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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히 11:5,6)

첨부 1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본문: 히11:5,6

몇 주 전 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런 고민을 했다. 그 때 생각이 난 말씀이 오늘 본문이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나의 질문에 답을 주셨다. 마음에 기쁨이 솟아났다. 기도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다. 지금 내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내가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상을 주신다고 믿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구나. 

그런데 누가 이렇게 살았나? 이 구절 앞에 보면 에녹의 이야기가 나온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이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산 채로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육체를 입고 하나님께 들림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성경 번역본에 보면 이 구절이 이렇게 되어 있다.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리고 창5:24에 보면 에녹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말은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에녹은 어떤 상을 받았을까?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았다. 들림 받기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처럼 영광스러운 육체로 변하여 하늘로 들림을 받았다. 구약 시대에는 에녹 이외에도 엘리야 선지자도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들림을 받았다. 

죄로 말미암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저주를 이 두 사람은 피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님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내 옆에서 항상 동행하면서 나를 양육해주셨다. 나는 부모님의 동행을 기쁘게 받으면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갔다. 장성한 사람이 되었다. 동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으시고 나와 함께 하실 때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지도와 양육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다. 

만약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도 훗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에녹처럼 부활의 영광을 경험하고 하늘로 들림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가 있을까? 오늘 에녹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방법을 함께 찾아가보자. 


1.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순간부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창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살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더 많은 자녀들을 낳으면서 살았다. 

그는 왜 65세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까? 무언가 그에게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에녹이 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다서1장 14절에 보면 에녹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65세에 하나님을 만났고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곧 닥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결국 에녹이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고 그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동행하는 삶을 사는 방법은 내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구원받은 순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마치 부모님이 나를 낳으신 후에 나와 동행하는 살을 살아주신 것처럼 하나님도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후에 나와 동행해주신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지금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에녹은 구원받은 이후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에녹이 먼저 하나님께 다가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에녹에게 오시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다. 

그러면 에녹의 역할은 무엇인가? 에녹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내 삶의 주권과 마음을 드린 것이다. 내가 주인이 되어 이끌어가던 삶을 하나님께 주권을 맡긴 것이다. 내가 다가오신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신 후에 내게로 오시어 나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어떻게 오셨는가?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 성령을 우리 육체 가운데 보내시어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나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첫째 아이를 낳고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다. 출근을 했다가 집으로 오면 제일 먼저 손을 씻고 아이를 번쩍 들어서 안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가 방긋 미소를 지어준다. 그 미소를 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그런데 만약에 아빠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집으로 달려왔는데 아이가 장난감에 한눈이 팔려서 아빠의 품에 안기지 않는다면 아빠는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아빠는 동행하고 싶지만 아이가 동행을 거절하고 있다. 

영적으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내게 찾아오시어 내게 손을 벌리신다. 내 손을 잡고 가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한눈이 팔려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려고 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손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 이미 내게 찾아오시어 영원히 함께 하시는 주님께 내 삶을 맡기는 것이다. 내 모든 근심, 걱정,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란다. 


3.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친 동생인 유다가 기록한 유다서에 보면 특별한 내용이 나온다. 

(유1: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행동과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이 사람들에게 예언하기를 “주님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이 땅에 임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라고 했다. 

에녹이 평범한 사람으로 산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조용히 자기 일만 하면서 산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언젠가 닥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회개하라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녹과 함께 하시면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또한 하나님은 에녹에게 사명을 주셨다.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담력도 주셨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두 가지 사명을 감당했다.

가정적으로는 자녀를 계속 낳으면서 경건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에녹은 65세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노아를 낳았다. 노아가 누구인가? 당대의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었는가? 온 세상이 물로 심판을 당할 때에 노아와 노아의 가족만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에녹이 낳았던 므두셀라는 노아가 방주를 다 완성할 때까지 살아 있었다. 므두셀라는 아버지 에녹이 살아 생전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손자인 노아에게 전수하고 노아가 경건한 신앙으로 살도록 교훈했을 것이다. 

에녹은 300년 동안 살면서 가정적으로 경건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감당해야 할 첫 번째 사명이 바로 이것이다. 경건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대를 이어서 이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에녹은 사회적으로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했다. 우리는 노아의 당대에 노아의 가족만 방주에 들어가서 살아남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당대에 경건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은 노아의 가족만 제외하고 홍수가 임하기 전에 먼저 천국에 갔다. 에녹이 전하는 예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은 홍수 전에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이다. 대표적으로 므두셀라와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감당해야 할 두 번째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번에는 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불로써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피하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이 복음의 메시지를 우리가 전해야 한다.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를 약속하셨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두 가지 사명을 감당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말씀을 정리하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고, 나와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그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동행에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팔을 벌리실 때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하나님의 손을 내미실 때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이다. 하나님은 강제로 나를 안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나의 손을 강제로 잡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께 나의 손을 잡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더 온전히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인생길을 걸어가자.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마쳤을 때 또한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 우리는 에녹처럼 변화되어 부활의 영광을 입고 하늘로 들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가장 큰 상급이요 면류관이다. 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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