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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겔 3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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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겔 37:1~12) 

  맨발의 천사 최춘선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영상화해서 많은 교회의 잔잔한 은혜를 끼친 김우현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은 영화감독이지만 은혜를 받고 신앙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 김우현 감독이 책도 출간하였는데 작년에 낸 책 중에 <하늘 문을 여는 열쇠, 하늘의 언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성령의 은혜들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 간증 가운데 특별하게 방언의 은사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방언을 통해서 하늘 문을 열고 계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그가 잘 아는 규장 문화사에 가서 직원 예배를 인도할 일이 있었답니다. 그가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하고 함께 기도할 때에 거기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하였습니다. 70명의 규장문화사 직원들이 모두 다 방언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초대교회 때나 가능한 일이지. 어떻게 함께 예배드린 70명이 동시에 다 방언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뒤짚어 졌습니다. 그들의 삶이 변하고, 그들의 고백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김우현 감독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고 그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2주전에 저희 교회에서 알파코스의 과정으로 주말성령수양회를 경기도 가평으로 다녀왔습니다. 늘 가는 광성교회 수양관에 가서 1박 2일을 보냈습니다. 성령수양회를 가기 전 우리의 기도제목은 “이번 성령수양회를 통해서 우리가 큰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옵소서!” “많은 은사가 있지만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많은 분들이 받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모임을 인도하는 저에게는 굉장한 부담감이 다가왔습니다.  “성령수양회에서 많은 분들이 방언의 은사도 체험하고, 치유도 경험하고,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번 성령수양회에서 다섯 명이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될 것이다. 또 2명이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내적인 음성으로 알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곤 이제 그 모임을 인도해 나갔습니다. 3번의 토크와 이어지는 3번의 기도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저는 열심히 기도하고 인도하였습니다. 교인들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기도회를 다 마쳤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하나님! 다섯 명씩이나 방언의 은사를 주시기로 하셨는데 아무도 방언 받았다고 이야기 해주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아! 이거 어떡하나’ 하면서 굉장히 마음의 부담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어느 집사님이 이야기 합니다. “목사님! 이번 기도회에서 많은 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어요.” 저는 “아니 그것 좀 진작 이야기 하지 왜 안 했느냐!” 그랬더니 목사님이 알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인도하니까 음악소리와 열심히 기도하는 소리에 시끄러워 방언의 은사를 받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많은 분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선물로 주셨구나! 할렐루야! 참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이 돌아와서 간증을 하시는데 참 기쁘게 간증을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도 한 집사님이 간증을 하시는데 정말 방언의 은사가 임할 때 마음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얼마나 마음이 뜨거워지는지, 제가 그런 기쁨을 지금까지는 맛보지 못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너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방언의 은사라는 것은 예로부터 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롭게 방언을 통해서 우리가 깊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특별히 알파코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치유와 방언의 은사를 주시며 많은 역사를 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언을 받은 분들은 대게 변화를 경험합니다. 우리가 방언 받기 전에는 기도하라고 하면 5분에서 10분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집사님이나 권사님도 기도하라고 했을 때 15분 이상 기도하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도할 말도 제한되어 있고 기도의 제목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언을 받고 나면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기도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한 시간 기도해도 꼭 5분 기도한 것 같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뜨겁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깊은 기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나는 기도할 대상을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내 안에 기도할 제목들을 가리켜 주시고, 내가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겁니다. 내 가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그래서 교회에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이 많아지고, 그분들이 뜨겁게 기도할 때 교회는 부흥되어 지는 것입니다. 죽었던 심령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치유 받는 일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변화입니다. 기도의 질과 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참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아니 교회 온 교우가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뜨겁게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수련회에 가서 기도를 인도하다보면 꽤 오래 기도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럼 나도 기도할 제목이 없고 이제 교인들도 힘들고 피곤하겠다고 생각해서 기도를 끝낼 때가 있습니다. 그럼 돌아오는 원망이 “목사님! 기도를 좀 더하게 하지 그렇게 빨리 끊으면 어떡합니까?”입니다. 그럼 ‘야! 이게 은혜 받은 증거구나!’ 싶습니다. 기도회를 인도 하고나면 “아이고! 목사님 기도시간 좀 짧게 하시지.” “아이고! 지겨워 죽겠어요.” 이러면 은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작은 변화지만 큰 변화인 것입니다. 여러분! 큰 불도 작은 불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온 산을 태우는 불은 담뱃불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거대한 파도의 역사도 작은 은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이렇게 은사 받은 분들이 늘어나고 기도하는 분들이 늘어나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역사가 이뤄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성령의 바람이 불 때에 그것이 살아나고, 생기를 얻고,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그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범죄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예언자들이 200년 동안이나 그들을 향해 경고하고 예언했지만 이스라엘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때가 되어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서 이스라엘을 정복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철저하게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다 부서지고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여러분! 포로생활이라는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절망적인 것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한숨이요 탄식이요 우울함이며 고통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압제 가운데 살았는데 당시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언어를 빼앗겼습니다. 우리의 성을 빼앗겼습니다.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젊은이들은 탄광으로 끌려갑니다. 우리의 딸들은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에 무슨 기쁨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절망적인 백성들 앞에 한 가지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에 있던 에스겔을 부르셔서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시는데 그를 환상 중에 어느 골짜기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 골짜기에 갔더니 그 골짜기에는 마른 뼈들이 얼마나 가득 찼는지 셀 수도 없습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 없고, 그것이 다 말라서 비틀어져있습니다.

