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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신앙 ABC]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가? (창 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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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가? (창 6:5~22) 

        <악한 세상에 어디에 기댈 것인가?> 

        여러분, 지난주에 제가 사기를 당했습니다. 시리즈로 된 영어 원서 성경 주석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게 되었지요. 신구약 합해서 모두 48권이나 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품 가격은 750불 가량이나 되었습니다. 좀 더 싼 책이 없나 해서 인터넷 헌책방을 뒤졌습니다. 그랬더니 48권 전질을 15불에 판다는 서점을 발견했습니다. 내심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헌책이니까 워낙 싼 것이리라 생각하고서는 신용카드로 덜컥 주문부터 했습니다. 실제로 자세한 광고설명을 보니까 페이지를 인쇄해놓은 가장자리가 다 닳아서 안 보이고 더럽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아, 책이 워낙 낡아서 저렴하겠구나,” 그렇게 믿고 말았지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했습니다. 750불짜리 전집을 15불에 사서 오늘 큰 횡재했다고! 아,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쪽 서점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48권 중에 한 권만 달랑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48권 전질이라고 한 것은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 인터넷 광고를 중계해준 대형 서점이 그랬다는 변명이었습니다. 참 기가 막혔습니다. 즉각 주문을 취소해달라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또 보냈습니다. 법률적인 소송도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요!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책값과 우송료 합쳐서 20불정도 되는 돈을 되돌려 받겠다고 변호사를 사는 것은 말도 안 되지요. 아마 그 쪽에서도 이런 점을 노렸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사기 쳤던 소형 서점을 중개해주었던 대형 서점이 잘못을 인정하고 전액을 환불해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분명히 사기를 당했습니다. 책값하고 우송료 합쳐서 그까짓 20불을 손해봤다는 사실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 거짓 과대광고에 속아 넘어간 것이 분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저를 속여먹은 서점을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아무리 헌책이라고 할지라도 750불짜리 전집을 15불에 판다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경우에 맞지 않으면 제가 스스로 믿지 말아야 했지, 황당한 광고에 미혹된 제 자신이 잘못이라고 반성했습니다. 앞으로는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터무니없는 유혹을 받을 때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기를 당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 분해서 잠도 오지 않고 밥맛도 떨어졌겠지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참 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온갖 악한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는 어디에서 소망과 위로를 찾아야 할까요? 도대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의 창조 그 자체를 탄식하게 만든 노아 시대의 타락상> 

        노아 시대도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온갖 추하고 불의하고 악한 일들이 매일 터졌습니다. 얼마나 세상이 타락했던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 자체를 후회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본래의 뜻과 정반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할 정도였으니 인간이 얼마나 악했다는 말입니까? 

        본문 5-6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11-12절도 보세요.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은 인간이 선하고 하나되고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악하고 분열하고 불화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는 정반대로 치달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세상이 썩었습니다.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내가 왜 이런 인간들을 창조했을꼬?” 후회하십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매몰찬 결단을 하십니다. 

        7절을 보세요.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13절도 보세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비롯한 온 피조물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인간의 죄악 때문에 아무 죄없는 동식물까지도 멸망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욕심과 죄악 때문에 자연환경을 파괴하면 다름 아닌 인간의 죄 때문에 환경과 동식물의 생태계까지 파괴되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은 더욱더 구체적입니다. 

        17절을 보세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홍수를 일으켜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 31)고 감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온 천하에서 멸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예요? 견딜 수 없는 인간의 죄악 때문이지요! 

        <새창조의 가능성: 노아와 방주> 

        이렇게 온 인류가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 가운데에도 한 사람은 달랐습니다. 노아였습니다.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아주 특출한 사람이었지요. 다른 사람들은 다 홍수로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노아 한 사람만큼은 살려두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보셨던 것이지요! 그것은 노아의 인격과 신앙과 윤리적인 삶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 때문에 노아가 선택되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8절). 

