 가득 채우는 향을 사왔으니 참 잘했다. 그런데 너는 장차 결백하게 살겠구나. 벼슬 같은 것도 안 할 것이고 ․․․. 그래서 의식(衣食)이 곤란할 것이다. 네 일생은 저 향기처럼 향기롭기만 할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셋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을 사왔느냐?” 그 아이는 초와 불을 내놨습니다. 그리고는 초에 불을 붙였고, 그 불빛은 온 방 안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이것을 본 훈장님은 “돈 두 푼을 가지고 방 안에 온통 환하게 하는 초를 사왔으니 잘 했구나! 너는 자라서 온 백성을 구할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경기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입니다. 이 이야기처럼 성도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성도가 세상을 비추는 빛은 다름 아닌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행실”이란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잘난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평범하게 드러나는 행동이나 활동을 말합니다. 즉 여러분의 일상생활이 사람들의 기분을 환하게 만들고, 세상을 밝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빛, 여러분의 말 한 마디, 여러분의 작고 사소한 행동이 곧 빛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사는 성도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지금처럼 “예배당에 모여 있는 모습이 어떠하냐?”보다, “세상에서의 모습이 어떠하냐?” 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이웃과 이 지역사회, 나아가 온 세상을 위한 소금이자 빛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❶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여러분 자신이 어떠하냐’ 하는 것, 혹은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보다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이, 여러분 안에 있는 능력의 말씀이 여러분을 통하여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이고 주님과 말씀이 살아 역사하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소금이나 빛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가 우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이 여러분의 인격과 생활을 통하여 얼마나 드러나는가? 이것이 우선입니다. 

❷ 그리고 이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희생입니다. 소금은 그것이 뿌려진 곳에서 녹아지지 않으면 맛을 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빛을 내기 위해서는 연료가 소모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성도 여러분을 향해 ‘소금과 빛으로 살라’ 하신 것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희생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자신을 죽여야 만 여러분을 통하여 주님과 말씀이 살아나고, 또 여러분이 자신을 죽여야만 주님과 진리의 말씀이 세상과 사람들 속에 깊이 배어들 수 있으며 이 세상의 부패가 방지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세상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여러분을 죽이십시오! 세상의 법칙, 이 세상 사람들의 법칙은 자신이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죽어야 이 세상이 살맛나고, 밝고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어떤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은 소금 같은 존재'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그처럼, 여러분은 얼마나 소금 같은 사람인지요? 소금은 맛을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썩지 않도록 막아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음식을 부드럽게 하고 맛이 고루 배이게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말씀을 제대로만 드러낸다면,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역할을 잘해내어서 사람들이 여러분을 “소금 같은 존재”라는 부르고, 주님도 여러분을 “소금 같은 성도”라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은 얼마나 빛 같은 사람인지요? 주님은 여러분을 빛으로 만들어 이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주님과 진리의 말씀이 드러났다면, 그 때문에 가족들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이 얼마나 환해졌습니까? 여러분이 계신 곳의 어둡고 은밀한 것들이 얼마나 사라졌습니까? 여러분 주변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해졌는지요?

여러분들 때문에 세상이 더욱 살맛나고, 여러분들 때문에 이 세상이 더 밝아지게 되고, 여러분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살맛을 느끼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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