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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삼상 1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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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삼상 16:6~13)

  미국 오하이오 주에 농장을 경영하는 테일러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농장에 Jim이라는 소년이 찾아와서 자기를 일꾼으로 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테일러 씨가 그를 보니 그런대로 성실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채용을 하고 거할 거처가 없는 그에게 건초더미를 쌓아놓는 창고를 수리해서 그 방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Jim이라는 소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주인에 보기에도 아주 흡족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난 후에 그 Jim이라는 소년이 자기의 예쁜 딸과 교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테일러 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 Jim이라는 녀석은 어디서부터 왔는지, 근본도 가문도 없는 녀석인데 저런 아이가 어떻게 우리 딸하고 교제하게 할 수 있나? 어떻게 저런 녀석을 우리 사위로 삼을 수 있나?’ 그렇게 해서 그를 꾸짖어 내어쫒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테일러씨가 건초더미 창고를 좀 수리하려고 이곳저곳 살피다보니 대들보에 칼로 무언가 기록한 것이 보였습니다. 그 글씨를 읽어보니 제임스. A. 가필드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제임스. A. 가필드, 그 이름은 바로 당시의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테일러 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30년 전의 그 소년이 대통령이 되었다니?’ 테일러 씨가 그 소년의 외형을 보지 않고 그 신실한 중심을 보았다면 대통령을 사위로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만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을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하나의 유행이며 병폐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외형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늘씬해야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또 이왕이면 멋있어야하고, 이왕이면 남 보기에 차도 작은 차보단 큰 차가 좋고… 꼭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큰 차를 타고 나가면 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집보다는 큰 집에 살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또 성형수술의 바람도 불어서 많은 여자 분들이 예뻐지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은 남자 분들도 성형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긴 우리 한국이 워낙 성형이 유명해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교황이 나이가 늙어서 죽었는데 천국에 가게 되었답니다. 천국 앞에 들어가려고 서보니, 웬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는데 입장을 하질 않는 것입니다. 성격 급한 교황이 화가 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가서 알아보니,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성형수술을 다 해서 대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원본하고 대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가 난 교황은 “야! 이런 놈의 천국 안 들어가고 만다. 그럼 우리 지옥으로 가보자.” 지옥을 갔더니 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지옥 입구에 간판이 하나 붙었는데 내부 수리중이랍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유가 간단합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찜질방에서 워낙 훈련을 많이 해 가지고  웬만한 불에는 끄떡도 안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온도를 높여야 되기 때문에 내부수리중이라는 겁니다. 화가 난 교황은 급한 김에 연옥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학벌이나 가문이나 지식이나 재산이나 외모가 우리의 판단의 근거가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철이 다가와서 여러분들도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누구를 뽑아야 될까?’ 오늘 아침에 장로님 한분이 기도를 하시는데 이런 기도를 하시더라고요. “성공한 사람보다는 성실한 사람을, 인기 있는 사람보다는 인격 있는 사람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참 좋은 기도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어떤 기준을 가지고 국회의원을 선출하겠습니까? 정말 성실한 사람, 그리고 인격이 있는 사람, 정말 말을 바꾸지 않는 신실한 사람을 여러분들이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사울 왕을 택했습니다. 처음에 사울이 제비뽑을 때만 해도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됐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숨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더니 사람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하죠. “아! 저 사람, 사람 변했다.” 처음에 참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권력을 맛을 알고부터는 교만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이기고 돌아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벌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명령해서 “네가 이제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아들 중에 한 사람을 택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부으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무엘은 난색을 표합니다. “지금 왕이 살아있는데 제가 어찌 새로운 왕을 세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제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아들 중에 하나를 내가 선택하리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사무엘은 순종해서 갔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이새의 집에 갔더니 그 집에는 아들이 여덟이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새의 아들들을 보자고 했습니다. 

