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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그래도, 감사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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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 (살전 5:16-18)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라는 주제는 추수감사절에만 다룰 작은 주제가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키워드입니다. 감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사가 회복된다면 인생에 막혔던 것들이 뚫리고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행, 불행을 결정합니다. 지금 감사가 넘친다면 이미 천국을 소유하여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이 일어난다면 감사를 잃어버린 그곳이 지옥입니다. 감사가 많은 편인가 아니면 불평이 많은가를 보면 신앙과 삶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사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하는 일에 더 익숙합니다.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 광야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원망과 불평에 빠져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감사’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담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범사’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런대로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아들이 대학입시에 합격했다면 감사하지만, 떨어졌다면 감사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 ‘감사하라’는 말은 세상에서 말하는 감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세계가 아니면 도무지 넘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삶의 수준을 소개해 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처럼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없습니다.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세상과 구별되는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의 형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감사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감사는 마음의 태도에서 결정됩니다.

좋은 환경이라고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좋은 환경이 펼쳐지면 감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지금 어렵기 때문에 감사를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감사는 조건의 충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에서 좌우됩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 마음의 태도도 훈련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불평하는데, 어떤 사람은 베풀면서 감사합니다. 대접을 받으면 감사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대접 받으면서도 작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받는다고 감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감사를 하든지 원망불평을 하든지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어떤 것보다도 더욱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감사하느냐 불평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상처가 많고 자기중심적인 사람, 열등감이 많고 비교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일평생 불행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병든 마음에서 감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훈련해야 합니까? 어떤 것이든지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누리다 보면 아주 귀한 것인데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매일 대하고 있는 일상의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아침에 일어난 것도 은총입니다. 중환자들은 호흡 한 번 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데 지금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것,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모두 기적입니다. 

그러나 매일 하루 세 번 식사시간마다 얼마나 진심 어린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일 년이면 약 천 번의 식사를 합니다. 천 번의 식사를 하는 동안에 마음을 다해서 진정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기도를 몇 번이나 드렸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드린 진정한 감사를 세어보신다면 몇 번이나 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기뻐하시고, 감사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 때만 감사하려고 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뒤에 살려주신 것, 아이가 넘어졌는데 머리가 아니고 코만 깨진 것에 감사합니다. 물론 그런 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짜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숱한 평범한 날들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것 중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신앙을 우리가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모든 것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축복된 인생은 축복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그를 축복되게 합니다. 우리 인생은 습관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불투명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는데, 지금 내가 가진 습관은 반드시 나의 인생을 어디론가 데려다 준다는 사실입니다. 서구사회 안에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것이 많은데, 그중에 아주 좋은 것이 “thank you”가 입에 붙은 것입니다. 그들은 매사에 감사, 또 감사합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를 말합니다. 너무나 좋은 습관입니다. 

우리도 아주 반사적이고 체질적으로 작은 일들에도 끊임없이 감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기도생활에서도 감사를 더 적극적으로 해보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달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한번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달라는 기도보다 이미 주신 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사실, 나에게 주신 것에 대한 깊은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주셔도 그것이 내 인생에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감사가 회복되고 습관이 되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감사로 시작해보십시오. 습관의 힘이 대단한 것이, 감사가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감사가 외적인 태도만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감사의 습관은 감사 체질이 되고, 그런 감사의 태도는 삶을 바꿔 놓습니다. 지금 가진 습관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습관을 가져보십시오.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감사하는 습관 하나만으로도 인생에 길이 열릴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신앙의 상태와 수준은 감사를 통해서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가정교육에서 일어나는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문제입니다. 범사에 감사는 신앙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롬 1:21)」 

