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으로 천상에서 본 것 (계 5:1~8)

  • 잡초 잡초
  • 531
  • 0

첨부 1


성령으로 천상에서 본 것 (계 5:1~8)

우리는 TV를 통해 한․미 정상 회담을 본다. 더 놀라운 것은 TV화면을 통해 이소연 씨의 우주 생활을 본다. 이 이야기를 세종대왕에게 알려준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첨단 과학이 이루어놓은 장면을 비웃고 미쳤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이끌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간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고 돌아온다. 이것을 입신의 은사라고 한다. 

하이디 베이커는 회교국에서 집회를 하였다. 250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불신자였다. 설교 도중 하이디는 입신하여 천국으로 갔다. 이소연 씨가 우주로 날아올라가듯 그의 영이 하늘 나라에 입신하였다. 거기서 창고를 열어 보니 사람들의 각 신체 장기들이 있었다. 거기서 하이디는 집회에 참석한 한 소녀의 다리 없는 장애를 생각하고 두 다리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땅으로 돌아왔다. 그때 사람들이 하이디를 보니 강단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꼭 쥐고 있는 모양으로 소녀에게 달려가서 두 다리를 붙여 주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리 없는 소녀의 다리가 생겨났다. 그래서 수많은 모슬림들이 그것을 보고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안방에서 TV란 도구로 우주 정거장을 보는 것이 과학이라면 계시와 신앙으로 무엇을 보는가? 여러분은 성령으로, 믿음으로 하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4장, 5장이 바로 그 보좌의 현황도이다. 자세하고 분명하다. 그러면 요한이 성령의 감동에 이끌려 천상의 세계를 볼 때 어떤 장면을 보았는가? ‘나도 보게 하소서!’란 믿음으로 계시록을 보자.


첫째, 예배하는 장면을 세밀하게 보았다. (계5:12)

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여섯 날개를 지닌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하면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드리고 구원 받은 백성의 상징인 24장로들이 자기들이 쓰고 있는 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던지며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대해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천천 만만이 되는 천사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예배한다. 실로 천상을 예배하는 곳이다. 요한계시록 4, 5장 전체가 바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예배하는 것이다. 

Worship이란 단어 자체가 앵글로색슨어의 Worth+Scipe에서 유래한 것으로 ‘~에게 가치를 돌린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에, 예수님은 구세주이시기에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24장로들도, 네 생물들도 모두 천상에 가 있지만 예배 받을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천사는 밤낮 쉬지 않고 예배할 뿐이며 24장로도 엎드려 경배하며 면류관을 벗어 보좌에 드릴 뿐이다.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 한 분 뿐이며 천상에서도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여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사람이나 천사에게로 돌릴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바로 서야 한다.

요한 사도는 요한계시록 19장에서부터 21장까지 하나님의 의의 통치의 환상을 본다. 
계19:11~16은 정복자 그리스도의 환상이고 
계19:17~21은 승리자 그리스도의 환상이다. 
계20:1~3은 셋째 환상으로 사단을 포박하는 환상이며 
계20:4~6은 넷째 환상으로 천년 왕국의 대한 환상이다. 계20:7~10은 사단의 시대가 끝나는 환상이며 계20:11~15은 여섯째 환상으로 천지가 없어지고 둘째 부활과 심판의 환상이다. 
마지막으로 계21:1~8은 일곱째 환상으로 새 창조에 대한 환상을 본다. 

그런데 요한이 이 7가지 환상을 언급하기 전 천상의 발 아래 엎드린다.(계19:10) 그 이유는 경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천사는 요한에게 말한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그렇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하늘의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불어 일곱 재앙을 보여준다. 할지라도 천사는 우리와 같은 종이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천상에 이르를 때 천사는 우리를 섬기는 영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에도 예배해서는 안된다.


둘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을 보았다. (계5:1)

계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하나님의 손에는 인봉된 책이 있다. 계20:12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는 두 개의 책이 있다. 하나는 행위록의 책이고 또 하나는 생명록의 책이다.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는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 하나님께는 책이 있음이 분명한데 특히 인봉된 책이 그 오른손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 위에서나 땅에서나 땅 아래서나 책을 펼 자격자가 없다.(계5:3) 요한은 그래서 크게 운다. 찬송 소리가 가득한 천상의 보좌에서 인봉된 책의 비밀을 펼 수 없어서 운다.

요한을 울게 만든 그 책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말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모든 이 세계의 역사와 우주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을 떼고 책을 편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공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실현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책을 펴거나 볼 수 있는 자가 없으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가?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7)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으니 요한은 크게 울었다.

요한계시록은 장래 일을 말하는 책이다. 주님은 또한 장래 일을 물으라고 하신 분이시다. 인봉된 책 앞에서 요한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이 있음을 보았다. 하늘 나라에는 기록하는 책이 있다.


