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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시 24:4)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제가 임종이나 장례 예식 때 주로 들려주는 말씀은 오늘 읽은 시편 23편입니다. 특히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말씀이 감동이 됩니다. 아마 지금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사람, 이미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 낯선 길을 홀로 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그것처럼 큰 위로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시편 23편을 암송하고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이 말씀을 새겨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만약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기억이 지워지면서 우리 무의식에 소리들이 올라올 터인데 그때 나는 어떤 소리를 하고 있을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노년에 치매에 걸리셨는데 이분이 자꾸 욕을 하더랍니다. 만약 그 무의식의 순간에 시편 23편이 내 입에서 낭송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또 가족들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시편 23편을 들려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들이 정신을 잃는 그 순간에도, 마치 몸은 죽었지만 동물의 근육신경은 살아서 꿈틀대듯이, 우리 입술이 시편23편을 낭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이라는 그야말로 절박한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이 말씀이 우리 영혼에서 흘러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어에서 말씀을 묵상한다는 말은 말씀을 암송해서 읊조린다는 뜻입니다. 시편 1편 2절에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에서 ‘묵상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가’인데 이 단어는 비둘기가 구구하는 소리,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소리, 사람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주야로 묵상하려면 암송해야 하고 그런 후 마치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이 말씀을 읊조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암송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십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인데 이 분이 독일에서 유학하실 때의 일입니다. 자기를 가르치던 어느 노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 분은 10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갖춘 분이셨다고 합니다. 특히 이 교수님은 자주 시편 23편을 히브리어 운율에 맞추어 암송하시곤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히브리어를 잘하시냐고 물으니 그분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을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노 교수님은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룸메이트가 유태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항상 시편 23편을 암송하고 다녔는데 시편 23편을 암송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교수님도 그 친구를 따라서 시편 23편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한 유태인 탄압이 거세졌고 이 유태인 친구 또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현장에 갔는데 트럭에 올라타면서도 이 친구는 시편 23편을 암송하더랍니다. 그중 특히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구절은 함께 히브리어로 낭송했다고 합니다.

이 교수님 또한 전쟁이 치열해지자 독일군으로 징집되었습니다. 그러다 한 전투에서 잡혀서 연합군에 끌려갔고 즉결 재판을 받고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이 유태인 친구가 생각나서 자기도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낭송하고 죽으려고 잠깐의 시간을 요청했습니다. 그 교수님은 자기를 겨눈 총구를 바라보며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시편 23편을 낭송하였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구절을 낭송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연합군 러시아 장교가 그 나머지 부분을 따라서 히브리어로 낭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장교 또한 유태인이었던 것입니다. 함께 23편을 낭송하고는 그 장교가 교수님을 즉석에서 풀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비록 악마의 제복을 입고 있다 해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목자들은 양 떼를 몰고 주기적으로 대이동을 하곤 합니다.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싱싱한 꼴을 양들에게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높은 산등성이에는 영양가 있고 여린 풀들이 많습니다. 이 싱싱한 꼴을 찾아서 대이동을 합니다. 겨울이 다가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는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서 내려오게 되는데 때론 험한 산을 넘기도 합니다. 그때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곳이 오늘 말씀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한 깊은 골짜기입니다. 

