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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데스다 (요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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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요 5:2~9)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는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이름은 ‘은혜의 집’ 또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곽 동북쪽의 양문(羊門)곁에 있는 이곳은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곳에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데스다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오늘날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몇 년 전 성지순례 차 예루살렘에 갔을 때 베데스다 유적지를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1888년 쉭(Herr Shick)이라는 사람이 발견하여 지금은 그 위에 기념교회가 지어져 있는데 출입문에는 본문말씀을 각국어로 기록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1) 연못과 행각이 있습니다.

본문말씀 2절에 “예루살렘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연못은 BC2세기에 길이 100∼110m, 너비 62∼80m, 깊이 7∼8m나 되는 두 개의 쌍둥이 연못을 만들었는데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기후가 덥고 건조하며 특히 예루살렘은 해발 800m나 되는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물이 귀한 곳입니다. 거기에 물을 가두는 연못을 파고 행각을 지어서 쉼터를 만들어 놓은 것은 더위에 지치고 피곤해 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안식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놓은 베데스다의 일면입니다.

2)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3절에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공원이나 각종 위락시설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듭니다. 베데스다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목적의 집이라면 도움을 받아야 될 많은 사람들의 집합소가 됩니다. 이곳에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딱하고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기대를 가지고 찾아왔을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몰려들게 되어있습니다.

3) 인공문명(人工文明)의 현장입니다.

세상 나라의 문명은 대개가 사람의 육체적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욕구가 반영되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편리하고자 하는 의지로 문명이 이루어졌고 발전해 왔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도 정신적, 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문화시설이 아니라 단순히 육체적 피곤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일시적으로나마 쉼을 얻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위락시설에 불가했습니다. 세상 나라의 정치나 경제 또는 예술과 문화는 대체로 사람들의 육체적인 욕구나 세상적인 만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최초로 시날땅 평지에 건축했던 바벨론 성과 탑도 결국 “우리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목적으로서 기독교문명과 반대되는 인공문명의 표본이었습니다(창 11:1-4).

2. 이름뿐인 베데스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이름이고, 오늘날 많이 들을 수 있는 기독교적 용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의 베데스다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 맹목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거기 와 있는 무리들은 육체의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도 서른여덟 해 동안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그곳에 와서 온 종일 연못의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근거 없는 전설을 믿고 있었습니다. 4절에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목욕하러 내려온다는 말은 우리나라 전설에도 간혹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가상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런 전설을 믿고 사는 사람은 육체의 질병보다 더 가련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2) 이기적(利己的)인 사람들의 집합소입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고 하였습니다(7절).
이 병자는 예수님에게 그곳 베데스다의 실상을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하나같이 천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물이 움직일 때 자기가 제일 먼저 뛰어들어 자기의 병을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도 38년이나 되는 병자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소망이 가장 절실하고 안타까운 입장이었지만 현장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다 살벌한 눈빛으로 자기만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분위기였습니다. 

3) 형식종교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자비의 집’이니까 자비와 사랑을 논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거기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항상 입으로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논했을 뿐 실제로는 전혀 반대되는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3-4에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침을 받고 걸어서 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를 불러 시비를 걸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다고 하여 문제로 삼았습니다(10-16절).


3. 실제적인 베데스다.

베데스다의 실제적인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전설만 믿고 모여온 그 많은 병자들에게는 그곳이 한갓 불행과 고통의 집일 뿐 자비의 집일 수는 없었습니다. 형식 종교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그곳도 역시 유명무실한 자비의 집일뿐 혐오감만 더해 주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심으로 명실상부한 베데스다가 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진정한 베데스다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자비와 사랑과 은혜의 주인공입니다. 야고보서 5:1세상에는 그리스도 없이도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없는 인간의 사랑이나 자비는 불완전합니다. 시간이나 환경에 따라서 그 기준도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근거가 되는 자비가 진정한 자비입니다(눅 6:36). 예수님께서는 외식을 일삼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좇아 십일조는 철저히 하면서도 그보다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책망하였습니다(마 23:23).

2)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인간의 메마른 심령이나 고달픈 육신도 모두 주님의 말씀으로 치료받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사 40:28-31). 제자들과 함께 산위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산상보훈(山上寶訓)을 강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7장에 나오는 말씀들은 천국백성이 지켜야 될 헌장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 하나하나가 다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윤택하게 되고 육신의 질병도 고쳐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사람은 집을 짓되 반석위에 주초를 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마 7:24-27).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로 가오리까”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요 6:68).

3) 능력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에 오신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병을 앓으며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이 사람은 베데스다를 찾는 대표적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어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능력이 행사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의 능력을 믿고 순종할 때 반드시 기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그 능력은 인정했습니다(마 7:29). 

여러분! 주님의 교회는 이시대의 베데스다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으로서 말씀이 지배하고 능력이 행사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1에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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