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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직자선출] 하나님의 때 (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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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때 (전 3:1~8)

우리나라 말에는 '시간' 혹은 '때'라는 말이 하나뿐이지만 성경에 보면 헬라어에 시간을 뜻하는 낱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는 낱말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크로노스'는 시계가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냥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뜻할 뿐입니다. 가만 놔두면 시간은 알아서 흘러가고 우리는 그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반면 '카이로스'라는 낱말은 좀 신기합니다. 시간은 시간인데 그냥 시간이 아닙니다. 놔두면 알아서 흘러가는 그런 시간이 아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 어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정해진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특별한 의미가 주어진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부르고 성경에서는 이 '카이로스'가 특별히 '하나님의 때'를 뜻하는 말로 많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에베소서 5장 15~16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서 '세월'이라고 번역된 말이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즉 단순히 시간을 아끼고 잘 사용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때를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알고 그 하나님의 때를 놓치지 말고 잘 따라가는 사람이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때가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의 때'와 '사람의 때'입니다. 왜 이런 두 가지 때가 존재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이 생각하는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이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 때가 좋겠다. 이 때 하자." 하고 우리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때가 됐는데." 역시 우리 생각입니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충분하니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때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 때가 좋겠다. 시작해보자." 하는데 하나님은 "아직 아니야." 하실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때가 됐는데" 하고 생각해도 하나님은 "아니야, 더 기다려. 아직 때가 아니야." 하실 때가 많은 것입니다. 어떨 때는 나는 "아직 때가 아니야." 하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지금이다. 가라." 하실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쪽을 따라야 하겠습니까? 

그 답이 이사야 55장 9절에 분명히 나옵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 인간의 생각과 판단은 절대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판단은 틀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반대로 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시작하라고 하시면 해야 합니다. 이것이 '카이로스'를 아는 참 지혜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나의 때, 내가 생각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이 하나님의 때와 타이밍을 깨닫고 순종하며 그에 따를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법입니다.


시간의 주관자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읽은 전도서 3장 1절~8절 본문은 이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때'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1절에 보면 범사, 즉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다고 했는데 이 '기한'이라는 말은 원어에는 '정해진 때'라는 뜻입니다. 또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때'는 히브리말로 '에트'인데 참 재미있는 낱말입니다. 그냥 단순히 '시간'(time)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해진 때' '기간' '적절한 때'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따라서 범사에 '때가 있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 때나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장 적절한 때에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여기서 '때'란 '사람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입니다.

여러분, 시간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장 14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통해 낮과 밤, 그리고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이 우주를 만드실 때 시간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시간과 때는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무언들 못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시간을 멈추어서라도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시간을 멈추어서 사람을 도우신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대표적인 사건 두 가지가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는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들을 쳐서 이길 때 그들을 다 쳐서 이길 때까지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떨어지지 않은 사건(여호수아 10장)입니다. 또 하나는 히스기야 임금이 병들어 죽게 되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해 그림자를 십 도 뒤로 물러가게 하셔서, 즉 시간을 주관하는 해를 뒤로 십 도 물러가게 하셔서라도 히스기야의 생명을 십오 년 연장시켜 주신 사건입니다(이사야 38장). 

이렇게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기에 그 시간을 마음대로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해를 물러가게도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게 하기 위해 해가 떨어지지 않고 머물게도 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인간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시간을 뛰어넘어 모든 시간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고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시간과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아시는 분은 당연히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다양한 때

이제 2절부터는 그 때에 대한 구체적으로 예를 들고 있습니다.

먼저 2절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가 장례식 때 자주 기도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2절은 인간의 모든 태어남과 죽음의 때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떤 인간도 내 마음대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생명 주고 보내셔야 태어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인간도 자신이 죽을 때를 모릅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면 죽는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는 말도 그런 뜻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도 농작물을 심을 때가 있는가 하면, 과감하게 뽑아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농사는 망치고 맙니다. 그러면 그 때는 누가 제일 잘 알까요? 당연히 농사짓는 농부가 제일 잘 압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시작을 해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하는 결정은 하나님이 제일 잘 아신다는 뜻입니다. 

