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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창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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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창 3:15) 

창세기 3장에는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왜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는지 그 원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조상을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자마자 깨뜨려서 아담의 허리 안에 있던 우리가 모두 죄인이 되었고 생로병사의 고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게 되었냐면 하나님께서 인간보다 먼저 창조한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천사들입니다. 천사들 가운데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영광을 돌리는 선한 천사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해 반역한 천사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천사의 삼 분의 일이 반역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반역한 천사들의 두목은 사단이 되었고 그 졸개가 귀신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을 보고 사단이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을 유혹하여 우리의 졸개로 만들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유혹하였고 결국 아담과 하와는 죄인이 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생로병사의 고통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모든 비극의 원인을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은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한 인류 전체를 다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가운데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창세기 3장 15절은 ‘원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창세기 3장 15절을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을 처음으로 선포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가운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누구에게 놀랍고 왜 놀라우며 어떻게 놀라운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Ⅰ. 누구에게 놀라운가? 

창세기 3장 15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 놀라운 것입니까? 먼저 사단이 놀랐습니다. 사단의 목적은 아담을 죄에 빠뜨려 아담의 허리 안에 있는 모든 인류를 다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 15절은 사단의 목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뱀의 지배를 따르지 않는 여자의 후손들이 나오게 될 것이고 이들은 뱀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을 따랐던 사단의 종이었고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사단의 종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사단의 지배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귀신들이 우리에게 명령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단의 계산대로 역사는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렸습니다. 물론 사단이 여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이것은 약한 공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 사단을 결박하시고 사단의 종 되었던 사람들을 건져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시면 사단의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고 사단과 사단을 따르던 뱀의 후손들은 영영히 타는 지옥불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창세기 3장 15절을 듣고 놀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단과 귀신들에게도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가 놀랐느냐? 아담과 하와도 놀랐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뒤에야 자신들이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와 어디 있냐고 물으시니 아담은 무서워서 숨었다고 대답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분인 것은 알았지만 자비로우시며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인 것은 몰랐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마음속으로 걱정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범죄하였으니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저주를 받고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희를 죄와 마귀의 지배로부터 건져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은혜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백 명 중에서 구십구등을 한 성적표를 들고 부모한테 야단맞을 것을 걱정하며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걱정하지 말라며 본인은 백등이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놀라며 좋아하겠습니까?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이해해줬다며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직업이 군인이었던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하도 속을 썩이자 총을 들고 아들과 함께 지리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속 깊은 곳에 가서 죽이겠다고 생각하고 한참 올라가다가 다리가 아파서 중간에 쉬었습니다. 쉬는 동안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와 등산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너무 좋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고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식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버지로서 해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총을 집어넣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한 뒤 다시 내려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아버지가 잘못했다며 고백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 친구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다녔는데 그 친구는 아주 반항기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학부 1학년 때 양장점 여자와 사귀다 임신을 해서 할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니 철이 없어 정신을 못 차리고 바람도 피우고 병까지 걸려 절망하고 있는데 아내가 등을 탁 치며 남자가 그만한 일로 그러냐며 위로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바람도 안 피우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지금은 교회도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죽이지 않으시고 구원해주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사단도 놀라고 사람도 놀란 것입니다. 


Ⅱ. 언제까지 놀라운가? 