  마른 뼈들이 굴러다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어떤 목사님이 폴란드를 방문했는데 그 곳에 아우슈비츠 기념관이 있더랍니다. 그곳의 가스실에서는 무려 400만의 수많은 유태인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시체를 발라가지고 기름 만드는데 쓰고, 비누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뼈들을 그대로 모아 놓은 기념실이 있더랍니다. 수천구의 시체들의 뼈들을 모아서 쌓아놨는데 그렇게 음침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 뼈들은 60~70년 된 것입니다. 그 뼈들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에스겔 골짜기의 비참한 광경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절망적인 모습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생기가 사라져버리고 생명이 끊어져 버리고 마른 뼈만 굴러다니는, 그 처참한 모습이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합니다. “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도저히 살 수 없는 뼈들입니다. 하지만 주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인간의 힘으론 회복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야! 네가 이 뼈들을 향해서 말씀을 대언하라!” 에스겔이 그 뼈들을 향해서 말씀을 대언할 때 그 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뼈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팔뼈, 다리뼈, 목뼈 이런 뼈들이 서로 접합되기 시작합니다. 자기 짝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에 근육이 생기고 피가 돌고 살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거기에 생명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또 말씀합니다. “이 죽은 뼈들을 향해서 네가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그래서 에스겔이 말합니다. “생기여! 바로 이 죽은 자들의 에스겔 골짜기에 불어올지어다!” 그가 소리치자 거기에 생기의 바람이 불어와서 누워있던 자들이 일어나서 참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큰 군대를 이루는 그런 기적을 체험하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기란 무엇입니까? ‘루아흐’ 바로 숨결, 호흡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모습은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생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에 호흡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 호흡이 바로 ‘루하흐’ 숨결입니다. 

다른 번역을 보니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왜 이 환상을 보여 주실까요? “지금은 너희가 절망적인 상황에 있지만 이제 70년이 차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서 고국을 회복할 것이다.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고 다시 예배가 집례 되고, 너희가 다시 아름다운 땅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회복의 메시지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에스겔의 놀라운 환상의 예언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매우 많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메마르지 않습니까? 마치 마른 뼈처럼 굴러다니는 무의미한 삶이 계속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희망은 다 날려 보내고 절망 속에 하루하루 살고 있진 않습니까? 기쁨은 온데 간데없고 우울함만 남아 있습니까? 슬픔만이 나를 엄습해 오고 있지 않으십니까? 대체 내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하지만 의욕을 가지고 하지 않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기껏 땀 흘리고 봉사했지만 누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기뻐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봉사를 하고 나서도 불평과 원망과 한숨만이 오는 것입니다. 심령은 점점 메말라 갑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령의 바람이 임해야 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생기가 불어와야 합니다. 마치 봄바람이 불어오면 겨울 내내 땅에 숨어있던 마른 풀들이 생기를 얻고 싹이 오르듯이 우리의 심령 속에서도 새로운 생기가 넘쳐야 합니다.