  맨 처음에 아주 키도 크고 늠름하고 잘생긴 아들이 지나가는데 그가 장남 엘리압이었습니다. 사무엘이 봐도 이 사람이 꼭 왕이 될 사람 같았습니다. 정말 왕이 될 만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 이 사람이군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아니다. 그는 아니다. 나는 용모와 신장을 보지 않고, 나는 그를 버렸다.”라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 아비나답이라는 아들이 지나가는데 그도 역시 훌륭해 보입니다. 아주 미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삼마라는 아들이 지나가는데 하나님이 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아들이 다 지나갔지만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아들들이 다 여기 있습니까?” “아닙니다. 막내 여덟째가 있는데 그는 들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불러오지도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를 나이도 너무 어리고 모든 것이 형들에 비해서 무언가 빠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막내를 데려오지 않으면 “내가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그 막내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가 다윗입니다. 얼굴을 보니 얼굴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가 그니라.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워라!” 그래서 그 명령대로 그에게 기름을 부었더니 그에게 여호와의 신이, 성령이 임해서 그가 “크게 감동되었노라”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 되었고,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모든 준비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그 준비과정은 매우 험난했습니다. 때로는 생명을 걸기도 했고, 위험과 고통을 무릅써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0년 후에 이스라엘 왕으로 당당히 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뽑힙니다. 다윗의 이름은 신구약 성경에 800번이 넘게 소개됩니다. 아브라함의 이름보다 모세의 이름보다 다윗의 이름이 더 많이 인용되고 소개됩니다. 또 이스라엘 국기는 다윗의 별을 상징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소개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완벽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도 부족함이 참 많았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는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를 자기 부인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 우리아 장수를 적군 깊은 곳으로 들이밀고 거기서 죽게 만듭니다. 참 엄청난 일도 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수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그토록 귀하게 사용하시고 그를 축복하시고 이스라엘의 가장 훌륭한 왕으로 세우셨을까요? 하나님께 진정으로 쓰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먼저 하나님은 그 중심에 믿음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나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불타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성경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형들은 장성해서 전쟁터에 나가 국방의 의무를 다합니다. 다윗은 이제 양들을 치고 있다가 아버지가 불러서 옵니다. “야! 너 양떼들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형들에게 심부름 좀 다녀오너라!” 그래서 전쟁터에 가봤더니 상황이 말이 안 나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 중인데 블레셋의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나와 있었습니다. 키가 장대 같았습니다. 2M 80Cm쯤 됩니다. 그가 입은 갑옷만 해도 60Kg가 넘습니다. 그의 칼만 해도 두 손으로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와서 이스라엘에 와서 호령하니 다 벌벌 떱니다. 아무도 나가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다윗이 분노했습니다. “아니! 저 할례도 안 받은 골리앗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욕할 수 있느냐?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저렇게 모욕할 수 있느냐?” 자기라도 나가서 싸우겠다고 나섭니다. 사울 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다윗을 부릅니다. “야! 너는 소년이고 저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장군인데 네가 그와 싸움이 되겠느냐?” 하지만 다윗은 싸우겠다고 합니다. “제가 양들을 칠 때 하나님이 곰의 발톱에서, 사자의 발톱에서 저를 구출하셨는데 저 짐승 같은 골리앗에게서도 저를 구원하실 줄 내가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골리앗 앞에 서는데 막대기 하나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리고는 물맷돌을 가지고 던졌는데 그것이 바로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해서 골리앗이 쓰러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칼을 빼서 그의 목을 자르고 이스라엘에 전쟁의 승리를 안겨줍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의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오지 못하고 시골 어느 타작마당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게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다윗성이라는 작은 장소를 만들고 거기에 법궤를 모셔오게 되는데 다윗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법궤, 그것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자 다윗은 앞에 가서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춤추는 분들을 보면 참 마음이 순수한 분들입니다. 춤도 안 추는 분들이 문제가 있습니다. 좋으면 춤도 출 줄 알아야 합니다.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다윗은 춤을 추다 너무 좋아서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춥니다. 그걸 보고 미갈이 흉을 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 수수한 마음으로 춤을 춥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니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여기에 모실 수 있으니 너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사랑하는 그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제 전쟁이 끝나고 아름답게 지은 백향목 궁에 거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저 천막 가운데 있으니 그게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가서 말합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물론 기뻐하셨지만 그것은 거절하십니다. “다윗아! 너의 손에는 피가 묻었기 때문에 너는 이 성전을 지을 수 없다. 너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이 일을 하게 할 것이다.” 다윗은 정말 성전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자를 다 내어 놓았습니다. 자신이 전쟁에서 얻은 많은 노획물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내어 놓았습니다. 다 내어놓고 춤을 추며 좋아합니다. “내가 무엇이관데 이렇게 물질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너무 너무 감사해서 또 좋아합니다. 여러분! 바치고도 좋아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진정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많이 바치면 바칠수록 행복하고 기쁘고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치고 너무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봉사 할 때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정일도 하고 직장일도 하지만 내가 주님의 몸 된 교회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가 물질을 나를 위해 쓰기도 하고 자식들을 위해 쓰기도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물질을 드릴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할렐루야!’ 이런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의 중심이 그런 마음으로 불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뭐라 고백합니까? 시편 88편에 보니 “내가 여호와의 궁정에 하루 거하는 것이 악인의 장막에 천 날을 거하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다윗의 마음 그 속 깊은 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들어서 크게 쓰시는 겁니다. 

  또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은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참 성실한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이새의 집에 사무엘 선지자가 왔습니다. 그는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예언자 중에 예언자입니다. 이런 분이 자기 집에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그 자녀분들의 마음이 다 들떠 있지 않겠습니까? 양치는 일이 손에 가겠습니까? ‘우리 집에 사무엘 선지자가 오신다는데 빨리 가서 얼굴을 뵈어야지!’ ‘가서 축복을 받아야지!’ 마음이 들떴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일 하다가 다 손 놔버리고 “동생아! 네가 해라!” 그리고 핑계를 대고 다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다윗만은 마지막까지 형들은 다 떠났지만 그 양떼들을 성실하게 돌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양치는 일은 하찮은 일입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합니다. 성경은 뭐라 합니까?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는 내가 큰일도 많기겠다.” 어떤 분을 보면 일은 많이 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실하지 않습니다. 내가 많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맡기면 “사람을 뭐로 보고 이런 일을 맡기냐고?” 맡기는 맡지만 절대 안 합니다. 자존심이 상한다나요. “내가 이런 거 할 사람이냐? 내가 문 닫고 열 사람이냐고? 내가 화장실 청소나 할 사람이냐고? 대표기도나 시키면 모를까?” 

