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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는 히스기야 (사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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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히스기야’ . com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4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38;1-6)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여주는 잘 알려진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는 세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인생에는 불행이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가 만능 열쇄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의 생활이 곧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계적인 명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시력이 나빠서 연주 때마다 몹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외워버렸습니다. 이것이 습관화되어졌고 오케스트라 특성상 조화를 이뤄야겠기에 다른 파트 악보까지 모조리 외워버렸습니다. 한번은 연주를 목전에 두고 지휘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득이 대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지휘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의논 끝에 악보를 모조리 외우고 있는 토스카니니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어렵지 않게 모든 곡을 잘 소화하여 연주를 마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스카니니가 세계적인 명지휘자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훗날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나쁜 시력이 나를 명지휘자로 만들어 주었다.”   아멘???

 성도여러분, 인생에는 불행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히스기야는 선한 왕이었고 앞선 왕들이 세운 우상을 파괴하고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특별히 바로 앞 37장에서 앗수르 군대 산헤립 장군의 18만 5천명 적군을 기도(祈禱)로 격퇴시키는 놀라운 기적도 체험하였습니다. 이제는 좀 안심하고 편안히 살 수 있으려니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왕에게 죽음의 병이 찾아왔습니다. 왕의 주치의도 희망이 없다고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종인 이사야 선지자 마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합니다. 이때 왕의 나이 39살 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사건을 두고 “그 때에”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나라의 혼란은 평정되고 외세는 물러가고 이제는 편안히 쉴 수 있으려니 할 때에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 이 시점에 고난이 와야 합니까?  물론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나의 잘못,  나의 실수,  나의 죄가 원인이 됩니다. 게으른 사람에게 병이 오고, 공부 안 한 학생이 원하는 대학을 못갑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욕심이 많아서 사업이 부도가 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 인과율(因果律)이 인생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히스기야 왕처럼 선한 사람에게 이토록 좋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의인 욥이 모든 재산을 하루에 다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10자녀가 급사하고, 자기의 몸조차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에 걸리지 않습니까? 나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행은 나를 찾아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헤롤드 쿠시너(H.S. Kushner)라는 사람이 쓴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쿠시너는 착한 사람이었고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로서 모든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3개월 된 어린 아들이 시름시름 앓습니다.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早老症”이란 것이었습니다.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늙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살이 되기 전에 팔순노인처럼 늙어 버리고 더 이상 세상에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이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며 오랜 시간을 씨름하게 됩니다.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① 인생의 모든 고난은 나 혼자 당하는 것 아니다.
② 이 땅에 우연한 일은 없다.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는 용납이 안 되    고, 이해가 안 되지만 이 고통 가운데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다. 
③ 길을 막으신 하나님은 다른 길을 주신다. 하나님은 슬픔과 기쁨을 병행해    주시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으로 우리를 만    들어가신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기쁨만을 분복으로 얻은 자도      없고 슬픔만을 생의 업으로 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④ 하나님은 땅의 문을 닫으실 때에 하늘 문을 여신다. 한 가지 문을 닫으시    면 다른 문을 열고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진정한 불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진정한 불행을 성경에서 봅니다. 예수님이 소개한 어리석은 부자를 보십시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 사람은 형통하기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형통하면큰소리치고 자만합니다. 결국 육신만 아는 짐승으로 떨어집니다. 영원한 지옥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불행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런 불행을 당하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때로 곤고한 날을 허락하시고, 좋은 일과 나쁜 것을 나란히 맛보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약한 우리는 천국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참다운 행복도 다 차버릴 것입니다.   아멘???

  불행을 당한 히스기야는 기도합니다. 기도가 만능 열쇄입니다.
