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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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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행 16:6~10)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23주년 되는 날입니다. 정확하게는 1985년 4월 28일 설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도 많았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중에 가장 흔하게 하시는 방법은 무엇이지요?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성경 곳곳에서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역점을 두신 일이 제자를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훈련 시켜 그들을 통해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통해 일하실 때 어떤 훈련을 하시고 어떤 사람을 들어 쓰실까요? 

주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여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승천하시기 직전 그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시며 명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사도들은 이 명령을 잊었는지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동시에 가야 했는데 기다려도 가질 않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핍박자들을 들어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를 가하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흩어져 유대 땅, 사마리아 땅, 이방 땅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심에도 제자들은 땅 끝까지 가는 선교사역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핍박자였던 사울을 변화시켜 바울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를 이방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교회의 바나바에게 붙여줍니다. 그리고 그 안디옥 교회의 파송으로 땅 끝 선교를 시작하게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만큼  선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역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성령 하나님께서 갑자기 안디옥 교회에 금식을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온 성도들이 금식을 하는데 어느날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13:2) 명하십니다. 정말 강권적인 성령의 명령이었습니다. 

여기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이 뭡니까? 그것이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땅 끝 선교”입니다. 

그 일을 누가 하게 합니까? 그 안디옥 교회 담임목사처럼 최고 중요한 역할을 맡아 하던 바나바, 그리고 핍박자였다가 주께로 돌아온 사람, 요즘으로 말하면 교육전도사 격인 사울이 뽑히게 됩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이 명령을 따라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지금의 터키 일대, 소아시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제1차 전도여행입니다.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구브로 섬으로, 그리고 바보 섬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지방을 다녀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선교여행을 합니다. 

그러다가 곧바로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마가 요한 문제로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고 헤어집니다. 마가 요한은 1차 전도여행에 나섰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그사람을 절대로 데려 갈수 없다고 하고 바나바는 데려가자는 것입니다. 결국 바나바는 그 마가 요한을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따로 따로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바울팀은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서 거기서 1차 전도여행지였던 더베, 루스드라를 돌아보고 브루기아,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무시아에 이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시아에서 아무리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성령께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비두니아로 가고자 노력했는데 성령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전도여행은 성령이 주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고 싶다고 자기 마음대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붙여 주셔야 하고 길도 열려야 하고 하는데 이상하리 만큼 길이 열리지 않고 막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에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를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환상 가운데 보여주신 것입니다. 환상 속에 마게도냐 사람 한사람을 등장시켜 외치게 합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그제야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써 결국 마게도냐, 오늘의 유럽 땅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쓰신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이 시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9절을 보시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밤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놓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 가운데서 당신의 종이 갈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탄생 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무엇을 보고 오지요? 별입니다. 하나님이 별을 통해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도 이방인은 상대를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환상 속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자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여러 짐승들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았는데 “잡아먹으라” 하는 음성을 3번이나 듣게 됩니다. 

그때 마침 고넬료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제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판단합니다. “아하!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구나!”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온가족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는 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먼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이 시대에 쓰임을 받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원래 유대교의 골수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이유가 뭡니까? 예수쟁이들 잡아 죽이고 가두는 것이 사명인줄 알았던 그가 다메섹이라는 도시로 예수쟁이들 잡으러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았습니다. 

같이 가던 다른 사람들은 빛을 보지 못했는데 사울은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 주님의 빛을 보고 그는 유대교를 버리고 개종을 합니다. 당시의 수많은 유대인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 바울은 먼저 남들이 보지 못한 빛을 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처럼 위대한 사도로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남들처럼 평범하게 예수를 믿으려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난이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주님의 인도라면 가야 합니다. 환경 탓 말고 형편 탓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아닌지만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순간순간 우리에게 당신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사람을 통해서도 보여 주시고 설교를 통해서도 보여 주십니다. 

어떤 이는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 한마디를 통해서 “아! 이것이다”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였다 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원래 의사였습니다. 국내에서 외과 의사로는 최고의 대우를 받던 분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 직업을 내려놓고 선교지로 가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도 합니다. 환상을 보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계시가 완성된 시대이기에 오늘날은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우리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통해서나 하나님의 인도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가 들어 쓰임을 받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2.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했던 사람입니다. 전도여행을 출발 할 때도 사도행전 13:2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출발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령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의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 성령 하나님이 바울의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을 보세요.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성령에 민감한 사람은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령에 민감해야만 복된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기도를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즉시 기도하십시오. 어느 날 마음속에서 누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강렬함이 일어납니까? 그러면 무조건 순종하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게 순종입니다. 

