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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살아야 진짜 믿는 것이다 (히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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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살아야 진짜 믿는 것이다 (히 11:1-6)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며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귀하고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지난 10장에 걸쳐서 계속하여 이 땅에 있는 율법과 성전과 대제사장은 그림자일 뿐이고 진짜는 하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이 있고 거기에 영생이 있으며, 하늘에 진짜 성전이 있고, 하늘에 대제사장인 주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심으로 율법은 이제 우리 마음에 새겨졌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3절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보지 못하지만 분명히 믿는 믿음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봄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반드시 온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이었지만“속죄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니다. 성경책과 설교 중에“용서한다!”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래도 끊임없이“용서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이래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쉽게 용서받으면 죄를 조장하는 것입니다.”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용서한다.”는 말씀을 이해하고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용서한다’는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믿겠습니다.”그리고 꼬꾸라졌습니다. 그 때 정말 나는 죽었습니다! 내 상식, 나의 지혜, 나의 주장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제서야 죄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았음이 믿어졌습니다. 죄짓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너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
믿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잘못된 속죄의 확신도 있습니다. 죄사함받았음을 믿는다 하면서도 죄에서 떠나 거룩한 길을 가지 않고, 용서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지 않는 사람은 거짓 확신입니다. 
그것은 교리 지식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믿음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거짓 믿음에 속고 거짓 믿음만 보고 살았으니, 믿음 귀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가장 놀라운 변화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에녹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참 부러운 사람입니다.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간 것도 그렇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이 더욱 부럽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가장 성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

도대체 무엇을 믿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계시다!” 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정말 그럴까요? 믿어지지 않는 분은 주위에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왜 그렇게 기뻐하시는지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과 교제가 안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고 인식할 수 없으니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 관계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에게 나아가며 그에게 말하며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의 임재를 느끼며 그의 영광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다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찾는” 이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찾아내는”이라는 말입니다. 발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되, “나도 하나님이 계신 것은 믿어요”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니 “나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까? 역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갈망하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 말입니다. 무슨 상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 너무나 황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제게 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찾는 사람”이 곧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지금 잘 하고 있구나!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세상 일로 바쁘니, 천천히 영성일기도 써 보고, 나중에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정말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과 하늘에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나누는 것 사이에는 불과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막연하게 믿지만 죽고 나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교제하는 그대로 죽고 난 다음 하늘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운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5분 정도만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는 곧바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심으로 생깁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믿음이 있나 없나?” 하는 것은 “예수님이 마음이 계시냐 아니냐?”를 점검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님이 곧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안에 믿음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순회선교단에서 순회선교사 훈련을 하고 수료식때 김용의선교사님께서 떠나보내는 가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떠나보내기 어려우시겠지만 가장 안전한 주님 손에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어디가 안전한 것입니까? 한국은 안전하고 선교지는 불안한 곳입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같이 사는 것 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달라도 이렇게 다릅니다. 이런 차이가 어떻게 생깁니까? 예수님과의 친밀함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생긴 믿음이어야 진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셔서 그를 의인이라 인정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하였는데,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정성의 차이입니까? 제물의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제물을 바쳤지만 가인은 자기 마음대로 정한 제물을 바쳤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과 친밀하게 되면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2절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다” 는 구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살아지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살아져야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할 때,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불평불만이 생기고 좌절감이 오고 피로감이 올 때, 이 국면을 전환시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85세가 된 갈렙입니다. 다들 나이가 45세 이하입니다. 45세가 넘은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 없었습니다. 85세 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난공불락의 땅 헤브론 산지를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것입니다.

수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갈렙이 무모했던 것입니까? 실제로 무모한 일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아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다”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십니다. 
이 고백 때문에 갈렙은 무모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은 결코 무모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도 환경도 바꾸어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처럼 중요한 문제가 없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에 대한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재봉틀을 도둑맞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상재 선생께서 그 며느리를 향하여 꾸중을 하였답니다. "너는 나라 잃고도 그렇게 울지 않더니 재봉틀을 잃고 우느냐!"

여러분, 정말 답답하고 고통스럽고 울고 싶은 일이 많겠지만, 무엇이 정말 답답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믿으면서도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안돼, 못해”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만 불쌍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앞 길도 가로막고 좌절시키고 맙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진짜 믿는 것입니다. 

오늘 당회가 10년 째 당회입니다.
지난 10년 저는 목회하면서 계속하여 믿음의 실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혼자 있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래서 영성일기을 쓰기까지 왔습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자!’사람이 많이 모여도 하나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 회의 때 십자가를 돌리기도 하고. 종을 갖다 놓기도 했습니다.
‘교회부터 재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자’부임할 때 부터 교회는 빚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살 길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반대 정신으로 살자.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 우리 교회는 빚 많기로 소문났는가? 사랑으로 소문났는가? 추수감사헌금 재난 구호비로 맥추감사헌금은 분립개척비로, 성령집회 헌금은 어려운 교회 돕기 위하여, 
그러다 보니 올해 교회 재정이 적자가 되었습니다, 소액이지만 적자! 
난감하였습니다. 나누어주니 큰 부자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큰 기쁨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계속 움켜쥐고 빚만 갚았다면 이렇게 기뻤을까요? 기쁨은 돈을 모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감사, 진짜 믿음으로 살았다, 교회도 자아가 죽었다! 물 위도 걸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도와달라는 교회, 선교사, 어려운 이웃, 제대로 돕지 못했습니다. 가진 것이 한계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진심을 아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주여, 그리 받아주시면 충분합니다.

처음 교회를 담임했을 때,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세요! 기도는 했지만 믿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 표어를 붙여 놓고 소원만 간절했을 뿐이었습니다.
믿어졌다면 머리가 이렇게 희어지지 않았겠지요!
롬 15:18 “그리스도께서 나로 말미암아 역사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아니하노라” 하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10년 믿음의 실험을 하면서 이제는 믿어집니다.
주님이 친히 이 교회 주인이심으로 무엇 하나 제 마음대로 못하겠습니다. 주님은 계속하여 저를 움직이십니다.

믿음은 변합니다. 자랍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믿음은 사라집니다. 굳어버립니다. 병듭니다.

에녹이 살았던 시대와 현재를 비교하면 우리가 훨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좋은 때에 살고 있습니다. 에녹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성령님이 사람에게서 떠나고, 노아 홍수 심판이 시시각각 다가올 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기록된 성경이 있고, 우리는 죄의 권세를 이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도 알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에녹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에녹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 하나 바꾸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여기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결코 적당히 믿을 수 없습니다. 적당히 믿는 것은 안 믿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음입니다.

살아지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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