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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마 4:18~22)

우리가 읽는 이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그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  하리로다.”   성경 속에 나타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또 성경에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축복이 아닌, 저주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도 많이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들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까?  성경 속에 실패의 길을 걸어갔던 불순종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다 더 명확하게 비춰 볼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이처럼 항상 두 가지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모습, 또, 축복과 저주의 모습, 항상 이 두 가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이 두 가지를 함께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에 대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순종과 불순종으로 나뉘게 되었을까?   왜 어떤 이들은 축복을 받고,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지만, 저주와 징계를 받았던 것일까?”  이러한 면들을,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불순종한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저주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본다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고 싶지 않는 실패자의 모습들도, 우리가 관심있게 살펴보고 교훈을 얻을 때에, 우리의 신앙은 더욱 더 성숙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경 속에 나타난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특별히 성경에 나타난 세 종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2 :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세상의 불신자들을 말함이겠습니까?   물론 그들도 포함이 되지요.  그러나 오늘 성경에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세상 속의 불신자들을 가리킴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거하면서도, 성경의 진리를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자기 소견대로 신앙 생활하는 무리들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라고 했는데, 그러면, 이 성령의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말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을 의미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아닙니까?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 일을 마음에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육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분들은, 교회를 다녀도 구원은 받지를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지를 않은 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런 확실한 신앙고백이 없이, 그저 몸만 교회에 다니며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육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세상의 불신자들과, 전혀 다름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 가운데는, 이러한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 보면  하나님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나름대로의 자기 열심에 빠져, 신앙  생활이 아닌,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 어머니 친구 분이 서울에 사시는데, 오랜 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분이 하는 말이, 자기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목사 사모인 제 어머니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물었어요.  “그러면 무슨 이유로 교회에 다니느냐?”  
그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성가대에 앉아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서   교회에 간다.”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 겉으로 볼 땐 얼마나 열심입니까?  그러나 잘못된 열심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는 열심입니다.  신앙적 열심이 아닌, 종교적 열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겁니다. 권사님이나, 장로님 가운데서도, 심지어는 목사님 가운데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예요.   신학교 교수들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대학의 신학 교수가 이런 고백을 하고 죽었어요.  그는 임종시 고백하기를,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내가 이제까지 가르친 것은, 다 거짓이었다.”  

여러분,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있을 수 없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오늘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자신이 가르친 것이, 모두가 거짓이라고 주장했을지라도, 그 가르침을 받고, 마음에 믿은 수많은 학생들은, 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에 나타난 유형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육에 속한 사람들과는 달리,   확실한 신앙고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말이나 행동이나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다만 그 중심에, 예수가 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육적인 그리스도인,  이 그룹의 대표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데마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가 누구입니까?  바울의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사람이 바로 데마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을 버리고 도망을 간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 불신앙의 사람입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누구든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은 받습니다.  아멘!!!   누구든지 믿는 즉시로 구원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받았어도,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아니하면, 그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라고 했어요.  그 위대한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하며 사역을 했을 정도라면, 그 신앙이 남들 보기에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을 향한 육신의 정욕을 아직도 끊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는 결정적인 그 선택의 순간에, 세상을 스스로 택하여 사역을 버리고, 신앙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구원의 신앙은 있지만, 삶 속에 간섭 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바로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는요, 제 믿음을 평가할 때에, 한 중간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요, 바로 이런 분들이, 육적인 그리스도인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성경에는 결코, 중간이란 없습니다.  
내 신앙은 중간정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분의 신앙은, 세상에 치우쳐 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변화가 없어요.  그 신앙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분들의 삶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증거들이 별로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저 밋밋한 신앙생활입니다.  별로 감격할 일도 없고, 별로 감동받을 일도   없습니다.  남들은 입술을 열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말하는 데, 자신의 삶에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신앙생활이 재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감격이 있겠습니까?  감사가 있겠습니까?  기쁨이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백성은 되었지만, 구원은 확정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에   머물면서 하나님으로부터는 쓰임을 받지 못하는 사람,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 불쌍합니까?  보물이 가득한 창고의 열쇠는, 손에 이미 쥐어져 있는데,    그 열쇠를 도무지 사용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고를 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 천국 창고를 열어, 자신의 축복으로 만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 방법은, 천국의 창고를 여는 키는,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의 순종인 줄로   믿습니다.  창고를 열려면, 하나님이 주신 열쇠를 사용해야 하는데, 자신이 가진 수많은 열쇠 속에, 그 열쇠를 같이 묶어 두고서는, 어느 열쇠가 맞는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저 시간만 낭비할 뿐이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 인생이 불쌍하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런 사람을 실제로 눈앞에서 본다면, 그 이가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불쌍하게 생각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오늘날 교회 안에는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혹 육적인 그리스도인에 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신앙 상태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시십니까?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되는 특징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나타나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이냐?  
삶과 생각의 주체가, 항상 세상적 이라는 겁니다.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이미 그 머리 속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 찹니다.  “내가 잘 될 때 하나님이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하나님이냐?” 그렇게 한가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가할 때만 교회에 나온 것입니까?   한가할 때만 하나님 믿습니까? 