또 로마서 8장 9절을 보세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 속에 성령이 거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고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만약에 우리 속에 성령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 성령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명령하시고 여러분을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성도가 되어야 영적 능력을 체험하고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의 인도대로 한번 살아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명령하십니다. 권면이나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성령에 민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늘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성경을 늘 가까이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죄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삶속에서 죄와 친구로 지내게 되면 우리 속에 거하신 성령님은 더 이상 우리 속에서 일하지 않게 됩니다. 죄를 멀리하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순종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 2:12절을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밤에 갑자기 그를 감동시키사 예루살렘 성을 순찰하게 하십니다. 그것도 사람을 대동하지 않고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상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라는 주님의 음성… 무너진 성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 어찌 보면 너무도 합리적이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느헤미야는 그 음성에 순종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사건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밀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우리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이끌어 가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마음속에는 보통 두 가지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단이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주는 음성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성령의 음성인 것입니다. 

사단의 음성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대적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에 순종치 못하게 하고 형편을 앞세우게 하는 음성이 들리거든 떠나라고 과감하게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말하면서 죽을 것을 말하자 베드로가 그리하지 마옵소서 합니다. 그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십니다. 베드로가 사탄은 아니지만 베드로가 말한 것은 사탄이 한 말입니다. 그때는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들을 사랑하게 하고 섬기게 하고 일어서게 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런 음성은 바로 성령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거꾸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대적하고 세상의 음성 사단이 좋아하는 음성을 좇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여러분 열매가 있겠습니까? 성령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사랑희락 화평 온유 양선 충성.... 그러나 사단이 주는 것은 고통과 갈등, 괴로움 등이 맺어져 우리를 넘어트리고 멸망시킵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느헤미야가 경험했던 그런 성령의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니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연예인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연예인 교회를 짓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입당을 며칠 앞에 둔 날 성령님께서는 그의 마음속에 그 교회를 떠나라는 음성을 주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고생해서 지은 성전인데. 어떤 열심으로 건축한 성전인데.. 입당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떠나라는 주님의 음성… 여러분 같으면 순종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결국 하 목사님은 그 음성에 순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서 성경을 2년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온누리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도 엄청난 사역을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영적 지도자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성령은 지금도 여러분 속에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음성과 인도하심에 순종하신다면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3. 하나님의 뜻에 목숨 걸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보세요.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환상 가운데 나타난 마게도냐 사람 한사람의 외침을 하나님의 음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바다 건너편 마게도냐로 건너가려고 힘을 썼습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입니다. 그곳에 가서 어떤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한 바울은 곧바로 실행합니다. 

더 기도해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더 가다려 보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떠납니다. 망설이지도 않고 핑계를 대고 주저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11:12절에서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국은 적극적이고 힘써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뭐가 하나님의 뜻인지는 잘 압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앞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입니까? 

그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겨집니까? 그러면 속히 포기하시고 결단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이 가는 그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입니까? 그러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묵묵히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23주년의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개척 초기에 어떤 때는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고 오히려 그만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저를 목회자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년만 버티자” 했다가 5년으로 연장되었고 그것이 10년 20년으로 연장되다 보니 오늘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버티는 것입니다. 버티되 목숨 걸고 노력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백을 들어보세요.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죽음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갑니다. 뭐라고 합니까? 

사도행전 20장 22~24절을 보세요.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마다 힘이 생깁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이 구절은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를 생각하게 합니다. 기차는 달릴때 개가 짖어도 갑니다. 어지간한 방해물이 나타나도 그냥 달립니다. 겁이 없습니다. 마치 미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에 매임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도 하나님이 제게 맡긴 사명을 위해 목숨 걸고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길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묵묵히 전진하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가 선교지에 하고 있는 신학교 사역도 그럴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나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선구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남보다 먼저 듣고 남보다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영적 감각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이다 싶으면 목숨 걸고 남보다 먼저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손에 쓰임을 받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런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씀 드린 몇 가지 요소들이 우리가 힘써 만들어야 할 것도 있으나 대부분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인도하고 계시고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영적 감각을 갖고 살아가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이제 실행하면 됩니다. 

결단하세요. 그리고 일어서세요.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미적거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저앉아 계산기 두드리지 마시고 부딪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게도냐로 건너가 온 유럽을 그리스도의 땅으로 만들었던 바울처럼 위대한 종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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