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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3가지 명령 (요 4: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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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3가지 명령 (요 4:35-38)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오늘은 우리 교회 설립 111년 만에 처음으로 선교사 파송 예배를 드리는 아주 뜻 깊은 주일입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는 협력선교 위주로 선교를 해왔지만, 이제 우리 교회도 드디어 다른 나라에 단독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는 감격을 맛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지 어언 127년이 되는데, 지금 기독교는 한국에서 1000만의 신자를 헤아리게 되었고, 6만을 넘는 교회당이 있어, 우리나라의 국교가 마치 기독교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양적으로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그 경이적인 부흥과 신앙의 열기로 인하여, 온 세계 교회의 기린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기독교 황금시대에 태어나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축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들어오고, 이와 같은 기독교 황금시대를 이룩하게 된 이면에는 얼마나 큰 희생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신교가 전래되기 전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무서운 박해가 자행되어서, 1866년 병인 교난시대에는 8천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피를 흘리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박해가 자행되던 때임에도 불구하고, 1866년 7월 영국의 토마스 목사님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복음을 전하려 왔다가, 대동강 변에서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토마스 목사님의 나이 27살 때였습니다. 

토마스 목사님님은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24살에 자기 부인이 열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토마스 목사님은 계속 선교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온 천주교 신자 김자평과 최선일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모르는 채 죽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을 들은 토마스 목사님은 영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 땅으로 가기로 결정한 후, 미국의 상선 셔먼호를 타고 한국 대동강에 들어옵니다. 

당시 평양 감사였던 박규수는 셔먼호를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배에 불을 지릅니다. 그 바람에 거기에 탔던 많은 사람들이 대동강에서 익사했습니다. 토마스 목사님도 가지고 갔던 한문 성경을 대동 강변에 던지면서 “이 성경이 녹아 흘러가는 물을 마시는 자마다, 복음이 들어가게 하옵소서. 이 성경이 녹아 흘러가 땅을 적실 때마다, 복음의 땅이 되게 하옵소서.” 하고 대동강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그는 잡혀서 대동강 양각도 섬 위에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망나니 박춘권이라는 사람이 칼을 들고 그의 몸을 돌면서 춤을 출 때, 토마스 목사님은 성경을 들고 “형제여, 예수! 예수!” 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망나니가 칼로 팔을 내려쳤습니다. 그러자 다른 손으로 성경을 들고 “예수! 예수!” 할 때 또 다른 쪽 팔도 내려쳤습니다. 그래도 “오, 형제여 예수 믿으시오.” 할 때, 그의 목을 내리쳤습니다. 드디어 토마스 목사님은 대동강에서 목이 잘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토마스 목사님이 대동 강변에 던졌던 성경을 주운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최치량이라는 아이였습니다. 그는 주운 성경책을 가져다가 그 집 벽에 발랐습니다. 그 집이 후일 여관이 되었습니다. 20년 후에 존 마팻이 선교사로 평양에 들어가서 어느 여관집에 들어갔는데, 한문 성경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최치량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최치량은 “내가 어렸을 때 대동강에 갔다가, 예수쟁이가 목이 잘릴 때 던진 그 성경을 주어다가 이 벽에 발랐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마침내 최치량은 존 마팻 선교사를 통하여 전도를 받고, 한국교회 최초의 장로가 됩니다. 그 후에 토마스 목사님의 목을 쳐 죽였던 박춘권이는,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자기 집을 하나님께 바치며 뜨겁게 헌신하여 후일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상황이 바뀌게 되어 1884년에는 의료 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다음해인 1885년 4월 5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하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선교사들이 속속 입국하게 되는데, 문헌을 보면 그 동안 전남지방에 파송된 선교사만 해도 100여명에 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기할 일은 1889년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 선교사 데이비스 목사 남매가 내한하여 선교하다가, 6개월 만에 마마 병에 걸려 순교를 하고, 1893년에는 캐나다 장로교회의 목사 매켄지가 한복을 입고 한식을 먹으며 전도하다가, 2년 후에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1902년 6월11일,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바다에 빠진 이화 학당의 두 여학생을 구출하려다, 그만 마흔 넷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펜젤러는 총명하고 잘 생긴 사람이다. 미국에서 얼마든지 장래가 보장된 사람이었다. 그가 낙후된 한국에서 죽은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고 하면서 매우 애석해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펜젤러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세운 배재학교와 정동 제일 교회를 통하여, 이 땅의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 땅의 선교 역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본국에서도 처자식을 거느리고 평안하게 살면서, 얼마든지 주님을 잘 섬기고 충성할 수가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천만리 이역 땅에 생명을 걸고 찾아와서, 피 흘리며 복음을 전하다 죽어 갔습니까? 아니 그들이 자기들만 잘 믿고서, 만일 이 땅에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들과 또한 우리나라는 어찌 될 뻔했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복음이 귀하고, 나의 구원받음이 가장 큰 축복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복음 전도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선교사님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밑거름 되어, 한국 교회는 이제 성장할 만큼 성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한국 교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 교회는 도와줄 수 있는 저력도 갖게 되었습니다. 인적 자원 면에서도 경제적인 면에서도 넉넉히 돕고 선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랍게 한국 교회를 부흥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사명이 분명히 있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전도 혹은 선교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생각하여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교학에서는 인종과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이민족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선교로 정의합니다. 말씀의 방향을 여기에 두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명령을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보라

