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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식어버린 믿음을 회복하라 (대하 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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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버린 믿음을 회복하라 (대하 16:7-14)

TV를 통해 마라톤 중계를 보다보면, 출발할 때에 경쾌하게 시작해서 선두를 유지하면서 달리던 선수가 반환점을 돌고 골인지점이 다가오면서 선두를 내어주고 서서히 뒤로 처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처음 출발도 좋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골인점에 먼저 도착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처음에는 용의 머리처럼 거창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나중에는 뱀의 꼬리처럼 흐지부지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봅니다. 이것은 성도의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갈수록 좋아지고, 끝까지 잘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합니다.

이제 올 한해도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매년 이맘때쯤 되면 마음이 분주해지고 또 부담이 됩니다. 년 초에는 이런 저런 계획도 세우고 제법 그럴듯한 결심도 했었는데, 과연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해 봅니다. 뿌듯한 마음이 들면 다행인데 대개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세월을 보냈다는 자책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든지 마무리를 잘하여 보람된 한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신앙의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용두사미 같은 인생을 살았던 남유다의 3대 왕이었던 아사왕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사왕은 역대하 14-16장에 걸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왕위에 오르고 초반에는 정말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이 정말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반에 가서 신앙과 믿음이 변질되더니 결국에는 말년이 비참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사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솔로몬의 아들이 르호보암과 그 아들 아비야는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사왕은 왕위에 오르자 종교를 개혁했고, 조정 안팎의 부정부패를 척결했습니다. 그리고 성을 재건하였으며, 군대를 강화하고 국방을 든든히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제거해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사람들을 풀어 이방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우상을 훼파하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없애버렸습니다. 왕이 직접 동행해서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며,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도록 온 백성에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물론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로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구스의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보신 하나님은 아사왕의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유다 나라를 크게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사왕이 통치하는 동안 나라가 부강하고 태평성대를 누리자 그만 아사왕의 신앙이 식어지기 시작합니다. 

신앙은 무엇인가 이루어졌을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아사왕도 그렇게 여호와만 찾던 신앙이 꺼져버리고, 세상 쾌락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육적인 쾌락을 쫓아 세월을 보낼 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군대를 거느리고 유다에 쳐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국가적인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성전의 금은보화를 다 털어 아람왕 벤하닷에게 지원군을 요청합니다. 이것으로 일시적인 북이스라엘의 위협에서는 벗어낫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난 다음 2년 후에 발에 병이 들어 많은 고생을 하다가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확실한 믿음으로 출발하였던 아사왕이 처음 믿음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사왕의 믿음이 식어버린 이유는 태평세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사왕이 첫 믿음을 저버리고 타락한 이유는 태평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만 이 세상에 취해서 너무 세상만 즐기다가 첫 믿음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늘 축복을 간구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부어주셔서, 평안하고 생활이 부요하게 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평안과 부요를 누리며 잘 살 때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따라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왕이었던 다윗도 어려운 시기가 다 지나고 왕위에 올라 나라가 평안할 때 그만 밧세바를 통하여 간음죄를 짓고, 그 남편 우리아를 모함하여 죽이는 악한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방선지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생명을 건 영적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 엘리야에게 문제가 찾아 왔습니다. 이사벨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고 멀리 광야로 도망하여, 영적인 곤고함으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안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이것이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함정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그러나 평안하고 좋은 환경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다가오는 고난이 그들을 믿음의 길로 되돌아오게 하는 치료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 풍랑과 신앙의 걸림돌이 있을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에게도 간혹 연단과 고난과 괴로움을 허락하시는 것은, 이 연단과 고난과 괴로움을 통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혹여 믿음이 식어지고, 말씀을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 즉시 돌이키시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회복하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사왕처럼 태평세월에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기도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영적으로 죽어버리는 그런 위험 속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평안의 복을 주실 때 더욱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점검하시고 잘 지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신앙과 믿음이 식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아사왕은 신앙이 식어버리자 어려운 문제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처음 아사왕이 왕위에 오를 때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역대하 14:9절 이하에 보시면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백만과 병거 삼백 승을 가지고 남유다를 침공했을 때, 남유다의 군사는 58만 명뿐이었습니다. 수적으로 보나 무기로 보나 남유다는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아사왕은 위기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하 14:11절에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대단한 믿음의 모습입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아사왕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사왕이 엎드려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구스의 백만 대군을 다 진멸하여 주셨습니다. 대하 14:13절에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사왕은 구스의 백만 대군 앞에서도 믿음으로 기도하므로 적군을 완전히 물리치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백만 대군을 물리친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왕이 즉위한지 36년이 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의 왕인 바아사가 남유다를 쳐들어 왔습니다. 

