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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내가 생명의 떡이라 (요 6: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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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명의 떡이라 (요 6:48~51)

오늘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고난 주일입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걸이로, 어떤 사람은 반지로, 어떤 사람은 뺏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는 로마의 식민지 백성들의 사형집행에 사용하는 가장 굴욕적인 형틀이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한 잔악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 즉 로마 시민권을 갖지 못한 노예나 외국인들을 강압하기 위한 잔악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땅에 뉘어 놓고 두 손과 두발에 못을 박은 후에 그것을 세워 놓고 죽기까지 버려두는 것이었습니다. 이 형틀에 매어 달린 죄수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굶주림, 갈증과 경련을 일으키는 극한 고통을 받으며 보통 4~6일이 지나야 숨이 끊어지는데 어떤 경우는 10여일까지 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형틀위에서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로마의 병사들은 주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를 쏟게 하였고 함께 달린 강도들은 다리를 꺾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흉악범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해 돌아가셨지만 죄인은 아니셨습니다. 흠과 티가 없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히브리서 7:26에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계서 왜 이렇게 억울하게 돌아 가셨을까요?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민중들의 위협적인 힘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로마 군병들의 총칼의 힘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에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로마 군병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제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말고라는 사람을 쳤을 때에 그의 귀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태복음 26:52-54)라고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 주셨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열 두 영 더되는 하늘의 천사를 동원시켜 단숨에 그들을 멸할 만한 능력이 없는 줄 아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열 두 영의“영”이란, 로마 군대의 일개 군단을 뜻하는 것입니다. 당시 일개 군단의 수는 보병이 6,100명, 말이 726필 규모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영”이란, 12군단의 수만큼 되는 천사의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천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러한 천사들을 동원시켜 단숨에 로마 나라를 멸할 만한 능력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능력을 쓰지 않으시고 아무 힘이 없는 사람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 이유에 대하여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한복음 6:48~51)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 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육신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떡 곧 음식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영혼의 양식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영혼이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줄 떡은 바로 자신의‘살’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만찬 때에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태복음 26:26, 마가복음 14:22. 누가복음 22:19) 하신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이는 장차 십자가에 달려 찢겨 죽으셔서 대속의 구원을 이루실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은 매일 음식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혼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삽니다.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내 속에 있게 되듯, 예수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예수님에 대하여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음식을 먹고 나면 힘이 생기듯,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사람은 능력을 얻게 됩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환난과 풍파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1974년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생존”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실화입니다. 1972년 10월13일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떠난 전세 비행기 페어차일드 F227기가 칠레의 산티아고로 가던 중 악천후로 안데스 산맥에 불시착을 했습니다. 양쪽 날개와 꼬리가 산봉우리에 부딪혀 달아났으나 눈에 덮인 산허리에 동체 착륙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15명의 아마추어 럭비 선수들과 응원단으로 따라가는 친구 25명, 그리고 승무원 5명 등 모두 45명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더러는 불시착 때 즉사했고, 더러는 부상을 입고 산위에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눈에 덮인 안데스 산맥은 전문가들도 꺼려하는 죽음의 계곡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정부는 10일간 수색 비행을 했으나 찾지 못하자 그들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비행기에는 식량이 전혀 없었고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67일간을 끝까지 견디어 구출된 사람은 16명이었습니다. 이들의 생명을 두 달 이상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이들의 살을 뜯어 먹으며 연명했기 때문입니다. 

부상으로 여러 주간을 앓다가 산위에서 죽은 니코라치 군이 아버지 앞으로 적은 메모지에 이러한 글이 있었습니다.“아버지도 전혀 믿기 어려우실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죽은 친구의 살을 쪼개어 내는 일입니다. 이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저도 이제 오래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은 뒤 나의 살이 친구들을 구원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생존한 청년 호세는 로저스 신부에게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저는 학생시절에 교회에 한주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모두 저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죽음의 산위에서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교회에는 다녔으나 ‘하나님의 집’에 살지 않았고, 신자란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 신앙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눈 덮인 산에서 죽음과 싸우며 지금 비로소‘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수없이 성찬예식을 참여했으나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든 것뿐이며, 그 뜻이 내 가슴에 전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위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았으며, 정말 사랑이 무엇이며, 십자가가 무엇임을 깨달았습니다.”

천지에 보이는 것은 흰 눈밖에 없는 산위에서 죽은 친구들의 몸은 생명을 살리는 양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늘로부터 내려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살과 피는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며 영원한 생명 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본문인 요한복음 6:51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하셨습니다. 