성도들 중에 이 사업을 시작할까 말까, 시작하면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경기가 어떤가, 이 사업은 전망이 밝은가 등등 온갖 상황을 다 살피며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왜 빼먹습니까? 사람의 태어나고 죽는 것이 모두 하나님께 달렸듯이 모든 일의 시작과 끝도 하나님의 소관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는 안 물어봐요. 전문가를 찾아다니고 경험자의 자문은 구하면서 하나님께는 안 물어보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일을 제가 시작해도 좋겠습니까? 지금이 그 때입니까? 아니면 더 기다릴까요?" "하나님,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요? 아니면 여기서 접어야 하나요?" 하고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안 하고 일을 벌이고, 하나님께 안 물어보고 중요한 일 시작하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 안 하면 그만둬야 할 때, 물러서야 할 때도 몰라서 타이밍을 놓치게 됩니다.

3절에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는 말도 결국 2절과 같은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병이 들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평생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물론 기도대로 고쳐주실 때도 있지만 고쳐주지 않고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또 사업이 어려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 받아서 사업이 다시 일어나기도 하지만 넘어지기도 합니다. 참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분명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고쳐주시고 살려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안 고쳐주고 죽이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세워주시는 것도 하나님 뜻이고 허무시는 것도 하나님 뜻이랍니다.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가고 억울하지만 이것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4절은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고 합니다. '행복과 고통'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에 늘 즐겁고 행복한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울 때도 있고 슬퍼할 때도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불행과 고통조차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다 뜻이 있어서 우리 인생에 눈물도 주시고 슬픔도 주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7절에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뜻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크게 슬퍼할 때 의복을 찢은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찢어지는 아픔이 있을 때가 있고 그 상처와 아픔을 다시 꿰매듯 회복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침묵을 지키고 말을 안 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론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용감하게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5절에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다"고 한 것은 '인간관계'에 관한 말씀입니다. 건물을 지으려고 돌을 모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건물을 철거해서 돌을 버려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잘 품어주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냉정하게 대해야 할 때도 생깁니다. 자녀나 배우,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는 가까이 품고 용서할 때와 엄하게 대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8절에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고 한 것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할 때와 전쟁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도 때론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는 뜻이지요.

6절에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재산과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돈도 벌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재산을 지킬 때와 잃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지만 잃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재산을 잃을 때는 속상하고 낙심하지만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더라는 것입니다. 돈은 잃었지만 분명히 얻은 것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인생의 모든 때가 다 누구의 소관 아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시간과 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절묘한 계획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겪는 아픔이나 고통이나 실패가 비록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이 일 조차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있는 한 과정임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운 일, 행복한 일뿐 아니라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그리고 실패와 고난도 다 하나님의 치밀한 프로그램 속에 들어있는 한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그 고통과 실패를 잘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실수도 없이 우리를 그 치밀한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훈련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판단해 "난 도대체 왜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난 이런 훈련 필요 없으니 안 하렵니다." 하면 우리는 그 훈련에서 탈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냥 묵묵히 그 하나님의 치밀한 훈련과정을 따라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어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지난 4월 8일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 정거장에서 생활하다가 12일 만에 돌아온 이소연 씨는 광주 성지교회에 온 가족이 열심히 출석하는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이 이소연 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되기까지 엄청난 선발과정을 다 통과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을 선발할 때 자그마치 3만 6천 206명이 응모했습니다. 그 중에 서류 심사와 기초 체력 테스트, 필기시험을 거쳐 1차로 245명을 선발했고, 2차로 영어와 임무수행 능력평가, 심층 체력평가, 정신 심리검사 등 선발 절차를 거쳐 30명으로 압축되었습니다. 3차 선발과정에서 우주인으로서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본격적인 정밀검사로 우주 적성평가, 위기관리 능력, 발표력, 과학실험 능력 등을 거쳐 10명으로 압축하고, 그 다음은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훈련센터에서 무중력 비행기와 무중력 수조에서 무중력 상태의 임무 수행능력을 평가받은 후 6명으로 좁히고, 그 가운데 최종적으로 선발된 두 사람이 고산, 이소연 씨입니다. 