평소에 교회에 잘 나오던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나오질 않습니다.  
왜 안 나오느냐 물어보면, 바쁘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대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나 권면도 먹혀들지가 않습니다.  “목사님도 내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다 배부른 소리입니다.  
제가 아무리 배가 나와도 그런 중요한 순간에 헛소리 하겠습니까?  

기도한다고 문제가 해결 될 것 같으면, 벌써 했지요.”  그 분이 정말, 기도나 하고 이런 소리를 한다면 또 괜찮아요.  정말 그 말대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 보지도 않고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겁니다.  기도를 해도 그냥 시늉만 해 놓고, 이내 그만 둬 버립니다.   그러면서 신앙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가 단정해 버린다는 겁니다.   여러분, 왜 이런 소리를 합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 속에 역사 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스스로가 믿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 그 사람들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대단히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하나님보다 낫다고 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권위를 세우시기 위해서라도, 그가 당한 그 문제를 더 틀어 버리신다는 겁니다.   
언제까지요?  그 사람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  그 교만을 꺾어 버릴 때까지. 오늘 여러분 가운데는, 이런 미련한 사람,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평소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인생에 시험이나 환난이 닥치게 되면, 그 신앙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래도 신앙생활 잘 하는 줄 착각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속을 수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내 신앙을 정확한 저울로 달아   보셔서,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네 신앙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부족하도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부족하면, 결코 우리가 요구하는 은혜와 축복, 허락해 주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앙은 덜 되어야 있는데, 다 된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께 온전한 축복을 청구하는 사람, 그 사람은 세상적 표현으로 사기꾼과 같은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요, 이런 교만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달리, 또 어떤 분들은 아주 점잖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까지 하나님께 기도 하려고 하니,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다는 겁니다.  “구원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뭐 이런 세상적인 일로 하나님의 심려를 끼쳐 드려야 하겠는가?  내 힘닿는데 까지 해 보지 뭐”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주 신앙이 좋은 것 같지요.  그러나 이런 신앙도, 분명 잘못된 신앙입니다.   아주 인본주의 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권사님은, 아들이 내과 전문의입니다.  그 며느리도 외과 전문의입니다.  아들 부부다 의사입니다.  이 분의 아들 자랑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권사님이 밤중에 토사광란으로 고생을 하셨어요. 
토사광란, 뭔지 아시지요?   토하고, 설사하면서 광란의 밤을 보내는 겁니다. 
식은땀이 나고, 배가 찌르는 듯이 아픈데도, 그 고통을 세 시간 동안을 참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도무지 견디지를 못해서 아들을 깨웠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아들이 누구입니까?  의사 아닙니까?  아들 부부가 다 내과, 외과 의사 아닙니까?  그것도 전문의 아닙니까?  

아들이 깨어나 응급 치료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머니, 의사 아들이 있는데, 그것도 같은 집에서 사는데, 왜 혼자   그렇게 고생을 하셨습니까?   빨리 깨웠으면 고생 덜 했을 것 아닙니까?” 
그 권사님 왜 아들을 안 깨웠겠습니까?   피곤한 아들 깨우기가 미안해서 참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헤프닝이지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참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하나님이 함께 계신데, 세상의 전문의 보다 다 뛰어난, 치유하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능력을 소유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데, 우리는 때로는 혼자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더 큰 시험에 빠지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 가운데 점잖게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그 생각, 잘못된 생각인 줄 알고, 즉시 고치시길 바랍니다. 
수 1 : 9절 말씀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손을 붙잡고 오늘도 일으키시는, 그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 나타나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영적인 성정인 멈춰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3 : 1절에 보게 되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라고 말하며, 영적 성장이 없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2절에도 보게 되면,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탄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몸은 자라는데, 여전히 엄마 젖만 찾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억지로 밥을 먹여 보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젖만 찾는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연륜은 쌓이는데, 그래서 직분도 받았는데, 여전히 초신자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답답해하시지 않겠습니까? 

