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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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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19~24)

     오늘 읽은 본문은 여러분들이 많이 알고 계시는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이 여인은 흔히 사마리아 여인, 우물가의 여인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근래에 들어 상담이론이 교회에 많이 들어오면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좋은 상담의 예로 소개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또한 전도의 방법 등을 이야기 할 때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는 주제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 복음이 사마리아에도 전해져야 한다는 구원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여러 의미들보다 본문으로 선택된 짧은 몇 구절만 집중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령과 진정으로…

먼저 23절에 ‘신령과 진정으로’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라는 뜻일까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신령’은 ‘영’으로 해석되는 것이 좋을 듯 하구요, ‘진정’은 ‘진리’로 해석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신령과 진정으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는 뜻입니다. 

영으로 예배한다는 말씀은 조금 있다 살펴보기로 하구요, 일단 ‘진리로’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진리로’라는 것은 실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옆에 계신 분들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서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대화를 나눠보시면 알겠지만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사이일수록 대화할 내용이 깊고 많아집니다.  매일 만나고 또 전화하고 하는 연인일수록 할 말이 많은 것이고, 어쩌다 한 번 보는 사람은 대화할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혹시 몇 분 시간을 드려서 대화하라고 하더라도 날씨, 뉴스, 연예인, 스포츠, 영화 등 나눌 대화의 내용이 얼마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풍부하냐는 질문입니다.  호세아 4장 1절, 6절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도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믿고 계십니까?  아는 것은 믿는 것과 예배하는 것에 필요조건입니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 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힘 쓰십시오.  아침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통독을 통해서, 설교나 구역성경공부를 통해서,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하나님 알기를 힘쓰십시오.  또한 그것이 머리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서 체험되어진 지식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실체적으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성실하심, 의로우심, 사랑하심 등 오늘 만나는 여러분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체험하고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수련회 때 이단종파에 대해 배우고 관련자료들도 보았습니다.  신천지 종파의 집회장면을 보셨을텐데요.  그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성경이나 찬송가는 같은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  예배 드리는 모습이 약간 다르지만 그렇다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와 그들의 예배에 차이점은 외양상으로는 구별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내 열심으로, 나의 필요에 의해서, 내 감정에 복받쳐서 어떤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이렇듯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분을 높여 드리는 사람입니다.  

2. 영으로…

우리가 진리로,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 가지고 예배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누구를 예배한다 혹은 높여 드린다는 것은 일단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도 영으로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내가 영으로 노래하네…’  다른 말로 해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내가 영으로 예배하네’ 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지금 살아계셔 이 자리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올바른 예배, 진정한 주일성수는 토요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라면 토요 명화 보고 늦게 잠드는 것, 인터넷이나 여러 게임 하다가 토요일 늦게 잠 드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을 겁니다.  영국에서는 조금 다르겠죠.  토요일 저녁 늦은 모임은 가급적 삼가시고, 12시 전에는 주무십시오.  그리고 주일을 끼워서 가는 여행은 가급적 삼가시고, 주일에 다른 모임도 가급적 피하십시오.  여행이 우리 인생의 숙제도 아니고, 그렇게 기를 쓰고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녀분들에게 좋은 곳을 보여주고 싶으신 마음 알겠습니다만, 그것보다 먼저 좋은 신앙을 가르치십시오.  

그렇게 준비한 뒤 주일 예배에 늦지 마십시오.  그건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최소한 일, 이십분 전에 오셔서 마음을 정돈하시고,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사모하십시오.  비행기 타러 공항에는 두 시간 전에 갑니다.  1주일에 한 번입니다.  차라리 우리 예배 시각이 11시라고 생각하고 오십시오.  오셔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셔도 되구요, 마음 느긋하게 오늘의 예배를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항상 5분 10분 늦으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5, 10분 늦는 건 조금만 신경 쓰면 일찍 올 수 있다는 겁니다.  1년만이라도 52번의 주일 예배, 항상 10~20분 일찍 와서 앞 자리에 앉아 기도로 준비하고 예배해보십시오.  여러분 인생이 달라집니다.  

