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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한 십일조 (말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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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십일조 (말 3:7~12) 

  말라기는 유다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이 바벨론의 멸망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과 바른 예배를 재건하려던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 시대에 유다백성은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말2:11에 보면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중간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하신 것을 보면 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가 백성에게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들은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했습니다. 백성은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말라기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대답해준 그들의 잘못이 8-9절의 내용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시고 또 여호수아로 하여금 시행하게 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토지분할에 있어서 레위지파의 자손들은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다른 지파의 자손들과는 달리 성소를 지키고 예배와 제사를 관장하는 일을 전담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농사짓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땅을 그들에게 분배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다른 모든 백성이 내는 십일조로 먹고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십일조를 제대로 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일하러 나가야 했고, 따라서 그들 본연의 책임인 성소와 예배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느13:10-14 는 그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 없고 가만 계실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백성이 십일조를 온전히 바치지 않음으로써 성소와 예배가 버림을 받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유다백성에게 상기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세워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일조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민18:21-24를 봅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또 신26:12를 봅니다: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이 말씀들은 십일조의 주된 용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 주된 용도란 첫째로 성소의 일을 전담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고, 둘째로 백성 중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관점에서 말하면 일차적으로 교역자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그 다음 예배, 교육, 전도, 봉사, 친교 등 교회의 고유한 사명이 원활하게 수행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레27:30-34를 봅니다: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이것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십일조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손댈 수 없는 성물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신14:22-23을 봅니다: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십일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직결되는 일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7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기 이전부터도 십일조를 온전히 바치지 않고 있었음을 다 알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당신의 백성이 십일조 바치는 일은 처음부터 눈여겨 살피며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참으시고 참으신 끝에 말라기를 예언자로 세우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일조에 관한 규례를 지키지 않는 것은 도둑질이며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일은 저주를 받을 일임을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그 저주는 농사의 흉작이었고 그 흉작은 또 가뭄과 메뚜기 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토지의 소산들은 메뚜기가 다 먹어치우고 과실수의 열매들은 가뭄 때문에 익지도 못한 채 떨어져서 온 나라가 저주 받은 것처럼 흉작에 시달렸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백성은 그 흉작이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를 도둑질한 대가임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 흉작이라는 이유로 십일조 드리기를 더더욱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받는 저주를 연장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된 행실과 사고를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 말라기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10-12절을 다시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헌금에 관해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것은 그것이 성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성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심히 살피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헌금생활을 어떻게 해왔는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파악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드리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쓰거나 관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그저 하나님께, 곧 교회에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즉각즉각 바치지 않고 계속 모아두거나 어떻게 쓸지를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분배하여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일을 스스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교회에 바치는 것으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것 가지고 쪼개서 주정헌금, 월정헌금, 절기헌금, 온갖 감사헌금이나 특별헌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미안한 얘기지만 하나님의 성물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게 분명히 말합니다. 본문에서 도둑질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본뜻은 속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안 하는 일로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헌금한다며 도둑질하고 도둑질한 것으로 헌금하신 사람들은 다 회개하고 다 토해내야 합니다. 너무 많이 도둑질해서 한꺼번에 다 갚을 수 없는 사람은 일생을 걸쳐서 갚아야 합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용서와 탕감을 비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용서도 하시고 탕감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시 그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기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축하려 했을 때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다백성에게 깨우쳐주신 사실들이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십일조를 도둑질하기를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도 백성의 경제적 여건은 아주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십일조를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여서 십일조 온전히 내는 일은 뒤로 미루거나 생각조차 하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해결책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일조를 먼저 온전히 드리면 나머지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풍년이 되기를 기다려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려서 풍년을 맞는 것입니다. 내 입과 배를 우선 채우고 난 다음 성전창고에 십일조를 들여놓는 것이 아니라, 성전창고에 십일조를 먼저 들여놓음으로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의 경제상황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교회는 재건축을 결정했습니다. 모두가 한편으로는 기뻐하며 기대에 부풀면서도 건축비 마련 때문에 신경을 쓰고 걱정도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시는 문제의 해결방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해결방법이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궁핍함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십일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일조헌금으로 성전건축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를 건축을 하는 데 써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용도는 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용도 속에 성전건축은 분명히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무를 정확하고 성실하게 이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넘치게 하시며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더욱 더 드리기를 기뻐하며 힘쓰게 됨으로써 성전재건축이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도둑질해서 그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잘못된 생각이며 성전건축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베풀고자 하시는 모든 복을 차버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물질적 삶을 바르게 하는 첫걸음이며 성전건축을 위한 기본자세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전건축은 십일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하기 위한 헌금입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라며 교역자들의 생활비를 줄이거나 동결하여 생활을 곤란하게 만들고 그래서 교역자들이 부업을 궁리하게 만드는 교회는 차라리 성전건축을 포기하고 교회라는 간판도 내리는 것이 온당합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그동안 해오던 사역을 중단 혹은 축소하거나 꼭 해야 할 일임에도 신규사업은 안 하겠다는 생각은 착상부터가 비신앙적이고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로 적금 붓고 절기헌금이나 월정헌금, 주정헌금 안 하고 모았다가 건축헌금 내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속임수이고 도둑놈 심뽀입니다. 성전은 십일조 외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기쁨으로 힘껏 드리는 별도의 헌금으로 건축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고, 쌓을 곳이 없도록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복을 받는 길이며, 하나님의 전을 완성하는 비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실천합시다.

   십일조 바치는 일을 무겁고 힘겨운 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잘 드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무슨 약속이 주어졌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로 돌아오셔서 함께하시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음을 말하며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시리라 하셨습니다. 가뭄이나 메뚜기 떼 같은 자연재해 때문에 우리의 땀의 결실이 허사로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땅이 아름다워지고 모든 주변의 나라들이 우리를 복되다 하게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참인지 아닌지 “나를 한 번 시험해 보라” 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시는 것이 정상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고자 당신 자신을 우리의 시험대 위에 올려놓으신 것입니다. 이 은혜의 하나님을 믿고 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름다운 성전도 건축하여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아니 사실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전을 건축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놀라운 역사를 지켜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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