하나님께서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역사상 계속해서 적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만 구원하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삼으시고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인류 전체를 지배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불경건한 자였고 아벨을 경건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셋을 낳게 하셔서 경건한 여자의 후손이 끊기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또 뱀의 후손이 온 세상을 지배하여 하나님을 거역하자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시는데 이때도 노아의 여덟 식구를 남겨주셔서 지금의 인류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자손들이 자녀를 낳으면서 또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뱀의 후손들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준비하셔서 여자의 후손들을 건지신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중세기는 완전히 어두웠고 복음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도 없고 성경을 가질 수도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을 일으켜 위대한 개신교 종교개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청교도가 건설했다고 알고 있지만 청교도 중에서도 분리주의자들이 건설한 것입니다. 1603년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등극하여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를 믿지 않으면 감옥에 넣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 가운데 성공회의 가르침을 믿을 수 없다며 자신의 신앙과 양심을 따라 성경대로 예배를 드리겠다는 사람들이 분리되어 나왔는데 그들이 분리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영국에서 살 수가 없어 네덜란드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10여 년 살다가 1620년에 배를 하나 사서 태평양을 거쳐 미국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런데 겨울에 도착하다 보니 100여 명이 갔는데 절반 이상이 추위에 동사하거나 굶어 죽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50여 명이 인디언들에게 농사를 배워 그 이듬해에 처음 수확했을 때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미국도 인구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많아지니 결국 뱀의 후손들이 또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대각성 운동을 일으켜 여자의 후손들을 건지셨습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50년 전에 제1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전쟁이 끝난 뒤 1800년 전후에 제2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1차 대각성 운동 당시 위대한 지도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대각성 운동을 가리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1735년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셔서 자기가 목회하던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의 회중교회의 성도가 갑자기 3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나고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부패하고 교회가 타락하여 세상이 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자의 후손을 남겨 놓으시고 참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건져내시는 역사를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Ⅲ. 왜 놀라운가?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를 도리어 축복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선악과를 제외하고 무엇이든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빛의 옷을 입어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좋은 곳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이 맞습니다. 쫓겨나지 않고 그냥 있으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고 아담과 하와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뱀도 저주하였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고통이 오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이제 다 끝난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고난을 더 큰 축복으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인간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힘이 넘칠 때는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슬픔이 찾아오고 믿었던 인간들이 배신하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영원히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 모두를 심판 가운데 두지 않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을 남겨 두신 것입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보셨습니까? 일본 사람들이 영국과 미국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콰이강의 다리를 만들게 하는데 나중에 그 다리를 영국 사람들이 파괴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입니다. 하지만 어네스트 고든의 「콰이강의 계곡」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어네스트는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장교였는데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미얀마에서 3년간 포로가 되어 콰이강의 다리를 짓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본군은 전쟁포로를 학대했다고 합니다. 노동과 학대 가운데 어네스트는 다리를 다쳐 죽게 되었는데 한 젊은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젊은 청년은 일본군이 학대해도 불평하지 않고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네스트의 다리를 극진히 간호하여 어네스트가 살아났습니다. 이후 어네스트는 젊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감명을 받아 해방된 이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나중에 프린스턴 대학의 교목이 되었습니다. 그는 교목이 된 이후 자기를 살려준 청년을 찾아보았지만 전쟁이 끝나기 2주 전 일본군이 예수를 믿으니 너도 예수처럼 죽으라고 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고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승리로 바꾸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실패한 인간이 다시 성공할 수 없고 저주받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Ⅳ. 무엇이 놀라운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은 복수로도 사용되고 단수로도 사용됩니다. 복수로 사용되는 여자의 후손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하고 불신앙으로 사는 뱀의 후손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여자의 후손은 영원히 서로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단수로 사용되는 여자의 후손이 나옵니다. 이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뱀은 기껏해야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사단의 일을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의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마는” (사 49:24). 

이사야 선지자는 마귀와 같이 강한 자의 종된 것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냐고 질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사 49:25). 하나님께서는 용사의 포로도 건져내고 빼앗아 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인해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상도 이상하고 생각도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따라 살다가 마귀와 함께 영원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를 베푸셔서 마귀로부터 우리를 빼앗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빼앗아 낼 수 있는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해졌습니다. 영생을 얻고 잃어버린 에덴동산보다도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이 변합니다. 사람은 몽둥이로 때린다고 변하거나 욕한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또 선생님이 가르친다고 해서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하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청년이 노래를 잘했는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나이트클럽에 나가서 노래하며 먹고 살았습니다. 모두가 술에 취해 흥청거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신청한 것입니다. 이 청년이 할 수 없이 그 찬송을 부르는데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자신을 은혜로 건져주셨는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귀도 놀라고 인간도 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인간의 모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줍니다. 이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가을에 추수하도록 인도하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절기입니다. 농작물을 수확하도록 해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가 바로 우리가 감사해야 이유인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감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은혜의 깊이를 아는 사람들은 감사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의 영혼이 감사로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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