이때에 북이스라엘의 바아사 군대는 과거 구스의 백만 대군에 비하면 훨씬 약함에도 불구하고, 아사왕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하나님께 기도하기는커녕, 곧장 예루살렘 성전으로 뛰어가 성전에 있는 금은보화를 모으고, 또 왕궁으로 돌아와 왕궁에 있는 금은보화들을 다 취하여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어 아람의 군대를 고용했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치게 하였고, 북이스라엘은 아람군대와 싸우느라 남유다의 공격을 포기하게 되었고, 아사왕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아사왕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에 보시면 그가 발에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었으며 결국은 이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이 발명하여 위독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12절에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의원을 복수로 표기한 것은 많은 의원들을 불러서 열심히 치료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의원들은 주술사였습니다. 미신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는 시대였습니다. 그가 의원들에게 치료받은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아사왕이 병이 점점 심해져 죽게 되었는데도, 주술사인 의원들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사왕의 병은 하나님의 진노로 주어진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의원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한 아사왕은 결국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해 죽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사왕은 신앙이 식어버려 어려운 문제를 당하였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지혜와 지식이나 경험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잠 3:5-7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하고, 믿지 않는 사람과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야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명철과 지혜와 지식을 의지하고, 자기 스스로 지혜롭게 결정해서 나갑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판단력과 명철을 가지고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지 말고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그 발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이 다 되셔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잘 지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사왕의 믿음이 식어버리자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종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사왕이 돈을 주고 아람 왕 벤하닷의 군대를 불러들여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아사왕에게 보내 책망합니다. 오늘 읽어 드린 본문 7-9절이 바로 그 내용인데 의역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왕이여! 어떻게 이렇게 망령된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20년 전에 구스의 백만 대군을 당신의 군대가 많아서 이겼습니까? 무기가 좋아서 이겼습니까? 그때 왕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셔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어찌하여 망령되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백성들이 헌금해 올린 금은보화와 왕궁의 금은보화를 취하여, 믿지 않은 이방나라 아람 왕에게 주고 군대를 돈으로 사서 북이스라엘을 치게 해서 이 난국을 모면하려고 합니까? 이 일로 인하여 왕에게 전쟁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때 아사의 태도가 10절에 나오는데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초기에는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으나, 이제는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를 핍박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극에 달한 인간의 교만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한 선지자의 부당한 투옥에 항의하는 백성중의 몇 사람을 학대함으로써 자신의 죄악을 은폐시키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언제나 좋은 것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의사는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들었다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시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은 예리하게 우리 심령에 말씀의 검을 넣어서 찢을 것은 찢고, 수술할 것은 수술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프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말씀에 귀를 막고 등을 돌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사왕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에게 회개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그 기회를 저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선견자가 와서 아사왕을 꾸짖을 때, 아사왕이 만일 밧세바와 간음죄를 짓고 남편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른 다윗처럼 보좌에서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자복하고 “하나님이여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복구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죄를 내어놓고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사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리의 음성 듣기를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고, 교만이 극에 달한 증거입니다. 결국 아사왕은 하나님의 진노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의 종을 통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고의 말씀을 따라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사왕은 한 마디로 신본주의로 시작하였다가 인본주의로 끝나버렸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의 통치 말년에는 하나님보다는 인생을 의지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선지자까지 옥에 가두는 처절하리만큼 실패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종말은 병들어 쓸쓸히 죽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아사처럼 용두사미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승리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흔들림 없이 정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인생을 마쳤습니다. 딤후 4:7-8절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라톤 선수가 완주하듯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최선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인생을 마치면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어떻게 사셨습니까? 어떤 모습이었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올 한해 남은 기간, 그리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용두사미가 아니라 유종의 미를 거두는 신앙생활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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