  여러분! 이런 마음 가지면 하나님이 나를 쓰시겠습니까? 안 쓰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억울한 모함 때문에 지하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서도 간수의 일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성실하게 일 하니까 하나님이 그를 들어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쓰십니다. 국무총리 될 생각하고 열심히 일 한 것 아닙니다. 그냥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을 때 예수님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세리 마태가 열심히 세관에서 일 할 때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엘리사가 열심히 소를 몰고 밭을 갈 때 하나님께서 그를 제자로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강철왕 카네기가 쓴 글을 보면 실패하는 사람들의 열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 두 번째는 열등의식과 자기비하에 빠져있는 사람, 세 번째는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 네 번째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 다섯 번째는 늘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 여섯 번째는 독창력이 없는 사람, 일곱 번째는 계획성이 없는 사람, 여덟 번째는 노력은 안하고 지름길만 찾는 사람, 아홉 번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신뢰가 없는 사람, 열 번째는 패배에 대한 원인분석도 하지 않고 무조건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 그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입니다. 실패하는 사람의 첫 번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성공하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자기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이 맡겨주신 일들,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다윗과 대조가 되는 사람이 사울 왕입니다. 사울왕은 기골이 장대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하고 서면 머리 하나가 올라갈 정도로 키가 컸습니다. 능력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성격이 급했습니다. 자기 화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잘 분노하고 폭발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포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떠난 후에는 아주 포악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윗은 매우 온유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리더십의 대가인 존 맥스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품은 말보다 중요하고 사람은 자기 인품을 넘어서지 못한다.” 사람이 아무리 성공하려 해도 자기 인품의 그릇만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공하기를 원하느냐? 자기 인품을 단련하라! 좋은 성품을 준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에게 우리는 어떤 면에서 그가 온유한 사람인줄 알 수 있을까요? 그가 전쟁터에 심부름 갔을 때 형 엘리압이 이 다윗을 비난합니다. “야! 네가 어찌하여 이리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은 누구한테 맡겼고?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지금 다윗이 너무 안타까워서 저 할례 받지 않은 골리앗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욕하고 있어서 전쟁에 나가고 싶어서 그러고 있는데. 이 형 엘리압이 다윗을 뭐라고 조롱합니까? “너는 일하기 싫으니까 놀려고 여기 왔지? 네가 교만하고 자랑하고 싶으니까 지금 떠들고 있는 거지?” 한마디로 깔아뭉개버렸습니다. 저는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이 엘리압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자신은 부끄러워 뒤에 숨으면서도 동생의 용기를 칭찬은 하지 못할망정, 동생을 비난하는 이 엘리압. 그는 왕의 재목이 안 됩니다. 여러분! 재목이 안 되는 사람을 세워 놓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 감이 있습니다. 대통령감이 있고 국회의원감이 있습니다. 감이 안 되는 사람을 세워놓으면 늘 문제가 생기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형의 비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그는 온유함으로 그것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서 이스라엘의 큰 승리를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윗은 자기를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고자했던 사울 왕에게 대항하지 않습니다.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죽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름 받은 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겁니다. 내가 심판할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결코 누구와도 다툰 적이 없습니다. 그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산상수훈에 보니까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서에 보니까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온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 온유한 인격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윗이 가장 의로운 분노를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군대가 이방인에게 모욕당하는 것.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린 다윗이 감히 골리앗을 대항하고자 나갔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존심이 상할 때 잘 참아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역해서 나라를 정복하고 다윗이 정말 신하들과 신발도 못 신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도망갈 때, 시므이라는 한 사람이 다윗을 향해서 손가락질 하면서 저 비루한 놈이라고, 못된 다윗이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다 감내하면서, 거기에 대해 대항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향한 공격, 자신을 향한 비난. 감정적으로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참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할 때, 다윗은 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일어났던 사람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 아무도 아닙니다.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기념비를 쌓는 사울과는 근본적으로 구별이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화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이 모욕당한다고,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여러분 의로운 분노를 가지신 적 있으십니까? 오히려 누가 여러분의 새 차를 긁어놨어요. 그러면 화가 나가지고 “이놈의 차를 누가 긁었느냐고.” 여러분! 차 긁힌 것은 분노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이 모욕을 당할 때 여러분 얼마나 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대항했느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소개할 때 “그는 여호와께서 함께하는 사람이더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달려들었던 사람이 바로 이 다윗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런 다윗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보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그랬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속사람. 여러분의 중심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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