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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살리라 (사 5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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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살리라 (사 55 :1~7)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이 뭡니까?  한번 따라 하실까요?   “너희가 살리라.”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를 살리는 것은, 이런 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살립니까?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그리고 나를 살리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심령에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갈구하는 모습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살고 내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분명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지만, 그 성령의   역사를, 우리 모두가 다 체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누가 체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심령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러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3절 말씀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 앞에 나와,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들으라.  
그리하면, 누가 살리라?   내가 살리라.  내 무엇이 살리라?  내 영혼이 살리라. 
 
요삼 1 :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돼야, 내 영혼이 먼저 살아나야,   여러분의 범사가, 여러분의 육신적인 모든 일들이 잘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심령이 다시 한번 새롭게 회복되고,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이 계획하고 있는 일, 장래에 소망하는 일들이 다 있지요?  
여러분이 추구하는 그 모든 육신적인 일들이, 무엇으로 잘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능력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지혜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가진 경험이겠습니까?   이러한 것 의지해봐야 여러분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밖에는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 분의 말씀이 곧 나의  능력이요, 나의 지식이요, 지혜임을 믿으면서,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인생, 그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입니까?   아니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노라 고백하는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아무런 은혜도 없어요.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저 메마른 채로, 쭉정이와 같이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있는, 그러한 신앙의 모습으로,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과 같이, 신앙의 능력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2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수고해도 소용없다는 얘깁니다.  너희가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배제한 채, 하나님은 제쳐놓은 채, 어디서 능력을 구하며, 어디서 수고한 열매를 얻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하는, 하나님의 탄식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누구를 향한 탄식입니까?  그 때 그 당시에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탄식이,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탄식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의인입니까?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의 탄식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만약에 그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그 교만한 마음을, 이 시간 말씀을 들으며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서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 땅의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의 신앙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것들이, 여러분의 신앙의 기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여러분의 신앙에 기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2절 하반 절 말씀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세상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 분의 말씀을 청종하며 따르게 될 때에, 여러분의 심령이 살아나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로 우리가 돌아간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적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면, 신앙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의 모습, 우리의 심령이 살아나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회복되는 모습이 있기 위해서는, 어떤 신앙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뒤따라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세 가지를, 이 시간에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하나님께 대한 설레는 가슴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설렘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설렘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땅에서 우리 크리스챤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지지 않고 사는 길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가,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사는 길이 무엇이냐?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할렐루야!!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면 여러분, 믿음으로 산다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라는 사실을 믿고, 매일같이      그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할까?   오늘은 어떤 하나님의 은혜가 예비 되어져 있을까?”  이런 설레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설렘이 여러분의 삶에 매일같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자.  나의 우편의 그늘 되시니,  낮에 해와 밤의 달도 나를 해치 못하리.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나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나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며,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이런 기대와 설렘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떤 걸음으로 이끌어 가실까?   라고 하는 설렘이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대의 설레임,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똑같이 신앙생활을 해도,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설렘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의 능력이 끼어 들 여지가 없는, 세상 적인 사고방식과, 세상 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예요.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이 가진 조그만 지식과 경험으로 제한해 버리는데, 거기서 무슨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내 신앙에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는데,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함이 없는데,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나를 도우시겠느냐는 말이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살전 2 : 13절 말씀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누구에게 역사하신다고 했습니까?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설렘이, 오늘 우리의 신앙에 회복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설렘의 회복은, 여러분의 소망하는  새로운 신앙의 첫 출발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신앙의 출발이, 오늘 우리의 삶에 새롭게 나타나야, 비로소 영육간에 우리가 살아나고,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하나님에 대한 설레임이, 여러분의   심령에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생명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능력에 대한, 설레는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도 중요 하지만, 또한 우리 스스로 의식적으로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선택의 귀로에서, 생명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동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지요.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생명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 신앙,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보여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또한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  어느 것이 참된 것이냐?   
이러한 것을 구분하되, 육신적인 안목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성령으로, 신령한 영적 안목으로 구분할 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매순간 진리를 선택하고, 생명을 선택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요즘 교회에 보면, “이슬 같은 청년”이란 말이 많이 쓰여지고 있는데, 이슬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참 이슬” 이 있고, “주 이슬” 이 있다고 하지 않아요?   참 이슬을 마시면, 세상에 취하게 되지만, 주 이슬을 마시면,   성령에 취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술을 마셔야 살 것 같습니까?  아니면 말씀을 먹어야 살 것 같습니까? 상식적인 질문 아닙니까?   살길은 말씀이지요.  오직 말씀인 줄 믿습니다.

