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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왜 예수를 믿게 되는가? - 손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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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예수를 믿게 되는가?

딤후 1:3~14(12)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그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가 과거와 현재에 있어 그 원인을 들어 본다면 다섯가지를 생각 할 수가 있다.



1. 구원을 받게 된 까닭이다.

내가 믿게 된고로 구원을 받았느냐 구원 받았으니 믿게 되느냐 생각해 볼 때에 바울도 만세 전부터 택함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나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구원을 받게 되었으므로 믿는 것이다. 그런고로 내 신앙은 완전하고 내 구원도 틀림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믿게 해 주심으로 믿는 내가 된 까닭이다. 내 구원은 자동적이 아니라 타동적이다. 믿는 것보다 구원 받을 일이 앞선 것이다. 그러니 구원을 받게 된자가 구원해 주신 이를 향하여 어찌 믿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요 자위적(自爲的)인 것도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 구원을 아니 믿을 수 없어서 믿는 생활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은 누구 누구의 눈을 보아서나 체면을 보기 위해서 믿는 생활이 아닌것이다.구원해 주신이에게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나타내서 영광을 돌리는 생활인 것이다.



2. 내 영혼의 존재를 특인 (特認)케 되는 까닭이다.

내가 나의 영혼을 시인(是認)하게 된다면 하나님을 아니 공경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육체의 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영혼을 시인하게 되는 나로서는 천부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영혼은 부모를 통하여 내려 온 것이 아님이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철학자는 '철학이란 회의(懷疑)에서 시작된고로 모든것을 의심한다. 그러나 영혼이 존재한 것은 부인 할수가 없다'고 했다.비단 철학자 뿐이랴! 과학자들도 영혼만은 인정하는 이가 많다. 영혼 불멸설(靈魂不滅說)이란 이래서 생겼다. 그래서 영혼이 있음을 확신하게 될 때에 천부를 경외하는 것은 나의 본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독자가 된 것이다.



3 세상에 도덕 생활이 있는 까닭이다.

세상에 죄가 있는것 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에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이도 많다. 기차를 타 보면 악한 사람도 있으나 좋은 사람들도 많듯이 세상에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잔인하고 난폭한 행악자들의 반열에 들고 싶지 않고 인도와 정의를 부르짖고 사는 선인 (善人)반열에 살고 싶었다.그래서 참으로 선하고 참으로 의로운 종교인이 되고저 한 것이다. '선은 우주 만물보다 귀하고 의는 지구보다 무겁다''불의는 지옥보다 무섭고 죄는 염병(染病)보다 겁난다'그래서 나는 지선(至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저 한 것이다.



4. 주님의 십자가 지심과 부활케 된 사실 때문이다.

나는 종교적으로 믿지 않고 예수교가 다른 종교에 비교하여 볼 때에 더욱 좋은 특이점이 있어서 믿게 되었다. 내가 믿는것은 종교적 관념에서 믿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 때문에 믿은 것이다. 나의 신앙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다. 꼭 십자가의 사랑 부활의 소망때문에 믿게 된 것이다.

세상 다른 종교에 비해서 기독교에 없는 것이 있기도 하나 다른 종교에 어디서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십자가 상의 대속의 도리와 장사한지 삼일만에 된 부활의 신 기원이다. 중생의 생명은 말 할것도 없고 보혜사 성신의 역사도 없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는 대개가 영생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5 미래의 구원보다도 과거의 신애(神愛)에 감격한 까닭이다.

(나의 신앙의 4단계 이야기)

하나님의 사랑의 조건들을 들면

(1)성부의 사랑 . 예정 해 주신 사랑, 독쟁자 보내주신 사랑, 성신 보내주신 사랑, 성경 주신 사랑

(2)성자의 사랑 : 사람되어 오신 사랑, 인간고를 당하신 사랑,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랑, 부활하사 중생 생명 주신 사랑, 승천하시어서 천당 길 열어 주신 사랑

(3)성신의 사랑 : 내 일생을 보혜사를 통하여 지도해 주신 사랑, 날마다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하시는 사랑, 나의 구원이 완성 될때까지 인내하고 노력해 주시는 사랑

이상 삼위의 사랑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시행되는 것이다. 또한 미래에도 반드시 있을 것이니 나는 이 3위의 사랑을 깨달은 자에 합당한 사랑의 종이되겠다. 이런 사랑을 받고 어찌 배은망덕(背恩亡德)하는 불신의 생활을 할 수 있으랴! 즉 내가 하는 신앙 생활은 미래에 있을 복보다도 과거에 이미 받은 3위에 사랑에 감격해서 사랑의 종이 되고저 함에 있다. 내가 범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나의 당하는 수치나 육이나 지옥에 들어가는 벌 때문보담도 3위에 큰 사랑을 깨달은 까닭이다.



ㅁ결 론

내가 신학교에 있을때 사도행전 4:12를 공부하는데 어떤이가 이런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즉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른 종교에도 각각 제 종교마다 났다고 하는 이론이 있으니 어떻게 그 진위 (眞僞)와 시비(是非)를 판단하지요? 하였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는 다른 종교 도리에 대한 이론이나 설명이 있기는 하나 행 4:12처럼 명백하게 설명한 어구는 없는 줄 안다. 또 혹 있다고 가정한대도 신자의 체험에 확신이 있으니 의심할 염려가 없는 줄 안다.

기독교는 성신의 종교이니 사람의 지능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신이 주장이시니 염려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택함받아 구원받은 자라면 다른 설에 절대로 등을 대지 않으니 안심된다.

다만 내가 주님의 참 양이 되었느냐 만이 문제인 것이다. 양은 제 주인의 소리만 구별할줄을 알면 되는것이다. '오! 주여 오직 당신만 따르고저 하는 만세 반석 같은 불변의 신앙을 주시옵소서' 할 뿐이다.

불신 생활의 허망함이여! 인생과 만물의 과거 기원이 애매하니 그 적막한것 말할 수 없겠고 인생의 현재 생활에 의뢰하고 신탁(信托)할만한 곳이 없으니 진정한 위안을 받을 길이 없지 않은가? 또한 인생의 장래의 소망과 목적하는 곳이 없이 살게 되니 무슨 참다운 기쁨이 있겠는가?

그러나 참다운 종교에 나아온 사람의 큰 복이여! 금세의안심 내세의 영생은 그의 소유가 된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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