찬양할 때 열창하십시오.  입술만 달짝이지 마시고, 립싱크 하지 마시고 온 마음과 영혼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십시오.  영으로 찬양하십시오.  가사 하나, 하나에 마음을 담아 찬양하십시오.  우리가 찬양하지 않으면 저 산과 바다와 돌들이 일어나 소리친다고 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음이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그 가사에 자신의 고백을 담아 하나님께 들려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의 영이 찬양하게 하십시오.

기도할 때 함께 기도하십시오.  대표기도라고 합니다.  우리를 대표해서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들이 기도하십니다.  한 구절, 한 구절 내 기도로 받아,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머리 숙이고 자는 시간이 아니고, 딴 생각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 기도에 여러분의 영을 담으십시오.

헌금할 때 그냥 돈을 낸다고, 일종의 회비, 세금 혹은 밥 값이라고 생각하며 내지 마십시오.  헌금하면서 함께 하는 찬양의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헌금하십시오.  그것은 내가 내는 이 헌금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들도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지갑에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기 보다 주중에 따로 준비하셔서 가져오시는 것이 더욱 나은 줄로 압니다.  

예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가장 깨끗한 돈을 골라 어떨 때는 다림질까지 해서 성경책에 고이 꽂아두었다가 정성스레 헌금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이냐 어쩌냐의 문제를 떠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1주일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헌금만 그렇게 준비했습니까?  가장 좋은 옷을 골라 깨끗하게 다려서 입고 왔습니다.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단벌신사들은 토요일에 세탁해서 방에 걸어두고 다리미가 없으면 이불 깔기 전에 고이 펴서 깔아두었다가 아침에 입고 나왔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내려오던 그런 사모함과 정성의 전통이 언제부턴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런 외적인 준비가 영적인 준비를 담보할 수는 없지만, 영적인 준비는 외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영으로 예배하는 자는 그 시작과 준비 마음가짐이 다를 줄 압니다.

새 신자 교우들을 환영할 때 가족을 맞아 들이 듯 하십시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이루어가는 지체임을 인정하고 축복하십시오.  광고 시간조차 소중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 귀 담아 들으십시오.  주보에 내고, 광고하고, 홈페이지에 올려 놔도 관심 없는 사람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공동체를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이겠습니까?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물론 모든 설교가 다 성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만, 듣는 사람은 성령의 일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믿는다면 설교자의 인격, 준비, 자세 등 다른 것들을 신경 쓰지 마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해가는 시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자를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하고, 그 설교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게 마음으로 받고 삶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내 영이 그 설교를 듣게 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예배를 통하여 은혜와 감격과 회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3.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마지막으로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배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사야 1장 10절부터 13절까지 읽어봅시다.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는 1장 1절에서 알 수 있듯이,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때입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고서야 누가 누구인지 사실 잘 알지 못합니다.  간단히 말씀 드려서, 아하스를 제외하고는 유다의 좋은 왕들이었고,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평가를 받은 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를 제외하고는 이방신을 섬기는 산당들을 제거하지 못하였고, 백성들은 여호와와 이방신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계명 처음에 말씀하신 것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에 악한 왕이었던 아하스는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 나라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의 성전 디자인을 그 당시 유행하던 이방 풍속을 좇아 가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전의 어떤 부분은 그대로 남겨두게 했습니다.  여호와께 뜻을 물을 때 쓰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 무슨 말씀 드리려고 하는 지 이해가 되십니까?  일단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다른 어떤 것을 두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것이 제일 첫번째 계명이고, 동시에 우리들이 범하기 가장 쉬운 잘못 중에 하나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5절입니다.  열왕기상 18장 21절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완전히 버리고 제사를 폐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항상 문제는 여호와를 섬기면서 동시에 이방신을 섬기던 것이었죠.  지금으로 따지자면 교회를 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합니다.  헌금도 잘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돈도 의지하고, 가끔은 권력도 의지하고, 명예도 좇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교인분들 중에 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어서 편하게 말씀 드립니다.  한국에서 피자가게나 치킨집 열면 가까운 교회에 나갑니다.  그러면 매상이 오르거든요.  교회 달력 하나 걸어두면 오히려 좋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같은 액자도 걸어둡니다.  물론 그런 분들 중에 정말 자신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겠지만, 또 사실 그 구절이 있는 욥기를 읽어보면 그런 뜻이 아니거든요.  부적처럼 여기고 있는 분들이 많구요,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분들 많습니다.  

