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 (눅 1:26-30)

첨부 1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 (눅 1:26-30)

눅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눅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1: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눅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눅1: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성탄의 달입니다. 성탄은 예수님의 탄생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탄은 하나님이 죄인들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신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서 인사하는 내용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렸습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인사하는 말을 듣고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진정시킨 후에,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성탄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하는 성탄의 예고는 오늘 본문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성탄의 예고에 앞서 서론적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물론 천사 가브리엘이 임의적으로 마리아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마리아를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성탄에서 우리가 기념해야 할 바는 사람이 행한 일이나 사람이 이룩해놓은 업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일들을 기념해야 합니다. 성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이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했던 인사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헬라어 성경의 원 뜻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말을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이와 같습니다. 

“기뻐하라 은혜를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성탄의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세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눅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잉태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잉태한 지 여섯째 달이 되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섯 달 전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났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그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후 여섯 달이 지나서 천사 가브리엘은 다시금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계5:11 말씀을 보면, 천사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의 수는 만 x 만 x 천 x 천을 할 만큼 무수하게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계8:2 말씀과 같이, 그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는 오직 일곱뿐입니다. 

이들 일곱 천사를 가리켜서 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는 일곱 천사장 가운데 두 천사장의 이름만 등장합니다. 미가엘과 가브리엘입니다. 미가엘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싸우는 천사이며,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구약성경에 두 번, 신약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먼저 단8:16을 보면, 하나님은 가브리엘을 다니엘에게 보내시어 그가 본 환상을 설명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단9:21을 보면,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시려고 또다시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먼저 눅1:19을 보면, 하나님은 제사장 사가랴에게 아들이 있을 것임을 알리시기 위해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그 후 여섯째 달에 오늘 본문 눅1:26 말씀처럼,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성탄을 예고하시기 위해 가브리엘을 다시금 보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 가브리엘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이들에게 천사 가브리엘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찾아간 곳은 어디였습니까?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였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은 그 곳을 가리켜 “나사렛이란 동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동네였기 때문입니다.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나사렛이란 이름이 단 한 번도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만큼 나사렛은 사람들이 잘 알지를 못할 만큼 작고도 보잘것없는 마을이었습니다. 

요1:46 말씀을 보면,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나사렛은 미미한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나사렛이란 동네”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그 앞에 갈릴리라는 보다 잘 알려진 지명을 덧붙였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4대 행정구로 나누었습니다. 맨 남쪽에 예루살렘이 위치한 유대가 있었습니다. 그 위에 사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가장 북쪽에는 나사렛이 속한 갈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 동편에는 베레아가 있었습니다. 

갈릴리는 가장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도 함께 정착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9:1 말씀을 보면,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면서 유대 사회에서 다소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나사렛이란 동네는 무명의 마을이었습니다. 또한 나사렛이 위치한 갈릴리는 유대 사회에서 멸시를 당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그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멸시를 당하던 갈릴리가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명의 동네였던 나사렛이 귀하게 쓰임을 받아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가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의 형편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방의 갈릴리와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럴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무명의 동네 나사렛처럼, 우리 자신이 보잘것없게 여겨집니까? 그럴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명의 나사렛이 귀하게 쓰임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얼마든지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가 귀하게 쓰임을 받아 영화롭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도 귀하게 쓰임을 받아 영화롭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눅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한 처녀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마리아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에게 “처녀”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했습니다. 그 때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눅1:34 말씀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그 때까지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던 처녀 곧 동정녀였습니다.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마리아는 처녀로되 약혼한 처녀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올리기 일 년 전에 먼저 약혼을 했습니다. 일단 남자와 여자가 약혼을 하면,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마1:18∼20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약혼을 하고 아직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불렸으며, 마리아는 요셉의 아내라고 불렸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이 먼저 약혼을 하고, 그 뒤 일 년이 지나서 결혼식을 올리는 이유는 아내의 순결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에는 부부가 동거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 남편은 아내와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약혼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약혼한 남자를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님의 인적 계보에서 밝혀지듯이, 요셉은 분명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요셉은 다윗 왕의 DNA를 이어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이 혈통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였습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역시 예수님의 계보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계보와는 내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따라서 비록 누가복음 3장의 계보에 마리아가 나오지는 않지만, 이는 마리아 쪽의 계보임이 분명합니다. 

