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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과 사람과 하나님 (삼상 16: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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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문성의 시대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프로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성공한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를 볼 때에 기가 죽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외로 비전문가를 불러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너무나 중요하고 특수한 일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진 특별한 사람을 쓰실 것 같은데 의외로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부르셔서 사용하신다. 다윗은 왕족이 아니었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실 만큼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양을 치는 어린 목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다. 왜인가?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부르신다. 그러나 믿음의 전문가를 부르신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은 그의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다윗은 외적으로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믿음에는 전문가였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쓰임을 받았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전문가가 못되어도 좋고 전문성이 부족해도 좋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믿음만큼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만큼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다윗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사울을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보다 먼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계속해서 죽이려하고 공격하고 괴롭혔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사울 때문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신 것이다. 사울이 잘했다면 다윗을 부르시지 않았으리라.

사울이 처음 등장할 때의 모습은 굉장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머리가 그의 어깨에 닿을 만큼 엄청난 장신이요 체구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실망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사람처럼 외모와 신장을 보지 않는다”고 하셨을 것이다. 그는 체격이 좋은 뿐만 아니라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뽑혔는데도 나서지 않고 그 큰 몸을 마구 사이에 숨기고 있었다.사무엘은 이런 그를 보고 “하나님께서 뽑으신 사람을 보라.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사람은 없다”고 했고 백성들은 “임금님 만세”를 외치며 열광했었다. 

사울의 왕으로서의 시작은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는 참 괜찮은 지도자였다.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만하지 않았다. 여전히 늘 하던 농사일을 계속했다. 왕의 자리를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왕이라고 해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백성들처럼 일을 계속했다.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를 구하러 가자고 그가 나섰을 때 백성들은 한 사람도 우물쭈물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첫 번째 군사활동 즉 암몬에게서 길르앗 야베스를 구하는 일은 대단한 성공이었다.

또한 그는 관용과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는 충성스런 무리들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에 전에 그가 왕으로 뽑혔을 때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기쁘고 좋은 날이니 그런 일을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그런 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카리스마와 매력을 지닌 사람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점점 일 자체에 빠져들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그는 두 번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한 번은 블레셋과 전쟁을 하러 나가면서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일어났다. 그는 사무엘이 제사를 집례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약속한 일주일이 다 되도록 사무엘은 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못해 왕인 그가 대신 제사를 집례했다.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그리고 기다리다 지쳐서 흩어지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막 제사를 끝내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했다. 조금만 더 기다릴 것을.

또 한 번의 불순종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였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부터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아말렉을 이참에 완전히 전멸시키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람이건 짐승이건 모든 생명체를 죽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는 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살지고 아름다운 양과 소를 죽이지 않고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의 두 번의 불순종은 겉으로 보기에는 죄가 아니었다. 부도덕하거나 부정한 일이 아니었다.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사리에 맞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백성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 노획물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사기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두 번의 불순종이 모두 제사 즉 예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이 그렇게 불순종하게 된 것은 그의 관심이 옮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관심의 초점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단결하기 위해서 제사라는 방법을 이용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양과 소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했고 하나님의 법도를 어겼다.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버렸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 선택에 따라 왕이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제사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그의 일과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다. 

사울이 처음 부름을 받을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그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되었고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예언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는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고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게 되었다. 왕이 되기 전에 예언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면서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일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예언자 즉 선지가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즉 그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것이 사명이었다. 그런 그가 왕이 되고 일에 빠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엉망이 되어 버렸고 급기야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된 것이다. 일에 빠지고 사람에게 빠지면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우리는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일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성령충만이 무엇인가? 성령충만이란 하나님의 일을 맡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라고 사명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4:18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름부음은 능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맡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사울의 이런 모습은 다윗이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과 비교가 된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제일 먼저 한 것은 일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는 사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의 심복이 되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지만 더 이상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으로 그에 맞게 행동하지 않는다. 자신이 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자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게 되자 이제는 악령이 그를 주장하고 부리게까지 되었다. 

