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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노래를 부르자 (아 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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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래를 부르자 (아 2:10~14)

남산의 벚꽃이 정말 활짝 피었습니다.  멀리 가서 벚꽃 축제를 보는 것보다, 가까운 남산을 올라가면 정말 아름다운 봄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합니다. 샘물이 바위를 뚫고 솟아오르듯이,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이 얼어붙었던 땅에서 생명의 기운들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릴케의 “봄을 그대에게”라는 시가 기억났습니다.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봄은 삭막한 도시인에게도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둘이 함께 걷는 사람에게 봄이 주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용혜원 시인의 “봄 꽃 피는 날”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봄 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 내 마음에/ 사랑나무 한 그루 서 있다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 내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어나는 걸// 봄 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이유를”  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심령 속에 사랑나무를 한 그루 심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가서를 본문으로 하여 설교하는 것이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아가”라는 이름은 한문성경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가서1:1에는 “솔로몬의 아가라”고 했습니다.  ‘아가’(雅歌)라는 뜻은 “뛰어난 노래,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아가의 “아”자는 ‘아담할 아’, ‘맑을 아’라고 하여 “뛰어나고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든 영어 성경들은 “노래들 중의 노래”- The Song of Songs 라고 합니다.    본래 히브리 성경에는 “쉬르 하시림”이라고 하는데, ‘쉬르’는 노래라는 말이요, ‘하시림’이란 정관사 하를 붙이면서 ‘시림’이란 노래들이라고 합니다.  쉬르하시림이란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1005편의 노래를 지었는데, 가장 아름다운 노래, 노래들 중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아가서의 문학적인 형식을 설명한다면 “성경의 오페라”라고 분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출연진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 그리고 합창단으로 예루살렘의 여성합창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용히 여러 번 읽어보면 한편의 오페라를 감상하는 느낌이 듭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인 절기에 읽는 5권의 성경이 있습니다.  아가, 룻기, 애가, 에스더, 전도서가 있는데, 그 중에 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에 읽어야 하는 성경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아가서의 내용으로 보면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인데, 그러한 사랑의 노래를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에 읽어야 하는 성경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랍비들도 아주 오랫동안 이 책은 남녀간의 애정표현을 담은 책으로 성경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들어오지 못하는 문학작품으로 내려오고 있다가 주후 90년 대표적인 랍비들이 모인 얌니아 회의에서 비로소 정경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이 아가서와 에스겔은 3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은 읽지 못하게 하였는데, 아가서는 애정문제를 너무나 원색적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사리분별이 약한 어린 사람들은 읽지 말라고 하였고, 에스겔은 상징적 용어와 환상이 많기에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 장성한 후에 읽으라고 한 것입니다. 

아가서를 본문으로 하여 설교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참고될 만한 책을 찾아보니 주석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한 책이 없었습니다.    고신측 목회자로 시인이시며, 목사이신 이종남목사님이 “왕의 여자”, “샤론의 들꽃”이라는 제목으로 아가서를 강해한 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LA 동양선교교회를 시무하는 강준민목사님이 쓰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는 설교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상담사역의 전문가인 조셉딜로우가 쓴 ‘아가’라는 책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이 아가라는 책은 조셉딜로우가 쓴 것을 우리말로는 김선형교수와 김응교교수가 함께 번역하였습니다.  김응교집사는 우리 교회 원순기 권사님의 아드님으로 현재 일본 와세다대학의 교수로 있습니다.   

