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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상을 보는 젊은이 (행 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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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보는 젊은이 (행 2: 14-21)

우리는 우리 자녀에 대하여 염려하고 다음 세대에 대하여 염려합니다. 그들이 과연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이 많습니다. 우선 취업난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이라도 얻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과거 세대만큼 돈을 벌지 못하고 재력을 얻지 못할까 염려합니다. 과거에는 아파트라도 하나 장만하면 그 값이 올라서 재테크를 할 수 있었고 돈을 모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부동산 값이 오르지 않고 과거처럼 돈을 모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에는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녀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장만하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직업도 없고 수입도 없고 재력도 없는 세대가 될 거라는 말을 합니다. 이게 바로 닌자((NINJA) 세대라는 것입니다. 닌자, No Income, No Job, no Asset, 수입도 없고 직업도 없고 재산도 없는 세대라는 말입니다. 참고로 이 말은 미국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그 말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도와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살기가 바쁩니다. 그런데 자식 공부시켜야죠, 유학 보내 줘야죠, 결혼시켜 줘야죠, 신혼살림집을 마련해 줘야죠, 사업자금까지 대주면 부모는 완전히 거덜 나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젊은 세대를 도와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복지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경제를 성장시키자는 것인데 젊은 세대는 지금 나눠달라는 것이죠. 사물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그러나 미래의 일은 염려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대로 살면 됩니다. 부동산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이 아니에요. 얼마나 더 올라야 되겠습니까. 이미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집값이 제일 비싼 나라 중에 하나인데 부동산 값이 더 오르면 서민들은 어떻게 집을 마련하라는 얘기입니까. 그리고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지금보다 대학생 수가 적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대학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올바른 비교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보다도 공평한 사회가 된 것이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학을 나온다고 대수가 아니고 정말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 능력을 가져야 되는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돈을 물려줄 수도 없고 빚을 물려주지 않으면 다행이에요.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대신 대통령을 뽑아줄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선택을 하고 그들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기성세대는 과거 세대의 어떤 도움을 받았길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까. 각자 저마다 최선을 다한 것이지 과거의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자신의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님의 믿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어머니의 기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닌, 자기의 믿음을 갖고 자기가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세대에요. 야곱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경험은 무엇이었느냐. 자기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자기 형에게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산 것도 아니고 하란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신 경험입니다. 

야곱이 아버지의 보호막에 있을 때에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치마폭 속에 있을 때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는데 혼자 자기의 인생 여정을 가다보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인 것뿐만이 아니요 이제는 야곱의 하나님이 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 경험을 함으로써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이론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고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은 모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모의 도움이 없이도 자기의 가문을 이루고 큰 소유를 모으고 정말로 복된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복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었어요. 

우리는 우리 자녀가 은혜를 받되 적당히 받기를 원합니다. 너무 은혜 받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합니다. 그러다가 목사 된다고 그럴까봐. 옛날 성 프란시스가 마을로 내려오면 아들이 있는 엄마들은 전부 다 아들을 집에 가두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 프란시스의 얼굴을 보고 감화를 받아서 수도사가 되겠다는 아들들이 나오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 아들이 수도사가 된다고 할까봐 집에 가두고 밖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데 자식이 은혜 받는 것은 환영하지만 너무 은혜 받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부모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목사가 되던 신부가 되던 수도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좌우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더니 성직자가 됐습니까. 아니에요. 훌륭한 임금이 됐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성직자가 됐습니까. 아니에요. 훌륭한 아버지가 됐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지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을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은혜 받는 것은 영적으로 유익하고 또 그 이외의 삶은 그 이외의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이 요한3서에서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네가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되는 것이 영혼이 잘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잘되기 때문에 범사에 잘 될 수 있는 것이고 범사가 잘 되는 것뿐만이 아니고 몸이 강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받는 은혜가 영적인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젊은 세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늙었느냐 젊었느냐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늙은 사람이고 환상을 보는 사람은 젊은 사람입니다. 

이 구절은 요엘서에 있는 예언을 베드로가 오순절날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그 사람이 뒤로 넘어지고 부들부들 떨고 이런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하면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비전을 보고 늙은 사람은 꿈을 꾼다, 모든 연령층에 걸쳐서 계시적인 은혜가 임한다는 얘기에요. 

