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마 6:8-10)

첨부 1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마 6:8-10)


우리교회 건물은 그야말로 반석 위에 세워졌습니다. 아니 반석 안에 세워졌습니다. 바위를 30미터 나 파 내려가서 그 속에 건물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교회보다도 든든하게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반석과 같은 기초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흔들림 없이 든든하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 16:1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를 반석과 같은 든든한 기초 위에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은 ‘이 반석’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반석은 다름이 아닌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고백을 반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교회를 반석과 같은 든든한 기초 위에 세우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반석과 같은 든든한 기초는 다름 아닌 올바른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올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질 때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도 올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질 때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2세기 후반 그러니까 교회가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0년이 조금 넘은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120여년 역사를 가진 오늘 한국교회와 비슷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교회를 강열하게 뒤흔드는 이단들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단이 ‘영지주의’였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이 지상에 더러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몬타니즘’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고,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두 이단은 당시 대단한 기세로 퍼져갔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심각하게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이 때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이단들과 맞서고 흔들리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효과적으로 이단을 물리치고 교회를 든든하게 세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도 고백하는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입니다.

사도신경이란 사도들로부터 전수되어온 올바른 신앙고백이라는 뜻입니다. 사도들로부터 배워서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해 온 신앙고백의 내용들을 체계화하고 정리한 신앙고백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도신경은 이때로부터 2000년 간 교회를 반석처럼 든든하게 지탱해 준 기초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있는 그대로를 믿고, 그대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교회가 올바른 믿음 위에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믿음 위에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이단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근자에 전국적으로 ‘신천지 이단’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같은 이단들도 극성입니다. 이런 이단들은 정직하게 사도신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사도신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그대로 믿고 또 그대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내용 가운데 첫 번째 알고 고백해야 할 내용이 이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특권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일 뿐입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을 부를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참 어색합니다. 아직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려니까 아버지가 아닌 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 멋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사정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갈 4: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담대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담대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면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버지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이 정말 큰 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얼마 전 새로운 CCM 곡 하나를 듣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그 후로 자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곡이 바로 강명식의 ‘하나님 아버지’라는 곡입니다.

하나님 제겐 참 두려운 게 많습니다. 잘 모르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부끄러운 일은 헤아릴 수도 없고 지치고 힘들 때에도 그 때도 
의연한 척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좋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다행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 깊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서 참 좋다는 간증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1.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고전 8: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그리고 약 1: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이 말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서 이렇게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좋은 것들을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동양사상에서는 예로부터 ‘부생모육’(父生母育)이라 하여 자녀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태어났고, 어머니는 길러주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존재는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는다고 생각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姓)은 아버지의 것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 1:2 이하를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라는 첫 번째 의미는 자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여기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과학을 통해 혈통의 의미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했던 혈통이라는 개념이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말한다는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의 DNA를 자녀들이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 1: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께서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유독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는 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닮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닮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의 속사람 가운데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이점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누구시고 또 우리는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눅 15장을 보면 소위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낯선 땅에서 가진 재산 다 탕진하고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자식 생각에 밤잠을 잘 수 없습니다. 이제나 돌아올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립니다.

눅 15:2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저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가 기다리다가 저 멀리 그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부둥켜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잘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품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아버지를 실망시켜드렸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아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을 용서했고 또 용납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이 일로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 소위 ‘탕자’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원래부터 아들을 사랑했지만 아들은 그 사랑을 모른 채 아버지 품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품을 떠나 고생하다가 이제야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제 둘째 녀석은 어려서 병치레를 했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되서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아침 일찍 그 어린 것을 수술장 안으로 들여보내야만 했습니다. 아이를 들여보내고는 수술장 앞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제 평생 그토록 마음이 저미도록 아팠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 때 차라리 내가 대신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구나. 내가 아버지구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죄로 인한 고통을 겪게 하셨고, 죄 때문에 죽어야 할 그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눅 11:11-13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 자녀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실 뿐 아니라 가장 귀한 성령까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점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 1: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시라면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공경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라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공경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엡 6: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골 3: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려서부터 바다를 정복할 꿈을 그리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평생 뱃사람으로 살려고 준비해 왔습니다. 어느 날 큰 선박회사에 취직해서 먼 나라로 항해를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짐을 배에 싫고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어머니가 눈물로 만류를 하는 것입니다. 청년 워싱턴은 어머니의 말씀을 어길 수가 없어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행해 계획을 포기하고 뱃사람으로 살려던 모든 꿈도 접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워싱턴의 손을 잡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는 복을 받을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들려주며 위로 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지원을 받은 워싱턴은 지도자로 잘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가 큰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려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공경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공경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아버지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고백이 우리 신앙의 든든한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올바른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삶 속에서 체험하면서 마음과 입술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우선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