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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현장 (행 10: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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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현장 (행 10:44-48)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베드로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특히 31절부터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에니아라고 하는 8년 된, 매우 심각한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사도 베드로가 말씀 한 마디로 이 병자를 일으켜 세웁니다. 34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성경은 그 병자가 곧 일어났다고 증거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를 알리는 전주곡에 불과합니다. 행 9:36 이하의 내용을 보면 실로 엄청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다비다라는 여자를 살리는 내용입니다. 이 다비다는 참으로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평소에 주위에 있는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인 바느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옷을 지어 선물한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36절) 이런 사람이 죽었으니 이웃들이 베드로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그 다비다의 안타까운 죽음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 다비다의 생전의 선행을 증거합니다. 이 때에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후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이 여자가 바로 눈을 뜨면서 그 자리에 일어나 앉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병자를 고친 것도 큰 기적인데, 더군다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더욱 더 엄청난 기적이요 역사입니다. 그러나 오는 행 10장의 본문을 보면 더욱 큰 기적이 일어나는데,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이 베드로를 청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의 집안에 강하게 임재하셨다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부어지는 역사를 통해 그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베드로의 말씀과 성령의 부어주심, 이 두가지가 함께 만나면서 이방인 고넬료 집안에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행10장의 사건은 교회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행2장은 유대인이 성령을 받은 사건이고, 행8장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사건이지만, 행10장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기 시작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지만 이방인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무리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국인들과 같은 이방인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을 경험한 사건이 바로 행10장으로부터의 역사입니다. 드리더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성령의 부어주심의 축복이 일어나게 되었으므로, 행10장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요, 기적 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2003년의 우리 교회가 “진리와 은혜가 만나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은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베드로가 증거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성령의 은혜가 임하여, 고넬료의 가정에 폭발적이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처럼,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한 두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를 꼭 보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 44절과 45절에 나타난 성령의 내려오심과 성령의 부어주심이라고 확시합니다. 이 같은 성령의 임재하심이야말로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나라의 모든 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는 필요한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좋은 집과 멋진 자동차, 맛있는 음식과 좋은 의복들이 너무나 풍족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의 부으심입니다. 왜? 그토록 성령의 부으심은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고넬료라 하는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가이샤라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유대 땅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그 경관이 대단히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 당시의 로마의 군대가 이곳을 지배했습니다. 특별히 로마의 총독이 이 가이샤랴 도시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달리야대라는 군대는 로마의 총독을 수호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감당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노늘날로 치자면 수도경비사령부입니다. 바로 고넬료는 그 조직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최소한 계급이 중령 이상은 되는 권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 고넬료는 대단히 충성스런 군인이었을 것입니다. 충성심이 없이 이런 조직을 맡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 고넬료에 대해 성경은 경건한 사람이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증거합니다. (행 10:1-2) 원래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은 대단히 방탕하기 쉬운 직업입니다. 대부분 집을 떠나 근무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군대 주위에는 항상 술집들이 번창합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군인이었음에도 경건한 사람이었고, 이방인이었음에도 유대인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넬료는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온 집안의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던 매우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혼자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만, 자기 집안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목사요, 전도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요, 성도이지만 자녀들의 신앙까지 책임을 지고 올바르게 양육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세상의 온갖 재미있는 것들로 둘러싸인 중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의 집 안에서 종교적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집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 때마다 전 가족을 함께 모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게 했습니다. 이런 고넬료의 신앙교육을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본 받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 아이들의 문화와 관습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일 만큼은 명확한 선을 그어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미국의 아이들은 예배시간에 절대로 떠들거나 장난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예배시간에 떠들 경우에 즉시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를 예배당 밖으로 데리고 나가 따끔하게 혼을 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을 잘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이 든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려면 때가 늦습니다. 자녀들이 나이가 들기 전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고넬료처럼 가정의 신앙적 지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고넬료는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한 내용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불쌍한 백성을 많이 구제한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 바로 고넬료였습니다. 또한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행 10:22) 고넬료의 신앙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조차 고넬료를 칭찬하겠습니까? 또한 고넬료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는 중에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행 10:5)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자 고넬료는 즉시 하인을 시켜 멀리 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서 자신의 집으로 청합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올 때에 그를 맞는 고넬료의 모습을 보십시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행10:25) 보통 사회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 고넬료는 당시 지배국의 막강한 군대 책임자인 백부장이고, 베드로는 단지 평범한 어부에 불과합니다. 베드로가 군인이었다면 아마 최말단 졸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해 엄청나게 높은 권세를 소유한 백부장 고넬료가 반말을 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만, 고넬료는 베드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 베드로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참으로 놀라운 겸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넬료의 참으로 좋은 점들을 살펴보면서도,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넬료가 경건한 삶을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비심이 많고, 항상 기도하며 겸손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그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백성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고넬료에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고넬료에게는 성령의 임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만나기 전까지 고넬료는 성령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으로 베드로를 초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선포된 베드로의 설교는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그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된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고넬료와 그 가정에 임했고, 이같은 성령의 부어주심의 역사를 통해 고넬료와 그 가정은 위대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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