오늘 본문 35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를 여러 가지로 특징지을 수가 있으나, 어떤 사람은 현 시대를 가리켜 ‘영의 시대’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신 업자의 수가 세계적으로 지난 15년간에 3배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합리주의를 지나 신비주의가 휩쓸고, 초과학, 초자연, 초인간 등 심령 과학의 홍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는 무당 얘기가 영화의 기록을 깬 적이 있으며, 정신술, 강신술, 마술, 주술, 마인드 컨트롤 사상이 풍미하고, 전생에 대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은 성령의 지배를 받든지, 아니면 악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영의 시대라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눈을 들어 이 밭을 보아야 합니다. 미신과 악령이 횡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찾고, 참 진리를 찾고자 하나, 찾지 못한데서 오는 영적 기갈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온 세상에 꽉 차 있는 종말적 위기의식입니다. 벌써 오래 전의 추상화입니다만, 20개의 사과 상자가 쌓여져 있는 모습인데, 1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 그림으로서, 20세기 인류 문명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오래 전에 인류의 운명을 12시 5분전의 시한폭탄에 비유한 바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 최후의 날” “구라파의 몰락” “인류와 지구 최후의 날” “지구는 폭발한다.”라는 책이나 영화가 기록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집이나 배에 불이 나기 전에 쥐들이 먼저 예감하고 밖으로 피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인류는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 파멸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해저 촌을 만들거나, 우주 촌으로 이사 갈 계획 같은 것을, 벌써부터 구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결국 인류 최후를 예감한, 시한폭탄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몸부림인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신 말씀은, 이러한 각도에서도 음미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추수에는 적기가 있고, 그래서 추수에는 시급성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들을 보면, 그 농작지가 얼마나 광활한지 모릅니다. 그 광활한 농작지에서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한꺼번에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때를 놓치면, 그 곡식은 영원히 썩어 버리고 맙니다. 이처럼 추수에는 반드시 제 때에 거두어 들여야 하는 시급성이 있습니다. 인간 영혼의 추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 살고 있는 사람을 우리들이 건지지 못하면, 그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영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상에는 아직까지도 복음을 모르는 부족이 2000 종류가 넘는다고 합니다. 뉴우기니아에 626, 남태평양 군도에 521, 아프리카에 350, 남아메리카에 300, 오스트레일리아에 290, 인도에 100, 인도차이나 반도에 60, 필리핀에 60 종류가 넘는 부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수억의 회교도, 14억의 중공, 12억의 인도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지구상에는 아직도 2000여 부족이,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예수라는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면서 재림을 기다리는데, 그들은 아직까지 예수님의 초림 사실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이 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기도하라

마 9:36-38에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농촌 실정을 보면, 젊은 사람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대부분 노인들과 부녀자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백발이 다 된 노인들이, 넓은 논밭에서 혼자 추수하고 있다면, 얼마나 딱한 노릇입니까? 