왜 직분을 맡고 있으면서도, 주일성수 제대로 못하고, 십일조 제대로 못하고, 직분에 걸맞는 헌신을 요구할 때, 힘들어하며 회피합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내 신앙이 어린아이 신앙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 힘이 들어 감당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신앙이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이기에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이런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렇다면,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쉽게 이야기하면, 앞에서 말한 이런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벗어버린 성숙한 그리스도인,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신령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 4장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가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주님의 필요에 응답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할 때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필요로 하실 때 나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기 싫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아멘 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19절 말씀을 보세요.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나를 따라 오너라”  왜 주님은 베드로를 부르셨을까요?  그 이유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이처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시는 줄 믿습니다.  뭔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어져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보면,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적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탄식하시며 말씀하셨지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 이사야 선지자는   뭐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2번) 
이렇게 하나님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을, 오늘도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이 과연 누구를 보낼지 몰라서, 누가 하나님을   위해 일할 것인지 몰라서 한 말이겠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이사야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는 겁니다. 
다만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은, 이사야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들으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사야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 말씀은, 어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곧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인 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선지자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 당시는 이사야 외에도 선지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가 선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이런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에게만 들려진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설교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각자에게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곧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그를 쓰시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건강도 주시고, 필요한 물질도 주시고, 은사도 주시고, 때로는 명예도 주셔서,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을 받도록,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0절과 22절 말씀을 유심히 보세요.  눈에 확 들어오는 단어가 없습니까?    어떤 단어입니까?   바로 “곧” 이라는 단어입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이 본문을 가지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핵심 되는 말을 찾아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이 “예수를 좇으니라” 라는 말씀을 찾았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버려두고” 라는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구절의 핵심단어는 “곧” 이라고 했을 때에, 여기저기서 돌 깨지는 소리들이 막 들려 왔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구나!!  

여러분 그렇습니다.  누구나가 놓치기 쉬운 말씀이지요.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눅 9 : 62절에 말씀하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더라도, 미루지 아니하고, 주저하지 아니하고, 핑계하지 아니하고, “곧”  “즉시” 부르시는 그 현장에서 응답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쓰시고, 귀하게 쓰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운데,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 돌아 서지 않겠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신앙,   베드로가 제자 가운데 수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큰 하나는, 바로 이런 적극성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자기 뜻대로 일을 하다가도, 주님이 아니라 하시면, 그 즉시로 멈추고 주님의 뜻에 따랐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기대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그러나 즉시 응답하시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로,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입니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먼저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신앙생활을 해도, 뭔가를 바라면서 계산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지를 않습니다.  별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좋아서, 주님이 나를 쓰시겠다면, 언제든지 자신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그를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 22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을 따를 때 다른 생각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르는데, 이 일이 진정 가치가 있는 일일까?”  “내가 주님을 따르는데, 우리에게 손해는 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로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곧” 좇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주님도 그들을 부르실 때에 그냥 부르셨지, 반대급부를 제시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따르면 고기잡이 일당보다 더 벌게 해 주겠다.”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보였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이 바보였습니까? 
가정을 버려두고, 일터를 버려두고 나서면, 사실 나빠지면 나빠졌지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 나섰다는 겁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그런 생각에 연연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은 다 주님께 맡기고, 그저 주님만 믿고 “곧” 따라나섰던 제자들의 모습.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새들백 교회 이야기를 쓴 “릭 워렌”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더니, 하나님이 공급하시더라.”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라며, 풀무불 속으로 담대히 들어갔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보통 형벌보다 칠 배나 더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담대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  하나님이 지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뿐입니까?   

단 3 : 30절에 보니까,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을 도에서 더욱 높아지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의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미 순종함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어떠한 축복이 임하는지,   우리는 이미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모범 답안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이라고 하는 시험지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답을 쓰기를 주저한다면, 어찌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그 신앙을, 참 신앙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시대를 향하여서도 필요한 사람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부르셨듯이, 신약에서 12 제자들을 부르셨듯이, 오늘날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부르심에 조건 없이 따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 남과 북은 서로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링컨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부관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각하, 저쪽도 이기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텐데, 하나님이 누구 편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 때 링컨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 편에 섰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 편에 섰는가가 중요한 것이라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 축복된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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