이 아가서는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솔로몬을 하나님으로, 그리고 솔로몬의 사랑을 받는 술람미 여인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유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아가서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재해석해야 합니다.  기독교적인 해석방법으로는 모형론적인 해석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솔로몬 왕을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고 술람미 여인을 교회와 성도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면서 솔로몬 왕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고 우리는 술람미 여인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 애정을 주제로 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의 아름다운 사랑과 그 축복에 대하여 노래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사랑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아가서가 가지고 있는 줄거리 스토리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에게는 갈릴리 북단의 레바논 산 바알하몬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포도원을 한 과부에게 소작으로 주었습니다.  이소작인 과부에게는 여러 아들들과 술람미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남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술람미는 여러 오빠들에게 시달리면서 자기 얼굴을 가꿀 시간도 없이 종일 힘들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술람미는 포도원에서 거친 일을 하면서 얼굴은 게달의 장막처럼 검게 그을렸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잘 생긴 도시 청년 한 사람이 이 포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솔로몬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검게 그을린 처녀 술람미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졌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진정한 사랑을 얻으려고 여러 번 시골의 포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은 더 깊어만 갔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솔로몬은 사랑을 고백하였고, 청혼하고 술람미 곁을 떠나갔습니다.    반드시 돌아와서 신부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술람미의 오빠들은 못된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동생을 나무랐고, 이때부터 동리의 많은 남자들의 유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술람미는 일편단심 솔로몬만 생각하였고, 밤마다 사랑하는 솔로몬을 만나는 꿈만 꾸었습니다.    어느 날 화려한 가마를 앞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술람미의 집으로 왔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많은 신하들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솔로몬과 술람미는 결혼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사랑을 고백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수많은 예루살렘의 처녀들이 술람미를 시샘하면서 부러워하였습니다.   이 솔로몬과 술람미 사이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술람미가 옷을 벗고 자고 있을 때에 솔로몬이 방문을 두드렸지만, 술람미가 옷을 벗었다고 하면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에 인기척이 사라지면서 솔로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당황한 술람미는 들불을 켜들고, 예루살렘 거리를 헤매며 찾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처녀들에게 사랑하는 솔로몬을 찾아달라고 애를 태우며 밤을 보냈습니다.  

술람미는 마침내 솔로몬을 찾아 모시고 들어와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에게 왕궁의 화려함 보다는 힘들게 살았지만, 자기의 고향 레바논 산들을 그리워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를 데리고 시골 술람미의 집으로 가서 술람미를 위로하며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사랑을 노래하였습니다.  아가서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가서를 읽으면서 우선 이 책은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며 애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합니다.  남녀 간에 순수한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는 깊은 대화가 있어야 하고, 대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위기가 찾아오지만 진실한 사랑을 위기를 극복하고 처음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언약을 맺은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힘이 있습니다. 

아가서를 읽으면서 한 글자, 한 문장마다 기독론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말과 어떤 사건도 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해석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조셉 딜로우는 그의 책 ‘아가’에서 유대 랍비들의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영해하였다고 소개합니다.  

아1:13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막 안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기독교 신학자들도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온 몰약 주머니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해석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린 식으로 아가서를 영해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우리 주님은 더럽고 추한 죄인까지도 아내로 맞이하는 그런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이신데, 피부가 검고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은 술람미와 같은 우리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 같은 사탄의 방해 공작이 있음에도 주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하여 다시 오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어떠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주님을 만나는 거룩한 혼인예식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일생을 통하여 변하지 않는 갈망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 진실한 사랑을 사모하게 됩니다.  사람은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가지면서 사랑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때와 장소나 살아가는 형편에 영향 받지 않는 사랑의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 놀라운 구속의 은혜가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성품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그 깊은 은혜가 사랑이라는 말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새번역에서는 괄호쳐놓고 (남자)라고 삽입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에게 하는 말입니다.  “나의 사랑 그대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그대 어서 나오오”라고 외칩니다.  

조셉딜로우는 아가서 연구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의 연애에서 결혼에 이르는 사실적인 사건으로 해설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술람미가 결혼식 행렬을 기다리면서 어느 봄날 자기를 찾아온 솔로몬을 회상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술람미는 결혼식에 임하면서 결혼하기 전 데이트 할 때에 솔로몬이 했던 말을 기억하면서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어느 봄철에 솔로몬이 술람미를 찾아와서 함께 산책을 가자고 불러내었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를 찾아와 창으로 엿보다가 드디어 술람미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불러내어 봄기운이 약동하는 자연 속으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을 사모하다가 지쳐있는 누워있었는데, 솔로몬이 찾아와서 산책을 나가자고 소리쳤습니다.  