  여름에 비가 오지 않으면 모든 곡식들이 다 시들어갑니다. 화단에 있는 풀도, 꽃들도 모두 시들어갑니다. 고개를 푹 숙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소낙비가 한 번 지나가게 되면 그것은 반짝 반짝 영롱한 이슬의 빛을 발하면서 생기가 돋고 쑥쑥 자라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곡식들을 보십시오. 비가 한번 오면 10 cm씩 쑥쑥 자랍니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 메마르고 각박하고 은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긴 하지만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왔다갔다만 하는 것 같은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성령 받은 분들,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을 보니 그렇게 은혜가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고 감격이 넘칩니다. 성령의 생기가 불어 올 때에 우리의 삶속에 놀라운 변화와 놀라운 기쁨이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먼저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들으셔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셔야 합니다. 솔직히 묻겠습니다. 여러분! 일주일에 성경을 얼마나 보십니까? 주일날 와서 말씀 들을 때 한번 보는 것 외에 집에 가서 성경 한 장이라도 읽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말씀이 없이는 신앙이 성장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사모하시고 말씀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존 오너 레이크’는 성경이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릴 때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벽돌 찍는 일을 하느라 학교도 못 갑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결국엔 백화점 왕이 되고 재벌이 되었습니다. 체신부 장관까지 지냈습니다. 나중에 기자가 와서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생애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은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 벽돌을 찍어서 벌은 돈을 가지고 2불70센트짜리 가죽 성경책을 처음 샀을 때 그것이 내 인생 최대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좋아했는지요. 그리고 성경을 읽고 그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벽돌공이었고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장관이 되고 백화점 왕이 되어 큰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내게 능력이 임하고 내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능력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인해서 마른 뼈들이 다 접합하고 살결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거기에는 생기가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9절과 10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생기가 들어가니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떠난 삶의 비참함을 아시지요?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지만 범죄를 행했습니다. 제단에 드릴 양식과 제물을 가로챘습니다. 성전의 여인들을 희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성령이 그들을 떠났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 법궤를 가지고 나갔지만, 참패하고 법궤마저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며느리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떠날 때 거기에는 엄청난 재앙과 저주가 오는 것입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사울 왕이 그러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성령이 그를 떠날 때 가장 비참한 왕이 됩니다. 나중에 그는 무당에게 가서 자기 인생을 묻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맙니다. 마지막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사람의 축복을 생각해 보십시오. 8남매 중에 막내였지만 다윗에게 성령의 기름이 부어질 때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고난을 헤치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과 성령이 떠난 사람은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의 생기가 불어오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사를 변화 시킨 사람들은 성령에 붙들린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성령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선교사로 갔지만 거기서 아무런 열매도 얻지 못했습니다. 낙심하여 돌아오던 중 몰몬교도를 만났는데 그들로부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738년 5월 24일 그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을 때 그의 마음에 뜨거움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그에게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죄를 회개하고 거듭남을 경험하게 되었고, 성령에 붙들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은 가장 부패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술주정꾼이 되어가고 어두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존 웨슬레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할 때 영국이 변화 되었습니다. 영국이 새로워 졌습니다. 한 사람이 영국을 바꾸어 놓은 겁니다. 시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천주교가 타락해서 면죄부를 판매하고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짓을 일삼을 때 하나님께서 마틴루터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유혹과 교황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종교 개혁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이 땅에 개신교를 탄생 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이 죄와 가난 속에서 어두움에 있을 때 구두 외판원 출신의 드와이트 무디라는 사람에게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자 그는 미국은 경건주의 운동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회개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불었던 것입니다. 100년 전에 우리 한국 땅에 평양 장대현 땅에 불어오던 성령의 바람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참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성령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심으로써 우리 교회도 잠에서 깨워 주시고 이 시대에 위대한 교회로 사용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이 파라클레토스, 보혜사라고 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떡이 없어 굶주립니까? 물이 없어 갈급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동시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주장하도록 여러분을 내어 드리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은 성령께 붙들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희망 없는 삶이 계속되어지고 있습니까? 절망적인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까? 해골 골짜기의 삶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고 느껴지십니까?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라.”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전도 할 때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받지 않고 전도하려면 억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푸줏간에 끌려가는 돼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게 성령이 임하면 기쁨으로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능력 있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는 영인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영인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가정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성령 받지 못한 교회는 다 제각각이고 분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할 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된 것처럼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현실은 비참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삶은 참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성령이 임할 때 희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방언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아니 어떤 은사도 좋습니다. 성령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셔야 합니다. 방언 받는 분들은 내가 알지 못한 새로운 언어를 말함으로서 성령의 임재를 강력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강력한 중보 기도자가 되어서 기도할 제목들을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기도의 교제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 있는 삶으로 변화되어 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생활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 주시는 환상을 통해서 용기와 소망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에스겔 선지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이 예언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마른 뼈들을 향해서 그들을 향해서 생명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저 죽어가는 마른 뼈들을 향해서 “생기야 저들을 향해서 불어오라”고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참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했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직장이 우리의 사업이 우리의 섬기는 가정이 비록 에스겔 이 해골 골짜기 같을 지라도 여러분 그 가정을 향해서 직장을 향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고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희망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절망이 떠나가고 희망이 올 것입니다. 저주가 떠나가고 축복이 올 것입니다. 재난이 떠나가고 은혜의 때가 도래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지금은 절망적이지만 하나님의 참으로 이 말씀을 선포하는 희망을 선포하는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는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년이 지나고 앞으로 놀랍게 변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함께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은사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위해서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절망 가운데 희망을 선포하십시오. 하늘의 놀라운 생기의 역사가, 희망의 역사가 여러분 가운데 임하기를 믿음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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