히스기야는 사방이 막힌 상황에서 자신에게 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며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죽을 날만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도 소용없다고 하며 다른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히스기야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여러분, 왕이라고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고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 알콜 중독자 한 분이 있었는데... 일 년에도 여러 번 수감시설에 들어갔다가 나왔지만, 참 고쳐지지를 않았습니다. 술에 취해서 홀로 고생하는 아내와 착한 자녀들에게 폭언, 저주의 말을 퍼붓습니다. 나중에는 전기 끈으로 목을 매더라구요.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지경이 되어도 교회는 안 나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세요. 하나님 나 좀 도와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1월 달에 자기를 집사로 임명을 안 해 주었다고 담임목사님을 얼마나 욕을 하는지... 그 일로 더 교회를 멀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집사라는 체면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살을 하면 했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 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 왕이라고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고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히스기야는 기도합니다.  왜 얼굴을 벽을 향하고 기도했을까요?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 벽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그 벽 너머에 있는 여호와를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벽이 버티고 가로막고 있지만 그는 벽 너머의 하나님과 대화합니다. 
 누구나 문제는 있게 마련이고,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는 하나님 나라는 기도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명성교회 김삼환목사님의 간증을 들었는데... 어릴적부터 너무 너무 가난했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했답니다. 기도 말고는 방법도 없고 할 것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10년을 기도해도,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길이 안 열리더랍니다.  기도를 해도 해도 아무 좋은 일이 없더랍니다. 가난하고 빽도 없고, 할 것이라고는 기도뿐이라서 그렇게 기도만 했는데... 해도 해도 아무 좋은 일이 없고, 응답이 없고, 어쩌다 응답이 와도 자기 기도대로 되는 일도 없답니다. 기도 기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히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기도가 먼저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종의 앞길을 막아서라도 기도를 먼저 하게 하신다.’  성도여러분, 길이 열리면 사람은 기도를 안 합니다. 길이 없고 답답해야 기도를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기도 안 하는 것이 사람인 줄을 잘 아시기에 길을 막아서라도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은 구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에 어떤 기도라도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히스기야 처럼 절망중에 기도하시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의 생활이 곧 기도입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기도 내용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3절).  히스기야는 병들기 전에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였고, 주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부왕 아하스 때 만들어 놓은 우상을 모두 부숴버렸습니다.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가르쳤습니다. 온 나라에 영적인 새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또 그가 한 놀라운 일은 수로(水路)를 판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물이 부족하여 성 밖의 기혼 샘으로부터 성 안으로 수로를 팠습니다. 적들이 성을 포위하더라도 성 안의 백성들이 물 부족을 당하지 않도록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히스기야 터널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자격(資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응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진실과 전심으로 일한 것들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돈 저축만 저축이 아닙니다.  신용만 쌓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도 쌓는 것입니다. 선한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이 바로 영적인 저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기의 때에 꺼내어 쓸 수 있는 저축으로 인정하십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십시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5-6)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루 동안 태양을 멈추게 하신 분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평소에 주님의 목전에서 선한 일,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선한 선택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응답의 자료가 됩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바른 대통령이 뽑히기를 정말 기도합니다.  세계역사를 읽거나 우리의 역사를 보면 항상 시류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꾼들’이 등장합니다. 