사울도 일을 했고 다윗도 일을 했다. 무엇이 차이인가? 무엇이 사울의 문제였는가? 사울은 일과 예배가 분리되어 있었다. 왕으로서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아니 왕으로서의 일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게을러졌고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는 오직 왕의 일을 하는데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았고 그 일에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고 일했다. 전과 똑같은 일을 했어도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그가 하는 일은 더 이상 인간적인 일이거나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다. 다윗에게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일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다윗은 그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아직 정식으로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거의 이십여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동안 하나님은 그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고 준비시키셨다. 왕이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만드셨다. 사울을 훈련조교로 사용하셔서 그 일을 하셨다.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나쁜 왕을 섬기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내 마음에도 들지 않는 사람을 섬기라고 하셨다. 언젠가는 내가 차지해야 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쁜 왕을 섬기라고 하셨다. 그가 악령에 사로잡혀서 고생할 때 찬양으로 악령을 물리치고 그의 심령을 고쳐주는 일을 했다. 내 마음에도 들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옳지 않은 사울을 자신의 왕으로 섬기라고 하신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나쁜 왕도 섬길 줄 알아야 한다. 분명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옳지 않은 사람과도 함께 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니 그런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섬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도 들지 않는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을 섬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어떤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있고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좋은 일군이 된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두 번째 일은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히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즉시 왕으로 인정받거나 대우받지 못했다. 그때부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남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도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남을 다스리려 하기 전에 먼저 섬기는 일부터 하라고 하셨다.

인도 캘커타에서 빈민들을 위해 봉사하던 테레사수녀에게 누가 물었다. “당신은 잘 사는 사람이나 편안하게 사는 사람 혹은 높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시기심이 생기지 않나요? 당신은 이런 삶에 만족하십니까?” 그는 유명한 대답을 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고 사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왜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기는가? 왜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뻣뻣하게 서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며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섭섭할 일도 없다.

미국의 닐슨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챨스 콜슨이란 사람이 있다. 워터게이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생활을 하다가 회개하고 교도소선교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의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테레사 수녀가 미국 국회를 방문해서 연설을 했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연설 때에 연설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명연설을 하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한다. 그런데 그날은 테레사수녀가 연설을 마쳤는데도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침묵만이 감돌았다고 한다. 숨막히는 감동과 전율이 그들의 가슴과 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박수를 칠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테레사수녀가 마지막에 던진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으신 후에 왕궁으로 들어가서 사울을 섬기라고 하셨는가?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누구든지 섬김을 받기 원한다면 남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하고 첫째가 되고저 하면 먼저 낮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다스리는 것과 섬기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남을 잘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잘 다스릴 줄도 안다는 것이다. 남을 섬길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섬김과 다스림은 똑같다. 

다윗은 처음부터 섬기는 일을 했기 때문에 다스리는 일도 잘할 수 있었다. 사울은 왕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마저 불순종하는 교만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다스리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체육대회를 하는데도 구의원, 시의원 후보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저마다 자신이 가장 훌륭한 일군이라고 자부하고 선전한다. 선거 때마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선거 전에는 무척 겸손한 사람들이 당선되고 나면 얼마나 달라지던가?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려는 자세들이 있는가?

이번에 교회에도 일군들을 세웠다. 항상 임직자 훈련을 할 때마다 훈련을 많이 시킨다고 힘들어들 한다. 앞에서는 말을 못해도 그럴 것이다.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고 사업을 하면서 그 훈련을 다 받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끝난 후에는 모두들 좋았다고 하고 보람이 있고 얻은 것이 많다고들 한다. 

임직자 훈련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섬김과 순종이다. 특별히 매주 한 번씩 화장실청소를 하게 한다. 이 일을 하면서 섬기는 자로서의 겸손한 자세를 배우고 확립하게 된다. 청소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 다 같이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은 교회의 직분은 다스리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라는 것이다. 임직을 받고 난 후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혹 잊어버리거나 약해질수도 있겠지만 바라기는 임직 후에도 오랫동안 아니 끝까지 언제나 섬김으로 다스리고 섬김으로 일하는 겸손과 순종의 자세를 잘 지키기 바란다.

사울과 다윗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좋은 일을 맡았다고 저절로 좋은 일군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울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왕이 되지는 않았다. 일이나 직분이 좋은 것이라고 해서 그 일을 맡으면 저절로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군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을 기억하라. 

그러면 왜 사울은 실패했고 다윗은 성공했는가? 사울은 왕이 된 후에 그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위해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직업이나 하는 일을 물어본다. 그래서 그것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고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경찰, 군인, 교사, 사업가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이 그 사람을 가리기도 한다. 특별히 교회생활에서는 우리가 가진 직분이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감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목사라는 직분으로, 장로와 권사와 집사라는 직분으로 자신의 속모습과 진정한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사람들도 그렇게 보아주고 자신도 또 그렇게 속는다. 

그러나 기억하라. 직분과 직책이 나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직업과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기름부으심의 목적을 진정으로바르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사울처럼 그 맡은 일과 자리 때문에 오히려 실패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범죄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일에 빠지지 말고, 자리에 빠지지 말고 사람에게 빠지지 말라. 일 때문에, 자리 때문에, 사람 때문에 하나님을 놓치지 말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삶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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