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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벧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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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벧전 1:3~9)

오늘은 주님의 부활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로 계산해보면 제8일이 됩니다.  우리 기독교회에서 제8일이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팔일에 도마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1제자들이 문들을 걸어 닫고 방에 있을 때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 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제8일에 나타나신 주님을 생각하여 예배당을 지을 때에 8각형 예배당을 짓기도 하고, 세례반을 만들 때에 8각형으로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에 8각형의 세례반에 가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많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박사는 리젠트 칼리지의 영성 신학 명예교수로 계시는 분으로 개신교회의 영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를 말할 때에 영성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신 학자라고 말합니다.  그를 말할 때에 ‘목회자들의 목회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2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현실, 하나님의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600page가 넘는 분량이 나가는 책인데, 그 내용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부: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2부: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마지막 제3부: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이렇게 세 가지 큰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제3장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에서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 박사는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과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거룩한 삶으로, 부활의 삶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롬8:11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우리 주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일으키심을 받은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이 말씀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예수님을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영과 더불어 죽을 몸도 살려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요, 성령님도 살리십니다. 주님은 살아나신 영이요, 우리 안에서 살리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들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일으킴을 받고 있습니다.    부활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 주일이 되면 예배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모이는 것, 우리 집에 성경책이 있고, 찬송가가 있고, 식사를 할 때면 머리 숙여 기도하는 일, 어떤 사람이 교회를 향하여 욕을 하거나 비방하면 화가 나는 것, 이런 우리의 믿음이란 어느 정도의 가치가 나가는 것입니까?  일주일 동안 세상 중심으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도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야 하는 주일성수, 도대체 그런 일들-우리의 믿음이란 얼마나 가치가 나가는 일입니까?  믿음을 돈으로 환산해보셨습니까?  우리가 내는 헌금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까?   아니지요?  우리의 헌금은 우리 믿음의 가치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진리, 그 생명, 그 가치는 돈을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내놓고 바꿀 수 있는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고난주간의 성금요일에 투박한 십자가, 혼자서는 도무지 지고갈 수 없는 그런 무거운 십자가를 몇 명의 집사님들이 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그 십자가를 지고 갈 사람을 찾는다고 하였더니,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고 나서는 20여명이 그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가치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일 년 동안 거뜬히 신앙생활 할 수 있을 만큼 힘을 주는 감동이었습니다.   그 가치를 돈을 계산해보면 얼마나 될 것입니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믿음이란 살리는 역사입니다.  부활신앙은 이렇게 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립니다.   영혼을 살립니다.  가정을 살립니다.  어둡고 캄캄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도, 절망과 고독으로 몸부림을 쳐야 하는 사람인데, 평안이 밀려옵니다.  감사가 끓어 넘칩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나신 것만이 아니라, 살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죽어 냄새나고 타락한 사회와 문화를 살립니다.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악한 마귀는 죽이는 역사만 가져오고 있습니다.  미움, 살인, 질투, 불평, 다툼, 싸움, 전쟁 모두가 죽음이요, 죽이는 역사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리시는 역사를 가져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에는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정말 힘들게 신앙생활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사람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나사렛 사람들이라고 하여 핍박하였습니다.  나사렛당, 나자린스, 히브리 말로는 노쯔림이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이단이라고 하여 죽어라고 미워하였고, 자기들 공동체에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자기들이 현현신이라고 하면서 오로지 황제만을 숭배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또 다른 주, 또 다른 왕을 신봉한다고 하여 말살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황제숭배는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끝이 났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약 250년간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집트에 가면 콥틱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집트라고 하면 이슬람교의 나라요, 태양신을 믿는 다신교의 나라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콥틱교회가 있어 기독교인은 전인구의 약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칼케돈 회의가 있습니다.   이 회의는 주후 451년 황제 Marcinus가 칼케돈에 600명의 감독들을 소집하여 모인 회의였습니다.   여기 회의에서 갈려져나간 이들이 동방교회들이 있었는데, 콥틱교회, 아르메니안 교회, 야곱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교회는 본래 마가복음을 쓴 마가요한이 개척한 교회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가 전해주는 것은 주후 60년 경 마가가 이집트와 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교회가 오늘의 콥틱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교회는 유명한 신학자들을 배출하였고, 교세가 대단히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신학을 수립한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감독 아타나시우스 감독, 클레멘트감독과 같은 위대한 신학자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이 침입하면서 콥틱교회는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습니다.  이슬람교의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흔들지 않고, 목숨을 내어놓고 믿어 오늘까지 이르렀는데, 인구의 10%가 콥틱교회 성도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번 성지순례에서 이집트 카이로에서 콥틱교회를 방문한 일이 아주 큰 보람이었습니다.  콥틱교도들이 사는 지역을 지나가는데, 그들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변두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공직자로 진출할 수 없고, 이슬람 신도들과 함께 살지 못하니 회사에 취직할 수도 없고,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콥틱교회의 성도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출세도 못하고, 억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명예와 부귀와 바꿀 수 없는 살아계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부활의 주님을 믿기에 그런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에 계시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 주님이 보내어주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마음을 성전삼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산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리시는 주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1.  부활 신앙은 산소망의 신앙입니다. 

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산소망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귀하게 들여집니다.  정말 위대한 유산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는 그것이 산소망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죽지 아니하시고 부활도 없었다고 하면 우리는 살았으나 죽은 것이요, 이 세상을 온통 죽음뿐이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죽은 소망이 변하여 산소망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여유있게 사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화려하게 사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명예를 얻고 인정받고 상류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산소망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산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고통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게 하시는 산소망이 되십니다.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은 죽은 소망을 가지고 산소망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고 합니다. 

2. 부활신앙은 하늘의 유산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유산을 많이 받아 잘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산으로 잘 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자수성가해야 합니다.  

