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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이 오는 순서 (신 2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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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오는 순서 (신 28:1-14)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행함으로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 받고 축복 받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잘 믿어야 하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신자들은 잘 믿는 데는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잘 사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복을 못 받는 것입니다. 잘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믿어야 잘 믿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까? 잘 믿는 것은 성경대로 믿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은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이고, 성경의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톨스토이는 “역사상 위대한 영웅들과 위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진정한 거인은 아브라함 링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링컨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링컨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자로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링컨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링컨의 사람 보는 눈은 남달랐습니다. 링컨 대통령에게 한 장관이 어떤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각하, 이 사람은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마음에 들면 장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링컨 대통령이 그 사람의 사진을 보더니 얼굴이 잘못 생겨서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장관이 말했습니다. “각하, 이 사람이 이렇게 생긴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아니오. 이 사람의 얼굴을 보니, 이 사람은 성경 한 절도 읽지 않은 것 같소.” 링컨 대통령이 그 사람의 생김새나 피부를 본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을 사람인가 아닌가를 봤던 것입니다. 성경의 사람이 잘 믿고 잘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잘 사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신 28:1-14에는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복을 저도 받고 여러분도 받기를 원합니다. 이런 복을 받아 누린다면 정말 신나는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1절에 보니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복입니다. 3,6절에서는 어디서든지 받는 복입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 4, 11절에서는 자녀와 토지소산과 심지어 기르는 짐승에게도 임하는 복입니다. 5절에 보니 양식을 풍족하게 주시는 복입니다. 7절에서는 대적에게 승리하는 복입니다. 8절에 보니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임하는 복입니다. 9절에 보니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성민이 되는 복입니다. 10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두려워할만한 복입니다. 12절에 보니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때에 맞는 은혜를 주시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잘되게 하시며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복입니다. 13절에 보니 머리가 되는 복, 높임을 받는 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서 이 모든 복을 받아 누리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아직 기독교인들이 환난을 당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헌신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환난 시대를 대비해서 믿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우리가 성경적으로만 살면 성경에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일산의 어느 집사님은 한국과 일본과 홍콩 등의 공항에서 명품 숍을 하는데 주중에는 세계를 다니며 주일에는 꼭 본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답니다. 그리고 매주 십일조가 400만원, 매주 건축헌금을 1천만 원씩 한답니다. 저는 우리교회에서 이런 분들도 나오고 이분보다 더 물질의 복을 받은 분도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복이 오는 순서]입니다. 본문에서 약속한 복을 받는 순서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이 순서를 따라 살므로 본문에서 약속한 복을 받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1. 말씀듣기 
   
설교듣기, 성경읽기 그리고 성령님의 음성 듣기입니다. 1절에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 복사본이 없었기 때문에 지도자가 읽고 성도들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듣기는 설교듣기와 성경읽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성령의 음성듣기가 더해져야 합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일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성령님께서 믿는 사람들 속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먼저 말씀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현실을 변화시키시기 전에 먼저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도 말씀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말씀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창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먼저 말씀하시면 그 후에 말씀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임하고 어둠이 물러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하니 말씀이 그대로 된 것입니다. 말씀이 임하자 물리적인 세계 즉 현실세계가 변화된 것입니다.
   
창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을 만드실 때에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받고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고 결국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말씀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눅 5장에 보면 주님이 베드로를 사도로 부르실 때에도 먼저 말씀을 주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그 말씀을 받고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인 것과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을 깨닫고 예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임하자 베드로가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먼저 말씀을 보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 인하여 내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롬 10:17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제 목회 경험에 비춰볼 때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하고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무리 강퍅한 사람도 말씀을 잘 들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반대로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에 생기가 부족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시들은 식물과 같고 병든 닭과 같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아서 영적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를 해도 응답을 못 받습니다. 잠 28:9을 보면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하나님은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의 기도를 가증하게 보십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응답이 빠른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영적인 힘이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벧전 2:2에 보면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아기가 젖을 먹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젖을 먹지 못한 아프리카 아기들 보면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파리가 코로 입으로 들어가는데도 쫓을 힘이 없어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TV에서 종종 보지 않습니까? 몸은 깡마르고 배는 부어서 툭 튀어나왔고 눈은 초점이 없습니다. 먹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엄마가 양식을 먹지 못하니 젖이 나오질 않고 젖이 나오질 않으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도 동일합니다.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영적으로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집중해서 듣기를 바랍니다. 1절에서 ‘삼가 듣고’라고 말씀했는데 그 말씀의 뜻은 ‘귀담아 듣고’입니다. 집중해서 듣는다는 말입니다.
   
