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를 아는 중에서 자라가라-손양원목사

  • 월평 월평
  • 1807
  • 0

첨부 1


예수를 아는 중에서 자라가라 에베소서3:14-19,고로새서1:9-11.베드로전서3:18 생명을 가진 자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로 기독자는 중생한채 생명으로 30배 60배 100배로 자라야 합니다. 그러자면 예수를 잘 옳게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많은 기독자가 있습니다. 하나참 예수를 옳게 아는 자 얼마나 되는지? 예수에 대하여 설명하는 자는 많으되 예수를 아는 자 적고 예수를 몇 10년 믿었다고 자랑하는 자는 많으나 예수의 생명 성장의 진보를 보이는 자는 드뭅니다. 성경 책 속에 기록된 예수를 설명하는 자 많으되 자기 속에 계신 주와 같이 자라는 자가 희귀합니다. 예수를 두뇌(頭腦)속에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탕 맛을 알자면 먹어 보아야 합니다. 「네가 미국에 있는 월슨 대통령을 아느냐」 하고 물을 때 「네!」하고 대답했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사진으로 보아서 아는 수가 있고 신문 지상에 발표된 것을 보고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아는 것은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그의 마음 까지 그의 행동까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알자면 사귀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귀어야 참으로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면 처음에는 얼굴, 다음에는 체격과 그의 언행(言行),나중에는 그의 성격까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만큼 되어야 참으로 그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누구로 알았으며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 할 때에 우리는 예수를 아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가진 기독자라면 그리스도를 아는데 성장해야 합니다. 베드로 후서 1장 속에는 예수를 안다는 말이 4차례나 있습니다.(2,3,8,12) 2장20절에도 있습니다. 예수를 앎으로 해서 5대 소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를 아는 자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다면서 예수를 믿는다면서 근심과 걱정을 하는 자는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하고도, 나는 나대로 걱정과 근심에 잠겨 있다면, 이는 안 믿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맡겨 놓고도 걱정 할 바에야 믿으나 마나 한 일이 아닌가. 입으로는 예수를 믿어 복 받겠다고 하면서 내심으로는 그대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밤낮 2중 3중의 근심 고통만 하고 있는 셈 입니다. 사죄 받은 자리에 앉아서 죄의 고통을 하고 있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앉아서, 세상의 썩은 면류관이 부러워 한탄하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마귀의 신세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영원 축복을 얻은 자가 잠간 세상의 것에 취하고져 하니, 이 이찌 참으로 예수를 알았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참으로 예수를 아는 자리에 들어 섰다면 그러한 모순된 일은 하지 않게 되고, 필연적으로 은혜와 평강을 맛보게 되는 법입니다. 2. 예수를 알아야 예수의 것을 내게 채을 수 있습니다.(엡 3 19) 예수의 것이 내것 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를 알아야 하겠습니다.요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한대로 예수께서는 은혜와 진리를 가지시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다 받게 하고져 하심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에게 한하여서는 예수의 가지신 것을 내가 알아가는 대로 다 낱낱히 내 것이 되는 일입니다. 예수의 사랑, 인간 지혜에 넘치는 예수의 사랑의 그 넓이, 길이, 높이, 깊이의 모든 충만한 것을 내게 충만하게 하십니다. 아! 위대하다. 아무리 히말라야 산봉이 높다 해도 인지(仁智)로 측량할 수 있고, 태평양 같은 대양도 그한도가 있어서 그 넓이를 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충만한 은혜와 진리는 무한대로 영원무궁합니다. 그런데 요한같은 사도도 은혜와 진리의 충만을 알았고, 바울도 삼층천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이같이 얼마나 예수를 알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 있는지! 오늘날 신자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를 정도로 지내는 이가 많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참 신자가 못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지신 것은 모두가 우리가 이해하고 또 믿는대로 우리 것이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성결함, 선(善)함, 거룩함, 지혜,능력 등 다 내 것이 됩니다. 무엇이 있는것 같으나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예수의 곤고,천대, 십자가의 죽음 같은 것은 우주에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되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도록 합시다. 3. 예수를 알면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마 11:29) 신자의 큰 복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려면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옳게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 중에는 기독교를 졸업한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어떤 직분이나 맡으면 어지간히 된 줄로 압니다. 