一. 이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이끌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6:44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대단히 귀중합니다. 
“이끈다”는 것은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져 고기가 꽉 찬 그물을 끌어낸다는 말입니다. 그물 속의 물고기를 어부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끌어내는 것같이 예수님께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아버지께서 이끌어 내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끈다는 말은 사도행전 16:19에도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실라가 핍박을 받아 관원들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이끌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내 발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넣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그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고 마음을 감동시켜 이끌어 주셔야만 예수님을 깨닫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과 지성은 오히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할 때 방해를 합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고, 손으로 만져서 얻는 감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감각적인 것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그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역사를 하실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확신에 거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나 같은 죄인을 그 크신 하나님,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끄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를 힘입은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二. 이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너무 크기에 우리가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큰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차 대전 직후에 항생 약품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약은 상당히 귀한 약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해의 위생병원에 선교사로 가있던 Dr.밀러 박사가 하루는 허름한 행상을 하는 한 중국인이 찾아와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을 진찰한 밀러 박사는 이 중국인이 상당히 중병에 걸려있어 새로 발명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살 길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러 박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죽어 가는 이 환자를 그냥 놔둘 수는 없고, 약을 사용하자니 그 값을 치룰 만한 형편이 못되는 것 같고..., 고민하던 밀러 박사는 자신의 봉급에서 약값을 대신 갚아주기로 하고 조제하여 그 중국인에게 주었습니다.“약 값이 얼마요?”하는 중국인에게 밀러막사는“거저 가지고 가시오.”하고 약봉을 쥐어 보내고, 밀러 박사는 너무 마음이 흡족하여 그 중국인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복도 저 끝까지 나간 이 중국 사람은 조금 전에 지어준 그 비싼 약을 전부 땅에다 쏟아 붓고 발을 비비며 하는 말이 “여태 것 돈을 주고 사 먹어도 낫지 않는 병이 거저 주는 약을 먹고 낫겠는가?” 투덜대며 가버렸습니다. 이 약은 값이 싸서 거저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행상으로는 그 값을 도저히 치룰 수가 없어서 거저 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거저주시는 것은 값이 싸기 때문이 아니라 값이 엄청나 값을 정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혹 어려운 일들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에“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느 가정의 가훈이 “다웁게 살자”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살고,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살고, 자녀는 자녀답게 산다면 그 가정은 분명 행복이 가득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삶의 푯대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성도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넘쳐나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녹이라는 사람은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히브리서 11:5에 에녹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초점을 맞춰 살아간 에녹에게, 하나님은 더없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애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영광의 날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힘쓰는 사람이 실패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성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애쓰는 사람이 불행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갈라디아서 6:7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셨습니다. 심고 거두는 것이 식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살아가야할 삶의 방향에 대해 고린도후서 5:9에 말씀하시기를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에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1:20도 말씀하시기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4:8 에는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갈 때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은 내 삶에 영광스러운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을 내가 덤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3. 복음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깊이 깨달아야할 것은 나 자신만이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실 때에는 나 자신만의 구원이 아니라 나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8-19의 말씀에 “저가(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하나님)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나의 구원만이 아니라, 나로 인해 또 다른 사람들과 화목도록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화목의 직책 즉 복음증거의 직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8~9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셔서 나를 구원하신 것은 나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구원받은 자의 책임을 깊이 깨달은 바울사도를 통해 로마서 1:14-16 에 말하기를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전도에 대해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빚을 갚지 아니하면 그는 도둑입니다. 내 쓸 것 못써도, 내 먹을 것 못 먹어도 빚은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자라 했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전해준 복음을 통해 내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게 큰 은혜의 빚을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빚을 갚고자 바울사도는 또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이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직접 전할 형편이 못됩니까? 전하는 사람을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 슬로건 가운데“가지 못하면 보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 못하면 보내기라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 입은 성도들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 빚을 졌습니다.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 된 내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으니 이 얼마나 큰 빚입니까? 고린도전서 6:19-20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하셨습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증거하므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4:1-2에 복음증거에 대해 명령하시기를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분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성도여러분! 한강변에 자리 잡은 양화진이나 절두산을 한 번 시간을 내어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모든 것이 낯 설은 이국땅인 이 나라에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간 수많은 선교사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물과 땀과 피 흘림을 통해 오늘 우리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 사회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날마다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이 빚을 갚는 길이 무엇입니까?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도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3-15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전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과 약속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8:19-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도록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을 향해 약속하신 놀라운 은혜는“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한 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감히 누가 해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안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절대로 실패자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절대로 불행한 자가 되지 않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의 저서 에서 이런 고백하기를“나는 내 교회의 전도 프로그램에 14년 동안 참가하여 10가정씩 140가정을 방문하여 전도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1966년 내가 주지사에 입후보하고 선거 운동 3개월 동안에 악수를 나눈 사람은 약 30만 명에 달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3개월 사이에 30만 명을 만나보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14년 동안에 겨우 140가정에게 복음을 전달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십니까? 빚진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나는 날까지 여러분의 가정과 함께하시기를 바라십니까? 빚진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나는 날까지 여러분의 자녀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라십니까?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자 하늘나라로부터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 고귀한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큰 은혜 입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셋째, 복음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삶은 구원받은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삶은 내 삶을 보람되게, 아름답게 하는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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