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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시 119:164)

첨부 1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시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로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 119;164)
온상에서 거목이 자라지 않습니다.
어항에서 고래가 놀지 않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살지 않습니다.
개미 허리에 쌀 자루를 올려 놓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

바이얼린이나 첼로나 기타를 만들 때에 가장 좋은 목재는 1500미터 이상 높은 곳에서 자라난 나무입니다. 모진 비바람과 찬 서리, 싸늘한 눈속에서 자란 나무이기에 소리가 아름답습니다.

어느 학교에 불이 나서 교실이 전소되었습니다. 그런데 타지 않은 기둥 몇 개가 우뚝 불에 그슬려 시커멓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지 않은 채 곳곳이 서 있었습니다. 어떤 기둥인가 알아 보았습니다. 해변가에서 거센 폭풍을 이기면 자란 나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어제 산길을 걸으면서 야생화를 보았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꽃은 무조건 예쁩니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습니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웃는 말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호박꽃도 분명히 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윗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왕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이 다윗왕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단 하나 있는 무덤은 다윗왕의 무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최고의 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에도 거냥 예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다윗을 끌어 같이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다윗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같이 올라갑니다.
나는 김 대중 대통령 아들 김 홍일이와 한 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를 부를 때 꼭 붙어 다니는 이름이 있습니다.
“김 대중 대통령 아들 홍일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자기를 좋아 하니까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까? 내 이름도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다윗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하옵소서.” 그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교만하다.”
그래서 다윗의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성경 뒷 이야기 미드라쉬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다윗의 꽃이 피기까지 다윗은 수없이 많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윗은 어떤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일가요?

형제들의 바람

다윗은 8형제중에 막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을 가지고 이새의 집에 가서 8명 아들 중에 하나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무엘은 기름 병을 들고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들 8명이 모두 양을 치며 들에 있었습니다. 종에게 아들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은 막내 다윗을 무시하였습니다.
“다 가면 누가 양을 치냐? 너는 막내다. 우리 중에 왕을 뽑는다면 너에게까지는 차례가 가지 않는다. 너만 남아서 양을 치거라.” 그래서 다윗이 혼자 양을 지켰습니다.
형들이 다윗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별로 인정받지 못 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면 다윗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은 형제들의 바람속에서 흔들리면 핀 꽃입니다.

윗 사람의 바람

다윗은 사울왕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핀 꽃입니다. 
사울 왕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그 때 장수는 거인인 골리앗이었습니다.누구도 덤비지 못 함으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바람앞에 등불처럼, 뱀앞에 개구리처럼, 고래앞에 새우처럼, 고양이앞에 쥐처럼 숨어 있었습니다.

이 때 감히 17살 밖에 나지 아니한 소년 다윗이 나가서 싸워 이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이 지나갈 때마다 외쳤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다윗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을 보고 죽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다윗은 이리 저리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는 한 뼘 사이라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언제 죽을이지 모르는 생명이었습니다. 먼 훗날 천국에서 다윗을 만나면 그 당시 이야기를 숨을 죽으며 간증할 것입니다.
사울의 시기 질투 바람은 견디기 힘든 폭풍이었습니다.

자녀의 바람

살아가다 보면 자녀들로부터 부는 바람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죽 해야 “자식이 원수”라는 말까지 나올가요?
자식 때문에 속썩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요? 자식이 잘 자라주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려야 합니다. 다윗도 자식에게 죽을 뻔 한 적이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가만히 있어도 왕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이렇게 모진 바람속에서 다윗은 큰 왕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죽일 수 있었는 데 대항하지 않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 도망가 노숙하면서 살았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아랫 사람의 바람

다윗은 아랫사람으로부터 부는 바람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바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왕이 되려고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다윗은 아들을 죽이지 않고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시므이가 따라 오면서 돌을 던지며 비루한 자라고 조롱하였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 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8)
이런 모습을 보다 못 한 아비새 장군이 말했습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 소서”(삼하 16;9)

이 때 다윗이 아비새에게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 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 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 16;10-12)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이 더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런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윗은 아랫 사람에게서도 바람이 불어와 흔들리면서 핀 꽃입니다.