그래서는 예수에 대해서 더 알아 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신앙의 장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죽어서 천당에 가고져 하는 소망 정도로 만족합니다. 예수의 길이, 넓이, 높이,깊이를 알아 나도 겸손 충만한 알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아는 자가 겸손해 지는 것이 마치 잘 익은 알곡이 고개를 숙임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중에 고기 많이 잡게 되고 나서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했습니다. (푸랜시쓰의 기도 이야기, 어거스틴의 최후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야기) 바울도 「나는 죄인중에 괴수로다」하지 않았는가. 일본의 유명한 아오기(淸水)선생도 「나는 벌레이지 인간이 아닙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알아 갈수록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발견하게되고 따라서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는 점점 작아져가는 나요,천한 나요, 약한 나요, 껍데기 뿐인 나요,공허한 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신자 중에 아는 체 하는자,강한 체 하는자,된 체 하는자는 아직도 예수를 옳게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거든 가만히 눈 감고 있기 바랍니다. 시험 중에 제일 큰 시험은 자기에게 자기가 당하는 시험인 것입니다. 인간들이 자기를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죄인됨을 알고 부족을 알고, 무능력을 알고, 인간 자체를 깨닫는 것은 예수를 알아가는 자 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예수를 알아가는 겸손한 자에게는 예수의 충만이 그의 충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지간하다」하고 자족을 느낄 때가 오히려 위험천만한 때입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취했던 태도와 나는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를 비교해 보라. 4. 예수를 앎으로 죄악과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예수를 잘 알게 될 때에 세상을 알고, 인간도 알고, 악마도 알고, 죄도, 의도, 선도, 악도, 구별해서 알게 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범죄케 하는 모든 사물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나도 싸울 계책(計策)이 나오게 되고 힘도 나게 됩니다. 오늘날 세상 보고 인심을 보니 어찌나 악한지 모르겠습니다. 천만가지 계교로 우리를 범죄하게 하는 것입니다. 밖으로는 대적(大敵)이 안으로 원수가 대활동을 하는 지금 세상입니다. 세상은 말세로서 가을 바람에 나무 잎 떨어지듯이 요란합니다. 그러나 이 바람에도 안 떨어지는 자는 주님을 잘 아는 자인 것입니다.왜 아직도 죄악을 못 버릴까,왜 독초를 즐길까,세상 육욕에 취할까,그것은 아직도 주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옥수수 대를 빠는 아이들같이 세상 허영 육적인 향락에 취하지 말라, 왜 아직도 담배를 피울까,그것은 아직도 담배 맛을 예수 맛보다 더 잘 아는 까닭입니다. 빌립보 3장4~8보면,바을 사도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성 푸랜씨스도 '돈 전대를 말똥 위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 선생도 '옛날 좋다던 것이 오늘에는 눈물로 변합니다' 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를 참으로 알게 되면 반드시 이러한 체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죄악과 시험과 환난과 고통을 이길 자도 오직 예수를 아는 자 뿐입니다. 무엇보다 더 좋은 예수를 알게 될 때에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아직도 죄를 짓고 시기와 원망과 불행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 데서 그럴 것입니다. 5. 예수를 참으로 아는 자라야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6:66-69) 오늘날 여러분이여! 예수의 참 맛, 참 예수를 알기 전에는 섰다고 생각하지 말라! 3년이나 따르던 가룟 유다가 오늘의 우리들보다 예수를 몰라서 팔았겠으며 세상을 사랑하던 데마는 우리보다 예수를 몰라서 세상 영광에 취하였겠는가? 과거에 믿다가 낙심한 모든 성도가 우리보다 성경을 몰라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오늘날 조선에 목사장로가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보다 못해서 그렇게 되는 줄 아는가, 예수를 알아가자. 오늘날 우리들도 참 예수를 아는 일에 일로(一路) 매진합시다. (폴리갑 이야기, 요 6:66~69 이야기) 예수를 따르던 가룟 유다도 떨어지고 말았다. 돈 몇 푼에 주일을 팔고 월급 몇푼에 성경을 파니 예수를 어찌 안다고 할 것인가? 알곡만 남으라. 욥 같이 하나님을 잘 알자. 요한이나 바울이나 베드로 같이 알아야 합니다. ㅁ결 론ㅁ 그러자면 예수를 아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① 기도로 ② 성경으로 ③ 체험으로 ④ 명상으로 ⑤ 만물,만사 만행중에서 ⑥ 평범한 생활 중에서도 예수와 사귀면 예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려고 일생을 산곡이나 암혈에서 지낸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나를 배우라고 하셨으니 더 말 할 것이 무엇이랴! 예수를 알면 예수의 것이 아는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니 이 어찌 복되지않으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