지금 젊은 세대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미래에 대한 비전이에요. 미래에 대한 환상이에요. 이것은 공부를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나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을 받는 것이 그냥 종교적인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방법 · 육신의 공부 · 육신의 지식 · 육신의 지혜로는 얻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환상 · 미래에 대한 비전 · 미래에 대한 영롱한 꿈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든 어려움, 경제적 · 사회적 여러 가지 어려움은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늘 하는 소리가 그 소리에요. 세금을 늘릴 것이냐 줄일 것이냐, 규제를 늘릴 것이냐 줄일 것이냐, 복지를 늘려야 되느냐 줄여야 되느냐, 그 밥에 그 나물이에요. 정치인으로부터 해결책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얻어야 됩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하여 점을 차라는 얘기냐. 운세를 알아보라는 얘기냐. 아니에요. 환상을 보는 것과 점을 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요즘에도 서울 변두리에 가면 점치는 집들 많지요. 하나같이 허름한 집이에요.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팔자를 못 바꿉니까. 점을 치는 것과 환상을 보는 것은 다릅니다. 환상을 보는 것은 미래를 아는 것뿐만이 아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받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내 운명을 바꾸고 가정의 운명을 바꾸고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인류의 운명까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말하지요. 대한민국의 경제가 일본처럼 제로 성장, 마이너스 성장 시대로 갈 수 있다. 암울한 예측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닥터 글룸(Dr. Gloom). 그런데 일본의 문제는 일본의 문제지만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는 남북통일이라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북통일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지금 대한민국 경제수준의 두 배, 세 배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북한의 한 마을당 병원 하나가 들어가고 학교 하나, 영어 학원 하나, 컴퓨터 학원 하나, 피씨방 하나, 커피전문점 하나, 설렁탕집 하나, 그리고 교회 하나 이런 식으로만 들어가도 대한민국은 취업난이 아니고 구인난이 발생할 것입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 통일 비용을 얼마든지 뽑고도 남습니다. 흡수통일을 하자는 얘기냐. 그게 아니고 북한도 살고 남한도 살 수 있는 길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장 우리의 앞에 있는 언덕 때문에 그 언덕 너머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무슨 전공을 해야 될까요. 상관없습니다. 전공 안 해도 됩니다. 다만 꿈과 비전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비전을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가슴이 뛰지 않으면 그건 비전이 아니에요. 

마틴 루터 킹은 마틴 루터 킹대로 꿈이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꿈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꿈이 있어야 됩니다. 그럼 그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요. 그것도 상관없습니다. 나의 도움이 청와대에서 오는 게 아니에요.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옵니다. 

그럼 그런 꿈이 이루어지는 걸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일단 오래 살아야 됩니다. 그 말은 인내해야 된다는 얘기고 여러분 자신이 꿈을 가져야 됩니다. 남의 꿈은 남의 껌과 같습니다. 남의 껌을 씹을 수 없지요. 내 껌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내 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의 꿈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고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충실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됩니다. 하나님을 배신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 있는 꿈조차도 달아납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고등학생이었을 때 금요일 저녁마다 교회에 고등부 성경공부가 있었어요. 그래서 늘 참석하는데 어느 날 초청강사로 오신 어느 캐나다 목사님이 성경을 가르치다 말고 불쑥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하나님이 만일 여러분이 어느 대학에 보내고 싶은데 여러분 실력이 부족하다면 대학교수의 마음을 움직여서라도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그 목사님이 그날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씀이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저는 그때부터 경험하기 시작했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충실했더니 하나님도 저에게 충실하셨어요. 제가 하나님께 신실했더니 하나님도 저에게 신실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성령을 강조하는 것에 대하여 성령을 강조하다가 광신에 빠질까 염려하면 안 됩니다. 성령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문제에요. 영적인 은혜에서 우리는 실리적인 유익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은혜가 영적인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충만한 것은 천지만물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이에요. 성령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성령을 너무 강조해서 문제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는데 ‘지금’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은 ‘나중에 은혜 받아도 되겠지. 교회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 지금은 먼저 공부하고 시험 잘보고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 은혜 받아도 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때에요. 지금을 놓치면 나중도 없어요. 지금이 있기 때문에 나중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은혜 받을 기회를 멸시하면 안 됩니다. 정말로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해보니까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 해보니까 됩니다!’ 착한사람이에요. ‘방언 해보니까 됩니다!’ 그건 믿음의 사람이에요. ‘성경묵상 해보니까 됩니다!’ 당연하지요. ‘성령을 구하니까 성령이 임합니다!’, ‘해보니까 됩니다!’ 이게 정말로 착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해 봐도 안돼요. 해봤는데 안돼요.’ 재수 없는 사람입니다. 본인 잘못이에요. 왜 저보고 안 된다고 해요. 나는 되는데 왜 당신은 안 되느냐. 회개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 회개해야 될 문제가 있는 거예요. 안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본인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거듭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되리라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말하면 안돼요. ‘하나님으로서는 모두 할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 (김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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