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롬 10:11-13)

  • 월평 월평
  • 2686
  • 0

첨부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롬 10:11-13) - 021006 피영민 -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합니다. 제가 중국의 용정으로 선교여행을 간적이 있습니다. 그 용정이라는 마을에는 일제시대의 저항시인 '윤동주'님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분은 29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후쿠오까 감옥에서 타계하셨지만,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라는 시집이 출간이 되어 있습니다. 그 시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차있습니다. 그분의 시는 현대인들에게 하늘과 바람과 별에 투영된 가슴깊은 그리움으로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분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썼습니다.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 없기를 위해 고민하던 그의 모습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소중함입니다.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멸망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불의함에 타협하면 세상의 법정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하물며 이 땅을 사는 성도가 불의하여 하늘의 법정에서 죄가 드러난다면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1. 문제의 해답은 성경에서 그 해답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11절에 '성경에 이르되...'라는 말씀으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약 성서를 14권이나 저술한 영감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만으로도 권위가 부여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약성경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신약성경의 진리를 앞세웁니다. 그것은 성경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28:16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나니 ....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재해석해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 가장 논란이 많은 것이 '성경론'입니다. 19세기부터 역사비평, 고등비평이 대두되어서 많은 신학자들이 성서의 권위를 크게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그들은 고대 근동에 존재하는 신화와 설화들이 성서에도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연구가 학문적인 질은 높였지만, 성서의 권위는 크게 낮추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권위가 떨어지면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의지할 반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고등비평의 모든 논리는 뿌리와 근거가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판합니다. 서로에게도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성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J. E. D. P문서를 사용하여 성서를 짜깁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학설과 주장이 성서의 신뢰를 무너뜨리면 어떻게 성서 속에서 인생의 문제와 해답을 찾아내고,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의 권위를 확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주의 말씀이요, 주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확신해야 합니다. 2.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삶 롬10:11절에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인용된 사28:16절에는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견고한 기초 돌이 누구입니까?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위에 인생을 건설하는 자는 하나님의 부유함을 체험하게 되며, 그 인생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저를 믿는 자는'이라는 말씀을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believe on him' 라고 기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인생을 건설하는 것이 '그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 위에 인생을 건설하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끄러움을 당하다는 헬라어로 모욕, 실망입니다. 첫 번째로 사28:16절을 한글 개역 성경은 '급절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갑작스럽게 그 인생이 고꾸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인생이고, 또 하나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인생입니다. (마7:24-27) 반석 위에 집을 지으려는 사람은 기초만을 세우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은 금방 1층, 2층, 3층 지어갑니다. 아마 반석 위에 세우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이라, 고지식한 사람이라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갑자기 위에서 비가 내리고, 옆에서는 바람이 몰아닥치고, 아래에서는 창수가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아무리 좋은 건축자재를 쓴다해도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지은 집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기초가 든든한 집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급절하지 않는다'는 뜻을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shall not make haste', '급해서 허둥대지 않는다'는 의미로 표현합니다. 미국인들은 인생을 세 단어로 표현합니다. 'hurry, worry and bury' 허둥지둥하며, 근심하며 살다가 땅파고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인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 위에 삶을 건설한 사람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무덤에 들어간다 해도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마십시오. 서두르는 인생은 실패합니다. 예수 위에 삶을 건설한 사람은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않습니다. 세번째로 '급절하지 않는다'는 뜻을 NIV 성경은 'will never be dismayed', '실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만약 마지막 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백성 삼아주신다고 했지요, 제가 예수님 믿으며 살다가 이제 왔습니다. 천국으로 들여보내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이 야! 농담도 못하냐?라고 했다면 얼마나 큰 실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재산이 100억이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목(후두)암에 걸려서 라면도 드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돈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돈에 속았습니다. 권력도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위에 건설한 인생은 급절하지도, 허둥대지도, 실망하지도, 부끄러움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입술로 부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겉으로는 믿는 자처럼 행동하지만, 그 속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라는 것이 믿겨지십니까? 이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사실을 분명히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구체적인 삶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진정한 예배의 삶'입니다. 창12:8절에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삶은 예배하는 삶입니다.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사람은 그 인생에 급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배의 삶입니다.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삶이 성공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자에게 형통하는 복이 있습니다. 예배의식을 통해 예배를 드리고, 삶을 통해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통해 수시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삶'입니다. 왕상18:24절에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모두가 바알을 부를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삶입니다. 기도하는 삶과 부끄러움을 당하는 삶은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수렁 가운데 있다 해도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세 번째는 '죄를 회개하는 삶'입니다. 행22:16절에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아나니아는 예수님을 만나 눈이 먼 사울을 향해 말합니다. 이 말씀을 NIV 성경은 And now what are you waiting for? Get up, be baptized and wash your sins away, calling on his name.,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너는 세례를 받으라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불러서 너의 죄를 씻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든 죄를 짖고 살아갑니다.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의 보혈로 씻음 받고 깨끗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깨끗이 씻음 받은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는 '참된 믿음의 삶'입니다. 롬10:14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믿음의 삶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예배의 삶을 살고, 기도할 수 있고, 회개하는 자가 되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 네 가지의 삶의 원리로 사는 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한마음교회 성도들은 모두 진정한 예배와, 기도와, 나를 돌아보아 돌이키는 회개와, 참된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