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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선물을 받으세요 (요일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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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받으세요 (요일 4:1-6) 

작년 구정 즈음에 해운대의 한 가정집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불을 지른 사람은 집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을 지른 이유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아들 내외가 설에 찾아오면서 선물을 가져왔는데, 선물이 마음에 드니 안 드니 하면서 아내와 다투다가 홧김에 불을 질렀다는 겁니다. 집도 전소되고, 자신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여러분, 선물이 도착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기쁨으로 선물을 받고, 선물을 보내신 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물을 누리며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선물이 도착해도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또 열어본 후에도 불평만 합니다. <이것도 선물이라고 보냈나? 날 뭘로 보고 이런 시시한 선물을 보내?>라고 화를 내면서 선물을 방구석에 던져 놓고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은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는 절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물을 보내신 원조는 하나님이십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보내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그 선물이 무엇일까요?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선물로 보내셨습니다. 

행복한 성도는 하나님의 선물을 열어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선물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선물을 받은 후에 너무 좋아서 낮에도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고, 밤에 잘 때도 머리맡에 놓고 자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노래합니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떻합니까?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떻합니까? 세상에 어떤 것도 비길 수 없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떻합니까?> 할렐루야! 

그런데 세상사람 모두가 예수님을 최고의 선물로 영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할 무렵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란 <영적 지식을 추구하는 사상>이란 뜻인데, 이름은 고상하지요? 이들은 헬라 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플라톤의 이원론 철학을 근거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원론 철학은 모든 것을 대립시켜 생각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세상은 위의 세상과 아래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둘은 대립합니다. 위는 신의 세계요, 아래는 인간의 세계입니다. 위는 영원하고 아래는 시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위는 정신의 세계요, 아래는 물질의 세계입니다. 위에는 선이 있고, 아래는 악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래에 있는 물질은 당연히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 세계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위에서 아래로 올 수 없고, 아래서 위로 갈 수도 없습니다. 

이들이 볼 때 기독교 신앙은 엉터리입니다. 위의 세계에 있는 신이 아래 세상에 내려오는 것도 있을 수 없는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고, 또 거룩한 신이 악한 물질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 즉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탄생하신 이야기를 엉터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베들레헴 마구간에 탄생하셨고, 그 몸으로 사람들 곁에 계시면서 사람들의 짐을 져 주셨고, 그러다가 그 몸으로 십자가까지 지셨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몸을 입은 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예수는 참 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할 당시에 <올바른 기독교인인가, 아니면 이단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기독교인이요,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단이었습니다. 

본문 2-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아멘!  

영지주의 이단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4절에도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란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이란 <로고스>, 즉 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육신>, 즉 사람의 몸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로 받아들이길 거부했습니다. 

영지주의자만 예수님을 거부한 게 아닙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을 받아들이길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비방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2세기의 철학자인 <켈서스, Celsus>가 쓴 [참 말씀, 알레데이아 로고스]란 책은 기독교를 비방한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독교인들을 이렇게 비방했습니다. <그들은 논리와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사도 나누기 전에 사랑하며,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 이뿐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로마 군인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비방했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비방한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관리하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던 대제사장들, 백성의 장로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이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최고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은 가짜라고 말하면서 백성들을 설득하고 강압했습니다. 

실제로 그 이전에 가짜 메시아들이 많이 있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5장 36-37절을 보면 두 사람의 가짜 메시아 이름이 나옵니다.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 말을 한 사람은 바울 사도의 스승인 <가말리엘>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드다>란 사람과 <유다>란 사람이 자신을 메시아라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흩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함으로써 한 밑천 잡아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말리엘의 말대로 <드다>나 <유다>는 가짜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꾀이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지금 전 지구촌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자로 믿고, 그 분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길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곳곳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만 해도 천여만 명의 사람들이 예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후 2천여 년 동안 기독교 복음은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중국, 러시아,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으로 복음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최고의 선물이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선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를 씻김 받습니다. 또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또 <사단>에게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또한 <삶의 허무와 무의미성>에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목적과 의미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던 사람이 많던 당시에도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밤,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은 마구간에 달려가서 아기를 보고 금방 알았습니다. 바로 그 분이 천사들이 말해주던 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임을 알았습니다.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그 분을 보자마자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동방에서 별을 관측하던 박사들도 금방 알았습니다. 그들은 먼 길을 왔습니다. 그리고 마구간에 계신 아기를 보는 순간, 그 분이 바로 위대한 별이 예고한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고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귀가 열리고, 영혼이 열리고, 인생이 축복으로 열렸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질병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기뻐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발견했습니다. 거룩한 삶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다양한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로 나아갔던 사람들, 그 분을 만난 사람들, 그 분의 말씀을 마음을 기울여 들은 사람들, 그 분을 의지한 사람들, 그 분께 자신의 인생을 맡겼던 사람들은 그 분이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요, 구약의 제사장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제사장임을 알았습니다. 그 분이 겉으로 볼 때는 우리 같은 사람의 몸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최고의 선물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과, 의심하고 비방하면서 거부하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여러분, 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떤 이들은 거부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영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영>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입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라고 했고, 

3절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과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면 하나님께 속한 영이요, 그것을 부인하면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을 3절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6절을 보면 이 두 가지 영을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자, 그래서 사람 안에 하나님께 속한 영이 함께 하시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합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적그리스도의 영, 즉 사단의 영이 역사하면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부합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은 이 세상에 있는 영들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1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아멘!  영을 다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적그리스도의 영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인정하고 믿으면 하나님께 속한 영이요,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영지주의자들, 철학자 켈서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에게 역사한 영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영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속한 영은 성령님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시므온>의 경우를 보십시오. 시므온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살았던 경건한 노인이었습니다. 그 분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5-26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선물이신 메시아가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성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가 성전에 도착했을 때 마침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계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27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할렐루야!  시므온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뵙고 영접하게 한 분이 성령님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의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 사랑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비방하고, 거부합니다. 

오늘의 본문 아래쪽으로 가셔서 13-15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거기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아멘!  

우리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길 기원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접하시길 기원합니다. 

시를 한 편 읽어드리겠습니다. 

<발자국 소리만 나도 / 님 오시는 소리 
초롱불 켜고 / 밤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 님 그림자 

문설주 떨거덕이니  / 마음마저 놀래라 
빗장 채워진 문틈으로 / 달빛은 청청한데 

사립문 밖에 들려오는 / 님 발자국 소리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 반기누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님이 오시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예수님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버선발로 뛰어나가 영접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최고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절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동방박사가 되길 원합니다. 목자가 되길 원합니다. 시므온이 되길 원합니다. 지금도 적그리스도의 영, 사단의 영이 사람들 속에 역사하여 예수님을 거부하게 만들려고 책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주님께로 달려 나가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님을 영접하기 위해 버선발로 주님을 향해 달려 나가는 우리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김운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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