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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니라 (갈 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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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니라 (갈 2:17~21)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에서는 기독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행과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로움을 받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양심적으로 살면서 최선을 대해 노력하면 뭔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생각을 한다. 인간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확연히 다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며 절대적인 의로움을 요구하신다. 인간의 방법은 무조건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맡겨 보자는 생각이다.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다.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인 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절대적인 의로움를 받을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결코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오직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2:16을 보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누구도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 오직 유일한 것은 하나님이 제공하신 길을 붙잡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향감각을 의지하여 종교의식으로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방향감각에 이것을 받길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이나 우리 자신의 노력에 받길 수도 없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길에 의지해야 한다. 사람의 힘과 노력이 어느 정도는 평안을 줄 수 있지만 이것은 보장의 길이 아니며 그저 추측하는 길일 뿐이다. 이런 길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맡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 길 밖에는 없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본 갈라디아서의 내용이었다. 우리는 은혜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순서이다. 인간의 방법은 선행과 도덕과 윤리이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을 뿐이다. 여기에 심각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은혜를 강조하다보면 인간의 선행, 도덕, 그리고 윤리에 무력화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오직 은혜로 구원하신다면 선행, 도적, 그리고 윤리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다면 우리는 그대로 죄에 남아 있어도 상관없는 것인가? 

17-19절을 보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17절에서는 문제를 던지고 18, 18절에서 대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으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드시는 분이 아닌가? 이것은 당시에 대단히 많았던 질문이다. 바울이 말하는 은혜에 대해서 계속 죄인이어도 된다는 의미인가? 

이 질문은 로마서 6:1에서 더욱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은혜를 위해서 더욱 죄를 강력하게 지어야 한다는 질문인 셈이다. 이 질문은 오늘 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두 가지의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1)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에 죽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전의 죄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이다. 이것은 20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은혜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죄인으로서의 자신은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그 죄악과 함께 죽으신 것이다. 

로마서 6:3-4를 보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순종하여 세례를 받는다. 초대교회에서는 침례를 받았다. 침례는 물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다. 믿어서 세례를 받는 순간에 우리의 옛 사람은 장사되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물 속으로 들어가는 침례를 받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순간에 우리는 point A에서 단순히 point B로 옮겨진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죽는 것이다. 그래서 born again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고후 5:17을 보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없어졌으며, 죽어서 장사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래서 이전 것을 벗어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 죄악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nonsense이다. 옛 모습이 죽어 없어지는 것이고 벗겨지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이고 정욕적으로 살았던 자였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신분이 되어졌다. 

(2)이제 하나님을 향해서 살게 된 새 모습이다.

우리는 막연한 새 모습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게된 새로운 모습이다. 19절을 보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죄인의 사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향해서 죽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적을 가지고 새롭게 살게 된 모습이다. 하나님을 향한 새 생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살려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서 살라고 새 생명을 주었다는 뜻이다. 

20절 하반절를 읽어보자.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은 계절이 바뀌면 새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에게 새 계절이 임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살며 그에게 미쳐서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되는 순간에, 옛 사람이 장사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며 하나님을 향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은혜로 인해서 죄악에 남아 있으라는 당시 사람들의 주장은, 하나님이 당신의 은혜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은혜로 인해서 죽은 내 모습과 다시 살게된 새 모습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소 추상적인 말씀일 수도 있다. 이 말씀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의 권면과 도전이 있다.

(1)나는 절대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접으라.

나를 control하는 것, 나의 습관과 악습, 이런 것들이 되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하다가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이것만은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내 DNA에는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고 주저 앉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 말씀을 보라. 성경은 우리의 옛 모습이 죽었고 새로운 모습이 잘 형성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당신은 포기하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수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 지를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이제 나는 다 끝났다고 생각되지만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엡 4:22-24을 보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말씀하고 있는 데, jump하는 그 사이에 있는 말씀은 무엇인가?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마음 속에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포기하면 믿음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령으로 새롭게 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새 모습으로 나갈 수 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 수 있는 믿음을 갖추자. 마귀는 우리를 유혹한다. ‘너는 끝난 거야, 너는 글렀어. 끝났다니까’ 그러나 이 말에 결코 귀를 기우리지 말라. 끝까지 강력한 마음을 가지라. ‘Never give in !’ 마귀가 유혹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싸우라. 끝까지 저항하라. 절대로 굴복하지 말라.

(2)Perfection이 아니라 Direction이다.

구원은 perfection이지만 성화되어지는 과정은 direction이다. 지금이 perfection이라고 생각하면 절망에 빠지게 된다. 모든 유혹과 싸우다가 맞을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넘어졌구나’라고 실망할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자격이 없다’라고 절망할 수도 있다. 마귀는 우리를 송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마다 골로새서 2:13 이후를 보아야 한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는 범죄와 무할례로 죽었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살리셨다. 

그리고 14절을 보라.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우리를 송사하려는 마귀의 증서를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셨다. 그것을 완전히 무력화, 무효화 시켰다는 의미이다. 

15절을 보자.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마귀를 무력화 하시고 그들이 우리를 송사할 무기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우리는 결코 perfection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를 송사하지만 하나미은 이것을 이미 도말하셨고 십자가에서 무력화하셨다. 마귀는 마치 입빨 빠진 호랑이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의 direction이 살아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붙잡고 일어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고후4:16을 보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day by day 우리를 renew하신다. 이것을 붙잡고 살자. 구원은 마귀가 건드릴 수 없이지만, 그들은 우리의 헌신의 불을 끌 수는 있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마귀를 이긴다면 우리는 헌신의 불을 다시 훨훨 다오르게 할 수 있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마귀의 손에 있던 무기를 빼앗아 버린 사건을 선언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그 은혜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절대로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도 새롭게 살도록 허락하셨으니 오늘도 확고한 direction을 가지고 살며 절대로 실족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 안에 꺼져가는 불을 다시 훨훨 나오르게 하자. 요즘 불경기로 인해서 힘들지만 더욱 본질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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