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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성경으로 돌아가라 (딤후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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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돌아가라

(딤후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1. 성경은 거룩한 책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회 강단(십자가 제단)에 보면, “일곱 촛대” 앞에 성경이 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일곱 금 촛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계1:10-12)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그런데 그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을 보았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했습니다.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 즉 “일곱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으심으로 세우신 전 세계의 모든 교회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 “일곱 촛대” 사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니신다는 것은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마28:18-20)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때문에 “일곱 촛대” 앞에 성경이 펴 있다는 것은 교회의 중심은 성경,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떡이 되는 성경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복 받는 길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30:9-16을 보겠습니다.

(신30:9-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지키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들에게 주시는 축복들을 열거하면서 그 말씀을 많은 순금보다 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시119:72,127) 

(시19:7-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축복은 모두 하나님 말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며 그 말씀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만이 가장 복된 삶에 이르게 합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 말씀들을 보겠습니다. 

(딤후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신11:18-19)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시119:147-148)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한다고 말하며,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했습니다. 

(엡6:10-17)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3.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생활 속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한 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잠시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옷을 입을 때, 그 옷들을 아주 가까운데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그 옷들을 입고 가게 됩니다. 그 옷들이 우리 몸의 일부분은 아니지만 그 옷들을 입게 될 때마다 마치 그 옷들이 거의 우리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 역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옷을 입는 것처럼 항상 우리 가까이에 두고 우리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지니고 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것처럼, 먼저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 중심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라도 그 말씀을 쉽게 생각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나님 말씀을 보여주기 원한다면, 성경에서 쉽고 빠르게 그 필요한 말씀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기 위해서는 “성경 묵상”이 필요합니다. “성경 묵상”(Meditating Bible)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으로 옷을 입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 성구들을 반복해서 작은 소리로 읽으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 묵상”을 하게 되면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모든 세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멀리하고 따라서 “성경 묵상”을 행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가장 중대하게 여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성경 묵상”을 생활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묵상”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음 사항을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묵상하고 암송해야 할 ‘성구 카드’를 항상 지니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어디를 가든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몸에 지니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지속적으로 성구를 읽고 묵상하여 그 성구를 암송하게 되면 성도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어리석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여 삶을 지혜롭게 하며, 여러분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하나님 말씀은 순수하여 사람의 눈, 마음의 눈과 영적인 눈을 밝혀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성도 여러분의 삶이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바르게 인도합니다.’ 성구를 작은 소리로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는 생활을 지속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살아있는 인격으로 다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암송하게 되면 힘 있게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됩니다.(시119:27,48,78) 

하나님 말씀을 소리내어 읽고 묵상하며 암송하여 그 말씀을 영접하고 마음에 간직하게 될 때, 그 말씀들이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유혹이나 시험도 이겨낼 수 있도록 합니다.(시119:11) 

오늘 배부해드린 성구 암송 카드를 사용해서 1년 안에 1주일에 1구절씩, 60구절 정도의 성구를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구절이라도 하나님 말씀은 여러분 삶에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죄, 모든 시련과 고통에 대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성경 묵상”을 위해 매일 매일 1구절씩 작은 소리로 읽고 묵상하며 암송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구 카드를 일주일 내내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성구를 어느 곳, 언제일지라도 시간이 날 때 수시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암송하고 그 암송한 성구가 마음에 잠길 때까지 계속해서 묵상하며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는 말씀대로 될 줄 믿습니다.  