프랑스의 화가 르느와르는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하지도 못 하였습니다. 소년 시절에 도자기 공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넣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가난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경통으로 손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손에 붓을 붙들어 매고 그림을 그렸습니다.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 관광객이 말했습니다.
<저런 손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립니까?>
그러자 르느와르는 화를 버럭내면서 말했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 명작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직공처럼 일할 때 위대한 예술이 탄생합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눈과 마음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르느와르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불행을 희망의 발판으로 삼아 한 단계식 도약하였습니다. 유능한 선장은 파도를 이용하여 배를 전진시킬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이성 밧세바 바람

다윗은 성(性)의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살아가면서 이성의 유혹도 만만치 않습니다.
궁중을 한가하게 거닐 던 어느 날 한 여인이 발가벗고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음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여인을 데려다가 동침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평생 다윗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회개로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였습니다.
이성의 바람은 거절하기 어려울 만큼 평생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거인 다윗에게도 이성 밧세바 바람은 평생 아픈 흔적을 남겼습니다.

본인의 바람

여기 저기에서 부는 바람으로 다윗은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속에서 부는 바람은 가장 거센 바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것이 자기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음란을 속이려고 그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죽였습니다. 살인죄보다 적은 음란죄로 우리아 장군을 죽였습니다.
하나의 죄를 덮으려고 큰 죄를 더 저질렀습니다.
자기 속에서 부는 바람은 다윗을 더욱 더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맥스웰 목사님의 지도력 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일하려고 하면 수건을 얼굴에 가린 사람이 자꾸 나타나서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잡으려고 하면 도망치고 잡으려고 하면 또 도망치고 하여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하려고만 하면 와서 방해를 하였습니다. 잡히면 혼내주려고 베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맥스웰은 그를 기어코 잡았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벗r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냐?”
승리감에 도취되어 잡고 보니 바로 자기였습니다. 그 때 맥스웰이 말했습니다.
“나의 가장 큰 방해자는 나다.”
자기 마음에서 부는 바람은 가장 큰 바람입니다.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이같이 다윗에게는 자기 마음에서 부는 바람이 거세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를 이기고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윗은 후에 자기 마음의 바람을 잘 잔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간음은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음죄는 그 여자의 남편을 죽이는 살인죄로 성장되었습니다. 바늘 도둑은 소도둑이 되는 법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꾸짖었습니다. 헤롯왕은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세례요한의 목을 잘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죄를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앞에서 회개하였습니다. 보통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펑펑 흘리는 눈물은 침상을 적시고 떠내려갈 정도의 눈물이었습니다. 다윗의 간절한 기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 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성령을 통하여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 내가 다스릴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통하여 마음을 다스린 다윗은 죽을 때까지 다시는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죽을 때까지 간음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이 성경에 있는 가요? 열왕기상 1장은 이런 사실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 한 지라. 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게 하리이다 하고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 왔으니 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저가 왕을 모셔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 하였더라”(왕상1;1-4)

신하들은 다윗을 위하여 장례식을 준비하여야 하는 시기에 결혼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벌써 다윗 왕 시대에 미스 이스라엘 선발대회가 있었습니다. 미스 이스라엘 진(眞)으로 선발된 아비삭과 다윗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그런 능력이 나왔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을 잘 다스린 데서 나왔습니다.
다윗은 그 후 마음에서 일어난 바람을 잘 조절하였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다윗은 세 가지 흔한 바람은 맞지 않고 핀 거목의 꽃이 되었습니다.

돈 바람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받는 바람이 물질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루에 평균 40명 가량 자살하고 있습니다. 자살자의 90%가 돈문제 때문입니다. 생활고에 못 이겨서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윗은 다행히도 돈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 초기 부흥목사님 중에 박 재봉 목사님이 계십니다. 박 목사님은 울릉도 부흥회를 인도하고 집으로 돌아 오려고 배를 탔습니다. 배에는 7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박 목사님 그리고 교인 한 명, 선원 4명 그리고 중절 모자를 쓴 신사 한 분이었습니다.

