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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 피영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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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 피영민 - 우선 교회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이라고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 하나님을 향해 교회가 예배의 역동성을 가지고 은혜와 감동을 가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에서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셋째, 불신자를 향한 전도와 선교를 교회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넷째, 세상을 향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마음에 두고 기본에 충실하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로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교회는 부흥의 시기가 있었던 반면 영적 침체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특히 19세기 미국의 영적 부흥과 영국의 대각성 운동은 오늘날 부흥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사가로서 목사님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영적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필요한 부분은 평소 무엇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부흥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교회 없는 기독교는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말하면서 무교회주의를 강조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주장은 기독교의 본질과 상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언제나 이상적인 모습으로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교회가 언제나 완전했던 것은 아니지요. 초대교회도 문제가 많고 지금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부흥되어야 하고 부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부흥이라는 개념도 사람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교회사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완전한 교회를 이루는 것이 부흥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3세기의 노바티안이나 4세기의 도나투스주의는, 교회가, 배교한 적도 없고 안수할 때 윤리적 문제도 없는 완전한 교인과 완전한 목회자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말론적 입장에서 아주 비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런 것은 교회의 부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6세기 영국의 제5왕국론자라든가 미국의 시커 교도들과 같이 미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 현대에 오면서 교회가 현대적인 지적발전을 다 수용해서 교회를 변형시킬 수 있어야 부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등비평, 해방신학 등을 수용해야 교회가 부흥한다는 것이지요. 또 로마 가톨릭 같은 경우는 교회가 이미 꽃봉우리는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피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갱신의 씨앗은 있으니 그것을 발전시키면 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은 성령의 능력, 곧 위로부터 능력이 부은바 되는 것으로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 권세를 회복하고, 말씀이 흥왕해지고, 구령의 능력이 강해지고, 성도간의 교제가 생동감 있게 일어나고 선교의 활성화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나라가 단기간 내에 비상한 확장이 일어나는 것이 부흥이라고 봅니다. 이런 부흥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일어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부흥회를 한다고 해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절대적인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때에 일어나는 것이 바로 부흥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편에서 교회의 부흥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교회가 진리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거스르면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진리성을 회복할 때 부흥이 일어나는 것인데 진리성의 회복은 교회가 성경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를 찾았고, 칼빈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붙들었고,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들이 그 부분을 설명합니다. 둘째, 교회의 영성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에서 말하는 신비한 영적체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의 영성은 간단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기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기도의 모습들에서 교회의 영성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윤리성입니다.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다는 것은 교회에 속한 개개인의 윤리적 부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개인적, 집단적 죄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를 통해 참된 윤리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게 될 때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넷째, 교회가 사회적 봉사를 감당할 때 부흥이 온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침례교회가 독립전쟁을 치루고 나서 엄청난 부흥을 이뤘는데, 그것을 가만히 연구해 보면 교회가 사회적 문제에 잠잠하지 않고 그 당시의 상황 속에서 사회적 공헌을 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히 미국의 개정헌법 제1조인 종교의 자유조항이 버지니아 침례교도들의 노력으로 이룬 것임을 생각해 볼 때, 교회의 사회적인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준비된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부흥의 때에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는 교회는 이른바 대형교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여러 면에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회의 대형화가 주는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로 ‘교회 안에서 성경적 공동체성을 제대로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이 있습니다. 유기체로서 건강하게 성숙하는 교회를 향한 비전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지금까지 저희 교회는 여러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멘토링 방식으로 교인과 재정을 나눠서 분립해 현재 수적으로 조금 줄었습니다만 아직 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인들이 단지 소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영적 만족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명을 가지고 활동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목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에 속해 있지만 그 안에서 더 작은 모임에 속해 있을 때 신앙적인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셀 교회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도 검토 중에 있습니다. 특히 셀 그룹을 하게 될 때 교회의 조직, 신학, 영성 등에서 어떻게 통일성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경우 교인들이 지도자의 단점을 그대로 배우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면들로 보완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셀 목회라는 것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구역예배는 주로 지역별로 나눠진 구역을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모임에서 전인적인 회복이 일어나는 예배와 공동체가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상호간의 목회적 돌봄과 나눔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지요. 그런 점들을 생각해 볼 때 기존의 구역 조직을 좀더 생동감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기존의 구역에 참여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연령별, 직업별, 관심분야별로 모임을 만들고,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지역별 제한을 넘어서 모임을 구성해서 한 사람도 이 작은 모임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떤 소그룹이든지 한 사람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세포분열을 하고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합니다. 또한 주일설교를 중심으로 소그룹을 확대 강화하여 심도 깊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가 영적 통일성을 가지고 성숙해 가는 공동체가 되리라고 봅니다. ***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인적자원이 많아지게 되고, 그 속에서 필요들이 다양화된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경영마인드와 행정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세상적인 기업을 다루는 방식과 흡사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서 이런 리더십과 경영마인드를 접목할 때 그 기여와 한계들, 그리고 그 한계의 극복방안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스텝(Step)과 라인(Line)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스텝이란 구조적인 조직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무직과 위원회 등이 포함되는 것이지요. 라인이란 소그룹을 이뤄 예배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조직을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라인을 무시하고 전문화된 스텝을 강화하면 교회 안에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스텝의 목적은 라인을 뒷받침하는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라인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라인의 지도자이며 스텝의 지도자입니다. 라인의 지도자로서 목회자는 영적 지도력을 보여줘야 하고, 스텝의 지도자로서는 세상적인 지도자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CEO와 같은 역할이 목회자에게 기대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라인의 부분에서는 그런 지도력으로는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거기에는 헌신과 메시지의 능력, 겸손 등과 같은 요소들이 필요한 것이지요. 결국에는 모든 스텝이 라인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요. 목회자에게는 이런 두 가지 모습에 있어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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