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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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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행 3:1~10)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 

  신앙에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적 이론화 󰓎추상화입니다.
이론을 알아야 하고 이해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신앙은 생명이며 능력이며 활력입니다.
  사도행전은 신앙이 지적으로 이론화되어지고 추상화되어지는 위험을 극복하게 해줍니다. 사도행전은 움직이는 복음과 살아있고 실제적인 복음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세상과 마주하며 행동하는 처음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성령께서는 이 최초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이들은 성령충만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분을 찬양하고 기뻐했습니다. 
  더구나 처음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예수님의 사역을 지속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명백한 것은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속량하시어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 첫 번째 역사가 성전미문에 있는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사람에게서 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있습니다.
  성전미문에 있는 구걸하는 장애인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였습니다. 성서원어의 직역은 어머니 배에서부터 못 걷게 된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 가운데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서 하지 말라는 것을 기어이 하려고 하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아이 안에 무엇이 있기에 하지 말라는 그 일을 하는 것입니까? 아이는 자신의 의지를 사용할 때에 거의 예외 없이 불순종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대답은 하나뿐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물려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인간이 완전하게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죄를 지음으로 그들의 모든 후손들이 죄악 중에 태어났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저자는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고 했습니다. 
  죄는 우리 인간을 불행한 존재로 있게 합니다. 인간성을 마비시킵니다. 구차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이런 인간실존에 진실해질수록 우리 자신에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도 이 죄 아래 살아가는 인간의 고통과 고달픔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이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죄 아래 태어난 고달픈 인생입니다.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삶의 길을 걸어가는 불행한 존재들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세상이 걷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자선을 베풀어주는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걷지 못하는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고 할 때에 무엇을 얻을까하여 바라보았습니다.   
  걷지 못하며 구걸하는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 적선을 해주지 않을까 하여 바라보았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대하여 잘못된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로부터 온갖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기대하는 것들을 보면,

  󰓍 멋진 음악을 들으려고 합니다.
  󰓎 철학적 가르침과 박식한 강연을 듣고자 합니다.
  󰓏 심리치료를 기대합니다. 
  󰓐 긍정적 사고를 심어주기를 원합니다.
  󰓑 정치적 선언이나 정치적 행동과 개혁을 위한 의무를 기대합니다. 
  󰓒 사회사업과 구제를 기대합니다.     
  󰓓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이런 것들을 제공하며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런 것들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사회보다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이런 것들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해결은 적선이 아니라 일어나 걷는 것입니다. 일어나 걷게 하는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교회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전해주는 곳입니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이며 자랑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죄로 마비된 영과 혼과 육이 병든 인간을 구원하고 치료하는 곳입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으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셔서 영생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불행한 사람은 곧 일어나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베드로는 이일에 대하여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같이 완전하게 낫게 하였느니라.”(행3:16)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일에 대하여 심문하는 제사장들 앞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9-12)

  인간의 참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의 이름만이 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그 분의 이름 안에서 영생과 함께 우리는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0×0=0, 100×0=0, 1000×0=0 입니다. 세상의 아무리 많은 물질 지식이나 경험도 예수 없는 0으로 곱하면 0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삶의 모든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계셔야 합니다.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준다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이름을 전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 이름에 대한 확신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름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줄 수 있는 예수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구원이라는 복음전파의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고 싶은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한번은 최봉석 목사가 의주 어느 산골지방을 지나며 전도여행 할 때입니다. 추수철이 되어 한 농부가 연자매에 곡식을 찧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의 얼굴에 기쁜 빛을 볼 수 없고 수심이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켜보고 있던 최목사는 그 만 참을 수가 없어서 ‘예수천당!’ 하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연자매를 끌던 말이 놀라 뛰면서 연자매 채를 끊고 뛰어나가자 그 농부는 화가 나서 막대기로 최 목사를 치려고 했습니다. 최 목사는 도망을 치다 되돌아보면서 다시 ‘예수천당!’ 하고 외쳤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10년 후 의주 읍에서 대 사경회가 열려 최 목사가 그 곳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최 목사는 그 사경회에서 연자맷돌을 돌리던 농부를 만났는데 그는 어느새 예수를 믿어 집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스왈렌 부인(Mrs. W.L. Swallen/미북 장로회선교사)이 황해도 안악장날 노방전도 할 때의 일입니다. 안악장이 서는 날이면 황해도 각처에서 장꾼들이 모여드는데 그들은 장에 오기 전에 성황당에 모여서 깡패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나선 스왈렌 부인은 김익두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전도지를 내어주며 예수를 믿으라고 했더니 김익두는 전도지를 받자마자 그 전도지를 코를 풀었습니다. 화가난 부인은 김익두에게 “당신코 오늘 밤에 썩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밤새도록 고민한 김익두는 다음날 부인을 찾아와 그 두려움을 고백했습니다. 부인은 “예수 믿으면 코 안 썩습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김익두는 그 말에 이끌리어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내게 예수님이 계신 예수이름에 대한 감격과 확신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예수이름을 전해준 베드로와 같이 구원의 삶을 전해주는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나면서부터 시각장애 된 자에 대하여 그 보지 못함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고 묻는 제자들에게 부모의 죄도 아니고 본인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함이라면서 그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요9:1-11) 

우리의 죄로 인한 삶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의 삶을 전해주는 증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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