불신앙 사회의 뚜렷한 특징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삶은 신앙의 경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깊은 수준은 감사의 삶으로 완성됩니다. 신앙과 감사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갑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 견고하게 세워지면 마지막으로 발산되는 것이 감사라는 것입니다. 굳게 선 신앙은 감사함이 넘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는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냥 감사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감사가 넘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뛰어넘은 감사를 의미합니다. 어떤 상황보다 감사가 더 넘쳐흘러 그 상황에 묶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표현으로 감사하기를 원하시고 그 감사를 통해 우리 가운데 더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가정에서도 자녀를 키우는 것이 힘들지만, 아이가 감사를 표현할 때 부모는 더 기쁘고, 더 주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예배는 내가 받은 은혜에 대해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 안에는 감사가 들어있습니다. 감사가 빠지면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의 궁정으로 들어갈 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감사요, 또 하나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먼저 감사로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이 무엇입니까? 감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어떤 감사입니까? 어떤 상황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바로 섭리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우연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신앙입니다. 비록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다 해도 삶은 우연이 아닙니다.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디 하나 작은 것이라도 우연은 없습니다. 세상은 우연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움직이고 있습니다. 섭리 신앙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삶에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가해자 형들을 향해 원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섭리 신앙은 일어난 사건을 액면 그대로 보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관점을 가집니다. 신앙은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관점이 아니고 사건과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의 눈이라고 합니다. 그 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재해석의 능력은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섭리 신앙은 주어진 상황이나 사건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고 답답한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대개 하나님의 섭리는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들거나 쉽게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내 생각이나 고집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내 삶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굳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알 수 없도록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가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감사할 수 없었지만 인내하며 감사했더니 결국은 하나님께서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자라게 하시고, 축복된 길로 이끄시는 일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손에서는 유익한 것으로 재탄생됩니다. 바울도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이후에 더 이상 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란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에게 선하신 분이라는 이 절대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으로 말씀하는 것도 내 생각과 다른 일들이 닥쳐도 일단 감사로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당장은 감사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감사를 해놓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환경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늘 감사로 반응하십시오. 

주님은 감사기도의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오병이어를 앞에 두고 ‘축사’하셨는데 여기에서 축사는 감사기도입니다. 수많은 청중들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오병이어를 가지고 주님은 감사부터 시작했습니다. 닥친 상황과 현실은 너무나 아닌 것 같아도 감사로 대처하신 주님의 기도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현실은 아닌 것 같지만, 감사로 시작할 때 기적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감사로 대처하신 주님의 기도가 기적을 일으켰다면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도 아무런 감사의 조건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감사로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신앙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변화무쌍한 환경에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도 수없이 상황이 오락가락하지만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선을 베푸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고, 변함이 없으시고, 신실하십니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그 계획도 완전합니다. 그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할 때, 그분 안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어떤 조건 때문에 주님의 계획이 차질을 빚거나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환경도 변하고 내 마음도 변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믿음도 변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완전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신뢰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에 기초해야 합니다. 마침내 선을 이루실 그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요동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는 우리 편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편에서는 “네가 하는 어떤 일 속에도 내가 역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루고 계십니다. 내가 보기에 그 일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라 할지라도 그 일에도 하나님은 관여하시고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령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명령하는 것은 그것을 지키면 아빠가 책임진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약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책임과 축복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이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 100:3)」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선한 목자요 우리는 그분의 양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라고 하는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 날마다 노래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주실 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최후 승리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최종적인 구원의 은혜가 보장된 것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대적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넘어지고 망가져도 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환경에 따라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매 순간 감사로 반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주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믿음의 삶은 상황과 조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없을지라도, 그 상황과 상관없이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감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꾸 내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보십시오. 감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정확합니다. 감사의 삶을 보면 내 신앙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천국의 삶을 사는 행복이 밀려올 것입니다. 감사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감사를 통해서 불평과 원망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십시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래도 또 감사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인간관계 안에서도 놀랍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할 것을 찾아보십시오.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감사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자꾸 표현하십시오. 표현에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는 또 감사를 가져옵니다. 감사하다 보면 세상에 모든 것이 감사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동시에 명령입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실천할 때 반드시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과 더 감사할 일들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감사는 신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새로운 회복이 일어나 감사의 영성으로 일상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규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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