왜 말씀을 귀담아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까? 말씀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기 쉽습니다. 책을 읽을 때 잡생각을 하면 눈은 글을 읽고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설교도 똑같습니다.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레마라고 하는데 삶의 변화를 받으려면 레마를 받아야 합니다. 선포되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어야 순종도 하고 그 음성을 들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려면 레마를 들어야 합니다. 응답을 받으려면 레마를 들어야 합니다. 레마를 듣기 위해서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 앞에서 단판을 봐야 할 문제가 있다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혀있는 죄악은 없는가 살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 막는 것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막힌 것을 제거하십시오. 그리고 난 후에 여러분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찾아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찾든지, 설교말씀에서 찾든지, 성령의 음성을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 속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갈등하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갈등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은 영과 육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지만 육은 원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육신의 소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육신의 소욕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두 영의 역사 때문에 갈등합니다.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가 충돌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의 충돌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도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아무런 갈등 없이 순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들도 쉬운 순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이제 제법 자라서 청년 티가 날 때쯤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산에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기록된 창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갈등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찌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입장이라면 갈등하지 않겠습니까?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것도 번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아무리 부활을 믿어도 번제물로 드려지려면 아들이 죽어야 하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번제는 제물을 죽여서 각을 뜨고 불살라드리는 제사입니다. 아브라함도 인간인데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거나 하나님의 뜻이 알아질 때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갈등의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롬 7장에서 자신 속에 있는 갈동과 싸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롬 7:22-24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 같이 위대한 사도도 자신 속에 있는 죄의 법과 싸워야 하는 갈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갈등의 과정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입니다. 힘들지만 순종을 선택하면 복이 되는 것이고 불순종을 선택하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영종도 포도원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박병철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교회에 돈을 아주 많이 버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교복 장사를 하는데 교복 철이 되면 몇 억을 벌어서 몇 천만 원씩 십일조를 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하기 때문에 목사님은 이분을 많이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시험이 들어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쯤 방황하다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교회를 다시 나오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때 성령께서 그동안 목사님이 그 집사님을 많이 의지했기 때문에 그 집사님이 그 교회에 나오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그 집사님이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지만 그 집사님에게 다른 교회에 나가라고 말하기가 힘들더랍니다. 쉽지 않았겠죠. 교인이 20명 정도 되는 교회인데 1년에 몇 천만 원 헌금하는 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목사님께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을 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고 저에게 고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쉽지 않는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안에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3. 순종하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등의 과정은 있지만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이 오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약속하시는데 그 약속은 조건부 약속입니다.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입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2절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 모든 복’은 3-14절까지에 나오는 복을 말합니다. 그 모든 복이 임하게 되는데 역시 조건부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이라는 조건입니다. 순종의 조건입니다. 청종이라는 말이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에는 ‘청종’이라고 되어 있지만 개역성경에는 ‘순종’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반대로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15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말씀, 설교 말씀, 성령의 음성, 10계명 등 하나님이 주신 어떤 명령이든지 순종해야 합니다. 불순종하면 이 모든 저주가 임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저주’가 무엇입니까? 

16-68절까지에 나오는 모든 저주입니다. 불순종하면 영적인 저주, 정신적인 저주, 육신적인 저주, 가정의 저주, 자녀의 저주, 생업의 저주, 국가적인 저주 등 온갖 저주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복이 되는데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능력을 처음 경험할 때 그의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배를 가까이 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수 출신이신 주님이 어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부인 베드로가 가진 상식으로는 고기가 잡힐 시간도 아니고 고기가 잡힐 장소도 아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물이 맑아서 날이 밝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고기는 깊은 곳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을 주님의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켰던 것입니다. 그는 순종을 통해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만난 장애물은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은 이중성벽으로 되어 있는 아주 견고한 성입니다. 그 성 앞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6일간 돌고 7일째에는 일곱 번을 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견고한 성을 13번 돈다고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여호수아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놀라운 사실이죠. 더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상식적이지 못하다고 무식한 행동이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들의 생각을 죽이고 주의 종이 받은 응답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모래성이 무너지듯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리고성은 순종으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순종이 능력입니다.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빠져 나왔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해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큰 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사소한 불순종 때문에 그가 소금 기둥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죄도 무겁게 생각해야 합니다. 요일 3:15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아무생각 없이 형제를 미워하는데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 즉 10계명 중에 6계명을 범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고전 10:10에 보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 받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망이라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죄 때문에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원망할 때 보면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원망도 있지만 주의 종인 모세를 원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주의 종을 원망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 일 때문에 멸망을 당했다면 우리가 가볍게 말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이 사실은 영적인 면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고 입만 열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저주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작은 죄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대하 17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왕이었습니다. 대하 17:3에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특별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함께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하 17:4에 보니 “오직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이 하나님이 여호사밧과 함께 하시게 된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알아지면 갈등을 극복하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4. 축복받기 
   
순종, 그 다음 순서가 축복입니다. 앞의 과정을 잘 해놓으면 복을 받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복은 저절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수도시설을 해놓지 않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단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져도,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아무리 인물이 좋아도,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왔어도 단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도시설을 다 해놓고 나서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저절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인물이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지식이 부족해도, 학교를 초등학교도 못나왔어도, 그가 가진 것이 없어도 물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시설을 준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2절의 복이 임한다는 말을 새번역성경에서는 좀 더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너희에게 찾아와서 너희를 따를 것이다.” 복이 찾아옵니다. 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노아는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실 때 구원 받았던 특별한 분입니다. 자기만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세 명의 며느리까지 구원을 얻게 한 복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특별한 복을 받은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목수가 아닙니다. 배를 설계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배수량 20,000톤, 용적톤수가 14,000톤-15,000톤인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방주의 크기는 양을 240마리씩 실을 수 있는 기차 522대 분입니다.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동물이 45,000마리입니다. 

그런데 45,000마리가 들어가도 방주의 3분의 1정도 밖에 차질 않았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그런 거대한 배, 엄청난 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그것도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 하신 대로 순종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대로 그대로 100% 순종했기 때문에 40일간 비가 내려서 홍수가 났는데도 부서지지 않고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는 튼튼한 방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만약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아도 다른 사람들처럼 홍수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노아가 복을 받은 비결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나서 말씀에서 어긋난 것이 있다면 돌이켜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신 28장의 모든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잘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모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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