        노아는 새로운 피조물의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기존의 모든 인류를 홍수로 쓸어버리신 뒤 노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류를 재창조하시겠다는 계획이었지요! 그리하여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신 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창조질서를 만들어 나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노아의 방주입니다. 방주를 만드는 과정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여러분, 방주는 오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에 왜 다녀야 합니까?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입에 담기도 싫은 온갖 범죄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계획은 언제나 악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노아 시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 내가 이런 세상을 지었을꼬?” “왜 내가 이런 인간을 만들었을꼬?” 하나님께서 충분히 후회하실 만큼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방주가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방주에 들어갔던 노아의 식구들은 그 무서운 홍수의 심판을 이기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비가 오다니, 믿지 않았습니다. 홍수 심판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눅 17: 26-27절이 말씀하는 내용 그대로였지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방주를 비웃었습니다. 아예 방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늘 하던 대로 먹고 마시고 결혼했습니다. 홍수 심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약속했던 홍수는 오고야 말았습니다.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식구들과 모든 생물들은 살아남았지만 방주 밖에 있는 이들은 모조로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왜 교회에 나와야 합니까? 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멀쩡한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이 심판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방주에 들어온 이는 삽니다. 그러나 방주를 외면하는 이는 죽습니다. 오늘 노아의 방주인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노아와 같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창조 질서를 세워나가실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방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살펴봅시다. 14-16절을 보세요.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첫째, 방주는 노아 마음대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철두철미 하나님의 지시대로 지어졌습니다. 오늘 노아의 방주 같은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뜻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백하는 신앙의 반석 위에 세워졌습니다(마 16: 18). 사람의 뜻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대로 방주를 지은 것처럼(22절), 오늘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뜻 위에 세워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 방주(方舟, ark)는 말 그래도 상자요 궤짝입니다. 히브리어 ‘teba’라고 하는 직사각형 상자입니다. 모세를 건진 갈대상자도 테바요 언약궤, 즉 법궤도 테바였습니다. 분명 물 위에 떠 있는 배이지만 키도 없고 돛대도 없고 노도 없습니다. 운전 시설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물 위에 떠 있으면서 왔다 갔다 하는 상자일뿐입니다. 방주는 노아가 운전하는 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끄십니다. 하나님이 선장이 되신다는 말이지요! 오늘 우리 교회도 사람이 선장이 되려고 하면 안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선장이 되셔서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움직이면 방주인 우리 교회는 안전합니다. 표류하지 않습니다. 승리합니다. 

        셋째, 방주에는 안팎에 역청을 칠해서 물이 새지 않게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역청, ‘코페르’는 ‘칠한다’는 ‘카파르’ 동사로부터 왔습니다. 그런데 ‘카파르’는 ‘속죄하다’는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오늘 노아의 방주인 교회는 우리의 죄를 속해주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칠해져 세속 문화의 오염된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우리를 보호해줍니다. 

        넷째, 방주에는 창이 하나 있습니다. 위 꼭대기에서 한 규빗, 즉 45.6 cm에 창을 냈습니다. 당연히 채광과 통풍을 위해서이지요. 방주 안에 있는 이들은 위로 난 창을 통해 빛과 바람을 받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교회 역시 위로부터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발광체(發光體)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야지만 그 빛을 세상에 비추이는 반사체(反射體)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위로부터 바람같이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온전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방주의 옆쪽에는 출입문이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 모든 생물들이 이 문으로 들어갔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로 친다면 이 문은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요 10: 9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방주에 난 하나의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생명의 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구원과 생명의 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드나드는 이들마다 구원과 생명을 얻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아의 방주와 교회가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방주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평화와 안식이 있습니다. 방주 밖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멸망이 있습니다. 불안과 갈등이 있습니다. 방주 밖에 있는 이들은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삽니다.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주를 품은 교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그 분이 가르쳐 주신 말씀은 다 훌륭한데 그 분을 따르는 교인들이 모인 공동체는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이지요. 오늘 모든 한국교회가 뼈아프게 들어야 할 비판입니다. 

        그러나 교회라고 해서 100% 흠도 없고 주름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완전무결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이 주인노릇 하려고 하면 교회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중세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인간 집단들보다 더 부패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이라고 해서 다 알곡만 모여 있지 않습니다. 쭉정이도 있습니다. 교회라고 해서 밀만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도 많이 섞여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꼭 그랬지요. 창 7: 2절에 보니까 노아의 방주에는 정결한 짐승뿐만 아니라 부정한 짐승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100% 깨끗한 생물들만 들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오늘 우리 교회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고 부패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질타를 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불완전성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죽어 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방주입니다. 생명의 방주입니다. 거룩한 방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가 구원의 방주, 생명의 방주, 거룩한 방주가 되는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나 어떤 제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주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불완전한 죄인들에 불과하지만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거룩해집니다. 

        옳습니다. 교회는 그 숱한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갖지 못한 보배를 가졌습니다. 세례와 성만찬, 즉 성례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인들이나 어떤 제도 때문에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이들이 다 완전하고 흠이 없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교인들은 부족하고 흠이 많아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 항상 붙어 있을 때에만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왜 교회에 다녀야 합니까?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창조의 목적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사실 그 자체를 후회하실 정도로 인간의 타락은 극심합니다. 홍수로 노아 시대를 심판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인류 전체를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홍수보다 훨씬 더 무서운 방법으로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나무 위에 도끼날이 찍혀 있는 것처럼 이미 무서운 심판이 시작된 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아무리 무서운 심판의 소낙비가 쏟아져도 방주 안은 안전합니다. 구원과 생명이 있습니다. 평화와 안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노아의 방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들은 새로운 피조물들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새롭게 할 가능성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마다 새로운 피조물들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쓰실 수 있는 일꾼들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한국 선교가 시작된 이 거룩한 성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영광이요 행복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끔찍이 사랑하셔서 피로 값주고 사신 이 거룩한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사모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위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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