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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를 따라 돕는 은혜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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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돕는 은혜 (히 4:14~16) 

명필 한석봉 어머니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들 한석봉을 공부하러 보냈는데,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기한 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아들을 본 어머니는, 아들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고자 불을 끄고 글쓰기와 떡 썰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떡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떡은 일정했으나 아들의 글씨가 꾸불꾸불하자 그 밤에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염려가 된 어머니는 아들의 뒤를 멀리서 뒤따라가다가 밤이 깊어 아들이 어느 풀밭에 쓰러져 자는 것을 보고 자기 치마를 벗어 덮어주고 밤새도록 옆에서 지켜보다가 새벽녘에 아들의 잠이 깨기 전에 치마를 걷어 입고 되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들로서 어머니가 야속해 보이고 원망스러웠겠지만 그것이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었고 아들을 명필로 만드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석봉으로서는 아들을 돕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에“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요한복음 3:16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외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고자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어떠한 것입니까?

1. 자연의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지금은 만물이 약동하는 봄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적절한 은혜가 있습니다. 제철 음식이 사람의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봄이 되면 즐겨먹는 각종 야채나 산나물이 그렇고, 여름이 되면 인체의 수분공급에 적절한 과일들이 그렇습니다. 가을에 거두는 곡식이나 과일은 겨울을 앞둔 계절이라 모두가 월동하기에 적절한 것들입니다. 이 모두가 다 우리를 위해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숨겨진 은혜가 많습니다. 

식인종들에게 선교하셨던 분들 중에 아셀트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 활동을 하는 중에 식인종들이 여러 번 아셀트 선교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고 아셀트 선교사 집을 밤에 침입했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갈 때마다 대문 앞에서 창칼을 들고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아무도 없는데, 밤에 와서 끌고 가 잡아먹으려 하면 그 사람이 창칼을 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떨다가 그냥 가고 또 그 다음 번에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인종들이 아셀트 선교사를 낮에 찾아갔습니다.“낮에 가보면 없는데. 이상하게 밤에 가보면 누군가가 칼과 창을 들고 너를 지키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냐?”식인종들의 물음에 아셀트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우리 집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그러자 식인종들은 “거짓말 마라. 한두 번이 아니고 우리가 너를 끌어다 잡아먹으려고 여러 차례 왔는데도 밤만 되면 창칼을 들고 지키는 자가 있어서 무서워서 너한테 갈 수가 없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아셀트 선교사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쓸모없는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했던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아셀트 선교사는 순간적으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 고난의 때 도우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41:10에 말씀하시기를“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세상의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두려워하며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나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장에는 43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태어난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세상에 태어날 그 당시는 이집트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는 절정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성을 막기 위해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는 남아 말살정책을 쓰는 때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를 석달을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갈대상자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을 칠하고 어린 모세를 거기 담아 나일강변 갈대사이에 버렸습니다. 그때 마침 바로왕의 공주가 목욕하러 강가에 나왔다가 갈대 상자속의 모세를 발견했습니다. 상자 속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보자 불쌍히 여긴 공주는 유모를 구하여 그 아이에게 젖을 먹이도록 했습니다. 그 유모는 다름 아닌 모세 어머니였습니다. 젖을 떼자 공주는 모세를 궁궐로 데려가서 키웠습니다. 

40년간 왕궁에서 애굽의 학문을 배운 모세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갈대상자에 담겨 강가에 버려진 모세가 마침 목욕을 하고자 강가에 나온 공주의 눈에 띤 것은 우연이 아니라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였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마태복음 10:29~30)라고 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의 생명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 사람의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이 신데,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모세의 생명을 건진 것이 우연이겠습니까?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독립 운동가였던 로버트 브루스는 적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급히 뒤쫓아 온 적들은 그가 숨은 곳에 이르렀지만 마침 거미 한 마리가 그 동굴 입구에 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추적자들은 만일 브루스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면 먼저 거미줄이 끊어졌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되돌아갔습니다. 브루스는 기도하기를“오 하나님. 자그마한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두시고. 또 적절한 때에 그 거미를 보내사 나를 보호하시려 줄을 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원수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일들을 행하십니다. 역경이 앞길을 가로막아 어디에도 피할 길이 없는 것 같은 암담한 날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에게는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4:8~9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소망가운데 담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사람이 가장 약할 때는 자기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한 때는,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을 때입니다. 