생명의 선택, 어려운 것 같지요?  그러나 여러분,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닙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경건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 못생긴 여자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예쁜 여자가 윙크를 하면서 술병 들고 있습니까?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눈으로는 만족이 없지만, 그래도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경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을 선택하는 신앙의 모습이, 앞으로 여러분의 평생의 삶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평생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무엇이 생명인지, 무엇이 진리인지를 구분하고, 그 생명과 진리를 붙들게 되면, 여러분이 산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을 더 자느냐?  새벽기도를 나오느냐?  
여러분 무엇이 생명이겠습니까?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 뻔한 것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예요.  그래서 세상에 능력을 나타내질 못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신앙, 그 신앙은 곧 죽은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하나님은 이런 죽은 신앙에서 돌이켜, 살아있는 신앙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러분, 매순간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모든 순간에서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이러한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엡 5 : 15 - 18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오늘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영적인 안목이 있습니까?   세상에 취해 살면 결코 이러한 안목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하며 세상을 살아가려면, 여러분이 항상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소원하며, 그 뜻을 또한 이루기를 힘쓰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신앙의 사람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을 살리시며, 이런 사람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생명과 진리를 선택하는 신앙의 삶으로 동참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인생의 나타나는 고난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지는 오해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어떤 인생의 어려움도 당하지 않는다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말씀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고난이 뒤따를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은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 스스로가 말씀을 잘못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때와 자신의 때를 구분을 못해서 생기는 오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믿음과 신앙으로 신앙생활 잘 하며 살아가던 사람들 중에서도, 때때로 당하는 인생의 어려움 앞에 견디지를 못하고 쓰러져서, 결국에는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왜 신앙으로 살아가는 내 인생에 이런 위기가 닥쳐오는가?  왜 믿음으로 사는 내 인생에 이런 환난이 찾아오는가?”  물론 처음부터 이런 불평을 하는 것 아니겠지요.  이런 일을 당할 때, 처음에는 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견뎌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설레는 가슴도 있습니다. 
또한 이런 일을 만날 때 기도해야 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망치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아옵니다.  열심히 기도하지요.  
“주여, 믿씁니다.” 기도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금방 해결될 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합니다만,  실제 자신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질 않습니다.  좀더 기다려 보지요, 그런데도 상황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나중에는 바뀌지 않습니까?   

불평과 원망의 기도로 바뀝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 맞습니까?  내가 얼마나 더 기도해야 됩니까?”  이런 불평 속에서,   이런 조급함 속에서, 기도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며, 기도를   중단하고 맙니다.  그리고는 세상의 방식으로 돌아서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신앙, 살아있는 신앙입니까?  아니지요.  그 신앙은 죽은 신앙인  것입니다.   그 신앙이 처음에는 살아난 듯 하였지만, 어떻습니까?  
결국에는, 이내 죽은 신앙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 있지요?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 간만 못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우리의 신앙에 대한 평가는 언제 이루어집니까?  항상 나중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어요.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나중이 잘되는 것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할렐루야!! 
이것이 신앙의 인물들에게 나타난, 공통된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속에 나타난 신앙의 인물들, 특별히 하나님이 축복하신 신앙의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잘 나가는 인생이었습니까?  아니지요.  처음에는 지나 내나 똑같은 인생입니다.  똑같은 환경입니다.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면 그 인생 여정은 특별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그저 그런 인생,  별로 변화가 없는 인생, 때로는 깝깝하고 답답한 인생을 그들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오히려 우리보다 더 못한 환경과 처지에서 살아갔던 인물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나중은 언제나 우리보다 나은 인생으로 끝이 납니다. 여러분, 무엇의 차이 때문입니까?  신앙의 지속성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견디는 신앙이 있었고, 우리는 견디는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지요.   이 차이가, 그들과 우리를 다르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롬 8 : 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신앙의 인물들은 현재에 나타난 고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고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무엇 또한 바라보고 있었습니까?  
장래에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비록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지만, 믿음으로 그것을 생각하며, 그 영광의 날이 자신에게 올 줄로 확신하면서, 현재의 당한 고난을 이기며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 11 : 1 - 2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인생에 닥쳐오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고난에 쓰러지지 않고, 인내하는 가운데, 언제까지 인내합니까?  하나님이 도우실 때까지, 하나님이 내게 역사하실 때까지 우리는 인내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우리를 세상 속에서 죽지 않고,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오늘 여러분이 현재 처해진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축복의 상황입니까?    아니면 고난의 상황입니까?   형통의 상황입니까?  아니면 막힘의 상황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당한 처지와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으로 일희일비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내가 처해진 상황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평가가 아닙니다.  현재는 상황의 끝이 아니라, 상황의 진행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과정에서, 때로는 문제를 만날 수 있고, 때로는 고통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와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로 인해, 그 고통으로 인해 불평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세요.  이 고통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고, 이 고통이  나를 더욱 더 강한 믿음으로 만들고, 더욱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만들어, 신실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하기에,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가 당한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줄로 압니다.  그 고통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닌 줄로 압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인물들과 같이,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현재의 고난에 쓰러지지 않고, 장차 내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증거를 자신의 삶 속에 나타내 보이는 살아있는 신앙, 하나님 앞에 보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환경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그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세상에 감옥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감옥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감옥이라는 자리를 허용 하셨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했던 일은 열심히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찬송하고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주어진 상황에서, 그 고난의 자리에서 불평하지 않고 열심을 다하게   될 때에, 그 고난의 환경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로 변화되어 지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재의 여건 속에서 인내하며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신앙을, 오늘 여러분에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신앙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말씀으로 여러분을 교훈 하시고, 또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살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오늘 이 예배 시간을 통하여, 다시 한번 여러분의 마음을 정하시길 바랍니다.  또 다시 우리는 세상에 나아가 남은 한 주간도 살아가야 하는데, 이전과 같은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오늘 이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신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으시고, 그 깨달은 바를 여러분의 삶에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이런 신앙의 삶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어야 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도우심과 은혜와 축복을 갈망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지금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여러분 각 자에게 가까이 다가와 계신 그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기도하는 여러분의  심령에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7절 말씀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특별히 이제까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의심하며, 비신앙적인 삶을 살아갔던 지난날의 모습들을 회개하면서,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 앞에 이 시간 겸손히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새롭게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능력으로 여러분의 남은 인생은,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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