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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죽은 자의 부활 (고전 1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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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부활 (고전 15:21-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1-22) 

인간은 죽음과 동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며, 이러한 사실은 인간 자신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인간에게 정하신 것이요”(히 9:27상)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I. 영혼과 육체의 창조, 죽음, 부활 

그러나 맨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이렇게 죽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그분의 생명을 누리며 영원히 멸절되지 않고 살도록 창조되었고, 육체는 비록 흙으로부터 지은 바 되었지만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덕 입으므로 말미암아 불멸의 몸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불멸의 육체와 영원히 살 영혼이 만나서 불사하는 존재가 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아담이 범죄 하므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와 영혼과 육체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연적 생명은 남았지만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끊어놓음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영원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교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육체는 불멸하도록 창조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죄의 결과인 죽음에 의해 삼킨바 되도록 변질되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불멸할 영혼을 품은 채 시간 속에서 소멸하므로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비극 속에서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구원 받을 인류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것은 바로 죄 때문에 잃어버린 인간의 이 아름다운 지위를 회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영혼이 그분께 접붙여지게 만들어, 그 교통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한없이 부어주시므로 영혼이 영원히 불멸하게 만드셨습니다. 육체는 시간 속에 소멸하고 마지막엔 죽어 이 세상에서 모두 흩어져 사라지지만 물질 불변의 법칙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지 이 세계 안에 물질로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부활의 날에 이 모든 육체의 물질들을 거두어 영혼과 다시 결합시키시므로 하나님이 하나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만드시는데 이것을 가리켜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흩어져 있는 우리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던 물질들은 구원을 얻고, 죽은 자의 영혼은 낙원으로부터 내려와 자신의 육체와 불멸하는 하나의 몸이 되고, 구원받지 못한 채 죽은 사람의 영혼은 음부로부터 올라와 육체와 결합이 되어 불사하는 몸이 되는 것을 가리켜 부활이라고 합니다. 

II.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부활은 두 부류의 부활로 명백히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또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는 예수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다시 살리신 몸과 영혼이 만나 영원한 축복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신자들은 날마다 새롭게 점증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의 빛을 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사랑을 알게 된 말할 수 없는 생애적인 희열이 무한대로 확장된 가운데 매순간 새롭게 일어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에서의 참된 기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비춰주시는 진리의 빛이 비췸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예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깨달음으로 극도의 희열이 우리의 영원한 천국 생활 안에서 매순간 무한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은 완전하시고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무리 보여주셔도 그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의 아름다움은 아직 다 밝혀진 것이 아닙니다. 천국 생활의 기쁨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세상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앞당겨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거기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이처럼 우울하고 어두운 것은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진리의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옥은 매순간 당신의 엄위하신 성품을 보여주시므로, 더러운 영혼을 가진 지옥의 인간들이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공포에 떠는 곳이 지옥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보여주시면 보여주실수록 그것은 아주 밝은 빛이 되어 그들에게 비치되 자신들의 영혼이 영원히 더럽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공의로운 성품에서 발현되는 두려움과 큰 공포가 매순간 새롭게 점증하는 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치열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육체가 모든 고통을 감당하면서도 영원히 육체는 소멸되지 않는 그 일을 위해 육체가 부활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입니다. 

III. 부활의 현재적인 경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부활한 것입니다. 죽었던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님이 능력으로 다시 살리심으로 그분께 접붙여질 우리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살 보증이 되신 것입니다. 그 보증으로서 부활하게 하신 성령님이 신자의 마음 안에 와 계신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바로 이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이기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고난의 골짜기를 노래 부르며 지날 수 있었습니다. 육체의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잠시 머물 이 세상을 애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 영원한 부활을 앙망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면, 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될 영광스러운 특권인 영원한 부활에 대한 소망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갈까요? 그 이유는, 영원한 부활에 대한 소망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적으로 내 마음과 영혼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이 내 안에서 경험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할 때, 미래적으로 그 영원한 최종적인 부활을 앙망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현재적으로 경험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이 비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끊임없이 살아나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들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갈 2:20)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신자와 그리스도의 영혼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연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와 연합되지만 그것은 원리적인 연합이고, 실제적으로 예수가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한 몸을 이루어 사는 것 같은 참된 연합은 사랑함으로써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기사랑을 버리고 예수의 사랑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나와 주님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된 인간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 우리말 성경에 보면 옛날에 못 박힌 것처럼 나오는데 희랍어 성경에 보면 ‘에스타오르타이(έσταύρωται)’로 현재완료 동사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있어 왔나니”, 즉 못 박힌 사건은 과거에 일어났지만 그 사건의 영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안에 예수가 살아계시므로, 그 생명 때문에 자신이 영적으로 매 순간 부활한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 거룩의 진전도 없습니다. 매 순간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자기 내면에서 경험할 때, 내가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예를 길들이듯 우리를 꺾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깊이 파고 들어와 그 사랑의 감화를 통해 꺾으십니다. 사실, 이 사랑의 감화에 의해서 꺾이는 것은 육체의 고통을 통한 꺽임 보다 훨씬 더 큰 고통입니다. 그 고통은 예수를 거슬리며 살고 있는 자신의 자아가 느끼는 고통이며 예수 죽음의 고통에 동참하여, 예수 죽음의 기운이 우리 영혼과 마음속에 파고들어 하나님을 떠나 내 멋대로 살려고 하는 육신의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육욕의 생명이 나와 나누어질 수 있는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죽이려고 할 때 그 고통은 우리의 온 몸과 온 마음속에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순간 예수와 함께 죽는 그 사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이 경험하게 됩니다. 

IV. 결 어 

깊이 회개하여 깨뜨려지고 난 후, 평안이 찾아왔을 때 느끼는 것이 생명입니다. 내 영혼 안에서의 일시적인 부활이 아니라, 내 온 존재가 다시는 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 속에서 다시 사는 그 영원한 신적인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만약 잠시 있다 사라질 이 세상에 모든 소망을 걸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세상과 함께 희망이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주고 사는 것을 경험하므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오게 될 영원한 부활을 사모할 때, 우리는 잠시 머물 세상에 매인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며 사는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 생활은 매일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 없는 자들과 접촉할 때 그들에게 생명과 사랑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 그 영혼들을 끊임없이 다시 살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훌륭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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