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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의 어머니 (눅 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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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어머니 (눅 1:26-38)

크리스마스 시즌은 우울증과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라고 합니다. 주변 환경은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올 한해도 이렇게 지나간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도 “역시” 그럴 것이라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기 싶습니다. 기대하는 것이 두렵고 희망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오늘부터 크리스마스까지의 4주를 일컬어서 대강절(Advent)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오심”(coming)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이미 오심”(first coming)을 기억하고 “다시 오심”(second coming)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양치는 목자들처럼 말입니다. 대강절의 기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 나사렛의 마리아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과 함께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도래를 위해서는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는데, 세례 요한은 엘리야와 같은 인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그의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1:17)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잉태한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가브리엘 천사는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사는 마리아라는 젊은 처녀를 방문합니다. 당시 마리아는 약 13-14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나사렛은 당시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나사렛은 “Netzer”에서 유래한 말로서 “그루터기”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만큼이나 나사렛은 무명의 동네였습니다. 요세푸스(갈릴리 출신)라는 역사가는 갈릴리 주변의 45도시를 언급하면서 나사렛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나사렛은 무명의 마을이었습니다. 심지어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라며 그 지역을 폄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에 사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입니다. 천사가 입을 엽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28, 30, 31) 천사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원한 왕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새 역사를 쓰시는 중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낳을 여성으로 나사렛의 마리아를 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하실 때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실까요? 마리아를 선택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 말입니다. 마리아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녀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마리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인류의 구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십대의 나이에 주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나이, 성별, 학력과 무관합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향해서 100퍼센트를 드린다면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history maker)이 될 수 있습니다. 

  
󰊲 상식 vs. 믿음 

가브리엘의 등장은 마리아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처녀가 임신을 하다니요? 마리아는 당황하여 묻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절) 우리도 예상 밖의 하나님의 계획이 알려질 때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식은 과학과 역사에 기초합니다. 과학의 합리성이나 역사의 경험이 판단의 준거가 됩니다. 믿음은 과학과 역사의 경계선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과학과 역사의 범주를 넘어서는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가능의 세계를 넘어서 불가능의 세계로 진입해야 합니다. 
  
처녀가 잉태하는 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할지는 몰라도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35절) 

성령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태초의 창조의 과정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실 때 불가능이 가능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어두움의 세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자 빛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습니다. 성령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의 영입니다. 우주의 시작처럼 교회의 시작도 성령으로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교회의 시작에 대해서도 성령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생각과 경험의 차원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성령님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상식, 과학, 역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믿음이 요청됩니다. 엘리사벳도 늙은 나이에 세례 요한을 임신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백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중요한 것은 나의 판단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불가능하다는 상식을 깨뜨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아멘” 하는 것입니다. 

“네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4:13) 

당신을 덮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극히 높으신(the most high) 이의 능력”이 덮고 있습니까? 이사야는 이렇게 외칩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당신의 제한된 생각과 경험의 차원을 넘어서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을 덮을 수 있도록 아멘으로 응답하십시오. 당신도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 믿음의 과정

구원자를 잉태하는 것은 영광이지만 또한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수반합니다. 앞으로 10개월 동안 처녀이면서 임산부로 지내야 합니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다. 신명기 22장에 보면 처녀가 임신하면 동네 바깥에서 돌을 맞아 죽게 되는 율법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가족들은 그녀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아마 수개월 동안 동네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숨어 지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출산하는 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임신 자체보다 10개월의 시간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구원자를 잉태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꿈꾸던 결혼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가진 꿈조차 포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은혜를 입은 자” 라고 부르지만 그녀의 현실은 은혜가 아니라 저주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구원자를 출산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서구 문화가 그려낸 부드럽고 청순한 이미지의 어머니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녀는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한 강인한 여성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뜻밖의 부르심을 듣기도 합니다. 마치 마리아의 임신과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잉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계획과 소명을 주셨나요? 믿음으로 순종한다면 당신도 하나님의 계획을 잉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아픔의 시간을 보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기필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마리아를 일컬어 “Theotokos” 즉, “하나님을 잉태한 사람”(God-bearer)이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특별한 여성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마리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사람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품고 실현하는 하나님의 종 말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임신(pregnant)하고 있습니까? 어떤 꿈(vision)을 임신하고 있습니까? 어떤 소망(hope)을 임신하고 있습니까?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이라고 응답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다면, 당신이 품은 꿈과 소망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 앞에 놓인 현실이 될 것입니다. 


결론: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크리스마스는 불가능(impossible)이 가능(possible)이 된 역사적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이야기입니다. 십대의 소녀가 성령으로 잉태한 이야기입니다. 마리아는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10달 동안 예수를 잉태하는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근동지역의 역사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지가 아닙니다. 성경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은 인류를 구원하는 일입니다. 구원의 역사에는 항상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꼭 위대한 모세나 엘리야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나사렛에 사는 13살 소녀도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 상관없습니다. 신분 상관없습니다. 교육수준 상관없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조건만 보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달력의 마지막 달인 대강절의 주제는 기다림입니다. 이 주제는 우리의 삶의 상황을 잘 반영합니다. 한 해를 마치며 아쉬움도 많지만 새로운 해를 기대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시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 마리아처럼 아멘이라고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성탄의 계절에 새로운 소망을 잉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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