배가 항구를 떠나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졌을 때였습니다. 그 때 태풍이 불었습니다. 배가 뒤집힐 것같은 심한 폭풍이었습니다. 당시 기록으로는 50년만이 불어닥친 태풍이었습니다. 당시 380척 배가 부서질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원들은 배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다가 심한 폭풍에 어쩔 수 없어서 포기상태였습니다. 배를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죽기만을 기다리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때 중절 모자를 쓴 신사가 돈뭉치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공중으로 뿌리면서 외쳤습니다.

“내가 너 때문에 이 배를 탔다. 너 때문에 내가 죽게 되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금방 죽게 된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 돈을 주우려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것이 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돈 때문에 불어오는 바람을 얼마나 맞고 살아야 하는 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돈이 원수입니다.
다행히 다윗은 돈 때문에 부는 바람은 맞지 않았습니다. 넉넉한 삶을 살아가면서 성경에서 가장 헌금을 많이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강 바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건강이 악화되어 위기를 몇 번 넘기며 살아갑니다. 나도 몇 번이나 죽을 뻔한 병에 걸렸었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하는 데 배가 쥐어 뜯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부흥회를 중단할 수 없어서 진통제를 한 줌씩 먹으며 아픔을 잊고 부흥회를 마쳤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맹장이 터져서 복막이 되었습니다. 장이 조금 썩었습니다. 잘라내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병에 흔들리면서 사람들은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다윗은 병에 걸려 아픔을 당한 기록은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분입니다.

부부 바람

부부가 살다보면 이런 아픔 저런 아픔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부부간에 갈등으로 수많은 바람을 일으키며 맞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다윗은 부부간에 갈등 문제는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1000명 아내와 살면서 그들이 가지고 온 이방신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부 사이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반석교회 채 재관 목사님 교회 성도들이 승합차를 타고 기도원을 가는 중에 남편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태어나 다시 결혼하면 지금 남자와 다시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대체적인 여론이 있었습니다. 이왕이면 새 남자와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 한 분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남자와 같이 살겠다.“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정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권사님이 말했습니다.
“이제껏 살면서 그만큼 고치느라고 죽을 뻔 하였는 데 새 남자 만나서 지금 정도로 만들려면 또 죽을 힘을 다 해야 해. 차라리 지금 남자가 낫지.”
부부 사이가 그렇습니다.
부부 사이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바람에 몹시 흔들리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꽃을 피워나갔습니다. 그 비결이 있습니다. 하루 일곱 번쩨 기도하였습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로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 119;164)

노만 핀센트 목사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크게 승리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 하면서 남에게 존경받는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필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가?”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직통전화 한 대가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직통전화를 걸었습니다.”
“누구에게 거는 직통전화인가요?”
“물론 하나님께 걸지요. 번호는 333번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잡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꽃이 피려면 봄부터 수없이 바람과 풍파에 흔들려야 합니다.
흔들릴 때마가 하나님께 직통 전화를 거십시오. 하나님은 바람을 잔잔하게 하여 주시는 전능자이십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 일어난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로젠베르그 유대인 가족이 독일의 강제 수용소로 붙잡혀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들이 함께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약간의 신체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독일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만 살려 두었습니다. 일할 수 없도록 약해지거나 병이 들면 곧 독가스 실로 끌고 가 죽였습니다. 

매일 새벽이 되면 로젠베르그 가족은 각각 다른 작업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두 아이들도 각각 다른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부모는 어린 아들에 대한 염려로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지냈습니다. 일하면서도 항상 작은 아들 생각이었습니다. 혹시 일을 제대로 못하는 작은 아들이 독가스 실로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저녁에 막사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작은 아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친 몸을 이끌고 막사로 돌아와 보니 큰 아들이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동생이 일 못 한다고 독가스 실로 끌고 갔어요.”
아빠가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물었습니다
“엄마는?”
큰 아들이 떠듬떠듬 말했습니다. 
“독일군이 동생을 잡으러 왔어요. 동생이 너무 무서워서 엄마를 붙들고 놓지 않았어요. 엄마가 동생을 꼭 껴안으면서 ‘그래, 함께 가자! 엄마는 끝까지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고 같이 갔어요.”
엄마는 동생과 함께 독가스 실로 들어가 같이 죽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흔들려도 꽃을 피우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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