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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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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36~49)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가는 기차안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한 승무원이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연신 혼잣말을 합니다.
 `아이고 큰일났군, 큰일났어.`    
이윽고 기차의 한 칸을 모두 검사하고 나서 
       승객들을 향해서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승객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셨으니 
              다음 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차의 안내방송에  의하면 분명 브뤼셀로 가는 기차인데.  
알고 보니 문제가 기차를 잘못 탄 것은 승객이 아닌 승무원 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 가이드 잘못 만나면 생애 큰 낭패를 당하고 맙니다.
돈이 명예가 지식이 절대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가이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안내자 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빈 무덤만 남겨 놓으시지 않고 
    다시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제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씀해 주시며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부활 후 주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마음에 세기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이 함께 모인 곳에 
              찾아오셔서 하신 첫 말씀이 무엇입니까?


1.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이 모인 곳에 찾아오셔서 하신 첫 말씀이 무엇입니까?(36절)

36절 [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 
‘평강이 있을지어다.’ 란 말씀입니다. 
왜? 부활의 주님의 첫마디가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했겠습니까?
이 사건을 요20:19절에서는 
[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라고 합니다.
그리고 37절에도
[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 
그러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으로 어려운 지경에 처해서 
       참으로 불쌍한 모습으로 모여 있는 장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입니까? 
자기들의 선생님은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서 잡혀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자기들도 한 번씩 혼 줄이 났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딴에는 무언가 해보겠다고 예수님 곁을 따라 가다가 
         그만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쫓겨 온 바가 있고 
막14:50절에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다 도망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예수를 따르던 한 청년은 벗은 몸에 홋 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을 친 일 등, 
하여튼 제자들은 지금 혼쭐이 나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등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 오더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등의 이야기를 와서 해 주었지만  
아직까지도 전체적인 상황판단이 되지 않는 총체적 난국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자연이 두려운 마음이 들어 문까지 닫고 들어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는 말은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이겠습니까?
부활의 주님은 심판의 주님이 아니라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평강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문 말씀의 제자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우리가 평강을 잃어버린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제자들과 동일한 문제 때문에 평강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첫째 원인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생각할 때 
    이제 자기들이 당할 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무서움과 공포 때문에 문을 꼭 닫은 채 떨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두려움을 느끼는 문제들은 무엇입니까? 
     건강 문제로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운 문제로 인해, 
     가정의 문제로 인해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두 번째 원인은 의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소식을 
         두 차례나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환상이나, 지나친 기대로 인한 착각 
       또는 도적들에 의한 도난이 아닐까 의심하였습니다. 
주님 부활의 능력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심 때문에 
     그들은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들 역시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의심할 때 
       진정한 평안이 임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원인은 불신앙입니다. 
본문 41절에 [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 
주님은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손과 발을 보이시며
       나아가 주님은 손수 음식을 먹어 보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한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의 능력을 믿으신다면
요14:26절 말씀같이
[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 
주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임할 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대해 주었습니까?


2. 부활의 주님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대해 주었습니까?(37-40절)

부활의 주님을 보고 놀라며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38절 [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 
39절 [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 
하시며 손과 발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얼 말씀하십니까?
제자들에게 믿음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끝까지 자기를 버리시는 모습입니다.
부활의 주님으로 나타나셨으면 위엄을 나타내며
       제자들이 그 앞에 꿇어 엎드리기를 바라지 않고
참 우스꽝스럽게 손을 뒤집어, 보이며 발을 들어 보이며 
야! 봐라, 못자국이 있잖아. 다리를 들어 올리며...잘 보이냐 ?
그래도 못 믿겠냐? 이리 와서 만져봐라........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슨 행동을 해서라도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하십니다.

왜? 못자국난 손과 발을 보여 주었겠습니까?
실망하고 실패한 그 자리를 딛고 다시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2007년 노벨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미국 유타대의 마리오 카페키 교수는      
2차 대전 와중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수용소에 갇혀 
   졸지에 거리의 부랑아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삶의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어린 카페키는 
‘생존에의 사투’를 벌이며 자신을 끈기와 집요함의 헝그리 정신으로  
그는 미 국립보건원(NIH)마저 “성공할 가능성이 작고 계속할 가치도 없다”며        
외면했던 ‘유전자 적중(gene targeting)’ 프로젝트를 
     집요하게 밀고 나가 마침내 의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고 했다. 
누구나 쓰러지고 넘어진다. 때론 추락한다. 
하지만 넘어진 곳에 주저앉지 않고 
        그 자리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다시 열린다.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실패자가 되었지마는
     이제는 그 십자가의 자국난 손과 발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제자들같이 
            부활의 주님 손 잡고 다시 일어서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손과 발을 보이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먹을 것 없나 먹을 것 좀 가져 오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3. 예수님께서 놀랍게 여기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한 말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41-43절)

