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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외치는 자의 소리 (마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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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 (마 3:1-12)

교회력으로 볼 때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절기로서 성탄절을 기점으로 4주 전 주일부터 시작해 성탄절까지의 기간입니다. 

대림절은 특히 예수님의 세 가지의 오심을 강조합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오심과 각자의 삶 속에 찾아오심과 역사의 마지막에 다시 오심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항상 새롭게 세워가야 합니다.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며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살펴보면서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대림절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사복음서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인 세례자 요한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명은 메시아의 오심을 ‘증언하러 왔으니’(요 1:7)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사도행전에서 가룟 유다 대신 사도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택할 때 그 조건이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행 1:21) 함께 했던 자로 제한하는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시작점이 세례자 요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500년 동안 마카비를 중심으로 한 70년간의 독립 기간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은 중근동 지방에 있던 열강들의 속국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538-331 BC)이 지배하였고 이어 헬라제국(331-134 BC)이 지배하였고 예수님이 오실 때에는 로마제국(63 BC 이후 예수님 때까지)이 지배하였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약속된 메시야가 속히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대통령이 한번 출동하려면 경호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떨며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는 역사적인 사건을 맞이하려면 얼마나 거창하게 준비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합니까?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 땅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신 사실 조차 알지 못하였습니다. 유일한 움직임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삼으신 세례자 요한의 외침뿐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등장 

본문은 “그때에”로 시작됩니다. 정확한 시간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장과 2장에는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 때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헤롯 대왕의 박해를 피해 예수님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돌아와 갈릴리 나사렛이란 지방에 정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지 삼십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이제 예수님은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사역을 하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터나, 동네 어귀나, 회당이 아니라 광야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단순한 모래사막이 아니라 잡초가 여기저기 널려지고 바람이 부는 황량한 언덕으로 되어 있습니다. 광야 그 자체는 사람 살 곳이 못되지만 이스라엘에 있어 광야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인 요소들이 깎여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참되게 예배하는 백성으로 바뀌는 훈련장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광야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도망자로서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니라” 광야에서 연단을 받은 출애굽 제2세대가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감으로써 아버지세대가 못 이룬 꿈을 이루었습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지내며 사역을 재개했고, 예수님은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며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바로 그 광야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 

1) 말씀으로 전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입술의 고백뿐만 아니라 삶의 변화까지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단순히 영토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로부터 정치적인 회복을 기대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회개하라”는 현재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번 회개한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계속 죄를 짓기에 계속해서 회개하라고 합니다. 더구나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긴박감을 가지고 회개에 힘쓸 것을 촉구합니다.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로 오시기 전에 세례자 요한이 약속된 메신저로 먼저 등장하여 말씀을 선포합니다.   
  

2) 삶으로 전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면모를 보면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요한이 입은 약대 털옷은 정교하게 지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낙타 가죽을 벗겨서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허리에 가죽 끈으로 적당히 둘렀을 뿐입니다. 그가 먹던 메뚜기와 야생 꿀은 그 당시 음식을 제대로 구할 수 없었던 서민들이 광야에서 얻던 것들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메뚜기를 잡아 날로 먹었을 것이고 야생 꿀을 떠서 먹었을 것입니다. 잠은 대충 이슬이나 피할 정도의 굴 같은 곳에서 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은 그가 입은 복장과 그가 먹는 음식과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버릴 것은 버리면서 사명에 충실한 요한의 모습이 도전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세례자 요한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보여준 simple life의 정신은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먹고 사는 데만 관심을 가지거나 자기의 만족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나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희생과 결단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광야의 삶’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광야의 삶’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엄청난 반응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기까지 이스라엘에게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말라기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을 드리면서 온전한 것을 바치자니 아깝고 어차피 죽여서 바칠 것인데 아무것이나 드리면 어떠하랴 하면서 눈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렸고 제사장들도 이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온 나라가 총체적으로 부패했으니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암 8:11,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스라엘이 누리는 복중의 하나가 제사장에게서 율법을, 선지자에게서 계시를 듣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야 들을 수 없는 영적인 암흑시대가 왔습니다. 당시에 유대 사회는 정치적으로 로마제국의 속국이요, 경제적으로는 과도한 세금 징수로 인하여 살기가 힘들었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된 종을 통하여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사막의 생수와 같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험한 광야 길도 마다 않고 요한에게 나아왔습니다. 수도인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주변에서 다 요한에게로 몰려들었다고 마태는 기록합니다. 그들은 요한에게 나아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그 당시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할 때 강에서 몸을 담그며 상징적으로 행하던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러한 의식을 행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에 갈급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자들에게는 그 말씀이 달고 마음에 감동을 받고 때로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며 찔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배부르거나 온갖 세상의 염려와 근심, 탐욕으로 가득할 때에는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고 몸은 여기에 있어도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영적으로 황폐하게 되는지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책망 