4-5 말씀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이 받아 누리시는 영화,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하신 하늘나라가 우리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유업이란 새번역에서는 유산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유산을 물려받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산입니다.   이 세상의 유산이란 썩어집니다.  더러워집니다. 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산을 잇게 하십니다. 

3.  부활신앙은 시험을 기쁨으로 이기게 합니다.  

6-7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편지를 받고 있는 성도들은 모두다 핍박을 피하여 흩어져 살고 있는 나그네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첩첩산중의 갑바도기아 토굴 속에서 숨어 지내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하는데, 연단이란 지나놓고 보면 날개를 달아주는 훈련이었습니다.  혹독한 훈련이 없이 위대한 선수는 없습니다.  훈련소를 나오지 않은 군인이라면 군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군복 입은 사람이지, 군인이 아닙니다.  군인이라고 하면서 총을 한 번도 쏴보지 못하고, 기합도 한번 받은 일이 없다고 하면 그를 군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험이 찾아옵니까?  시험을 치르지도 아니하였는데, 성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시험은 때로는 넘어지게 하는 유혹이 될 수 있어도 시험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연단이 되는 것입니다.  

4. 부활신앙은 구원을 주십니다. 

8-9절을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데,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교사들이 많이 참석하셨는데, ‘삶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이란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합니다.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가 쓴 책인데, 저서로는 ‘우리 집은 천국’,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교사의 원리, 교육의 원리, 활동의 원리, 전달의 원리, 마음의 원리, 격려의 원리, 준비의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교사의 원리란 간단하게 말하면 “만일 당신이 오늘 성장을 멈춘다면 내일 가르침을 멈추어라”고 합니다.  아무 것도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전달할 수 있습니까?  갖고 있지 않은 것이라면 전달할 수 없습니다.  교사는 먼저 공부한 사람입니다.  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조금 배운 것이 있습니까?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금도 배워야 하고, 앞으로 계속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가 베드로후서3:18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핸드릭스 박사는 말합니다. “살아 있는 한 배우고, 배우고 있는 한 살아 있다”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배우다는 말과 가르치다는 말은 한 어근 ‘라마드’라는 말입니다.  가르친다는 말은 배운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브루스 윌킨스박사의 배우는 이의 7가지 법칙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테디 스털라드라는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대하여 관심도 없고, 곰팡이 냄새나는 구겨진 옷에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아 흐트러져 있었고, 생기도 없으며, 초점에는 무표정한 얼굴, 담임선생님이 무엇을 물어보며는 ‘예’와 ‘아니오’로 짧게만 말하는 아이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데도 없고,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탐슨 부인이 모든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하여도 그 아이는 사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생활기록부의 1학년 “학습과 태도에 장래성이 있지만, 가정환경이 좋지 않음. 2학년: 공부를 잘 할 수 있는데 모친이 중환으로 누워 있음.  집에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함.  3학년 : 착한 소년이지만 너무 진지함, 학습이 더신 아동, 모친 사망4학년 : 이해가 매우 더디지만 행동 예절이 바름, 그의 부친은 관심이 전혀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홀로 전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그 선물 중의 하나가 테디 스털라드의 것이었습니다.  테디의 선물은 알이 절반가량 빠진 야한 모조 다이아몬드 팔찌와 싼 향수병이 나왔습니다.  학생들이 테디의 선물을 보고 킬킬 거렸습니다.  선생님은 억지로라도 좋아하는 척 해야 했습니다. 

탐슨부인은 테디의 선물을 보고 곧바로 팔찌를 손목에 끼고 향수를 조금 뿌렸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에게 보라는 듯이 손목을 올려 보이며 “이 향기 참 좋지”향기를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떠난 후에 테디가 교실에 남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다가와 “탐슨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어머니와 똑같은 향기를 내세요.    그리고 어머니의 팔찌는 선생님 손목에서도 정말 아름다워 보여요.   선생님 제 선물을 좋아하셔서 참 기뻐요” 테디가 돌아갔을 때에 탐슨 부인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학생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왔을 때, 그들은 전혀 새로운 교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탐슨 부인은 이전과는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된 것입니다.  그녀는 학생들을 사랑하였고, 온전히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전심으로 학생들을 도와주었고, 특별히 학습이 더딘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그 중에도 테디 스털라드를 도와주었습니다.  학년 말, 테디는 탁월한 향상을 보였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수준을 따라 잡았고, 심지어 약간의 학생들을 앞질렀습니다. 

그 후로는 탐슨 선생님은 테디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한 어느 날 편지를 받았습니다.  “친애하는 탐슨 선생님, 제가 고등학교 우리 반에서 2등으로 졸업하게 되었음을 선생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랑을 보내며. 테디 스털라드 올림” 

4년 후에 다시 편지가 왔습니다. “친애하는 탐슨 선생님, 제가 너희 학과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선생님에게 제일 먼저 알려드립니다. 대학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즐겁게 마쳤습니다.  사랑을 보내며, 테디 스털러드 올림”  그로부터 4년 후 “친애하는 탐슨 선생님, 오늘로 저 테오도르 스털라드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기쁘시죠?  저는 이 사실을 선생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27일에 제 결혼식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앉으실 그 자리에 선생님이 오셔서 대신 앉아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 제게 남은 유일한 가족입니다.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사랑을 보내며, 테디 스털러드 올림”   탐슨 선생님은 그 결혼식에 참석하였고, 테디의 어머니가 앉았어야 할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부인은 거기에 앉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테디를 위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해왔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온전히 헌신할 때에, 사랑하는 선생님이 될 때에, 위대한 결실을 맺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부활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리시는 주님이십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에게 산소망을 주시고, 부활신앙은 하늘의 유산을 가지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시험을 기쁨으로 이기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구원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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