등산을 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골짜기를 거쳐 오르는 길이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입니다. 또 골짜기에는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동 중에 지친 양떼들이 언제든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들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힘든 곳입니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음침한 곳에서 늑대나 사나운 짐승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길이 험하고 자칫 잘못하면 절벽과 같은 곳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푸른 초장에만 있으면 행복하고 좋을 것 같은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실직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울 때,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건강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죄나 실수로 감옥에 갇혔을 때,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거나 사별을 했을 때,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을 때 이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처럼 보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는 힘이 듭니다. 위험도 위험이지만 끝도 없이 골짜기는 계속되고, 또 울창한 숲으로 인하여 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 등산을 하다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습니다. 설악산 정상에 올랐다가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과정에서 그랬습니다. 젊은 치기에 하루만에 정상 정복이 가능하다며 오만했던 것입니다. 오색약수 쪽으로 대청봉을 오를 때까지는 가능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산 길에 무릎이 이상이 오기 시작했고, 그 아픈 무릎을 끌고 오는데 천불동 계곡은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비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어두워져 가는데 두려움이 털컥 일었습니다.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 어둠 속을 혼자서 해매며 나가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공포스러웠습니다. 혼자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본모습입니다. 인생의 골짜기도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힘이 듭니다. 그때 어둠 속을 같이 헤쳐 갈 동료라도 있었으면 덜 힘들 것입니다. 또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스럽게 만듭니다. 얼마쯤 더 가야 이 어둠의 끝에 이를지 알 수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이 힘들고 될 수 있으면 피해가고 싶은 길이지만 한 가지 우리가 공통적으로 깨닫는 바는 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농도 깊은 삶의 때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푸른 초장에 누워 그때를 두고두고 회상하며 오히려 즐거워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철이 들고, 인생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깨달았고, 또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면 다른 길이 아닌 바로 이 아픔과 고난의 골짜기를 통해서입니다. 유명한 목회자나 부흥사들의 설교에서, 또 일류 강사들의 연설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자기가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의 간증들입니다. 

이게 없으면 강의나 설교가 힘이 없습니다. 수백 번을 해도 질리지 않으며 듣는 사람들도 공감하며 듣습니다. 대표적으로 활빈교회 목회를 하셨던 김진홍 목사님 같습니다. 청계촌 쪽방 촌에서 힘들게 목회하던 시절의 경험과 긴급조치로 감옥에 갔던 3, 40년 전의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방송을 들으니 제가 몇 번째 들었던 내용을 또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의 경험을 평생 우려먹고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지 않았더라면 어쩔 번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랍인들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이 있습니다. “사시사철 햇볕만 내리 쬐면 사막이 된다.” 우리 인생에 푸른 초장만 있지 않고 이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좀 더 성숙해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인생이라는 것의 깊이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 깊이를 알기 위해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발을 들여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망의 골짜기와 같은 곳을 지나는 분이 있다면 그 때문에 절망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놀라운 선물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목적지는 골짜기가 아닙니다. 골짜기는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골짜기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입니다. 언젠가 정상에 있는 푸른 초장에 누워 골짜기를 지나던 때를 아름답게 추억할 날이 속히 올 것입니다. 인생 골짜기의 경험이 우리 인생에서 깊은 맛을 우려낼 것입니다.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골짜기를 혼자 지나가는 것은 힘이 듭니다. 옆에 동료나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덜 힘이 들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 실험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고통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 차가운 얼음에 발을 담그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한 번은 텅 빈 강의실에 홀로 두고 측정을 하였고, 다른 한 번은 곁에 친한 동료들을 두고 측정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곁에 동료들이 함께 있을 때 두 배 정도 고통을 더 견딜 수 있더랍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퀴즈 문제인데 먼 길을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야 한다, 고속 철도를 타야 한다, 자동차로 가야 한다며 이런 저런 답들을 내었습니다. 그 대답들 중 정답으로 선택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였습니다. 여러분 연애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은 멀어도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좋습니다. 부부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곁에 끝까지 남아 있을 사람은 여러분의 배우자뿐입니다. 건강을 잃고 나면 아마 그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하루 종일 내 옆을 지키며 시중을 들어줍니다. 오랜 병에 아무도 찾지 않지만 부부만은 그 순간에도 함께 있습니다. 함께 있으면 우리는 어떤 아픔도 이길 수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과 소중함은 사실 이런 아픔을 통해서 더 깊어지고 절실해집니다. 

