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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빌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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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빌 3:7~14)
                                                         
시작하는 말

본문에서는 바울의 순종하는 생활과 겸손함이 잘 나타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생활을 하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제자직을 겸손하게 수행하겠노라고 말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일치감치 제자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의 바울은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직접 만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삶의 의미가 달라진 것입니다. 즉 그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요(빌 3:8),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의 삶에 목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삶이었고 그것이 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계속 달린다고 했습니다. 

1.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운동경기 중에 둘이 발을 묶어 달리는 것이 있습니다. 둘이 구령에 맞추어 마음이 합하고, 몸이 합하고, 발이 합해야 합니다. 혼자 먼저 간다고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상대의 오른발과 나의 왼발을 맞추어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무의 가지가 원줄기에 붙어 있을 때 영양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을 때에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요15:1-5).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생명의 공급자요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거소 할 수 없음이라”(요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성도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져다주며, 엄청난 생활의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인격과 성품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기 원하는 자들은 먼저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와의 동행이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지녀야 합니다.

미국의 노부부가 성지순례차 고향 땅 이스라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장의사를 찾아 시신 처리와 장례 절차를 물었습니다. 장의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➀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묻힐 경우 축복도 받고, 부활하기도 쉽고, 비용도 150달러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➁다른 하나는 시신을 방부 처리해 미국으로 공수하는 방식인데, 절차도 번거롭고 비용도 5000달러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망설이다 결심했습니다. 비싸더라도 미국으로 시신을 옮겨 묘지에 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땅에 묻히면 그 옛날 어느 분처럼 자기 아내가 부활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감당하기 어렵다는 “뼈 있는” 이유였습니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의를 얻은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좀 더 깊은 관계를 갖기 위해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 중 가장 절정이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알기를 간절히 열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분이요, 신적인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삶 속에 생명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고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체현시키는 자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롬 6:4). 또한 그러한 자만이 부활을 보증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고전 15:20. 23).
 

3.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야생동물계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 하면 사자를 연상하겠지만, “가장 약한 짐승이 가장 두려운 짐승”이라는 케냐 야생공원 감독관의 말입니다. 비단 맹수뿐 아니라 모든 짐승에게 쫓겨 다니기만 하는 임팔라 사슴이 바로 그 가공할 만한 존재입니다. 약육강식의 아프리카 황야에서 집단 행동하는 임팔라 사슴 떼가 유유자적하고 있는 인근 100~200m 이내에는 반드시 사자 한 마리가 누워 있게 마련인데 이 사자 때문에 다른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노쇠하거나 병든 임팔라 사슴 한 마리가 정기적으로 사자에게 잡아먹힘으로써 배고프지 않은 사나흘 동안 그의 위력 아래 집단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입니다. 

임팔라 사슴이 두려워지는 것은 이 집단에서 소외당해 외톨박이로 유랑할 때입니다. 이 소외당한 임팔라는 만나는 짐승이 맹수이건 아니건 불특정 대상에게 가시 돋친 뿔을 무기로 저돌적인 선제공격을 합니다. 이 맹렬 돌격에 그 육중한 코끼리도 멀리서 보고 피하고 사자도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옛사람과 옛 습관으로부터 거듭나야 하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데서 오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마 16:24). 

그러한 자만이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10절) 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자신의 삶 속에 체현시킬 때에만 우리는 육적인 자아에서 벗어나(고전 15:31) 날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12절)고 말했습니다. 

본절을 통해 바울의 겸손한 신앙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은 얻었지만 그것에 자족하며 자만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얻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아직까지 영적으로 부족한 자신을 깨닫고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영적인 성장을 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유한한 존재(시139:5)이므로 스스로는 영적 차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신앙으로 올라설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도움을 요청할 때 오르지 못할 영적 고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5. 영적인 소망을 품고 달려가야 합니다.

만삭이 되어 곧 출산을 앞둔 부부가 있었습니다. 일주일 뒤가 예정일이었습니다. 그들은 1년여 동안 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가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듣고, 숨을 거두기 전에 손자를 한번이라도 보고 가시도록 기도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부친의 모습은 병색이 완연했지만 손자를 보고픈 소망에 의식만은 놓지 않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아기는 예정일보다 사흘 일찍 태어났고, 할아버지는 사진으로나마 손자의 모습을 보신 뒤 그날 저녁 편안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흔히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싶습니다. 쉽게 포기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처럼 보입니다. 

진정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벧전1:3). 소망을 하나님께 둘 때 이루어집니다. 소망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본문을 통해 그것을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12 절)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 영적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근거로 합니다(벧전 1:3). 

그러므로 과거의 썩어질 유산이나 업적에 좌우되거나 관심을 두지 말고 오직 푯대를 향하는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로 소망을 둔,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자에겐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한 영적 만족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믿음의 경주를 해야겠습니다. 그러한 삶만이 상급 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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