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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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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4:13 ,히11:33)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히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36회 총회 주최로 거행한 고(故) 최봉석 목사, 고(故) 주기철 목사 순교 추도예배 설교, 손양원 설교)



1944년 4월 31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날입니다. 내가 청주 옥중에 있을 때에 아버님에게서 암호(暗號)편지가 왔습니다‥‥(전략)여숙(汝叔) 최 권능씨는 4월 19일 본 고향 가고, 여형(汝兄) 주기(朱基)는 4월 21오후 9시에 본 고향 갔다‥‥‥운운'한 편지였습니다. 즉, 고(故) 최봉석 목사님과 고(故) 주기철 목사님의 별세하신 내용의 암호 편지 였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부모나 자녀가 별세했다는 소식보다 더 슬퍼서 30일 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애곡하였습니다. (손 목사님의 편지 참조) 곁의 사람들이 '친구를 이같이 사랑하는가?' 하였지만 나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우리 조선 교회를 생각한 것이였습니다. 그들을 추모하는 이 밤 새삼스럽게 내맘이 뜨거워집니다.

계시록 14:13에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있도다'하였으니 그 자취와 그 피 떨어진 이 강산이 복되고 소망이 많다. 내가 이 지구를 바라보니 큰 무덤과 같이 보인다. 과거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은 무덤이 이 지구 속에 묻혔다. 세계 통계상으로 보면 1초 동안에 한 사람 반씩 죽는다하니 인간 육천년 동안에 묻힌 무덤은 얼마나 많으랴! 나도 죽어서 땅 속에 묻힌 해골들에게 물을 수있다면 즉 너희들은 무엇하다가 죽었는가'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러가지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나는 복통으로 죽었소, 혹은 '나는 두통으로' '나는 전쟁으로' 하겠지만 순교자 스데반의 뒤를 이은 최봉석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우리는 예수를 위하여 피 흘리고 왔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이밤에 그들의 뒤를 이을 준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살고 죽는 목적은 천태 만상이겠지만 이들을 종합하면 다섯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극단의 이기주의 자는 그 일생 동안 자기 평강만 위하여 살다가 죽었으니 죽는 그 날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소위 개죽음입니다.

②윤정(倫情)을 위하여 죽는자이니 부모를 위하여 효성을 다 하였으면 죽은 후에 효자비가 남겠고 남편을 위하였으면 열녀(烈女)라는 이름을 얻겠으며, 자녀만 위하여 수고하였다면 노경(老境)에 좀 평안할것 뿐입니다.

③나라를 위하여 죽는 자이니, 충신이되여 국사(國史)에 이름이 남아, 자손 만대에 그 이름이 전해 지겠습니다.

④인류 도덕을 위해서 죽는자이니 공자나 석가같은 도덕가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인도(人道)를 위하여 살다가 죽었으니, 인간 역사가 있는 동안에는 그 이름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 모든것은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은 종이(紙)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옮겨 갈 때가 올 때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⑤ 예수님을 위하여 일생을 눈물과 피를 흘리다가 죽는자 입니다. 이제까지 순서대로 말한①에서 ④까지는 영생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공산주의 인도주의 무슨주의 하지만 그 결국의 소득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살다가 죽을 바에는 무엇을 위하여 살다가 죽을까요. 성경에 '행한일이 따름이다' 고 하였으니 주의 일을 하여 이 세상을 떠날때에 주께로 갈 것입니다. 뒷집 박서방집에서 일하고 앞집 이서방집에서 밥 먹으려는 사람이 맞겠습니까? 죽을판 살판 자기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일하고 죽은후에 천당에 갈 수 있겠습니까? 주의 일을 하여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농공상(士農工商)간에 무슨 직업이던지 직업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중심의 문제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여 유창(流暢)하게 설교하며 밤낮 기도한다고 해도 이기주의에서 하였으면 이땅 위에서는 칭찬을 받을지언정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주를 위하여 사는 생활입니다.

