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시간을 넘어 영원으로

첨부 1


- 이윤재 목사(별세목회연구원장, 분당 한신교회 담임)

성경의 세계는 곧 시간의 세계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최후에’ 하나님의 역사는 끝맺어지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 안에 살도록 태어나 시간을 뛰어 넘어 사는 복을 받았습니다. 시간은 현실의 한계이며 또한 영원으로 난 문입니다.

미국의 어느 공장에 도둑이 들어와 시계를 훔쳐갔습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직원이 경찰에 이렇게 전화했습니다. “오늘 새벽 도둑이 들어와 우리 시간을 훔쳐 갔습니다.” 직원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시계를 시간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의 말이 옳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시계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간 속에 살 수 밖에 없다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경은 시간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시간을 계수하라(count the time). 시90:12절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왜 성경은 시간을 계산하라고 가르칩니까? 우리가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90:4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한 사람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에게는 천년이 하루라면서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렇다면 인간의 천억이 하나님에게는 1원이겠네요.”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렇다면 하나님, 저에게 1원만 주세요.”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만 기다려라.” 하나님에게 시간은 하루가 천년이요 천년이 하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짧은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둘째, 시간을 아끼라(save the time). 신33:25절입니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의 용량은 같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시간의 용량을 늘려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질량을 늘려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생산품이 아니라 소모품입니다. 시간은 점점 줄어듭니다. 줄어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수록 우리의 생명이 그만큼 단축됩니다. 우리가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전12:1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

셋째, 시간을 사라(redeem the time). 엡5:15-16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을 영어 성경은 “redeem the time”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직역하면 “시간을 구속하라”라는 말입니다. ‘구속’이란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돈주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영원한 현재(eternal now)’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나자 죽음이 왔습니다. 죽음은 시간의 종착역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 잃어버린 시간을 사려고 시간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분은 친히 죽음에 팔려버린 시간을 자기 몸으로 사서 시간을 해방하셨습니다. 이 시간의 해방이 곧 영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최고 진리는 이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영원을 사게 되고, 예수님은 시간을 해방하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영원을 사는 행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