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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요 14: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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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요 14:15~21)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팀이 실험을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가난한 사람들을 병원에서 돌보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 준 후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학생들의 저항력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바로 그 학생들에게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잔인한 영상을 보여 준 후 또 다시 그 저항력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테레사 수녀의 영상을 본 후 조사한 수치가 나치의 잔인한 영상을 본 후 조사한 수치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참 사랑을 경험할 것 같으면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랑은 그보다 더 위대한 사건도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누가 묻더라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습니까? 과연 장담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계명을 진짜 잘 지키고 있습니까? 주님은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참조)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또한 사랑하시되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셨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친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살리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과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이웃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작은 이익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서로 발을 씻어 주고 있습니까? 대접을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남을 대접하는 것은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부끄럽게도 주님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또 이웃을 사랑한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사실은 그 누구도 제대로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오늘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까닭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 요직에 앉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뭐라고 사람들이 빈정거리고 있습니까? 강남의 부자들이라고 해서 ‘강.부.자.’라고 조롱하는 것까지는 견딜 만합니다. 그러나 ‘고.소.영.’이 도대체 뭡니까? 왜 거기에 소망교회가 들어가는 것입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은 것입니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별로 잘하는 것은 없지만 왜 교회가 그런 조롱을 받게 되었습니까? 오늘 한국교회는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또한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교회 공동체적으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어째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까? 그 까닭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을 것 같으면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분명히 말하지만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즉 우리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시는 것을 알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썩어가는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때문에 다시금 강조하지만 모든 것의 출발점은 주님의 계명을 지켜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두 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 마거리트 수녀가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거리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환자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 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서 장애 교정 수술을 해 주고 환자 자녀들을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 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올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여기서 살아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두 수녀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어언 40년이 되었습니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부족한 외국인으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는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면서 작별 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 때문에 섬이 온통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수녀는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 때문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 때문에 돌아간 고향 오스트리아가 오히려 낯선 땅 같이 되었지만 작은 방 한 칸에 살면서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지금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령이 초대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유무상통하는 역사가 사랑 없이도 가능할 것 같습니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공산주의의 몰락 과정을 통해서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오직 사랑으로만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교회도 나누고 베푸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빛으로, 또한 세상의 소금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이 악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끝까지 승리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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