다음으로,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가족 성경모임을 가지고 그 하나님 말씀을 서로 소리내어 읽고 묵상한 후에 느낀 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게 되면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고 깨닫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배우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 그리고 자손들과 더불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생활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손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성구를 암송하도록 하는 것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자녀들이 성구를 암송하게 되면 쉽게 반복해서 마음에 담아 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들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게 될 때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와같이 성구를 암송하고 묵상하게 되면, 그 하나님 말씀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장차 세상에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그 생활을 깨끗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와 영적인 지혜로운 자가 되어 진정한 인생의 성공과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십을 동안 금식하신 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그 모든 시험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태복음4:1-11을 보겠습니다.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여기 말씀들을 보면,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마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을 하시며 구약 성경, 다시 말해 그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마음에 간직했던 말씀들로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암송이라는 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또한 성경암송과 더불어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성경을 암송하고 계셨습니다. 암송하신 말씀을 십자가상에서 남기셨습니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주신 분이 성령님이시고 또한 성령님은 말씀을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은 곧 성령의 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살게 되면 그 말씀들이 우리를 어떻게 돕게 되겠습니까? 시편119:9-11입니다.

(시119:9-11)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물론 그 말씀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모든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녀들로 하여금 범사에 모든 일에 대해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혜로 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쉽게 생각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구를 읽고 묵상하며 암송하는 것이 아주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나이에서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태중에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기록한 디모데의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에게서 시작하여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심겨진 것이었습니다.

(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다시 말해 디모데는 그의 어머니 유니게의 태중에서부터 성경을 알았다, 즉 성경으로 태교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서도 아주 일찍부터 성경을 읽고 쓰고 하여 기초적인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그리고 그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져야 합니다. 

식물 재배와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씨를 심는 것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심어야만 합니다. 어린이 주일 학교에서 매주 마다 성구를 암송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그와같은 행사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모든 힘과 시간과 재능을 다 쏟아 아동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입니다. 


4.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기갈을 당하고 있습니다. B.C.760년경,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 시대였습니다. 이 당시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멸망의 이유를 들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선포합니다.

(암8:11-1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제사장에게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선지자들에게서 예언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타락으로 율법은 흐려지고, 선지자에게서는 말씀이 거두어졌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갈되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역시 ‘풍부 속에 빈곤’이라는 말처럼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기갈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오늘 이 시대에 성도 여러분에게  선포되는 참으로 간곡한 외침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을 진실로 받아들이시고 지금부터라도 ‘성경 묵상’에 특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성경을 몇 번이 읽으셨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하루에 3절씩, 그리고 금요일에 5장씩을 읽게 된다면 여러분은 1년에 성경 전체를 한 번 읽게 될 것입니다. 오늘 지금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읽은 것으로만은 충분치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깊숙이 관통해서 우리 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마치 구약 성전의 지성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가장 거룩한 처소인 지성소까지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거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생각이나 말, 그리고 행위에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생각이나 말, 그리고 행위에서 지혜롭게 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생명력이 넘치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예수 그리스도 당시 유대인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하가다”

(haggadah)라고 부릅니다. 이는 일정한 성경 구절이 점점 마음에 잠길 때까지 그 말씀을 아주 작은 소리로 거듭 거듭 읽어서 기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시119: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시119:27)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이렇게 행하게 되면 그 말씀이 우리의 영을 주장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성경 묵상”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불렀습니다. 읽고, 숙고하고, 음미하며, 반추(反芻)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 묵상”, “하가다”(haggadah)는 네 단계로 진행합니다. 

첫째 단계는 ‘읽는 것(lectio)’입니다. ‘읽음’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도록 우리 마음이 성령에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단계는 ‘묵상’(meditatio)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읽은 말씀을 계속 되뇌면서 그 맛을 음미합니다. 내가 되뇌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되뇜을 통해 그 말씀이 내 안에 완전히 스며들고 동화되어 그 맛을 맛보게 됩니다. 첫째와 둘째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려 나 자신을 그 분께 내맡겨야 합니다. 

