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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슬 (호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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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호 14:1~7)

  나는 12월 31일에 있었던 송구영신예배 때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로 나오는도다.”라는 말씀을 뽑았다. 그 동안 청년의 부흥은 교회의 미래요, 한국 사회의 미래이기에 청년들에게 복음을 넣어주는 것이 담임자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런데 시110:3 말씀에서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주께 나온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새벽 이슬들이란 무엇인가?

① 새벽 이슬이란 깨끗함이다.

맑은 물방울이다. 그래서 이슬은 깨끗한 청년의 이미지이다. 

②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벽 이슬이란 살리는 힘, 회복하고 성장하는 힘을 말한다.

그래서 새벽 이슬 같은 청년이란 교회와 사회의 축복이 되는 삶을 의미한다.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 새벽 이슬이 없다면 풀들도 힘을 잃고 사람들도 힘을 잃는다. 풀, 짐승, 사람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 비결은 이슬 덕분이다. 이슬은 한 낮에 보이지도 않고 찾을 수 없는 물방울, 작은 물방울이지만 이슬이 없다면 식물들은 끝장이다. 그러므로 새벽 이슬 같은 청년은 살려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③ 이슬은 자기의 역할을 다한 후 사라진다.

이 이슬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를 다하고 더 이상 그 나머지의 공과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말한다.

  나는 이슬을 업신여겼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슬 같은 청년을 키워내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 이슬의 귀중함을 다시 깨닫는다. 이슬은 가치가 있다. 우리의 삶에 이슬은 소중하다. 이슬은 생명이다. 이슬은 은혜 중의 은혜이다. 

  호14:5을 보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라고 하였다. 이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면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이슬과 같으리니...”라고 하였겠는가?

  이슬이 생기는 과정은 공기 중의 수증기가 밤 동안에 식어서 물체의 겉면에 물방울이 되어 붙어있는 것을 말한다. 사실 팔레스타인 서쪽 지역은 지중해와 가까이 접하고 있어 항상 대기 중에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일교차의 연유로 수분이 많은 이슬이 지면을 적셔주게 된다. 식물이 한낮의 더위를 이기고 자신을 보존하는 힘은 이슬이 주는 힘이다. 이슬이 떨어져 물기 있는 대지에 뿌리를 박은 풀은 죽지 않고 한낮을 견뎌낸다. 그러므로 이슬은 비가 내리지 않는 중동 땅에 없어서는 안될 삶의 생명수다. 이슬 때문에 살 수 있기에 이슬이 없는 삶은 진노의 삶으로 성경은 표현한다.

  학1:10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이슬은 축복인 것이다. 모든 곡식들이 열매를 거두게 하는 축복의 물방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복 주실 때 이슬이 되어 주신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시는가?

1.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이슬이 되어 주신다. (호14:1)

호14: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엎드러진 채 있어서는 안된다. 

2. 새롭게 살아가는 결심을 하나님께 말할 때 이슬이 되어 주신다. (호14:2~3)

호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으로 멈추지 말고 백성을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아뢰어야 한다. 
호11: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진노하지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을 붙잡고 새로운 결심을 말해야 한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호14:3에 기록된대로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결심을 아뢰어야 한다. 정말 수송아지를 대신하는 입술, 주님을 올바로 사랑하는 입술을 주께 드린다고 결심하여 말할 때 하나님은 이슬이 되어주신다.

3. 나는 긍휼이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할 때 이슬이 되어 주신다. (호14:3)

호14:3下을 보라.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라 할찌니라.”고 하였다.
더 이상 보이는 것을 붙잡거나 의지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고아다. 이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면 살 수가 없다. 갈 데도 없는 고아, 돌볼 이도 없는 고아, 정말 긍휼이 필요한 이는 고아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없이는 고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긍휼이 필요한 자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 주신다.

이슬이 되어주시면 이스라엘은 어떤 삶의 축복을 누리는가?

첫째, 향기나는 삶이 이루어진다. (호14:5)

  호14:5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라고 하였다. 백합화가 피는 것은 전적으로 이슬의 힘이다. 백합화가 만개되면 그 향기는 멀리 멀리 퍼져 나간다. 백합화는 주로 가시 덤불이 있는 곳에서 핀다. 그래서 바람에 흔들리는 백합화 향기는 가시에 찔릴수록 멀리 더 멀리 퍼져 나간다.
  고후2:15에서 바울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주시면 향기를 가득히 퍼뜨리는 백합화가 된다. 우리 성도들이 백합화 같이 피기를 바란다. 사업장과 일터가 활짝 피어나는 꽃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 주목을 받는 삶이 이루어진다.