우리는 앞에서 선교의 시급성과, 경작해야 할 밭의 광대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교인마다, 교회마다, 선교비를 보내고, 그래서 많은 선교헌금을 모으면 될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문제는 사람이다. 선교지에 갈 수 있는 충분한 사람만 확보되면, 이 세계를 복음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사람의 방법이지,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선교에 돈이나 사람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선교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할 주인에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광활한 밭의 추수를 하려면, 많은 일군이 필요한데, 인위적인 방법으로 내보내는 선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올바른 사람을 통하여, 선교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선교지에 나가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어 놓고, 기도하지 않을 부모가 있겠습니까? 피선교지의 선교 현장은, 전쟁터의 최전선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탄이 자신의 영토라고 생각해 온 지역에,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도전할 때, 사탄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총력을 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교사님들과 정운삼. 김방자 선교사님을 위해 꼭 잊지 말고 기도해주시기기 바랍니다.

3. 가라

마 28:18-20의 말씀을 대사명의 말씀이라고 하며, 주님의 지상 명령이라고도 합니다.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고, 막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이 땅에 남겨 두고 떠나실 때, 그들에게 맡기신 오직 한 가지 일, 오직 한 가지 유언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당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총회를 조직하는 일보다, 우선해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눅4:42-43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한 분밖에 없는 독생자를 선교사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하늘나라 시민들에게 분부하십니다. “너희는 가라!”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가라!” 이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가 되고,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Go Missionary 2)Send Missionary가 있습니다. 우리 청년 대학생들 중에서, 직접 복음을 들고 가는 선교사가 많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대부분 복음을 들고 직접 갈 수 없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이러한 성도들은 Send Missionary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현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을 물질로 돕고 협력하므로, 선교에 동참하고, 보내는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상급은 어떻게 다를까요?

1)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경우-맨 밑에 가서 건진 사람만 받겠는가?

2)시골에서 화재가 났을 때-양동이 부대-맨 앞에 불을 끈 사람만 받겠는가? 

3)죤 차이나맨에게 어떤 무신론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천국에 가면 맨 먼저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첫째,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하겠다. 둘째, 내게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다. 셋째, 선교사님들을 물질로 도와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들이 천국에 당도했을 때, 우리들의 선교헌금으로 파송한 선교사를 통해 구원을 받아서 이 복된 곳에 오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명령 “보라! 기도하라! 가라!는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너희는 가라!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Go Missionary가 되든지, Send Missionary가 되든지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독생자를 주심 받았고, 죄 사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은혜를 받았고, 성령을 받았고, 천국을 받게 되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인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언제까지 주시라는 기도만 할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아직 우리나라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선교가 웬 말인가?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크리스마스 때 떡국을 끓여 먹으면서, 앞줄은 두 그릇 세 그릇째 먹고, 뒷줄은 한 차례도 나눠주지 않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얼마나 불공평한 처사이겠습니까? 오늘 한국은 예배당이 없는 지역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라디오의 사이클만 맞추면, 언제든지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도, 성경도 없고, 단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않은 불쌍한 영혼들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주님의 초림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면, 이 얼마나 공평치 못한 처사입니까?

이 시간 우리는 정운삼. 김방자 선교사님 파송 예배로 드리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삼중 명령 ‘보라!’ ‘기도하라!’ ‘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송정중앙교회 성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주님의 삼중 명령에 꼭 순종하셔서 선교 헌금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후손들이 이 땅위에서도 복을 받고, 장차 하늘나라에서 선교사님들과 함께 큰 상급을 다 받게 되시기를,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선교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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