저는 찬135장 3절 가사가 너무 좋아요
[ 허물 많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고
  사랑하는 그의 제자 가슴에 안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 주셨네 ]
부활의 주님
       엄한 위엄으로 심판하러 오신 주님이 아니라
       용서해 주시고 확신시켜 주시며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 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칼릴 지브란> 사랑에 대하여
그는 곡식 단을 거두듯이 너희를 거두어 자기에게로 모을 것이요,
그는 너희를 두드려 알몸으로 만들 것이요,
그는 너희를 키질하여 겨를 털어 버릴 것이요,
그는 너희를 갈아 흰 가루를 만들 것이요,
그는 너희를 익혀 물렁물렁하게 할 것이요,
그런 다음 그는 너희를 자기 거룩한 불에 놓아 거룩한 떡으로 구워              
하나님의 거룩한 잔치에 내놓을 것이다. 

못자국난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밥 먹자 하시는 주님
거기에는 주님의 깊으신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의 마음에 평안을 가지게 한 뒤
     제자들에게 성경을 열어 부활 사건을 자상히 설명을 합니다.


4. 예수님은 부활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며 부활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십니까?(44-47절)

44절 [ 내가 너희와 함게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
예수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예언적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 사건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그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되어질 일을 예고하십니다.
47절 [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  
예수 부활의 사건은 단회적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계속 일어날 연속적 사건임을 말해 줍니다.
지금도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밥 먹자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즉 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의심을 확신시켜 주시며
      밥 먹자 하시며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까?
나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가 무엇인냐? 그것은 바로 내 인생의 핵심가치이기도 합니다.


5.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이며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합니까?(48-49절)

그것은 바로 48절에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부활의 증인 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저절로 나오는 반응입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의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라는 저서에 
한번은 강연회에 참석했는데, 강연자가 스티커 한 통을 꺼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서 강단 위를 돌아다니며 
작은 집 모형, 장난감 자동차, 인형 크기의 사무실 책상에 
     빨간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여러분은 잘 보이지 않겠지만, 빨간 스티커마다 한 단어가 씌어 있는데    
 그것은 ‘순간’입니다. 
   제가 빨간 스티커를 붙인 물건들은 모두 순간적인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위해 산다면 
     순간의 쾌락, 만족, 성취를 좇는 삶이 되겠죠.” 
그리고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에 빨간 스티커를 붙이며 
        세상 최고의 선물들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 강연장 안에 순간을 초월해 다음 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을 강단 위로 불러 그의 옷깃에 파란 스티커를 붙이고
 “긴 인생길을 마치고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았다고 말하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사람, 바로 사람이야!’
세상의 어떤 물건도 다음 세상으로 챙겨 갈 수 없습니다. 
땅, 집, 예금, 직함, 성취도 가져갈 수 없다. 오직 영혼만 갈 따름입니다. 
심판 날에 세상에서 내 삶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내 목표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 부활, 그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를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증인은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명령만 하지 않으시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능력 곧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운동선수들에게 충고하는 원리적인 운동철학이 있습니다. 
비단 운동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성공하려면 똑같은 원리로 생각해볼 만한 원칙입니다. 

요약해서 간단히 말하면 3C라고 그렇게 합니다. 
1) Confidence 라는 것은 심리적인 안정을 말합니다. 
   심리적 안정이 없이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2) Concentration 입니다. 집중력입니다.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간혹 우리 이 나이가 좀 든 분들, 
    자꾸만 건망증이 생기고 뭘 자꾸만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기억력이 좋습니다. 
어린아이들이라고 해서 뇌가 더 좋고 
    나이든 사람이라고 해서 뭔가 지금 뇌가 잘못됐냐, 
    그런 게 아니랍니다. 문제는 집중력입니다.
 아이들은 오로지 하나만 생각하는데 
우리 어른들은 이 사람 만나서 저 사람 생각하고 이것 보면서 저 생각하고  
그러다가 아무 것도 입력되질 않고 집중력이 없는 거예요. 

3) Courage 용기입니다. 
   용기. 결정적인 시간에는 용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이 용기 어디서 옵니까?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본문 말씀에 적용해 보면 
1) 평강이 있을찌어다. 2) 내 증인 되라. 3) 능력을 덧입으라.

49절 [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 
그래서 120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산실인 마가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충만 받아 예수의 증인들이 된 것입니다.
기도회에 모여 성령충만을 강청하며 능력받은 예수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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