경남 울산에 어떤 할머니가 부흥회에 가서 성신을 받았다고하며 며느리(子婦)가 '아이를 좀 봐 주시오‘하니 ’나는 성신 받았는데 아이 보겠는가?'하였답니다. 이는 큰 잘못입니다. 성신 받고 아이보고, 성신받고 불 때고, 성신 받고 밭 갈고, 성신받고 교육하고, 성신받고 정치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가 많지만 그 중심을 우리는 모르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곧 주를 위해 죽는자 입니다. 일본 구세군 중장 산실군평(山室軍平)선생이 어릴 때에 어머니와 사별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죽으면서 말을 못하고 붓을 들어 유서를 쓰기를 '하나님 제일이다'라고 유언을 하였는데 이 교훈을 받아서 주께 헌신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생활을 검토해봅시다. 나를 중심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있는가. 자기를 위하여 사는것 같이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옛날 수영수사(水營守使)가 기독교를 박해 할 때에 독실히 믿는 부자(父子)가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내일은 우리가 죽임을 당할 것인데 어찌하려는가? 하니 '나도 어버지를 따라 죽지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이틀날 부자가 다 사형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얘야 마음을 굳게 하여 변치말고 따라오너라'하니 '네' 하는 대답은 했으나 그 소리는 적어졌답니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순교하는 것을 본 아들은 두려운 마음이 생기며 또 꾀가 생겨서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늙었으니 주를 위해 죽는것도 좋지만 나는 아직 어리니 더 살다가 죽는 것이 좋겠다' 해서 그 자리에서 배교(肯敎)하고 놓여 나왔답니다. 그런데 그는 나온지 29일 만에 병들어 죽고 말았답니다. 밥 90그롯 더 소비한것 뿐이였습니다.

제일 좋은 죽음은 주를 위하여 죽는 죽음이니 한없이 복됩니다. 나는 이제 살기를 도모하기보다 어떻게 하여야 주를 위해 잘 죽을까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스데반 이후 많은 순교자들이 옥에 갇히기도하고 칼에 베이기도(斷)하며 톱에 켜이기도하고 불에 살리우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일제 말기(日帝未期)에 최목사님을 위시하여 50여명의 순교자가 났습니다. 나는 오늘밤에 어떤 조직적 설교를 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도 그들이 흘린 땀 쏟은 피의 길을 가자고 하는것 뿐입니다. 최목사님의 외치던 '예수! 천당!'하는 음성이 내 귀에 쟁쟁합니다.

'주여 이 소리가 이땅에서 끊어졌나이다. 나도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할 뿐입니다. 그들의 흘린 땀 흘린 피는 이땅위에 있습니다. 그들이 누은 곳이 피땀을 흘리다가 마지막 피 뿌린 곳이 아닌가요! 나도 피 한가지만 흘리면 다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산천리 금수 강산에 편히 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으나 그 땀 그 피는 아직도 역사(役事)하고 있습니다. 주목사님 최목사님의 피의 설교가 이 밤에 여러분의 귀에 들리기를 바랍니다. 제가 전도사때에 주목사님께서 '손조사 큰일났다!' 하시고 울면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던 그 모습이 내 눈에 환합니다. 우리 주목사님 이 밤에도 주님의 반열에 서서 우리 총회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함이 내 눈에 환한 것같습니다. 이밤을 기하여 우리도 이 순교자들의 피의 설교를 듣고 따릅시다. 나사로를 배척하던 부자의 요청은 아브라함이 듣지 않았지만 우리 주목사님 최 목사님의 기도는 응답이 될 터이니 우리는 총회가 난관에 봉착하였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피의 호소는 반드시 이룹니다. 스데반의 피의 설교는 이밤까지 계속되어 있어서 어떤 이론적 설교보다 강합니다. 그 설교를 인하여 바울의 심정을 깨뜨렸고 유대주의적 기독교는 세계적 기독교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최 목사님과 주 목사님의 피에 따라 순교의 정신을 가집시다.

순교한 스데반이나 야고보 같은 이들이 귀하지만 순교 정신 가졌던 백발의 요한 사도도 귀하였습니다. 깨끗한 죽음 귀한 죽음으로 죽으려면 평소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생활이 따라야 합니다. 주께서 ‘다 이루었다' 는 한마디 하시기 위하여 3년간의 준비가 있었던 것입니다. 잘 죽고 싶으냐? 생활을 잘 하십시요. 주목사님은 평소에 '내가 아무래도 이 문제로 죽을 수 밖에 없다' 하시면서 순교의 각오를 하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순교자가 되어지는 법이 아닙니다. 잘 준비해야 되는 법 입니다. 앞서간 순교자들이 우리를 보고 있으니 말만하지 말고 실천에 옮깁시다. 먹고 마시는 것을 주를 위해서 하고, 나나 다른 인간을 높이기 위해서 하지 맙시다. 주만 높이다가 죽는 자가 됩시다. 말씀하시기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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