 옛날 유대인의 계보에는 여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법적으로도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혈통적으로도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이 왜 중요합니까? 

삼하7:12∼13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날 다윗의 씨를 세우실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기다렸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의 이름은 헤롯이었습니다. 그는 구약의 에돔 곧 신약의 이두매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기는커녕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만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하여, 오늘 본문은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오늘 본문 27절의 끝부분입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마리아는 헬라식 이름이고, 그에 대한 히브리식 이름은 미리암입니다. 마리아나 미리암이라는 이름의 뜻은 “높다” 또는 “높임을 받은 자”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어, 그 이름대로 높임을 받은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높임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마리아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 이외에 아무 것도 덧붙이지를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의롭고 경건한 여자였더라. 그는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더라. 그는 또 자기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였더라.” 이처럼 칭찬하는 말씀이 마리아에게 전연 없습니다.  

눅1:6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는 칭찬하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전혀 그러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저 마리아라는 이름만 소개하고, 곧바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마리아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아니했더라면, 마리아는 무명의 인물로 자신의 삶을 끝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도 천주교는 마리아를 지나치게 높이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신성화하여, 마리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교리를 가르칩니다. 물론 그것들은 하나같이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교리들입니다. 

첫째, 마리아는 원죄에 오염되지 않았다. 둘째, 마리아는 단 한 번의 죄를 짓지도 않았다. 셋째, 마리아는 일생토록 동정녀로 지냈다. 넷째, 마리아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다섯째,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통치한다. 

이는 다 성경에 없는 주장들입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이외에는 어떠한 말도 덧붙여지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곧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마리아가 그 기도를 듣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마리아는 우리의 기도를 듣지도 응답하지도 못합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도 못하고, 복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마리아를 택하셔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마리아에게 어떤 특별한 공로가 있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 위에 굳게 선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은혜로 아무 공로 없는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눅1: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그에게 들어가.” 이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안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사는 집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이 때 마리아는 혼자 집에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당황하지 않도록,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다정한 말로 인사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말 성경은 이 부분에서 다소 미흡하게 번역했습니다. 원문의 순서를 따라 좀더 원문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이와 같이 됩니다. “기뻐하라 은혜를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천사의 인사는 세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기뻐하라”입니다. 이는 살전5:16 말씀인 “항상 기뻐하라”에 나오는 단어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이를 “평안할지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도 “은혜를 받은 자여” 뒤에 위치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 성경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말 가운데 “기뻐하라”는 단어가 맨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러기에 천사 가브리엘은 맨 먼저 마리아에게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은혜를 받은 자여”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은혜를 베푸는 자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자”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출3:12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1:5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삿6:12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사명을 맡기실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이와 같은 말씀이 주어진 것은 그가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뜻이었습니다. 

눅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하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마리아는 오히려 덜 놀랐을 것입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심판이 너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찾아와서 전연 뜻밖의 인사말을 했습니다. “기뻐하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다. 하나님은 너와 함께 하시며, 너를 통하여 특별한 사역을 이루실 것이니라.” 

그러니 마리아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 하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Why me? 하나님이 나처럼 비천한 여자를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가?” 등등 마리아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천사의 인사를 듣고서도 놀랐습니다. 그런 마리아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나와서 기도하며 복을 비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어떤 느낌을 받겠습니까? 마리아는 너무도 곤혹스러워 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면,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 의롭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며 자신을 높이는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 들어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귀하게 쓰임을 받기 바랍니다. 

눅1: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눅1:12 말씀을 보면, 제사장 사가랴가 천사 가브리엘을 보고 놀라며 무서워했습니다. 마리아도 천사 가브리엘을 보고 놀라며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제사장 사가랴도 또한 마리아도 다 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전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렇듯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고전15:10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바와 같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매일매일 평안하게 사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뻐하라 은혜를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우리 모두에게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