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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 (창 6: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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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 (창 6:9-23)

(창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10)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창 6:11)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창 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창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창 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창 6:16)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 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창 6:20)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창 6:21)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창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 헬렌 헤이즈가 열여섯 살 때 워싱턴의 어느 극장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제 1차 세계대전 참전국이자 패전국인 조국 오스트리아를 위해 모금 연주차 미국에 왔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마침 헬렌이 무대를 서는 극장에서 연주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당시 윌슨 대통령 부부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 인사들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연주회에 지각하는 바람에 윌슨 대통령이 앉아 있던 뒤쪽의 악사 대기실로 안내되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 반주자에게 그만 독일어로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경호원들은 독일어를 듣고 대통령을 암살하러 온 사람으로 착각하여 그를 체포했고 결국 연주회는 오해가 풀리기까지 한 시간이나 늦어졌습니다. 
  
일단 무대에 나온 그였지만 연주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 멍하니 있는데 무대 옆 커튼 뒤에서 환한 눈망울로 지켜보던 한 소녀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헬렌 헤이즈였습니다. 그제야 한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린 관객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바이올린을 들고 대기실로 갔습니다. 잠시 후 헬렌이 들어오자 그는 헬렌만을 위해〈푸어 버터플라이〉를 연주했습니다. 밖에서는 관객들의 앙코르 박수가 쏟아졌지만 크라이슬러는 자신에게 큰 기쁨을 준 헬렌을 위한 연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크라이슬러가 헬렌 헤이즈 한사람을 기쁘게 해 주려고 연주한 것처럼 하나님 한 분의 기븜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사람은 없습니까?  많은 사람의 박수와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쁨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할 수는 없습니까? 
  
노아의 때에 온 세상은 도덕적으로 파탄상태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아닌 자신의 기쁨과 쾌락만을 추구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앞에 무서운 죄가 되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며 근심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게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실망하셔서 더이상 죄의 확산을 막고자 인류를 모두 멸망시키기로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단 한 사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창 6:8) '그러나 노아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각하셨습니다. "이 친구가 나에게 기쁨을 주는군! 이 친구를 통하여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근심과 실망을 안겨줄 때 딱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만족과 기쁨을 구하는 일에 열심일 때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고 기쁨을 안겨드리는 유일한 사람 그는 노아였습니다. 
  
노아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고  하나님께 기쁨을 안겨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할 때 기쁨을 드리게 됩니다.(9) 
  
노아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노아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성경은 노아를 가리켜 압축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창 6:9)   '그 당시에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호 6:6)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데 힘쓰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합니다. 창 5 23절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증거합니다.  동행이란 하나님과 함께 데이트하는 것입니다. 연인들이 왜 데이트합니까? 사랑하니까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을까.. 한 번이라도 더 만날까..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습니까?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육적인 삶에 빠져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에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영적인 삶은 사라지고 점점 육체만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악할 뿐 아니라 마음의 생각도 악해져만 갔습니다. 그러한 타락한 분위기는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졌습니다. 모두가 치우쳐 죄를 즐기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역겨운 삶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노아는 타락한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열심이었습니다. 쾌락에 눈이 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슴을 듣는 것을 즐기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시킨채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노아의 시대와 너무나 닮은 시대입니다. 얼짱, 몸짱 하며 모두들 육체의 겉 모습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영적인 존재가 되기 보다는 육적인 존재로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점점 사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하고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어떤 무서운 범죄도 서슴치 않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날로 이기적이 되어 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두가 성적 매력을 쫓고 육체적인 만족을 쫓으며 이기적인 욕심을 따르며 정신이 없지만  하나님께 집중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러분도 노아처럼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하나님과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습니까?  노아가 타락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들과 구별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며 만족한 것처럼 여러분도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신뢰할 때 기쁨을 드리게 됩니다.(히11:7) 
  
노아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던 다른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속에서도 노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히 11:7에 다르면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을 지시하셨을 때에, 경외심을 가지고 방주를 지어서,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른 의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슴이 임했을 때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당시 노아에게 쉽게 이해되거나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아직 한번도 비를 본 적이 없습니다.  홍수이전에는 이 땅의 모든 물은 하나님이 지면의 샘을 터트려 주셔서 존재하지 비가 내려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한번도 무지개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서 배를 만드는 것을 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경험적으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되거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음에도 믿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에서 출발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슴이 임했을 때에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슴대로 이루어질 것을 의심치 않았으며 즉각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믿음, 하나님은 어떤 불가능해보이는 일도 하시려고 하면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는데 12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해가 거듭되어도 비가 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미쳣든지 망령이 든 것이라고 수근거렸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전생애를 낭비하고 있다고 수근거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노아는 믿음을 접지 않았습니다.  그런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신뢰성 문제" 입니다. 듣는 자가 설교자에 대해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신뢰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누가 자기 목사님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듣더니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집사님,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우리 목사님이 도둑질하러 가자고 하면  따라가서 망 볼 겁니다."   이 정도 신뢰만 있다면 사단이 틈을 결코 찾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설교를 해도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불신과 의심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여야 할 대상에게조차 불신과 의심이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많은 축복들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 불신은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불신과 의심은 영혼을 병들게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것, 즉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대속, 미래에 임할 예수님의 재림, 성도의 부활, 하나님의 심판, 성령의 역사같이 중요한 것들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불신이나 의심에 사로잡혀 있는 이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슴앞에 온전한 믿음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쁨을 드리게 됩니다.(22)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노아에게 "네가 편한대로 대충 배를 만들어라"  하시지 않고 방주의 크기, 모양, 재료 방법등을 상세히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중에 들일 짐승의 종류와 수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슴에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22)   노아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해 순종했습니다. 순종하는 노아를 보시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순종이란 무엇입니까? 진정한 순종은 명령앞에 아무 이의를 달지 않는 것입니다. 명령에 아무 조건도 달지 않는 것입니다. 핑계거리를 찾지 않고 즉시 지체하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잇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계산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이든 망설임없이 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의 배경을 설명하시거나 명령의 이유에 대해 말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해가 안되더라도 우선 순종하고나면 나중에 다 이해가 됩니다.  사실 순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이해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형성되면 이해가 안되어도 무조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 나를 위한 일이고 나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면 절대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보다 하나님이 더 지혜롭기에 더 나은 판단을 하시고 그것이 최선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불신이나 의심이 가득하든지, 또는 사랑이 식었기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쉬운 것들만 순종하고 희생을 요하거나 위험 부담이 큰 명령은 외면합니다. 일테면 '교회는 나가겠지만 헌신은 하지 않겠다.' '성경을 읽기는 하겠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 '예수는 믿겠으나 옛습관은 버리지 않겠다'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려면 부분적으로만 말고 온전한 순종을 해야 합니다.  
  
다윗은 순종의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시 119:33)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의 아버지께 순종을 통해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왜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까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유럽에서 큰 성공을 한 로스차일드가 미국에 진출하려고  어느 날, 한 명의 부하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미국에 지점을 낼 생각인데 준비 기간이 얼마면 되겠나" 심각한 얼굴로 생각하더니 부하가 말했습니다."10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결정되면 다시 연락하겠네."  또 다른 부하를 불렀습니다. "저는 3일 후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온 사람은 "지금 곧 떠나겠습니다." "자네는 이제 샌프란시스코 지점장일세. 내일 가게." 그의 이름은 줄리어스 메이. 그는 샌프란시스코 최고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기쁨을 구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기쁨을 드리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순수한 사랑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말슴을 절대 신뢰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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