  백합화는 깨끗한 백색이 매력이다. 그리고 그 꽃의 자태 또한 매력이다. 활짝 핀 백합화는 누구든지 바라보고 주목한다. 그래서 백합화는 결혼식장에서 많이 쓰여지는 꽃이고 노랫말에도 “가시밭의 한 송이 흰 백합화야”라고 꽃말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주시면 백합화처럼 우리 인생도 사람의 시선을 끈다. 무명의 시골 뜨기라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유명한 삶의 CEO가 될 수 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 등 성경의 사람들을 보라. 모두 무명에서 백합화처럼 피어났다. 신앙으로 사는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아는 최경주는 탱크라 불리우는 프로 골퍼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주심으로 백합화처럼 피어났다. 주님만 의지하는 그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세계 골퍼 TOP 10에 들어갔다. 너도 나도 백합화처럼 피어날 수 있다. 

  우리 교회는 작은 산 위에 있던 작은 상여집 같은 예배당이었다. 화장실이 가마니 화장실이었던 우리 교회가 1989년에 예배당을 짓고 다시 2004년에 연회를 개최할 수 있는 예배당을 지었다. 수원에서도 이름도 없던 우리 교회가 정상에 서는 교회가 되었다. 사람들이 주목하며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CM으로 모이는 모임의 역할에 대해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든 각 처에서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도한다. 무엇보다 사업가로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지난 3월에 기지시교회로 부흥회를 갔을 때 7만원의 십일조를 하던 장로님이 있었다. 젊었을 때 영등포 걸레로 불리워진 이 분은 하나님을 바로 믿고 사업의 꽃이 피어 최고의 십일조를 하는 장로님이 된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우리 교회 성도도 부자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했다.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십일조 천 만원하는 사람도 10명, 십일조 백 만원하는 사람도 100명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이는 허황된 기도가 아니다. 만개된 꽃처럼 활짝 피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 주시면 우리의 삶은 만발하게 피어 주목받는 인생이 된다.

  찰리 프록터는 프록터 엔드캠블 비누 공장의 창설자이다. 그가 주목 받는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느 날 회사 직공이 비누 만드는 기계를 정한 시간보다 너무 오래 돌려 나중에 그 비누는 정상 제품보다 훨씬 가벼워 물에 둥둥 뜨게 되었다. 완전히 실패한 상품이라 생각하고 버리려 할 때 프록터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고 시판을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왜냐하면 목욕탕 속에 떨어진 둥둥 뜨는 이 비누를 너도 나도 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배 중 찬송을 부르다가 이 비누 이름을 “아이보리”로 정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주시면 누구나 주목받는다.


셋째, 흔들리지 않는 삶이 이루어진다. (호14:5下)

  호14:5下을 보면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고 하였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나무 중의 나무다. 기둥 중의 기둥감이다. 그래서 레바논의 백향목은 성전의 건축 목재로 사용되었다. 곧게 뻗어 올라가는 백향목의 멋진 모습은 뿌리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주시면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가 땅에 깊이 내리고 좋은 재목으로 자라날 것이다. 이 말은 곧 흔들리지 않는 삶을 의지한다.

  나무는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보이는 부분을 가능케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의 역할이다. 깊은 산에 가서 나무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면 뿌리에 대한 감동을 받는다.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고 거기 서 있고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양지로 옮기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의 삶은 약삭빠른 우리들보다 나은 것 같다. 흔들리지 않는 삶, 상황은 변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삶, 그러면서 굵게 크게 똑바른 백향목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은 이슬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나는 한 장로님을 만났다. 그 장로님은 초상집에 꼭 목사님을 모시고 간다고 한다. 임종하는 이가 예배를 요청할 때 어떻게 목사님 혼자 보내느냐고 하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한다고 한다. 나는 또 다른 장로님을 만났다. 자신은 교회 재정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는데 넘치도록 기도한다고 한다. 모자라면 내 몫이려니 하고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신다고 한다. 이때를 위해 내가 있고 내 사업이 있다고 말한다. 정말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힌 기둥 같은 성도다.

  하나님이 이슬이 되어 주시므로 은혜 위에 은혜를 입은 삶을 사는 것이다. 이슬 같은 은혜를 주시면 사람은 향기가 난다.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일군이 된다. 성공적인 인생이 된다. 이것이 복된 것이다. 우리에게 이슬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뿌리를 깊이 내린 성도가 되자. 때때로 한낮의 더위에 시들었다가도 이슬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언제나 시들지 않고 다시 피어나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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