二.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말씀하시기를“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야 은혜를 받아 험한 세파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이길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내게로 오라”는 말씀을 거듭거듭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에는“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이사야 55:1에는“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37-38에는“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35에는“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되 담대히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담대히”란, 원어의 의미는“뻔뻔스럽게”라는 뜻입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모두 뻔뻔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버릇없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아 가지고 집을 나갔습니다. 허랑 방탕하게 살아가던 아들은 재산을 다 탕진한 후 거지신세가 되자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실로 뻔뻔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반가이 맞아 기뻐하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 곧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처럼 뻔뻔스러운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 앞에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가 고침 받은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왔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이 계시는 방안까지 갈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환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참으로 담대한 일을 행했습니다. 주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환자를 달아 내린 것이었습니다. 이 무슨 실례입니까? 지붕을 뜯으려면 얼마나 시끄러웠겠습니까? 또 흙먼지는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 소란스러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의 핀잔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뻔뻔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하셨습니다. 그 즉시 이 중풍병자는 자신이 들려온 들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는 장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관습으로는 유출병이 있는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부정한 사람은 여러 사람이 있는 공공장소에는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수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 또한 당시의 엄한 관습을 무시하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간 담대한 용기였습니다. 엄한 관습을 무시한 것은 실로 뻔뻔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혈루병 앓는 여인의 병을 깨끗케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말하기를“다른 사람들은 모두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채포되어 모진 고문과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을 보자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겁한 일입니까? 그러면서“오늘밤 닭 울기 전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과 눈을 마주 치자 베드로는 밖에 나와 통곡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가증스럽고 뻔뻔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수제자의 사명을 감당토록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다 본문 16절에 말씀처럼“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갈)”결과였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담대하게 즉 뻔뻔스러워야 하지만, 그렇다하여 사람 앞에서까지 뻔뻔스러우면 안 됩니다. 사람 앞에 뻔뻔스러운 것은 예의가 없고, 교양이 없는 것으로 이웃에게 덕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5:14,15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본의 여류작가 미후라 아야꼬는 작가가 되기 전에 구멍가게를 했는데, 장사가 너무 잘돼서 나중에는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여보, 우리 가게 장사가 너무 잘돼서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소. 이것은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게 아니겠소?”하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에 자극을 받은 미후라 아야꼬는 상품을 다 갖추지 않고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주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자 소설을 써서 응모하여 당선이 됐습니다. 그 당선작이 유명한‘빙점’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 백 배의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6:38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하셨습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욕심을 채우는데 담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염치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되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12:11에 말씀하시기를“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사람은 모두가 열심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경험담입니다. 그분이 천막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어린아이가 동생과 함께 기도를 받으려 왔었습니다. 그 아이는 축구공에 눈을 맞아서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했고, 그 여파로 왼쪽 눈의 시력까지도 잃어가고 있는 아이었다고 합니다. 목사님께 안수기도 받기를 소원했기에 몇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아이의 눈은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아이도 목사님도 심하게 실망하고 낙담하였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그래도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소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온 세상을 위하여 큰일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던 아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절대절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시각장애인 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를 거쳐 미국의 피츠버그대학으로 유학하여,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가 현재 미국의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치관보로 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유명한“강영우 박사”입니다. 그는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낙심하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담대히 하나님을 믿고 나아간 결과입니다. 
이 또한 본문 16절에 말씀처럼“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갈)”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이 게으른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3:15~16에 말씀하시기를“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하셨습니다.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히브리서 10:25에 말씀하시기를“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24:33~34에는“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하셨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창세기 3:19에“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가정일이나 직장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탬플 대학을 설립한 러셀 콘웰 박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의 백만장자 4,043명의 생애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고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사람은 불과 69명밖에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부족한 삶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생각이라는 자원을 잘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첫째,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둘째, 그들은 마음속에 열화 같은 소원과 열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성경의 위인들을 볼지라도 그들은 모두 열화 같은 소원과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셋째, 그들은 불퇴진의 인내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몰아닥친다 할지라도 끈질긴 인내를 가지고 그 어려움을 통과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공의 요소가운데 하나가 열심입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방법이 곧 담대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가되 열심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열심 속에 묻어놓으셨습니다. 지금은 씨앗을 뿌리는 계절입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논밭에서 많은 것을 얻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농부는 얻는 것이 작습니다. 그러므로 잠언 24:33~34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세상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도록 하셨습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나아오되 담대히, 열심히 나아와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위에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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