선거 앞두고 교회 찾는 정치인들, 사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정치행위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울은 제사 드리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씁니다.  21, 22절을 읽어봅시다.  이건 외국왕들에 의해서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열왕기하 17장입니다.  지금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고 그 지역은 이민정책에 의해 외국인들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진노하시자 거기에 거주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를 섬기게 했습니다.  27절부터 33절까지 읽어봅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모자식과의 관계 혹은 부부관계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부부관계를 통하여 혹은 연인관계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가장 기본이 무엇입니까?  다른 남자 혹은 다른 여자 안 만나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옷을 사 주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해 준들 마음이 딴 데 있고, 두 집 살림하고 있으면 그게 정상적인 관계입니까?  양다리 걸치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겠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양다리 걸치면 안 됩니다.  두 집 살림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니까 여러분과 크게 상관 없어 보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돈을 주인 삼아서는 안 되구요, 권력, 명예 등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이용해서도 안 되구요. 

마태복음 5장 23, 24절을 읽어봅시다.  이 구절 또한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구절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단 앞에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아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 분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예배하러 나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게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배자가 되려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고, 자신의 이웃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배가 1주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것은 시간상으로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하러 오기 전, 가깝게는 주일 아침부터 조금 빠르게는 토요일부터 몸과 마음을 점검하면서 예배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 청년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금요일 성경공부, 토요일 아침 기도회, 주일 예배, 이 셋을 잘 지키면 언어연수 혹은 유학생활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놓치면 학업도, 건강도 잃게 될 지 모른다.’  이곳에서 지난 3년간 200여명의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수 명, 혹은 수 십 명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금, 토, 일을 그렇게 정해놓고 준비하며 지키는 청년들은 1주일 전체 생활에 규모가 있고, 절제가 있고, 결국에는 자기의 목표를 이루면서 이곳을 떠나게 됩니다.  반면 이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못 지키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생활에 규모와 절제가 부족한 것이고, 건강을 해치게 되거나 목표한 바를 달성하지 못 하고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위의 것들을 지키지 않았는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그리고 자기의 목표한 바를 이루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약 오르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우리 같은 사람은 손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안 믿고 승승장구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시편기자 또한 그것을 고민하며 노래한 것이 있습니다.  

시편 73편입니다.  3절부터 11절입니다.  좀 어렵지만 쉽게 말해 이렇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난 성공했다라는 말을 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  예배에 실패하는 자녀를 키우지 마십시오.  공부가 예배보다 중요하다고 여기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가지고 살면서 결국에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필요없다 라고 말하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심판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100명이 예배당에 있다고 한다면 과연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예배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주일에 교회당 문만 열면 있는 것이 예배하는 사람들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지금 성령으로 하나님 실체를 예배하는 자 얼마나 됩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우리 모두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대충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 어떤 다른 것들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웃들과의 관계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매주일 예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내 삶이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조금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신 이 자리, 이 시간을 그렇게 소홀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1주일을 정성스레 준비하십시오.  예배가 여러분 삶에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다른 건 실패해도 예배만큼은 실패하지 않게 하십시오.  

야곱이 씨름했듯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고 은혜 내려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찾아진 바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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