오랜 공백을 깨고 나타난 계시의 전달자인 세례자 요한을 사람들은 메시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세례자 요한이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서 광야의 예언자로 활동하였기에 그의 출현은 가히 전 유대 계층에 특히 성전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지만 그 질문은‘네가 메시아냐?’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소개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입니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이 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삶은 형식적으로 흘러버리고 율법대로 살지 못한다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기는 잘하고 남들에게 존경받기는 좋아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자기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그룹으로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며 이익을 챙기던 그룹이었습니다. 성전에서만 쓰는 화폐를 만들어 로마 돈과 바꾸어주는 과정에서 이익을 챙기고 자기들이 관리하는 짐승만을 제물로 바치도록 강요하며 비싸게 팔아 엄청난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요한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자기에게 온 무리들을 사단의 하수인들로 몰아세웁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전통과 형식을 더 중요시하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부당함을 지적하고 그들의 위선과 교만을 가차 없이 꾸짖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에게 지금 당장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면서 임박한 종말론적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열매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의 조상이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에 속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기보다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조상이라는 긍지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신앙생활을 잘 한 것이 우리의 신앙성장에 좋은 토양을 제공하지만, 과거에 은혜 받았던 것만 간직하고 현재의 신앙생활을 게을리 한다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지금 우리 각자가 주님께 회개하고 우리의 속사람이 변하여 하나님께 헌신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겸손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로 받는 주목이나 인기에 우쭐대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신명기 18:15에서 모세가 약속했던‘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합니다. 즉 자신은 길이 아니라 길을 예비하는 자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외치는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죄를 씻기는 물 자체라 하면서 자신과 예수님을 구별합니다. 

자신이 세례를 주면서도 예수의 성령세례에 대하여 가르쳤고 능력과 신분 면에서도 예수님은 자기와 비교할 수 없는 분임을 분명히 합니다. 자신은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낮춥니다. 당시에 종은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주인의 신발 끈을 풀고 발을 씻겼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을 신랑으로 자신을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로 비유하면서 도리어 신랑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다고 고백을 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자기에게 쏠렸던 관심이 예수님께로 쏠리니 섭섭한 마음이 생길 법도 하지만 요한은 변함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성숙한 신앙인의 겸손한 고백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자신의 역할이 끝나자 모든 영광은 주인공인인 예수께로 돌리고 엑스트라의 역할로 만족하고 무대의 뒷면으로 사라지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큰 상급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역을 할지라도 결국 영광을 받으실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십자가 뒤로 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 철저하게 자기의 위치와 사명을 깨닫고 짧지만 굵게 살다 간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의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역의 길이 열리고 메시야로서 공생애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겸손한 종들의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합니까? 

1)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서들마다 서두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기술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새로운 구원의 시작이요,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구원자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분은 또한 말씀, 생명, 빛, 은혜, 진리라고 합니다.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다시 한 번 묵상해보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베푸신 은혜에 기뻐하며 감격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임박한 진노 (7), 도끼 (10), 불 (10, 11, 12), 키 라는 단어를 통하여 심판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구원자이시지만 장차 오실 주님은 심판주로 오십니다. 추수하는 농부가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떨며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듯이 심판 날에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불에 던지우리라 (10),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 (11),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2) 세 번이나 불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구원의 문이 닫힙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대림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오신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무엇인가 잘못 되었으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영적 각성이 필요하고 돌이킴의 회개가 필요합니다. 본래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아는 ‘돌이킴, 의식의 변화’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자세의 변화,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의 가슴 속에 메시아 도래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고 새로운 출애굽의 역사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불같은 말씀을 증거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는 말로만 아니라 삶을 통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부끄러운 습관들과 죄의 문제들을 적당히 포장하면서 선행이나 신앙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잘못된 자리와 습관으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 앞에서 회개의 열매가 요구되는데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일에만 전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두벌 옷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삶들과 나누고 먹을 것이 넉넉한 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나누라고 하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자함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세리들과 군병들도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계명들을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대림절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금년에도 Food Bank Drive를 통하여 community를 섬겼지만 그 섬김과 나눔의 지경이 내년에는 더 넓어지기 원합니다. 

3) 자신의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말씀이자 참 빛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고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자였습니다. 요한의 사역은 백성들로 하여금 오시는 메시아를 향하여 마음을 열어 반응하도록 하나님의 구원의 도래를 위해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와 같이 몰려들어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죄를 자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여깁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을 과시하면서 얼마든지 우쭐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설 자리를 잘 알았습니다. 자신은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의 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모여든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능력 많으신 이',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사역은 언제나 예수님을 가리켰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의 길을 준비했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낮추고 겸손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사명과 본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세례자 요한처럼 죄악으로 물든 시대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길이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 자신이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로 나아가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특히 우리 가정과 사회, 국가와 민족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입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서 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사명을 알고 분명한 인생 목적을 바라보는 자만이 힘든 일에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례자 요한과 같이 자기를 알고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사명에 충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며 세례자 요한과 같이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준비한 사역은 죄사함에 이르게 하는 세례였습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개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세례자 요한이 되어 여러분들의 말과 삶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유대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던 세례자 요한처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는 메신저로서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 때, 헌신할 사람을 찾으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기꺼이 나가지 않으시렵니까? 그러려면 주안에서 달라진 우리의 모습을 먼저 보여 주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경건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민감하게 볼 수 있는 영안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위로를 주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직분보다 중요한 것이 사역입니다. 직분이 있어도 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새해에는 목장과 선교회와 사역부서에서 다른 교우들과 하나가 되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대림절에 이미 오신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 깊이 모셔 드립시다.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삶 속에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거두면서 가정과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세례자 요한과 같이 겸손하고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능력 있는 종들, 하나됨을 이루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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