人類보다는 나, 民族보다는 나, 共同體보다는 나, 正義보다는 나, 심지어 家族보다는 나를 위해 시류를 따라 권력에 빌붙어, 그 권력의 내용이나 본질은 따지지 않고, 권력에 짝하여 생존본능을 키워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꾼들’은 항상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인류를 내세우고 민족과 공동체를 앞세우고 정의를 외치곤 하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도덕이 마비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기독교 공동체가 걸어온 길이 이 같은 길이라는 비판입니다. 일제시대 때에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해방이 되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구호아래 기독교 장로인 이승만과 짝합니다.  이승만은 구한말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선교사가 세운 학교를 나오고, 독립협회에서 활동을 하고, 기독교 기관에서 일을 하다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초대 대통령이 되어 제헌국회 개원식의 의장을 맡아서, 목사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이윤영에게 순서에 없던 기도를 맡기면 회의를 시작한 일,   1948. 8. 15일. 대통령취임식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 일은 타락한 교회지도자들에게 더할 수 없는 ‘은혜로운 사건’이었습니다.  민족을 배신하고 어제까지 친일했던 교회지도자들은 ‘기독교의 시대’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똘똘 뭉쳐 이승만을 지지하자고 선동합니다.  선거 때마다 선거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특별기도회를 개최하면서 독재자(獨裁者) 이승만을 모세로 불렀고, 당시 기독교는 그냥 부패한 자유당 정권의 선거 캠프였습니다.  나중에 이승만이 4.19혁명으로 물러난 뒤에도, 세상권력의 맛에서 헤어나지 못한 기독교 공동체는 그 이후 쭈욱 항상 권력자들의 편에 섭니다. 그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든지,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집권했든지, 독재자로 규탄을 받든지 상관하지 않고 구국기도회니, 국가 조찬기도회등을 개최하면서 축복해주기 바빴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권력을 정당화해주고 그 댓가로 ‘주류종교’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낮은 자, 우는 자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이승만-김영삼-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장로 대통령들’ 을 탄생시킨 ‘힘 있는 종교’라는 의식에 갇혀서 한국기독교는 고난의 십자가는 버리고 영광의 면류관만 탐해왔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비판한 ‘예루살렘 종교’가 되어 헤롯권력과 짝하고 로마 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자청함으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것이 이 땅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주류’후보를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갈릴리의 종교, 변방의 종교로 힘없는 약자의 편에 서서 섬겨야할 기독교가 주류 권력을 대변하는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합니다. 약자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반역이며, 예수에 대한 배반이지요. 교회 밖으로는 권력의 시녀요, 교회안에서는 당연히 ‘祈福信仰’만 판을 칩니다.  정의나 섬김이 아니라 축복이 기도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바람직한 대통령이란 어떤 대통령입니까? 
첫째는, 국민을 ‘돈의 노예’가 되도록 부추키고, 빵만 주면 국민이 행복해 한다는 천박한 가치관을 가진 대통령이 아니라, 가진 자나 못가진 자, 대학 나온 이나 못 나온 이, 서울에 사는 사람이나 지방에 사는 이, 힘 있는 자나 힘없는 자 모두를 소중한 국민으로 받드는 대통령입니다.  
둘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식을 가진 대통령입니다. 그가 가진 권력은 잠시 국민이 맡긴 것이고, 부와 명예를 가진 소수 1%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소수에 의해 짓밟히고 착취당하고 업신여김을 받는 99%의 약자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대통령입니다. 
셋째로, 교육이 무엇인지 아는 대통령입니다. 약육강식, 우승열패, 라는 ‘정글법칙’을 옳다고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각 사람이 자기의 고유한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는 인간적인 교육,  무한경쟁시대라면서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노트도 빌려주지 않는 학급, 친구는 사라지고 왕따만 존재하고, 옆에 있던 급우가 폭력을 당하고 옥상에 뛰어내려도 내 시험성적 1점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런 비인간적인 정글 같은 교육만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2월호 - 
 여러분도 이런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런 대통령을 우리가 뽑고, 우리가 선택하면 됩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힘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세상 축복의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유에 오셨습니다.  오셨을 때 아무도 그를 몰랐고, 천사들이 알려줘서야 알았고, 세상은 오히려 그분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오늘 우리의 저축입니다. 삶이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쌓는 것입니다. 잘 삽시다. 잘 쌓읍시다. 바르게 삽시다. 나중에 지옥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분명히 수많은 왕들이 있을 것입니다. 재벌들과 스타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목사. 장로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불과 7-80년 이 세상 영화를 쫒다가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인생에는 불행이 있습니다.  기도가 만능 열쇄입니다. 오늘 우리의 생활이 곧 기도입니다. 우리가 다 히스기야 왕 같은 기도의 사람, 응답의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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