보세요. 얼마나 훈련이 셉니까? 선발과정이 얼마나 엄격합니까? 그 과정이 치밀하게 몇 년 동안이나 계속됩니다. 별별 훈련을 다 받고, 한 과정 한 과정이 정말 엄격합니다. 극한상황에 대비한 혹독한 훈련도 이겨내야 합니다. 우주인 한 사람도 이런 긴 훈련과정을 거쳐 극한 훈련까지 다 받아야 선발되는데 하물며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 치밀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때론 얼마나 혹독하고 힘든 과정도 이겨내야 하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귀하게 쓰시려고 직접 짜신 치밀한 훈련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이 과정을 다 이겨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처음에는 이 두 명 중에 고산 씨라는 남자분이 우주인으로 선정되었으나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이소연 씨로 교체된 것입니다. 어떤 규정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훈련 교재를 바깥으로 유출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되면 교체되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숙소에 교재를 가져간 것 같다고, 억울하다고 하지만 억울할 것 조금도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분명히 규정을 어긴 것은 어긴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훈련일수록 규정을 지키고 철저하게 훈련 과정을 순종하며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금물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훈련과정을 내 맘대로 앞서가거나 벗어나면 탈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훈련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정말 치밀하고 확실한 훈련 프로그램을 세우셨는데 내 마음대로 판단해 앞서거나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고난 훈련도 있고 실패 훈련도 있습니다. 우주에서 어떤 위험한 상황을 만날지 모르기에 극한적인 훈련까지 받아야 하듯이 우리도 실패훈련, 고난훈련을 통해 우리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훈련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잘 견뎌내면 우리는 정말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가장 적절한 때는 하나님이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지요? 모든 일은 이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하는데 우리 하나님이 가장 좋은 타이밍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타이밍이 잘 풀려야 할 타이밍인지, 아니면 내가 좀 실패도 하고 고생도 해봐야 할 타이밍인지도 다 하나님의 소관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을 때와 뽑을 때를 너무도 잘 아십니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에 의해 이루어져가는 과정입니다. 그 타이밍을 내가 잡으려고 하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이소연 씨가 탄 소유즈 우주선이 우주정거장과 도킹하는 장면을 보셨습니까? 쉬운 것 같아도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약 3시간에 걸쳐 도킹이 이루어지는데 1센티미터도 오차가 없이 정확하게 타이밍을 잡아야 도킹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모든 도킹 과정을 사람이 직접 수동으로 해야 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전자동으로 한다고 하네요. 우리도 하나님의 때를 맞춰 따라가려면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야 합니다. 이 타이밍을 내가 잡으려고 하면 너무 힘듭니다. 전자동으로 하나님이 해주시면 쉽습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오차도 실수도 없습니다. 그분의 절묘한 타이밍을 따라갈 때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때를 깨닫고 순종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신호를 보내십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 아니 아직 기다려, 그건 영원히 하면 안 돼"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전쟁영화에 보면 어떤 중요한 작전을 할 때 꼭 대장이 신호를 보냅니다. 전 부대원이 다 초긴장해서 적에게 총을 겨누고 대장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어떤 덜 떨어진 대원이 신호보다 먼저 총을 쏴서 작전을 망치고 맙니다. 어떤 대원은 신호를 보냈는데도 즉시 반응하지 못해서 망치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도 꼭 이런 때가 있습니다. 대장이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내 판단대로 신호보다 앞서 나가거나, 신호를 보냈는데도 즉시 순종하지 못해서 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적절한 때, 제일 좋을 때는 대장 되신 하나님,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제일 잘 아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신호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내 뜻대로 한 발 먼저 나간다? 아니면 늦게 나간다? 반드시 실패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신호,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그 타이밍에 똑 알맞게 순종하여 반응할 때 역사는 일어나고 우리는 하나님께 정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까지 항존직 선거를 합니다. 혹시 이미 되신 분들, 또 오늘 되실 분들 합격해서 신납니까? 너무 좋은데 표정관리 하느라 애쓰는 분 안 계십니까? 축하는 해주고 싶은데 안 된 분들 눈치 때문에 못 하는 분들 계십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신나는 일도 아니고 축하받을 일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뿐입니다. 내가 잘 나고 내가 자격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이 나를 더 크고 중하게 쓰실 때가 드디어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순종해서 겸손하고 충성스럽게 하나님 맡기신 일만 잘 하시면 됩니다. 

혹시 되신 분들 가운데 부담스럽고 짐이 무겁게 느껴지는 분들 있습니까? 아니요. 하나님이 택하신 이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내가 제일 일할 만한 때, 제일 좋은 때 하나님이 직분 맡기신 것이니 부담 아닌 감사함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떨어져서 섭섭한 분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 때가 안 되었을 뿐 다음에 반드시 기회를 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정확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때는 가장 정확한 때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 하나님의 때를 깨닫고 전적으로 순종하여 따라가는 일뿐입니다. 이번 선거에 대상자가 된 분들뿐 아니라 우리 성도들 모두가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카이로스' 하나님의 때를 이루어 가는 귀한 분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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