셋째 단계는 ‘기도(oratio)입니다. 기도는 성경 묵상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응답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더욱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깊어지게 되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묵상(contemplatio)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네 단계의 과정을 통해 “성경 묵상”하는 것이 쉽게 들리지만 지속적으로 행하는 많은 실습이 필요합니다. 하루 이틀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성경 묵상”을 하게 되면 삶에 새로운 기쁨과 힘이 되는 감미로움을 만끽하며 하나님과 기쁨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것을 느끼지 못해 실망할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행하면 여러분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 안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일주일에 성구 카드 한 장으로 “성경묵상”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러한 “성경묵상”을 통해 여러분 안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 23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자신을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시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중동지역에서는 조요한 새벽 4시경에 양떼들이 일어나 풀을 뜯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풀이 이슬을 머금어 아주 신선하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나 11시경은 이미 태양이 떠올라 날이 아주 덥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떼가 여러 시간 동안 누워 쉴만한 그늘과 초장을 찾게 됩니다. 여러분은 양이 누워 있을 때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되새김질을 하고 있습니다. 

양은 그 위장이 두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풀들을 뜯어 먹게 되면 두 번째 위장에 저장됩니다. 그 후에 목자가 양들을 푸른 초장에 누입니다. “자, 이제 누워서 먹었던 것을 소화시켜라.” 는 뜻입니다. 그러면 양은 먹었던 것을 다시 꺼내 씹기 시작하고 그 때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양이 성장하는 것은 바로 이때입니다. 이때, 즉 조요하고 평온한 이 시간이 양에게 있어서는 가장 생산적인 시간입니다. ‘푸른 초장’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양의 되새김질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묵상’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러분은 우리 대부분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푸른 초장에 누워 묵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말씀을 연구한다는 사람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충분하게 소화해낼 시간적 여유를 전혀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하나님께 대단한 호의를 베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설교를 절반쯤 이해할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한 성도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주일날 집에 돌아와서 그 날 들었던 설교 말씀을 다시 묵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생각들을 기록해가며 영적 순례의 시간을 가지십니까? 용기를 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묵상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제가 행한 설교는 대부분 바로 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들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통찰력은 어디로부터 주어진 것일까?” 유일한 방법은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것이라고 기대가 된다면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몇 몇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바빠서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도 없고,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계시해주시는 것을 기록할 수도 없다면 이미 여러분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을 몽땅 놓치고 마는 것이 됩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기도 합니다. “수단 방법을 다해 돈을 벌라. 그리고 정직하게 쓰라.”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말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조용히 그리고 하나님과만 함께 묵상하고 나서 돈을 벌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최근 신문을 통해 전투기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투기가 너무 빨라서 그 전투기가 발사한 포탄을 추월하여 그 포탄에 맞아 격추당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랬다는 것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아주 똑같은 경우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온을 즐기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알고자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읽고 들은 말씀을 묵상하도록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자 하십니다.’(He makes me to lie down)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삶의 고통이 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하십시오. “주여, 제가 시간을 내서 천천히 묵상하겠습니다. 제가 당신께서 하나님되심을 알기 원합니다.” 이러한 “성경묵상”을 자신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권고하여 다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을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구절 하나를 읽겠습니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33-34)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세상 모든 역사는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6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음’을 의미하며, 이를 ‘하나님의 영감(靈感)’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 곧 하나님의 인격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생령(生靈), 산 존재가 되었습니다.”(창2:7) 하나님의 숨결이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들어가자 산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을 경험할 수 있으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모든 인류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삶 속에 모든 인생이 가야할 길이 있으며, 예수의 삶 속에 모든 인류가 따라야 할 진리가 있으며, 예수의 삶 속에 모든 인류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 분의 말씀을 존중하며 모든 삶에 권위로 받아들였을 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교회나 성직자 자신을 높이거나 할 때에 교회는 타락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빛을 잃고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인격이 숨쉬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올 때만 사람과 교회, 사회와 나라가 새로워질 수 있으며,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교회, 그리고 나라 백성이 구원받는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새롭게 되며 영생을 얻게 됩니다(요 3:16). 

성경은 바로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본문 15절에서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경은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책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그 분의 말씀대로 생활하시는 성도가 되시어 여러분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나라를 참된 사랑과 진리, 정의의 터 위에 세우시기 바랍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충만하여 이웃들을 구원하며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온전한 성도가 되어 모든 선한 일에 능력을 갖춘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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