셋째, 어린 양이신 예수가 책을 펴시는 분임을 보았다. (계5:5)

계5:5을 보면 24장로 중에 하나가 와서 말한다.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그렇다. 힘 있는 천사, 큰 음성으로 외치는 천사는 “누가 책을 펴기에 합당하냐?”고 묻기나 하였지 요한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그런데 구원 받은 사람들의 대표인 24장로 중의 한 사람, 그는 와서 비밀을 말하였다. 어느 누구도 인봉된 책을 펼 수 없지만 장로는 말해 주었다. 유다 지파의 사자가, 다윗의 뿌리가 책을 펴게 한다는 것이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는 바로 예수다. 창49:9에서 유다를 가리켜 야곱은 사자 새끼라고 하였다. 유다의 사자는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를 가리켰다. 다윗의 뿌리란 사11:1~10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였다. 여기 이긴 자는 바로 예수인 것이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구원 받은 장로는 요한을 위로한다. “울지 말라. 하늘과 땅 사이에 책을 열 자가 없지만 어린 양 예수님이 책을 열 수 있다.”

계5:7 “어린 양이 나아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예수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진행시키시는 분이시다. 책을 열기 위해 봉인된 일곱 인도 하나씩 떼는 것은 예수님만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것이다. 천사에게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위해 예수를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으로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성도들을 위해 죽임 당한 분은 예수님이시며 그 구원을 아는 성도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계시하고 실현하고 통치함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임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는 분이다. 그렇다. 예수는 내 문제에 구원자이시며 목적을 향해 움직여가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예배해야 한다. 예수가 과거와 오늘, 미래의 섭리자이다. 그 예수를 내 주님으로, 내 신랑으로, 내 친구로 모시고 산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이며 축복이기 때문이다.


넷째, 성도들의 기도가 대접에 담긴 것을 보았다. (계5:8)

어린 양 예수께서 인봉한 책을 취할 때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어린 양을 경배하러 엎드린다. 그들은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5:8 “성도의 기도들”이라 하였다. 보좌에 엎드린 천사들과 구원 얻은 성도들은 예배에 사용되는 악기를 지니고 있고 또한 땅에서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를 금 대접에 담아두고 있다. 얼마나 감사하고 신나는가? 땅에서 올리는 나와 여러분의 기도는 향이 되어 천상으로 올라온다. 그것이 금 대접에 담겼다는 것은 기도의 귀함을 뜻한다. 
기도는 내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다. 금 같이 귀하기에 금 대접에 담는다. 부르짖는 기도 제목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도 기도의 그릇에 담겨져서 응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기도는 기도의 그릇, 향 대접에 담겨진다. 이 나라를 위한 기도, 통일과 번영을 위한 기도, 내 사랑하는 이를 위한 기도 등 모두 다 내던져지는 기도 같아도 그 기도가 담겨진다. 정말 신나는 일이다. 

요한을 통해 천상의 장면을 보게 된 우리는 본다고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감사하고 신나야 한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위를 보려고 하자. 하늘의 보좌를 보고 거기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보고 우리를 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성령을 바라보자. 오직 주께 예배드리는 천군 천사를 보고 그 영광의 크기가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자.

샨 볼츠란 사역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입신을 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거기서 집회를 나가는 교회를 보고 사람들을 보고 신앙의 형편들을 본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고 그 교회에 대해 사역을 한다. 성령의 은사야말로 TV, 핸드폰, 컴퓨터보다 더 정확이 정보를 주시는 사역자들의 필수 도구다. 성령님은 땅의 것만이 아니고 하늘의 것을 연결해 주신다. 일터에서 맨 주먹으로 일하기보다 전자 장비로 일해야 능률이 오르듯 하나님의 사역도 이성만 의지하고, 내 힘만 의지하는데서부터 이젠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더 많은 일을 하자. 나의 똑똑한 머리로 할 수 없는 하늘의 삼층천의 일을 보며 신령한 영적 세계를 알아 큰일을 감당하자. 성령님의 웹사이트는 무한대이다. 나의 컴퓨터 용량에 다 담을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장면을 다 담고 계신다. 

요한의 계시록은 글자 그대로 내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도 볼 수 있다. 지금 진행되는 일과 알 수 없는 미래사에 대해 인도받을 수 있다. 믿음의 사람이 되어 기도로, 말씀으로 성령의 이끌어주시는 네트워크에 등록하자.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실 것이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불의한 길을 피하게 하고 승리의 길을 알게 해 주실 것이다.

신나는 교회 생활, 그것은 성령님의 회원이 되는데 있다. 성령으로 천상의 세계에 클릭하여 들어가기를 축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