11-13절입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추운 겨울은 길고, 지루하였습니다.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었고, 매사에 움츠러들었습니다.   유대나라는 겨울은 우기요, 그래서 비도 많이 내렸습니다.  비구름이 걷히고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꽃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계절이 이 땅에 돌아왔습니다.   비둘기 우는 소리, 우리 땅에 들려옵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무화과가 열리고 포도나무에는 활짝 핀 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랑을 노래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이런 시를 보았습니다.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구요?  보여줄 방법을 알려주세요.  나는 그대를 가장 깊게, 가장 높게. 가장 넓게 사랑한답니다.”  

이 시를 남기고 사랑하는 남편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난 여성이 있습니다.  이 시는 엘리자베스 바레트라는 여성이 쓴 시입니다.  바레트는 1845년 1월 추운 날 런던 윔플가에 있는 한 이층집 소파에 두 손과 다리를 모으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녀는 심한 기관지염으로 6년이나 그렇게 방안에 갇혀 쓸쓸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녀에게 친구라고는 오직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틈틈이 시를 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녀는 전혀 본적이 없는 한 남자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시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읽은 바레트는 마치 겨울나무가 눈을 뜨듯이 마음속에 사랑의 눈이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녀는 절망의 고통과 독방의 고독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즉시 답장을 썼습니다.  
“브라우닝 씨, 진심으로 당신의 편지에 감사합니다. ...”  

이렇게 해서 역사상 길이 남을 훌륭한 편지 왕래가 시작되었고, 두 사람이 사이를 오고간 편지는 무려 573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결혼하였고, 예쁜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끝내 바레트는 남편 브라우닝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지병을 이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이 시를 남겼습니다.  “숨쉴  때마다, 눈물 흘릴 때마다 /  내 인생 모두를 바쳐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신의 선택이라면/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하오리다” 

저는 이 봄에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에 말세가 되면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마24:12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고 했습니다. 

사랑은 이 험한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지금 남녀 간의 애정만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의 우정도 사랑입니다.  가족의 끈끈한 가족애도 사랑이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내 것으로 아는 애국도 사랑이요, 사람을 대하고, 우리 사회를 사람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어가는 모든 것이 사랑이란 단어도 통합되고 있습니다.  시공을 뛰어넘는 큰 사랑을 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쓰러진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실패한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힘도 사랑입니다.  타락한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힘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일어나게 합니다.  

아내의 사랑은 지친 남편을 일어나게 합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은 실패한 아들을 일어나게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적은 시련에도 절망하지만, 우리에게 큰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기에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로댕이 말했습니다.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창조했다.  예술을, 또한 종교를, 이것은 세계의 축이다”라고 했습니다. 

14절입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술람미는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솔로몬이 찾아와도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순결한 처녀였습니다.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온순하며 아름다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우리의 얼굴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사랑은 신비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요, 술람미는 시골처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으로 하나 됩니다.  신분으로 보면 하늘과 땅인데, 사랑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게 합니다.    신분, 나이, 인종, 건강, 장애, 성격, 소유 모든 것을 초월하며 극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습을 보시지 않고, 사랑할 사람으로 보아주셨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높아질 수 없는 것을 아시고, 우리 주님이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를 사랑한다고 하니,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충분히 보답하는 것이 됩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끝까지 고집하는 것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냥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때문에, 새롭게 변화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얼굴을 보여드리며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자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시면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일어나 함께 가야 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고 반복하시면서 일깨우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용납하시고 받아주셨는데, 당신의 사랑하시는 연인처럼 사랑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받는 비둘기와 같습니다.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은 비둘기와 같이 순결하고 온유하고,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이 봄날에 주님과 함께 밀월여행을 떠나는 심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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