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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탐식으로부터의 자유 (창 25: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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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으로부터의 자유 (창 25:27~34)

여러분 백화점 자주 가시죠? 그런데 백화점에 가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백화점에 가면 잘 살펴보십시오. 통로나 식당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백화점 매장에는 창문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또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들로 온통 차단 시켜져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쇼핑을 할 때에는 바깥세상과 차단을 시켜 오직 물건을 사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만들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설계라고 합니다. 만일 밖에 비나 눈이 오는 것을 보게 되면 학교에 간 자녀들 귀가 걱정, 집 베란다에 걸어 둔 빨래 생각 등이 쇼핑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밝은 햇살이 들어오면 상대적으로 상품이 초라해 보인다는 것도 창문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백화점의 또 하나 특징은 1층 매장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황당한 경우를 당해 봤습니다. 제 아내와 함께 백화점엘 갔는데 화장실이 급해서 1층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화장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헤매다가 결국 지하층으로 내려가서야 볼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속으로'무슨 일류 백화점에 화장실도 없냐!'고 투덜거리면서도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왜 백화점 1층에 화장실이 없는지에 대해서 이유를 알아본 결과 고객을 유인하는 백화점의 마케팅 기법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백화점은 지나가는 한 사람이라도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화장실 볼일이 급해서 들어 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1층에는 화장실을 안 만들어 최소한 한 개 층이라도 더 둘러보게 한다는 전략이랍니다. 

일종의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게 마련입니다. 보면 사고 싶고, 보면 먹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거든요. 철저하게 인간의 욕구 충족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전략이 먹혀든다는 겁니다. 이 사소한 게 대형 백화점이 사는 하나의 방법이랍니다. 아마 모든 장사가 그럴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 그것은 충족하고자 하는 힘이 강하거든요. 혹은 충족되어야만 끝이 나기도 합니다. 

인간이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자극을 느끼는 대표적인 그 욕구들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물욕, 둘째는 성욕, 그리고 세 번째는 식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실천에 옮기기에 가장 쉬운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 식욕일 것입니다. 물욕을 생각해 보십시다. 물건을 보고 욕심이 발동합니다. 그렇지만 당장 돈이 있어야 삽니다. 그래서 이 물욕이 지나치면 돈 없이도 그냥 가져가는데 이게 도둑질입니다. 

또 성욕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성을 보고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욕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동에 옮기기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연구를 하고 상대방의 심리도 파악하고 시쳇말로 상대방을 꽤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행동에 옮기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식욕이라는 것은 행동에 옮기기가 무척 쉽거든요. 보자마자 입맛이 생기는 대로 집어먹으면 됩니다. 아니 먼저 손이 나가버립니다. 실천에 옮기기가 가장 쉽기 때문에 그 만큼 빠지기에 쉬운 죄이면서도 우리가 죄라고 판단조차 하지 않는 것이 탐식이라는 이름의 죄입니다. 