전우애란 것도 있습니다.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도 모르는 곳에서 생기는 것이 바로 이 전우애입니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함께 한다는 기쁨을 모릅니다. 어느 전쟁터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적의 치열한 공격으로 전선을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정신없이 후퇴하다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보니 자기와 가장 절친한 전우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퇴각하다 심한 부상을 당했든지 죽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병사는 상관에게 호소했습니다. “제 친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서 그 친구를 데려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할 수 없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 때문에 또 한 병사의 목숨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다.”며 장교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진으로 달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명적인 중상을 자신도 입은 채 친구의 시신을 메고 돌아왔습니다. 

그 광경을 본 장교가 몹시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죽었을 거라고 했잖아. 난 이제 너희들 둘 다를 잃게 되었다. 그래, 시체 하나를 메고 오기 위해 거기까지 가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 그러자 중상을 입고 죽어가는 사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이 친구는 아직 숨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자네가 올 줄 알고 있었네.’” 

역설적으로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을 함께 겪지 않으면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조강지처(糟糠之妻)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게미와 쌀겨를 먹던 가난한 시절의 아내를 말합니다. 조강지처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부장적 배경에서 나온 이 고사성어는 이젠 옛말이 되었지만 중요한 진실을 여전히 담고 있습니다. 함께 고생할 때 정이 들고 그렇게 정이 든 사람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부러 그 사망의 골짜기로 인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푸른 초장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하던 양들도 사망의 골짜기에서만은 목자 곁에 바짝 붙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해 보았던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쩌면 우리와 깊게 사귀기 위하여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의 답이 바로 다음에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어리석고 두려워서 곁에 목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목자는 결코 자기 양을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함께 한다고 하여도 일부분일 뿐입니다.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는 올 수 없고, 또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에는 어찌 할 수 없습니다. 그 깊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동료가 있어 덜 외로울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 고난은 홀로 견뎌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고독의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만났던 곳은 바로 그 깊은 곳에서였습니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욘2:5-7) 골짜기를 빠져나오는데 급급하여 하나님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는 골짜기를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놓친다면 우리가 골짜기를 지나온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우리 의지적으로 찾으려고 한다고 하여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사망의 골짜기에서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것은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고 곧 나를 편안하게 하고 안심시킨다고 고백합니다. 목자가 가진 막대기는 그냥 막대기가 아닙니다. 막대기 끝에는 쇠심이 박혀 있거나 뭉툭하게 만든 무기의 일종입니다. 그것으로 사나운 짐승들을 때려잡기도 하고 던져서 물리칩니다. 다윗은 여기에 더하여 물맷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을 넘어뜨렸던 물맷돌 한 방이면 사나운 곰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목자에게는 또한 지팡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이 지팡이는 무기라기보다는 양들을 보호하는 도구입니다. 지팡이 끝은 구부러져 있어 양들을 걸어 올리기 좋습니다. 양들은 꼴을 찾아 절벽 가에도 갔다가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 덤불숲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 때 양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이 지팡이입니다. 곁길로 갈 때는 지팡이로 옆구리를 쳐서 대열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합니다. 지팡이는 양들을 구원하고 이끄는 사랑의 도구입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시2:9)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4:7)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쥐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무기를 사용하여 나아가면 우리 앞에 당한 원수들과 문제들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했던 곳은 다름 아닌 광야에서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는 반석에서 샘물이 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원수들을 질그릇같이 부수어뜨리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무능력하여 하나님만 바랄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하나님은 그의 능력을 아낌없이 드러내십니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대하14:11)

여기 사망의 골짜기라 하지 않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한 것에 주목하십시오. 원뜻은 사망의 그림자의 골짜기입니다. 죽을 곳이 아닙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위협하는 곳입니다. 그림자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개의 그림자는 물 수 없습니다. 칼의 그림자는 우리를 벨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이유는 실제 위험이 닥쳐서가 아니라 그림자를 보고 놀라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 안의 사자처럼 우리를 소리로만 위협하지 우리에게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에 놀라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말씀은 히브리서 10장 13절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할 만한 시험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우리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면 그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니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겨낼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님을 의지함으로 그곳에서 깊은 은혜를 경험하며, 또 그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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