여러분, 먹는 것이 죄가 됩니까?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먹는 것은 분명히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먹는 것을 지나치게 탐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탐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분문에서 탐식이 죄가 되는 이유와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에서가 그런 탐식의 순간적인 유혹 앞에 굴복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에 에서가 정말 한 일주일이나 다만 삼일 동안이라도 굶었다가 팥죽 한 그릇을 보고서 먹었다 이러면 동정의 여지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사냥하고 돌아 왔습니다. 물론 하루 종일 사냥했다고 치면 피곤하기도 하고 출출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죽 한 그릇에 눈이 멀어서 자기 인생에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정말 중요한 가치를 팽개쳐 버리고 말아서야 되겠습니까? 배고픈 차에 죽을 본 순간 끓어오르는 본능적인 탐식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욕망으로 발동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정도로 식탐이 발동했느냐하면 우리성경에는"내가 먹게 하라."는 말로 점잖게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 부분을 원문에서 보면 그 느낌이"나로 하여금 꿀꺽꿀꺽 먹게 하라"는 정도의 표현입니다. 그냥 막 먹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탐식욕구의 발동으로 묘사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H.컬티스우드 주니어]라는 사람이 탐식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육체가 필요로 하는 어떤 화학적인 요소들이 그 균형이 깨어지고 결핍됨으로서 말미암아 야기되는 음식에 대한 비정상적인 갈망이다."어떤 음식에 대한 욕구 자체를 우리가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조건에 음식이란 것은 필요한 것이고 적절한 한계 내에서는 즐겨야 합니다. 이것은 바람직하고 질 높은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과도하게자기 컨트롤을 넘어선 행동으로 옮겨질 때 그것은 이미 죄악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훔쳐서라도 먹을 지경이 되거나 사기를 쳐서 먹어야 되겠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의 범죄도 이 먹는 것하고 관련돼 있지 않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먹음직했다는 데부터 타락이 시작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 재밌는 말을 합니다. 만약에 아담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인류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사람 아담은 절대로 선악과를 안 먹고 틀림없이 뱀을 먼저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농담을 합니다만 하여간 먹는 것에서부터 인류의 그 타락이 시작되었다 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 에서에게 결정적으로 탐식이 죄로 연결 되어지는 부분이 무엇이냐 하면 마지막 34절입니다."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에서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장자의 명분을 우습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장자라는 사실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장자에게는 특별한 권리를 부여하는데 대개는 재산 상속의 우대를 받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호주 상속권도 인정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더 많은 장자의 특권을 인정하는데 아버지로부터 우대를 받게 되고 형제간에 지도적 위치를 인정받으며 다른 형제보다 두 배의 재산을 상속하며(신21:17) 아버지의 축복권을 계승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축복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나중의 이야깁니다만 이 축복권 때문에 에서가 방성대곡하며 야곱을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이 중요한 장자권한에 대하여 지금 에서는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 그들에게는 메시야의 언약사상과 메시야의 소망과 관련돼 있는 것이 장자권입니다. 메시야는 어느 날 이 장자의 혈통과 계통을 타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로 오신다는 그것을 믿었다면 이 장자의 권한이 단순한 장자 권이 아니라 너무나 큰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을 에서가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러나 에서는 순간의 탐식 때문에 이런 영적인 특권, 영적인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고 말았습니다. 식탐이 영적인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먹을 것을 보는 순간, 음식에 대한 욕구가 발동하는 순간 중요한 다른 어떤 것도 볼 수 없고 오로지 먹는 것만 중요하다는 것이 탐식입니다. 먹는 것 때문에 하나님도 이웃도 인생의 고급한 가치도 목적도 다 잃어버린다면 그 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도 충분히 이런 죄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보세요, 오늘 에서가 붉은 것에 몰두하는 순간 그것이 에서의 주인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는 순간 망하는 것입니다. 이 탐식이라는 단어를 영어로는 Gluttony(글러터니)라고 하는데 이것은 라틴어의<글루투스>라는 단어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뜻이 어떤 뜻이냐면"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쾌락"이라는 뜻입니다. 쾌락을 즐기듯이 탐식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먹을 땐 그렇게 즐겁고 쾌락이 있는데 그 결과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배에 가서 그 결과가 아주 보기 싫게 나옵니다. 비만입니다. 사람이 살찌는 최고의 원인이 운동부족도 아니고, 스트레스도 아니고 음식입니다. 먹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비만증은 정말로 건강에 해롭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면서 그에 따른 성인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성인병의 가장 큰 원인이 비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패션의 일번지라고 하는 프랑스에서는 모델들이 다이어트 하느라고 거식증에 걸려서 죽어간답니다. 그래서 날씬한 것을 기준으로 모델을 선발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안 먹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다이어트는 굶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입니다. 먹되 과하게 먹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건강할 수 있는 비결은 굶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먹는 것도 아닙니다. 적당히 잘 먹으면 마르지도 않고 비만도 되지 않습니다. 과하게 먹으려고 하는 탐식의 유혹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특별히 비만했던 사람이 둘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모압왕[에글론]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제사장[엘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비만한 몸집 때문에 자신의 수명을 단축하고 말았습니다. 모압왕[에글론]은[에훗]이 칼을 차고 들어가 찌르려고 할 때 비만한 몸집으로 인해 그 칼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제사장[엘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넘어졌는데 자기 몸무게에 눌려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얼마나 미련하고도 불행한 삶입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서가 오늘 지극히 육신적인 욕망인 탐식으로 인하여 장자의 권한을 팔아버렸다는 것은 육신적인 욕망 때문에 영적인 가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제어할 수 없는 육신의 쾌락 앞에 희미해져가는 영적인 비만을 깨닫지 못한다면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잃어버리고 가치 없는 것에 매여 죽어가는 행위일 것입니다. 탐식을 비롯한 육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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